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넉 달간 대한민국은 마치 몇 개의 시대, 상반되는 시절을 동시에 사는 듯한 시간을 겪었다. 마치 서로 다른 두 도시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의 첫 문장처럼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으며,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극심한 혼란과 희미한 희망의 불빛이 뒤섞였다.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낡은 독재의 유산의 그림자가 부딪치고 시민의 힘과 권력의 오만이 한 공간에서 충돌했다.
40여 년 전, 거리마다 군홧발 소리에 짓눌렸고, 시민들은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고통받았다. 그러나 2024년의 겨울,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섰던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40년 전 무력 앞에 굴하지 않았던 이들의 정신과 용기는 오늘, 촛불과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함성으로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탄핵 선고가 단순한 법적 판단이 아닌 것은 무엇보다 지난 120일간의 그 광장의 열망과 함성이 기다려 온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가 그랬듯 한국 민주주의는 언제나 벼랑 끝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비상계엄의 밤, 국회의사당 담장을 넘던 의원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국회 앞을 지켰던 시민들. 그날 계엄의 밤처럼 대한민국의 역사는 늘 담장 위를 걷듯 위기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헌법재판소가 다시 그 선택을 해야 한다. 아니, 다시 말하지만 인용이냐 기각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선택이 아닌 국민들의 명령을 받드는 것이다. 그 자신의 태생과 존재의 근거인 헌법이 가리키는 대로 가는 것일 뿐, 다른 길은 없다. 오늘 오전 헌재의 대심판정으로 들어가는 헌법재판관들은 헌법을 지키는 것이 곧 헌재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삶은 더 이상 '계엄의 오랏줄'에 묶여 있을 시간이 없다. 오늘의 결정은 비상계엄 쿠데타에 대한 처벌과 응징이자 지난 3년간의 윤석열 정권하에서 벌어진 온갖 퇴행의 청산의 시작이다. 그 무능 무지 무도와 파행 파탄 파국의 시간을 이제 단호히 끊어내고 다시 앞으로의 길을 열어야 한다. 오늘의 결정이 과거에 대한 심판이자 미래로의 문을 여는 순간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한민국이 다시 군사독재의 유산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세계가 또한 우리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후퇴하는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민국이 다시 희망의 이름, 새로운 전환의 신호가 될 수 있는지를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미래로의 문, 세계로의 문, 헌재가 그 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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