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정영 사건, "걱정 말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재훈의 반헌법 행위의 첫 정점은 1984년 인천지법 부장판사로서 맡은 정영 간첩조작사건이다. 정영은 1965년 조개를 캐다 북한에 납북됐다가 돌아온 어민이었다. 안기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이 사건에서, 정영이 법정에서 "고문에 못 이겨서 그런 것"이라고 항변하자 이재훈은 그를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정영은 국정원과거사위원회 면담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남겼다.
"내가 막 소란을 피웠는데, 판사가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 검사가 구형 놓은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있으라고, 그러더니 깎아서 깎아서도 무기로 떨어지더라고요."
판사가 직접 "걱정 말라"고 위로하고는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안기부 보고서에는 이재훈이 정영을 "잘못을 반성치 않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기록돼 있다. 2011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7년 만이었다.
이 사건의 배석판사가 신평이었다. 신평은 훗날 부장판사가 봉투를 공공연히 받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언론에 폭로했고, 1993년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인천지법에서 봉투가 오가던 그 시절, 정영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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