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을 둘러싸고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문창극을 두남두는 사람들이 곰비임비 등장하고 있어서다. 특히 ‘원로’를 자처하는 언론인들과 학자들이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 ‘이 땅의 보수는 죽었다’고 15년 전 신문 기명칼럼을 쓸 때부터 주장해왔지만, 그랬던 나조차 이 나라 지식인들의 ‘역사의식’이 이 정도로 천박한가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깊이 없는 역사의식을 겸손하게 들여다보기보다는 대화 상대에게 ‘좌파’라는 색깔을 칠한다. 참으로 황당한 ‘지식사회 풍경’이다. 

문화방송(MBC)이 지난 20일 문창극 관련 긴급토론을 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실장은 <‘광우병 선동’ 뺨치는 KBS 문창극 보도> 제하의 칼럼(6월23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전체 150분 방송 중 40여 분을 교회강연 동영상에 할애한 특이한 프로그램이었다. 토론자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공영방송에서 저런 동영상을 저렇게 오래 틀어도 되는 거냐’라고 했다가 ‘KBS에서 짜깁기해서 보여주는 건 괜찮고 MBC에서 전체 다 보여주는 건 안 되냐’라는 홍성걸 국민대 교수의 반격에 금방 머쓱해졌다.”
 
   
동아일보 2014년 6월23일자 30면.
 
중앙일보도 기사에서 긴급토론의 그 대목을 인용했다. 명토박아둔다. 머쓱해졌다? 흔히 토론에 나간 뒤 트위터에 주관적 표현으로 ‘감상문’을 쓰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런데 동아일보 논설실장이 그렇게 쓴다. 딴은 그 논설실장은 방송 토론에서 언급한 ‘주체사상 아니면 신자유주의’라는 흑백논리에 사무친 언론인 가운데 하나다. 젊은 날 함께 한 신문사에 있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내가 머쓱했을까? 전혀 아니다. 토론 내내 대화가 어려워 갑갑했지만, 그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하는 교수의 말에 어이가 없었고, 발언이 긴 토론 상대자의 발언을 (누구처럼) 중간에 자르며 나서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중앙일보 2014년 6월23일자 6면.
 
더구나 43분에 걸친 ‘강력한 토론자’가 2대2 패널 구도에 더해있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중앙일보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는 동영상을 과연 MBC가 황금시간대에 43분에 걸쳐 방송해야 옳은가? 진지하게 성찰할 문제다. 과연 국무총리 후보자 문창극의 역사의식을 고발한 KBS 뉴스보도가 ‘악마적 편집’인가? 

문제의 핵심은 다시 문창극 씨의 강연 내용이다. 공영방송에서 43분을 틀 만큼 지적 수준도 논리도 없다.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은 듣기 역겨울 만큼 비뚤어져 있다. 

그럼에도 문창극의 강연 동영상을 보고 아무 문제가 없다라든가 ‘표현상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언론인, 대학교수, 목사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갈까. 정말이지 ‘애국 충정’으로 애가 끓는다. 

방송 토론 당일에 갑자기 긴급토론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방송사에 가서 생방송 직전에야 문창극 동영상을 오래 튼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접겠다.

방송에서 상대를 배려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문창극 발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논설실장, 중앙일보 기자에겐 와 닿지 않은 듯하다.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지식인 사이의 대화나 토론에서 제대로 된 반론을 듣고 싶다면, 너무 사치스러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품격 없이 만들어오는데 언론계와 학계는 큰 책임이 있다. 전직 언론인으로 현직 교수인 나는 그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을까. 나라는 시나브로 기울어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