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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부담으로만 보는 까닭은…

통일을 부담으로만 보는 까닭은…

[특별 기고] KDI의 통일비용 산출에 대해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 전 통일부 장관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03 오전 7:54:58

 

지난 12월 1일, KDI가 통일비용과 관련된 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북한경제 리뷰: 남북통일을 위한 재정조달'이라는 보고서라고 한다. 언론(연합뉴스 12월 1일자)이 보도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들의 기초생활 보장 때문에 정부지출이 지금의 10배로 늘어나고, 북한주민 의료비 때문에도 GDP 2∼3%의 추가지출이 필요해진다. 결과적으로 정부부채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날 수 있다. 민간부문만으로는 통일재원을 모두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외 채권도 발행해야 한다."

연구보고서 내용이 언론이 보도한 대로라면, 우선 통일은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가지고서야 감히 통일을 꿈이라도 꿀 수 있겠는가? 이 기사를 읽으면서 김영삼 정부 시절 우리 사회가 '북한붕괴론 대두-흡수통일론 유행-경쟁적 통일비용 계산-통일공포증 만연'이라는 열병을 앓던 상황이 상기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30년 이상 통일문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는 짚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풀려진 통일비용은 통일공포증, 통일기피증 심어준다

첫째, 통일비용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것이다. 통일비용, 이거 잘못된 전제 하에 잘못된 기준으로 계산하면 국민들에게 통일기피증, 통일공포증을 심어 준다. 연구자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통일비용을 넉넉하게 계산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분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수가 있다. 분단이데올로기를 이론적으로 보강해준다는 뜻이다.

1990년대 초중반 난데없이 북한붕괴론이 나오고 흡수통일론이 유행을 하면서 학자들 사이에 통일비용 계산 경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동독처럼 북한이 갑자기 붕괴한 뒤 통일을 위해서 '10년 동안 남한이 매년 얼마나 돈을 들여야 하느냐'라는 것이 당시 통일비용의 개념이었는데, 매년 GDP의 14∼15%를 북한에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부터 그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왔었다.

그 때 누가 이런 통일비용 계산의 군불을 지폈는가? 국내학자나 기관이 아니었다. 일본장기신용은행이었다. 그리고 GDP 14∼15%의 통일비용이 필요하리라는 것도 일본장기신용은행의 계산 결과였다. GDP 15%면 당시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친절하게도 한국의 경제능력으로는 힘이 부치기 때문에 일본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단서까지 달았었다.

여기에 뒤질세라 국내 학자들이 애국애족심을 발휘하다 보니 일본이 계산한 것보다 더 많은 통일비용이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된 적도 있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경우라는 전제하에 잘못된 기준을 적용하여 경쟁적으로 계산된 엄청난 규모의 통일비용은 그때부터 국민들에게 통일기피증, 통일공포증을 심어주면서 분단이데올로기 노릇을 했다.

이번 KDI의 연구보고서도 국민들에게 통일을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주기보다 통일공포증과 통일기피증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도 보고서를 분석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은 빼고, 통일편익은 보태야 한다

둘째, 통일비용 계산 방법에 관한 것이다. 과거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랬듯이, 통일 후 투자비용만 계산해놓고 그걸 통일비용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국민들은 통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생각밖에 못하게 된다.

통일이 되면 분단상황에서는 지불하지 않던 추가비용이 당연히 나온다. 그런데 분단이 끝나서 그런 추가비용, '통일비용'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비용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분단이 끝나면 '분단비용'이 안 나간다는 얘기다. 통일비용이 분단비용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지만, 분단비용을 통일비용으로 돌려 쓰면 '순(純)통일비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순통일비용이 진짜 통일비용이라고 해야 상식에 맞지 않겠는가?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 통일비용과 분단비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통일편익이다. 우리는 지금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통일된 국가였더라면 갖출 수 있는 위상과 국가경쟁력을 못 가지고 있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편익이 상당히 커질 것이다.

우선 인구가 7천만 이상이 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해 통일한국의 국제경쟁력이 급상승할 것이다. 분단상황에서 분단비용을 지출해가면서 4천8,9백만의 인구로도 G-15반열에까지 올랐는데, 분단비용 더 이상 안 나가고 인구가 7천3,4백만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제경쟁력 있는 상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 더구나 TKR-TSR(시베리아횡단철도)과 TKR-TCR(중국횡단철도)을 통한 물류비 절감(시간상 선박의 3분의1 소요)으로 인한 수출품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남한의 자본과 하이테크에다가 결합시키면 경쟁력 있는 상품이 추가로 개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일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두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통일한국은 G-6, G-7반열로 올라갈 수도 있다.

앞으로 우리 학자들이나 기관이 통일비용을 계산하려면,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을 상계(相計)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일편익도 계산해주면 좋겠다. 통일 후 실제로 지출되는 돈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모두 합산해서 제시하면 국민들이 통일을 두려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통일을 바랄 것이다. 왜? 지금까지 말한 방법대로 계산하면 '통일은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순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은 각각 얼마나 되나

셋째, 수치로 보는 통일비용, 분단비용, 통일편익의 규모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통일비용 전문 경제학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신창민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통일비용을 연구해온 분인데, 근년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로부터 통일비용 연구 위촉을 받아 그 연구결과를 국회에 제출했다. 신 교수의 <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이라는 연구보고서의 핵심 수치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을 통일 시발점을로 삼고 그로부터 15년간 북한경제를 일으키면서 남북통합을 해나가려면 매년 GDP의 6.0∼6.9% 정도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 한편 분단기간 중 지출되었던 GDP의 4.35∼4.65%에 해당하는 분단비용은 더 이상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분단비용을 통일비용으로 돌려 쓸 수 있기 때문에 순통일비용은 결국 년간 GDP의 1.65∼2.35%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통일 후 통일편익은 매우 클 것이다. 자본의 회임기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통일 직후부터 통일편익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GDP가 년평균 11.25%씩 성장할 수 있다. 년 평균 GDP 성장률 11.25%에서 순통일비용인 GDP의 1.65∼2.35%를 빼면 년간 9% 전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년 3∼4%대에 머물러 있던 점을 생각하면 통일의 편익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A) 통일비용 : 연간 GDP의 6.0~6.9%
(B) 분단비용 : 연간 GDP의 4.35~4.65%
(C) 순통일비용 : (A)-(B) = 연간 GDP의 1.35~2.55%

(D) 통일편익 : 통일시 연 11.25% 성장
(E) 순성장 : (D)-(C) = 8.7~9.9%

*통일편익(D)에서 통일비용(A)만 빼는 방식으로 계산해도 (D)-(A) = 4.35~5.25% 성장

북한붕괴 쉽지 않고, 북한주민이 소비주체만은 아니다

끝으로, 통일비용을 계산할 때 범하기 쉬운 전제나 가정의 오류에 관한 것이다. 남북통일비용 계산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동독이 붕괴했다고 해서 북한도 붕괴할 거라고 전망하는 것은 일종의 '희망적 관측'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그렇게 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북한붕괴론은 그와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북한에게는 동독의 후견국이던 소련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도 일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북한의 후견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은 날로 부국강병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 국가마다 체제붕괴 요인과 체제유지 요인이 함께 있는 법이다. 대내적으로, 북한에는 체제붕괴 요인도 있지만 체제유지 요인도 만만치 않게 강하다. 북한 붕괴를 쉽게 예단하는 건 정책적으로 현명치 않은 일이다.

통일비용 계산과정에서 통일 후 북한주민은 남쪽에 손만 벌릴 것처럼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소비주체 중 상당수는 생산주체이기도 하다. 북한주민 전체를 통일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통일비용을 계산하면 되겠는가? 북한주민들의 노동력과 두뇌가 통일한국에 자산이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통일 이후 통일비용을 사전에 줄여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외면하고 엉뚱한 길로 돌아가려 하면서, 잘못된 전제와 잘못된 방법으로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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