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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압승에 일본의 호전성을 경계하는 이유

오세훈 씨알의소리 편집위원

goodbrid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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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 위협하는 극우파 총리의 야망

일제의 살육의 역사와 제도화된 잔혹성

불안한 땅에 사는 나라의 대외 팽창 야욕

들어가며

2026년 2월 8일.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창당 이래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일본은 이제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염원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310석이 개헌안 발의선인데, 자민당은 316석을 얻었다. 여기에 연정대상인 일본유신회의 36석을 합하면 여권은 352석이 된다. 전체의석의 3/4 이상(75,7%)을 차지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처음으로 일본 우익은 꿈을 이루었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 중국과 대만의 미래가 매우 불안해졌다. 불길하다. 재무장한 일본은 2차대전 때의 그 지상 최악의 악마로 다시 돌아올까. 지난 80년 동안,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우리도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중국은 G2의 한쪽이 되었다. 핵무기도 가지고 있다. 북한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처럼, 일본도 5대양 6대주의 그 어디든,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서서히 하나씩 사실상의 식민지로 만들 것이다. 초반에는 경제력으로 지배하고, 저항하면 군사력으로 제압할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1961~ )는 실은 취임(2025년 10월 21일) 직후부터, 특히 동북아평화를 위협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발설해왔다. 일본 최초의 여성총리(104대)라는 역사성과 故 아베 전 총리 뺨치는 강성 보수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가 ‘야심적으로’ 주장하는 이슈는 세 가지다. 1)비핵 3원칙--보유하지 않는다. 만들지 않는다. 들여오지 않는다—을 재검토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핵공격 피폭국이다. 헌법에 “전쟁을 벌이지도 않고 무장도 하지 않는다”, 는 조항을 둔 것은 그 때문이다. 2)중국이 대만을 점거할 경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외교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꺼내면서 초강경 태도를 취하고 있다. 3)우리의 독도 영유권 문제다.

이 여성은 총리가 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독도-일본에서는 竹島(죽도. 다케시마)라고 함-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취임 직전에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2월 22일)에 장관급이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에는 어느 극우단체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하여 우리가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기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욕적인 도발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8월 13일에 참배한 것에 대해서 “종전일인 8월 15일에 참배하라”고 비판한 일도 있다. 바로 그 여인이 지난 1월 13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최상으로 환대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과공비례’(過恭非禮)의 고사를 떠올렸다.

 

8일 오후 일본 도쿄 자민당 개표센터에서 당선확정자에게 꽃을 달아 주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2026. 02. 08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를 앞세운 일본 우익의 저의와 그 흉포한 과거사를 미국도 알고, 중국도 알고 있다. 당연히 우리도 알고 있다. 전쟁은 심지어 사소한 감정다툼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불의한 정치인들과 나쁜 정치가 섞여서 일방이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함으로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역사의 교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연 격동하는 한-중, 한-미, 한-일 관계에서 크고 깊은 지혜를 발휘하여 대한민국과 동북아를 굳건한 평화의 땅으로 너끈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슬픈 열도

일본은 태평양 ‘불의 고리’ 위에 놓인 불안정한 땅이다. 이 열도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진과 화산, 태풍과 해일 등 천연재해다. 일본은 3000만년 전, 이른바 ‘태고시대’(太古時代)의 지각변동 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대략 10만 년 전쯤에, 열도가 오늘의 지도와 비슷한 모양(지형)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6500만년 전(신생대 4기)에 형성되었으며, 200만년 전쯤 오늘의 일본열도와 비슷한 꼴을 이루었다는 주장도 있다. 둘 다 전문가들의 연구내용이다. 그 숫자의 차이를 따지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 후 변함없이, 규모를 가늠할 수도 없고, 횟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고 빈번한 화산활동이 기나긴 세월 동안 이어졌다. 지금도 1년에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1천 회 넘게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하루에 3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셈이다. 나는 이 점이 일본과 일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같은 초고강도 지진(강도 9 이상)과 해일은 100년~200년 안에 한 번씩 일어나는 경향이라는 연구자료가 있다. 물론 규칙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 일어날 수도 있고,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대형급은 한 사람의 생애 동안 두세 번 겪을 수 있다고 한다.

멀쩡하던 땅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갈라질 수도 있고, 그 틈에서 종말론적 불기둥이 솟아오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태내에 있을 때부터 느끼기 시작하며, 죽는 날까지 그 공포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은 불행하다. 그 감각은 그들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한다. 일본인들은 참으로 특별한 족속이다. 그에 관하여 누구든 측은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특별한 자연환경이 일본족의 정체성을 결정한 핵심요소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있고, 예외도 있으며, 지역별로 재해의 종류와 강도와 빈도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운 지역(현 단위)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상전벽해’

이 말은 원래 도교(道敎)에서 나온 격언이라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르면, 뽕나무밭(桑田, 상전)이 푸른 바다(碧海.,벽해)가 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바다가 다시 뽕밭이 된다는 신선의 말이었다. 현대인의 수명이 100년 안쪽이니, 이 시대의 남녀노소는 그 불노장생(不老長生)의 초인들에게나 가능한 초월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질학(地質學. geology)에서 언급되는 숫자들은 좀 크다. 구약성서의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조차 지금으로부터 불과 3000년 전의 기록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문학 또는 일종의 신학에서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자체로 왜소한 인간의 기준으로는 잴 수 없는 무한수(無限數)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시간이다. 제방을 넘어 들이닥친 해수가 강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하더니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넓은 들판이 삽시간에 바다가 되었다. 2차대전 때 원자탄을 맞은 일본! 그 폐허 위에 이룩한 빛나는 현대사와 그 화려한 문명! 그 위대한 성취가 천연재해 앞에서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졌다.

코발트빛 푸른 바다, 아득한 수평선을 넘는 황홀한 석양, 그 압도적인 풍광을 특권적으로 누리던 언덕들은 사라지고 그곳에 우럭(rock-fish)이 떼 지어 다니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충격적인 피해는, 아직 도망치지 못한 어린이들과 노약자들과 그들을 챙기려고 애쓰던 청장년 계층 대부분의 죽음을 포함한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해일과 지진은 마치 오래 굶은 표범이 토끼를 쫓는 기세였다. 분명코 인간계의 종말을 목표로 삼은 형국이었다. 쓰나미에 맞아서 망자가 된 2만 명의 이웃들은, 가두리 양식장의 어류가 집단폐사하여 물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실로 참혹한 꼴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재앙으로 인하여, 지도에서 사라진 도시와 마을이 여러 곳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현장은 공허 그 자체다. 이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기괴한 일이었다.

굴지의 강병부국 일본이 그 진재(震災)지역들을 재생하려고 10년 넘도록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살아난 사람들은 누구도 죽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족도 잃고 고향도 잃었으니 그야말로 모두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들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표현능력을 잃었다. 몸과 마음은 활성을 잃었다. 숨이 끊어진 시간부터 죽음으로 계산하는 것은 기계적이다. 그들은 그 상태로 생면부지의 낯선 땅으로 ‘추방되어’ 넋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다가 생을 마칠 것이다. 이 초현실적인 재난의 목격자들은 66년 전(2011년 3월 재앙일로부터 1945년 8월 패전일을 계산한 것), “하늘에서 지옥이 떨어졌다”고 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그 멸절적 참상을 떠올렸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모습. 2011년 3월 25일. AP 연합뉴스

이 광경은 계몽주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불과 10여년 전, 인류사회 전체가 생생하게 목격하며 다 함께 종말론적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다.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로 인하여, 일본사람들은 예외 없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는 집단이 되었다. 후쿠시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의 주민들이라 해서 덜하지 않다. 실로 안쓰러운 일이지만, 일본사람들과 일본열도의 숙명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실은 이는 인류사회 전체의 숙명이고 아픔이다. 열도가 형성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지속된 현상으로, 언제든, 누구에게든, 어느 지역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일본이 2차대전 패망의 결과, 그 폐허 위에 이룩한 문명은 어느 모로 보나, 사뭇 기적적이다. 한편으로는, 두 가지 점에서 위태롭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하나는 아무리 높은 탑을 튼튼하게 쌓아올린다 하더라도, 동일본 진재(東日本 震災)의 비극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열도인들의 그 심리가 타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다.

공포와 공격의 함수관계

작은 일에도 두려워서 벌벌 떠는 소심한 겁쟁이들이 뭉치면, 억눌려 지내던 시간 동안, 높은 퇴적층처럼 쌓인 억압은 언제든지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돌변할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집단화되면, 외부에 대한 공격성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공인된 이론이다. 그 집단 안에서는, 개인의 자아와 책임감은 약화된다. 평소에는 결코 하지 못할 행동을 저지른다. 전쟁 중에 적지(敵地)를 점령한 부대원들이 폭력집단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아군의 피해를 과장한 정보가 집단에 공유되면 그 메시지를 명분 삼아 야만성이 점차 고조된다. 메시지에 독한 ‘양념’을 집어넣으면 만행은 최악이 된다.

신적인 권위의 천황을 받드는 병력은 그 어떤 악행도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쉽고 편하게 합리화한다. 제국은 그 만행들을 표창한다. 이 언어도단의 전도현상(顚倒現狀) 앞에서, 정상적인 심리상태와 올바른 판단력을 유지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사람들은 희소하다. 그들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고 도리어 보복을 당한다. 죽거나, 정신병자가 된다. 양심의 편에 서는 것은 그런 일이다.

심리학이론 중에 공포-공격 가설(Fear-Aggression Hypothesis)이 있다. 자연재해나 사회적 불안이 길게 지속되고 오래 누적되면, 집단의 상층부는 이를 외부를 공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 휘하 조직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성을 야만적으로 발휘하며 역사에 피묻은 족적을 남긴다. 일본은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그 당사자였다.

500년 전, 이순신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싸움은 건너뛰겠다.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1876년)부터 1945년 항복할 때까지, 일제가 조선과 중국, 그 민초들에게 자행한 만행들만으로 국한하더라도, 일제는 150년 동안, 필설로는 형언키 어려운 잔혹함을 실행했다. 그렇게 천인공로할,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던 당사자는 아직도 당당하다. 큰소리친다. 오늘의 일본 우익은 그 ‘잔인 유전자’와 언제든 무기산업과 무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굴지의 산업경제력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이종자, ‘대륙낭인’

나는 몇 년 전, 한상일 교수의 ‘일제의 대륙팽창과 대륙낭인’이라는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도, 속으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대륙낭인’(大陸浪人)이라는 특이한 젊은이들이 비공식 신분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조선과 중국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했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도 종종 거명되는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 1874~1937)다. 이 사람은 불과 20대 초반 나이에 대륙낭인이 되었다.

그는 서른 살도 되기 전에, 1901년 도쿄에서 흑룡회(黑龍會)라는 대륙낭인 모임을 창설했다. 황제나 다름없던 이토 히로부미와 거래도 하고, 그를 너무 온건하다, 며 공개비판을 하기도 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파견으로 일본 수뇌부가 격노하여 고종을 압박할 때, 우치다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강경론을 주도했다. 조선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동학군들을 만나 협상도 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러시아 망국론’은 그의 저작이다. 중국쪽으로는 일찍이 쑨원(孫文)과 절친이 되어 신해혁명(1911년) 때도 도움을 주었으며, 손문이 죽을 때(1925년)까지 혈맹으로 지냈다. 이때는 ‘지나관’(中國觀)을 집필했다.

일본에서는 그를 학자로 분류한다. ‘대륙낭인’으로 활동한 일본의 극우 우국지사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비용을 받지 않았다. 이권에 개입하여 사업도 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으면서 일본에 도움이 되는 일을 알아서 하면서 뛰어다녔다. 21세기 일본 우익 강경파들은 100년 전, 그 ‘대륙낭인’의 정신을 착실하게 잇고 있는 후손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그 대표적 인물이다. 대륙낭인들은 개인의 정치경제적 성공과 일본의 대륙지배가 목적이었고, 우리 독립군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나라를 되찾는 것이 목표였다.

초토화작전과 삼광작전

간도참변

일제가 공식적으로 ‘초토화작전’(焦土化作戰),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는 표현을 문서에 남긴 것은 중일전쟁(1937년) 이후라고 하지만, 훈춘사건(일제가 현지 마적패와 짜고 자국 영사관을 공격하여 10여 명의 자국 요원들을 살해하고, 우리 독립군들이 공격한 것으로 조작한 사건) 이후, 간도에서 자행한 무차별적 살육과 그 잔혹함의 내용은 전형적으로 삼광작전(三光作戰)에 의한 초토화였다.

일제는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6개월 넘도록 북간도 전역의 한인촌 초토화작전(焦討化作戰)을 펼쳐 무자비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 기간 동안, 3만 명 이상의 우리 동포들이 살해되었으며, 요인들 150명을 검거되었다. 가옥 3,500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개소, 양곡 6만 석을 소각했다. 현지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서방언론에 제보하여 이 지옥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 선생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겨놓았다.

“아아! 세계민족 중에서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 자 수없이 많지만, 어찌 우리 겨레처럼 남녀노유(男女老幼)가 참혹하게 도살당한 자 있을 것이오. 역대 전쟁사에서 군사를 놓아 살육 약탈한 자 수없이 많지만, 저 왜적처럼 흉잔포학(凶殘暴虐)한 자는 들은 적이 없다.

저 왜적이 우리 서·북간도의 양민 동포를 학살한 일 같은 것이야 어찌 역사상에 일찍이 있었던 일이겠는가. 각처 촌락의 인가·교회·학교 및 양곡 수만 석을 모두 불태우고, 남녀노유를 총으로 죽이고 칼로 죽이고, 생매장하고 불에 태우고 결박하여 죽이고,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발로 차서 죽이고 찢어 죽이고, 불에 태우고 가마에 삶고, 해부하고 코를 꿰고 옆구리를 뚫고 배를 가르고, 머리를 베고 눈을 파내고 가죽을 벗기고, 허리를 베고 사지를 못 박고 수족을 잘라서, 인류로서는 차마 볼 수 없는 일을 저들은 오락으로 삼아 하였다.

조손(祖孫)이 함께 죽고, 혹은 부자가 함께 참륙(斬戮) 당하고, 혹은 남편을 죽여 아내에게 보이고, 형을 베어 아우에게 보이며, 혹은 상인(喪人)으로 혼백(魂魄) 고리를 가지고 난을 피하다가 형제가 함께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혹은 산모가 기저귀에 싼 어린애를 품고 화를 피하다가 모자가 같이 명을 끊었다. 그밖에 허다한 일을 종이에 다 적을 수 없으며, 우리와 화양(華洋) 각처의 조사보고도 그 참상을 다 말할 수 없었다.”

이를 간도참변이라고 부른다(*華洋:중국과 서양. 동서양이라는 뜻).

삼광작전은 살광(모조리 죽인다, 殺光), 소광(모조리 태운다, 燒光), 창광(모조리 강탈한다, 搶光)의 단계를 거쳐 초토화한다는 일제의 전쟁기술이었다. 서양학자들은 이를 학술용어로 ‘Scorched Earth Policy’라고 쓰고 있다.

관동대지진

관동대지진(1923년)은 공포가 공격성으로 돌변한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는 순식간에 살육의 명분이 되었고, 군과 자경단은 조선인 5천 명을 색출해 죽였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함석헌은 이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함석헌은 이를 우발적 현상이 아니라, 일본사회에 깊고 짙게 뿌리내려 있는 국가주의와 집단적 불안이 결합하여 제노사이드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같은 ‘집단적 불안의식’은 일본열도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환경의 특성과 유관하다. 그는 훗날 자연의 붕괴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마음”이었다고 갈파했다. 연약한 인간들이 거대한 공포 앞에서 연대하지 않고, 증오와 살육으로 돌진했다. 관동진재는 일본 사람들에게 잠재된 공포심이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집단적 잔혹성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원형적 사건이었다.

난징대학살

일제는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난징(중국 남경)의 민간인과 비무장 병사들 합하여 30만 명을 죽였다. 2만 건이 넘는 강간을 저질렀다. 피해자들 안에는 어린이와 노인이 포함되었다. 도시 안의 가옥들 대부분과 상점들은 약탈당했고, 불태워졌다. 간도참변의 규모에 비하여 10배다. 잔혹함의 내용은 동일하다. “지옥 같은 폐허”로 기록되었다.

대만 이민자 부부의 딸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아이리스 장(1968~2004)은 1984년에 난징사건에 관한 사진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잔혹한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난징의 강간’을 썼다. 1997년 출간 후, 일본의 우익세력과 극우민족주의자들로부터 지속적인 협박과 위협을 받았다. 일부는 ‘난징대학살’ 자체를 부정하며 그를 공격했고, 살해위협과 모욕적인 편지를 했다. 그는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진실을 밝힌 대가였다.

위에 서술한 살육의 역사는 극히 일제가 저지른 만행들의 극히 일부다. 일제의 만행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하여 단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나치는 인간을 숫자로 환원해 제거했다. 살육을 산업화했다. 일제의 폭력은 달랐다. 일본군은 피해자를 끝까지 인간으로 남겨둔 채, 그 인간성을 파괴했다. 참수, 고문, 강간, 생체실험 등은 단순한 군사행위가 아니라 제도화된 잔혹성이었다. 이는 살해가 아니라, 인간을 부수는 일이었다. 존재를 붕괴시키는 악마의 파괴공학이었다.

나는 일본열도의 자연재해가 일본인의 잔혹성을 결정지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끝없이 반복되는 공포가 사회 전반에 축적되었고, 그것이 군국주의와 결합했을 때 외부를 향한 무제한적 공격성으로 분출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 폭력은 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공포를 외화하는 방식이며, 오랜 전통이었다. 더욱 심각하고 우려되는 것은 그 특징은 항구적이라는 점이다.

 

8일의 중의원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2월 10일

맺으면서

오늘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일본 정객들의 역사 부정과 호전적 언사는 단순한 외교적 무례가 아니다. 한일, 한중 관계사의 바탕에는, 대표적으로 간도참변과 난징대학살에서 보인 잔혹성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 일본은 종종 마치 피해자였던 것처럼 처신한다. 세계가 일본을 경계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일본 정부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천명함으로써 21세기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었다. 중국은 ‘중화’의 세상을 위하여 미국에 도전하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온갖 술수를 다 구사한다. 일본은 미-중-러 G3의 세상을 G4로 바꾸려고 이웃과 세상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력

-GDP: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國富:3위

-대외 순자산: 1위

-증시규모:3위

-외환보유:2위

-비서양권 국가들 가운데, 최초의 OECD 가입국이며 G7 회원국

일본재무장은 일본 우익의 염원이다. 이는 이제까지 미국의 중국 견제 목적에 부합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완승 기자회견‘에서, “헌법개정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현대 일본의 중요한 정책에 관한 대전환‘을 실행하겠다는 말이다. 최종 목표는 단순명쾌하다. 평화헌법 9조의 정신을 지우고, 자위대를 전쟁할 수 있는 군사조직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세계 3위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의 전투력으로 전환가능한 무력과 같다. 일본이 플루토늄 10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당장 1250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머지않아 핵보유국이 된다. 우리가 어찌 일본의 재무장과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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