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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내게 핵 없는 삶이 가능하냐 묻는다면…

의사인 내게 핵 없는 삶이 가능하냐 묻는다면…

[민들레]핵‧① 핵에 둔감한 사람들

 

 

 
미생물학과 면역학을 전공한 의사인 내가 탈핵운동가가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이 된 후, 경주에 건설 중인 중저준위 방폐장의 안전성을 살펴보니 당국의 설명과 달리 문제가 너무 많았다. 일 년 동안 자료 조사를 해보니 방폐장에서 방사능 오염 물질이 누출될 확률은 100퍼센트(%)였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의뢰해봤지만, 결론은 같았다.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2년 동안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이 핵 문제에 그렇게 둔감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던 중 2011년 후쿠시마에서 전대미문의 핵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를 보면서 '방폐장만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 핵발전소가 없어져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탈핵 강의를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람들이 우리는 안전하냐고 물었다. 정부는 우리 원자로는 일본 것과 다르다고 안심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얘기를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 국토의 약 70%가 방사능 물질로 오염되었으며 북태평양 오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토의 오염은 곧, 밥상의 오염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를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으며, 일본인의 방사능 피폭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앞으로 일본에서 암, 유전병, 심장병의 증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사태를 겪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핵사고 확률을 제로로 줄이는 방법인 '탈핵(脫核)' 즉, 사고 나기 전에 원전을 모두 닫는 것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원전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한다. 나는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짧은 글로나마 설명하려 한다. 
 
▲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2012년 3월 10일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 시민문화행사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을 열고 반핵, 탈원전을 촉구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벌였다. ⓒ프레시안(최형락)

▲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2012년 3월 10일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 시민문화행사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을 열고 반핵, 탈원전을 촉구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벌였다. ⓒ프레시안(최형락)

거꾸로 가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        
 
많은 이들이 '원전이 없으면 지금처럼 싸고 편리하게 전기를 못 쓰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또한 원전을 '필요악'으로 인식해 '우리나라는 탈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면, 지난 30여 년간 선진국은 원전을 꾸준히 줄이면서 필요한 전기를 재생에너지에서 얻어왔다. 이미 많은 나라가 태양광, 풍력, 지열, 수력 같은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엄청난 양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지구 상 전기의 약 20%를 이런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얻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량은 지금도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독일과 덴마크의 경우, 2050년까지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까지 모두 없애고 모든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약 70%의 전기를 화력발전에서 생산하고 약 30%는 핵발전으로 생산하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한 전기는 0.4% 정도로 세계 꼴찌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사용 세계 평균이 20%인데 우리나라는 0.4%라니, 놀라운 차이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정부의 '원자력과 화력 중심' 에너지 정책 때문이었다. 매년 원자력 예산은 늘고 있지만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예산은 줄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또한 원자력에 대해서는 "경제적이다, 안전하다"고 긍정적으로 선전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는 개발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비싸다, 고장이 잦다, 전기가 별로 안 나온다,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 등 부정적인 선전을 해왔다. 전 세계 흐름과 정반대 길을 걸어온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세 가지 장점을 갖는다. △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에너지라는 점, △ 공짜라는 점, △ 국산 에너지라는 점 등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좋은 에너지를 무시하고 있다. 
 
▲ 세계 연도별 신설 발전시설 현황. 수풍력 발전은 매년 20%이상, 태양광은 매년 50%이상 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핵발전은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다. ⓒGreen Peace, 2012

▲ 세계 연도별 신설 발전시설 현황. 수풍력 발전은 매년 20%이상, 태양광은 매년 50%이상 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핵발전은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다. ⓒGreen Peace, 2012

위 그래프를 보면 전 세계에서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가능 에너지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지만 핵발전소 신설은 거의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세계의 원전 개수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20년 안에 전 세계 원전의 절반 이상인 250여 개가 폐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도상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20년 내에 250개의 원전을 짓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원전은 머지않아 그 숫자가 줄어들고, 결국은 지구 상에서 사라질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세계적인 동향이 탈원전으로 향하는 것은 단순히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 못지않게 '수요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대부분은 전기 사용이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다. 오래전부터 수요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기 사용이 증가하지 않았던 것은 전기 절약에 앞장선 국민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적극 투자했기 때문이다. 건물의 열효율을 높이고, LED 전구로 교체하고, 산업체의 대형 모터 효율을 높여서 전기 수요를 줄이는 여러 노력을 기울인 덕이다. 
 
이런 에너지 효율화 산업에 정부와 기업 투자가 더해져 전기 수요가 줄어들면서도, 국가총생산(GDP)의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기 수요가 늘지 않거나, 혹은 줄어들면 더 이상 발전소나 송전탑을 지을 필요도 없어진다. 선진국 어디에서도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밀양 송전탑과 같은 갈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런 노력을 등한시해왔다.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으면서도 전기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 결과, 선진국보다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하는 나라가 됐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15년 후 우리나라 전기 수요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수준에 비해서 많은 전기를 쓰고 있는 한국이 이 같은 전기 수요를 지속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 송전탑을 증설하면서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 주요국들의 일인당 전기사용량. 우리나라는 급격한 전기사용량 증가로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더 많은 전기 사용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전기사용량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 ⓒ국제부흥개발은행

▲ 주요국들의 일인당 전기사용량. 우리나라는 급격한 전기사용량 증가로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더 많은 전기 사용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전기사용량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 ⓒ국제부흥개발은행

 
그래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전기 수요가 꾸준히 늘어난 데는 '값싼 전기 요금'이라는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중국보다 30~40% 낮은 산업용 전기 요금은 기업의 에너지 효율화 사업 투자를 방해했고, 또한 다른 에너지의 전기화를 촉진했다. 생산 과정에서 다른 에너지를 이용해야 하니 원칙적으로 보면 전기가 가장 비싸야 하지만, 오히려 값이 싸 기업들은 전기  사용을 늘리고 다른 에너지는 덜 쓰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값싼 전기 요금 때문에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외국 설비 산업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전기 소비의 급증과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 적자는 결국 한국 국민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세계 원전 현황과 사고의 현주소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계속 원전을 늘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서 우리 국민 대부분은 다른 나라들도 원전을 늘리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원전은 1954년부터 지속적으로 늘어나다가 1990년에 450개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원전 개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즉, 25년 동안은 그 개수를 유지만 해왔던 것이다. 그동안 한국,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이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했지만 세계의 원전 총개수는 제자리다. 이유가 뭘까.
 
바로 유럽 같은 선진국들이 원전을 꾸준히 줄여왔기 때문이다. 유럽 여러 나라는 지난 25년간 약 50개의 원전을 줄였다. 매년 두 개씩 줄인 셈이다. 유럽의 원전이 모두 노후됐음(수명을 다 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20년 이내에 선진국의 원전 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세계 원전 산업은 25년 전부터 답보 상태며, 의식 있는 선진국들이 서서히 발을 빼는 사이 줄어드는 유럽 원전의 빈자리를 개발도상국이 메운 것이다. 이는 원전 산업이 세계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자력은 사양 산업인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 정부는 안심하라고 큰소리쳤지만 실상을 알면 탈핵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핵 사고를 살펴보면, 미국·소련·일본처럼 핵발전소 개수가 많은 나라에서만 많은 순서대로 발생했다. 개수가 많을수록 발생 확률이 높은 건 당연한데, 그 외 사고 확률을 높인 것은 바로 핵발전소의 나이다. 30년 동안 굴린 차와 지금 막 출고한 차 중에 어떤 게 고장이 잘 날까? 당연히 노후 차량이다. 후쿠시마에서도 마찬가지로 10개의 핵발전소 중 1~4호기가 터졌는데, 발전소의 나이 순서대로 폭발했다. 사고가 난 4개 모두 30년이 넘은 노후시설이었으며, 사고가 나지 않은 5~10호기는 모두 30년이 안 된 것이었다. 30년 넘은 원전만 정확히 골라서 폭발했다는 것은 노후 원전일수록 핵 사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 전국에서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지난 15일 부산에서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촉구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 전국에서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지난 15일 부산에서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촉구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에도 수명을 연장한 핵발전소가 있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는 30년 넘은 시설이다. 바로 옆 일본에서 사고가 났는데도 안전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폐쇄는커녕 수명 연장을 강행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은 것 아닐까?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는 지금껏 약 700건에 이르는 크고 작은 사고가 났다. 사고의 위험은 늘 있지만, 정말 큰 사고는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데서 온다. 법에서는 핵발전소 고장이나 사고가 나면 24시간 이내 국민에게 알리도록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동안 사고를 은폐하다가 나중에 들통 난 사건이 열몇 건 있었는데, 성공적으로 덮어버린 사고는 얼마나 더 있을지 궁금하다. 은폐야말로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렇게 위험하고도, 세계적으로 사양 산업인 핵발전소를 우리 정부는 왜 고집하는 것일까. 선진국처럼 원전을 줄일 수는 없는 것일까.
 
탈핵의 길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도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꿔 원전 증설을 막고, 수명 연장을 금지하면서 차츰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나서자는 말이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전기 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일단 전기 수요가 잡히면, 원전과 화력 발전을 서서히 줄여가는 동시에 태양광
과 풍력, 지열과 수력 등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막막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나라도 탈핵이 충분히 가능하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못 갈 이유가 없다. 핵 사고는 한 번 터지면 그 어떤 노력으로 되돌릴 수 없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건 착각이다.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를 생각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예방'뿐이다. 그게 바로 '탈핵 운동'이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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