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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원 파업은 한국 의료의 미래다

'여성을 위한' 이화의료원, 그곳에 무슨 일이?

[기고] 이화의료원 파업은 한국 의료의 미래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19 오전 11:59:01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지부장 임미경, 조합원 1100명)가 파업 중이다. 6년 만의 파업이자 올해 대학병원에서 최초 파업이다. 9월 19일로 파업 돌입 15일차를 맞고 있지만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최근 노동계에 워낙 큰 사건과 투쟁이 많다보니 다소 평범한(?) 정규직 노조의 파업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쟁점과 진행양상을 들여다보면 한국 의료와 노사관계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왜 그럴까?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화의료원 파업은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126년 역사의 명문여성사학이라는 이화재단 소속 여성대학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조 무력화 논란이다. 최근 SJM 용역폭력, 유성기업 노조 무력화와 관련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창조 노무법인(창조컨설팅) 심종두 노무사와 버젓이 자문계약을 맺고 노조 무력화라는 반사회적이고 전근대적인 범죄행위를 다른 곳도 아닌 이화재단 산하 대학병원에서 벌이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두 번째는 지난 2010년 21일간 진행된 고대의료원 파업 때 던진 화두였던,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외형적 성장과 병상 증축, 장비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에게 투자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 대학병원 경영철학과 미래 발전전략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세 번째, 노사관계 측면에서는 기업별 교섭체제에서 산별 교섭체제로 어떻게 합리적으로 이행할 것인지,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내걸고 2008년 시행된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과연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면서 운영되고 있는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고 있는지 등이 쟁점으로 드러나면서 이화의료원 파업 양상은 한국 의료와 노사관계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 과제가 한꺼번에 응축되어 나타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파업 2주…외형적 성장인가 사람을 위한 투자인가

쟁점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학생을 교육하고 의학을 연구하는 교육연구기관이자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 불거지고 있는 노조 무력화 논란이다. 더군다나 이화의료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여성사학의 최고 명문인 이화학당 소속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최근 사측은 심 노무사를 끌어들여 중간관리자 교육을 시키고, 소위 심종두 노조 파괴 매뉴얼을 근거로 파업 장기화 유도 및 노동조합 무력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배경으로 마곡에 새로 개원하는 1200병상의 제2병원 건립 이전에 노조를 손봐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측 불성실 교섭으로 노조 자극 → 파업 유도 → 파업 돌입 후 노노 갈등 유발, 파업 장기화 유도 → 단체협약 일방해지 → 징계, 고소고발, 손해배상, 가압류 → 노조 무력화 → 복수노조 출현 또는 무노조경영 실현' 등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이화의료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합법파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간관리자들은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25년 노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파업에 참가하려는 조합원들에게 협박과 회유 심지어 감금마저 서슴지 않는 심각한 부당노동행위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조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의료원은 조합원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문자메시지를 통해 파업대오 이탈과 현장 근무 복귀를 종용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농성장으로 들어와 조합원을 끌고 가는가 하면, 매일 새벽 일찍 관리자들이 출근하여 조합원들이 파업 농성장에 합류하지 않고 곧바로 부서로 들어가도록 압박 종용하고, 파업 참가 후 귀가한 조합원에게 강제 근로를 시키고, 조기 출근 및 연장 근로 등을 명하고, 파업농성장 근처조차 가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부 병동에서는 근무시간 중 식당 출입을 금지한 채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하게 하는 등 조합원들이 노조 간부의 접촉 자체를 막으면서 파업 참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심각한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최근 사측의 이런 심각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무력화 의도에 대해 노조가 강력히 항의하자, 사측은 심 노무사가 이미 2005년부터 병원과 자문계약을 맺고 있으며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것이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투로 답변했다고 한다. 이런 사측의 안이한 태도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화의료원은 노조 무력화 의도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을 파기하고 개입을 중단시키고, 노사 간 교섭에 성실히 임해 파업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사측의 노조 무력화 기도가 지속된다면 노조의 강력한 저항과 연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사측은 몇 배의 엄청난 교섭비용을 물으면서 사회적 지탄과 도덕적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노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현숙 의료원장의 잘못된 판단이 계속 강행된다면 결국 이화의료원의 실질적 책임자인 장명수 재단 이사장이 직접 나서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다.

거듭되는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무력화 시도

두 번째, 한국의 대학병원이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어디다 우선 투자순위를 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번 파업 노사 쟁점을 보면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화의료원은 2008년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 통합 이후 최근까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목동병원을 최첨단 시설로 리모델링하고 첨단 의료기기를 도입하면서 여성암 전문 특화병원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국제적인 의료기관평가제도인 JCI 인증도 획득했다. 그리고 서울시 서남병원을 위탁 경영하고, 2016년 마곡지구 제2병원 1200병상 건립 계약을 확정함으로써 의료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국제 수준의 여성 중심 병원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런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은 대학병원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실 이화의료원이 화려하게 성장 발전하는 동안 노동자는 계속된 고통을 감내하며 묵묵히 일해왔다. 2008년 경영 악화로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이화의료원 직원들은 100% 고용보장 조건으로 구조조정, 임금 20% 삭감 및 이후 수년간 임금동결 등의 희생을 감내했다. 한국 의료기관평가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JCI 인증을 받기 위해 아무런 보상도 없이 3개월 이상 전 직원이 밤낮없이 준비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화의료원의 경영이 정상화되고 재단 적립금을 300억가량 보유하면서 재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의료원 측은 시설 및 장비, 리모델링에만 집중 투자하면서 직원들의 임금 인상 및 인력 충원,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비용 문제로 치부하면서 미루거나 외면으로 일관했다. 그리하여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은 전국 사립대병원 중 최하위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비정규직 비율도 100% 이상 증가하였다.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여성을 가장 잘 아는 병원, 여성을 위한 병원을 표방하는 이화의료원이 법적으로 명시된 직장보육시설을 아직 설치하지 않고 있으며 10년 전 노사가 합의한 보육수당 지급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재단 정원 문제를 핑계 삼아 130여 간호사들의 사학연금 발령을 미루고, 부족한 인력마저 충원하지 않고 있으며, 상시적 업무에도 비정규직을 고용해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폐해를 불러왔다.

이화의료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요구가 직원 식사 질 개선 요구이다. 오죽하면 대학병원 직원들이 단체협약 핵심 요구로 식사 질 개선을 요구할까? 직원 식사 질 개선 등 직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도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외형적 고속성장에 비해 갈수록 떨어지는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이화의료원 지부는 6년 만에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원인은 외형적 성장에 가려진 대학병원 꼴찌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이다. 여성 전문 병원을 표방하면서도 모성 보호 제도는 가장 취약하다. 증축과 시설투자 이전에 사람에게 먼저 투자하라는 것이 이화의료원 파업 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어느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야말로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에게 꼭 맞는 요구이다.

요즘 병원계에서는 병상 증축과 시설 고급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경쟁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저마다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붓고 있다. 사실 대학병원들은 빅4 병원 따라가기 식 '묻지 마 외형적 성장전략'(환자에 대한 과잉 검사와 과잉 진료, 노동자 쥐어짜기와 인건비 줄이기)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공공적 정책 개입을 통해 의료 환경 개선, 환자 안전을 위한 적정 진료, 노사협력을 통한 사람 중심의 동반성장 전략'을 택할 것인가 하는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화의료원 또한 마찬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병원들이 손쉽게 보이는 전자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이렇듯 영리병원 논쟁은 이미 기존 병원에서 시작됐다. 이화의료원 파업은 병원들이 돈벌이 영리병원으로 가는 것을 막는 투쟁이다.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 파업은 돈벌이 영리병원으로 가는 것을 막는 투쟁

세 번째는 노사관계 측면이다. 양대 노총 소속 노조의 50% 이상이 초기업노조 형태를 띠고 있지만 교섭형태는 여전히 절대 다수가 기업별 교섭체제이다. 이런 조건에서 국제기준의 교섭구조인 산별 교섭체제로 합리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것은 이화의료원은 물론 보건의료 노사 간에 뜨거운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199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설된 보건의료노조는 수년간의 투쟁 끝에 2004년부터 산별교섭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2009년 사용자협의회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로 산별교섭이 중단된 이후 2010∼2011년 산별교섭이 파행적으로 진행되었고, 다시 산별중앙교섭을 정상화하기 위해 올해를 '산별교섭 정상화투쟁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보건의료노조는 소속 5개 특성 병원 중 3개 특성(특수목적 공공병원, 지방의료원, 민간종합병원) 51개 사용자대표와 총 6개 항의 산별협약과 특성별 부속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하반기 노사공동포럼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산업별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병원 내부의 세부적인 문제는 현장교섭으로, 병원 외부의 제도적 문제는 산별교섭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노동조합의 기본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이화의료원은 산별교섭 불참도 모자라 현장교섭에서 '산별요구안을 포기하지 않으면 임금 및 단체협약안을 제시할 수 없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면서 파업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 더구나 이화의료원 단체협약에는 '노조가 요청하는 산별교섭에 참가한다'라는 노사 합의 사항이 있고, 9월 4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산별교섭 불참 사업장에 대해 '단체교섭 방식에 대해 노사가 조속히 논의를 하라'고 권고한 것마저 무시하는 태도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도 파업 직전 조정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노사가 단체교섭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논의를 시작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교섭을 원만히 타결하기 위해 산별교섭 관련 요구를 최대한 유연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산별 포기선언을 하지 않으면 교섭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마치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과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양심수에게 사상전향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노조에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측은 교육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이런 비이성적인 태도를 버리고 기존의 단체협약과 노동위원회 권고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 측면에서 숨겨진 또 하나의 쟁점은 필수유지업무제도이다.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내걸고 2008년 1월 시행된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과연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면서 운영되고 있는지 이화의료원 파업을 통해 현장 사례를 연구하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구시대적 노동악법이었던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된 이후 병원 등 공공 사업장에는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번 이화의료원 파업에도 이 법이 적용되고 있고, 노조는 합법 파업을 위해 필수유지업무 부서에 이 법이 정한 인력을 투입하면서 파업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필수유지업무제도는 필수인력 배치와 함께 50%의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파업 중임에도 거의 100%에 가까운 병원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실제 파업의 위력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사측이 버틸 근거만 제공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구나 숙련도가 떨어지는 대체인력 투입이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2009년 보훈병원 파업, 2010년 고대의료원 파업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과 공익의 공존과 조화를 내걸고 시작한 필수유지업무제도는 공존과 조화가 아니라 공익을 앞세운 사측의 이익에 일방적으로 복무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단체행동권 보장과 공익의 진정한 조화를 위해 지금의 필수유지업무제도를 개선할 방안이 시급하다.

 

ⓒ보건의료노조


노조 없는 좋은 병원, 노조 없는 경제민주화가 가능한가?

대선을 10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각 당 후보가 속속 선출되고 있다. 후보들은 저마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의료 공공성 강화, 노사관계 민주화, 선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나의 사업장 파업이지만 파업 14일차인 이화의료원 파업투쟁은 각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이런 공약들에 포함된 문제가 함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장이다.

그런 현장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노조 없이 좋은 병원, 좋은 경영이 가능한가? 노조 없는 복지국가가 가능한가? 노조 없는 경제민주화가 가능한가? 이화의료원 파업과 사측의 대응 양상은 우리 사회에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조가 사라진 이후에는 노사관계도 없지만 좋은 경영과 분배정의, 경제민주화, 사회민주화도 없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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