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김종구(언론인) | 기사입력 2026.06.27. 00:13:45 최종수정 2026.06.27. 08:39:59
한 사회의 가치관은 사람들의 생각이 한꺼번에 바뀌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낡은 세대가 물러나고, 다른 생각을 품은 젊은 세대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가치관의 변화는 설득의 결과라기보다 세대교체의 결과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가치가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이동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피파 노리스는 '뱀 뱃속의 쥐'라는 인구학적 비유로 설명했다. 비단뱀이 삼킨 쥐는 곧바로 소화되지 않는다. 뱀의 몸통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거대한 꿈틀거림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품은 가치관은 세월과 함께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미래의 정치 지형도 서서히 바뀐다. 정치는 세월을 등에 업고 세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20·30대 젊은이들은 이제 40·50대가 됐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개혁과 인권의 가치를 자신의 시간 속에 새겼다. 몸은 늙어가도 청년기의 신념은 쉽게 늙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 진보 진영을 떠받치는 가장 두터운 기둥이 됐다. 민주당이 누리는 정치적 우위는 상당 부분 이 세대가 만들어낸 인구학적 흐름 위에 서 있다.
2030남성, '보수화' 아닌 '진보 이동 차단'
문제는 그다음이다. 몸통을 지나고 있는 쥐는 머지않아 꼬리로 이동한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2030세대는 앞선 세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깊은 성별 균열이 세대 내부를 가르고 있다. 2025년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58%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20대 남성의 지지는 24%에 그쳤다. 내란과 탄핵이라는 거센 정치적 격랑을 겪고도 김문수·이준석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런 흐름은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현상을 단순히 '청년 남성의 보수화'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윤석열 정부에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탄핵에도 찬성했다. 그런데도 진보로 향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택은 '보수화'라기보다는 '진보로의 이동 차단'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이 세대 남성에게 깊이 새겨진 것은 내란 사태가 아니다. 그보다 앞선 10년의 생존 경쟁과 젠더 갈등이었다. 내란이 닥쳤을 때 그들은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굳어 있었다. 헌정질서를 뿌리채 흔든 충격적 사건도 그 틀을 깨뜨리지 못했다.
내란 이후 탄핵 광장의 풍경도 굴절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응원봉의 거리는 여성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게 마치 젠더 갈등의 다른 편에 서는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치적 선택은 깊게 패인 갈등의 물길을 따라 흘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를 읽는 핵심 기준이 달라진 점이다.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공정·능력·역차별'이 새로운 눈금이 됐다. 치솟는 집값, 치열한 취업 경쟁, 계층 이동의 어려움, 병역 의무와 젠더 갈등이 청년들의 시간을 채웠다. 많은 청년들은 민주당이 자신들이 겪는 불공정과 박탈감보다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을 앞세운다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삶이 정치의 언어에서 빠져 있다고 느끼며 이들은 점차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30대 여성,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의 충돌 시작
주목할 대목은 2030 여성에서도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는 점이다.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56.7%는 정원오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1년 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58.1%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3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는 51.3%에 머물렀다. 가까스로 우위를 지켰으나 대선 때(57.3%)보다 6%포인트가량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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