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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대세론’ 꺾은 ‘샌더스 돌풍’의 뿌리

[美대선 분석] ‘힐러리 대세론’ 꺾은 ‘샌더스 돌풍’의 뿌리

친서민적 정책으로 검증된 인물 ‘버니’...풀뿌리 민초의 반란 시작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뉴시스/AP
 

"내가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자처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북한(North Korean) 정부 체제를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는가?"

지난 19일(현지 시각)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 민주당의 이른바 '힐러리 대세론'을 꺾으며 강력한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73세, 버몬트 주) 상원 의원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좌중에는 폭소가 일었지만, 샌더스는 폭소가 가라앉자 이내 스웨덴을 예로 들며 자신이 추진하는 것은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지 정부가 돈과 모든 상점을 장악하는 사회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샌더스가 자신을 위험한 극단적 좌파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는 보수 진영을 반박하기 위해 북한을 예로 든 것이다. 그는 이런 여론몰이는 "결국 유사한 색깔의 옷(similar colored pajamas)을 입은 말도 안 되는 비난과 조작일 뿐"이라며 일종의 '미국식 종북몰이'에 선제 대응했다. 그만큼 '샌더스 돌풍'은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거세다.

지지율 3%로 출발해 '잠시의 찻잔 속 태풍'으로 예상됐던 샌더스의 돌풍은 이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세론을 완전히 꺾었다. 지난 13일 미 CBS 방송의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 샌더스는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뉴햄프셔주에서 52%대 30%로, 아이오와주에서 43%대 33%로 오차 범위를 벗어나 힐러리를 눌렀다.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힐러리를 현격한 차이로 앞서 가고 있다. "우리가 주에 40시간을 일하고도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급진적인 주장이냐"는 그의 말이 이제 미 국민의 가슴에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후원금 모금도 돌풍을 뒷받침하고 있다. 샌더스는 지난 4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1,500만 달러(177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같은 기간 민주당의 대선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모금한 4,500만 달러(591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샌더스에게 후원금을 낸 40여만 명의 지지자들 가운데 고액 후원자는 거의 없다. 99%가 250달러(29만원) 이하이며, 1인당 평균 34달러(4만원)를 후원했다. 이는 샌더스의 인기가 일회성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자부하면서 "모든 수입의 99%는 상위 1%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구호를 앞세우며 이를 제대로 분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치 혁명을 강조하는 그의 노선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4일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리버티 대학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샌더스 후보는 첫 당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앞지르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4일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리버티 대학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샌더스 후보는 첫 당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앞지르고 있다.ⓒ뉴시스/AP

"우리 '버니'가 드디어 대선에 나왔다"... 탄탄한 지역 기반과 검증된 인물

이른바 '샌더스 돌풍'은 일회성이 아니라 준비된 '풀뿌리 민초'들의 힘이고 반란의 시작에 불과하다.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샌더스는 이미 시카고대학에 다닐 때부터 흑백차별에 저항하는 시위를 주도하면서 지역 활동가로 활약했다. 버몬트주로 거주지를 옮긴 후에는 자유노조당에 들어가 주지사에 출마하는 등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지역 활동 기반을 닦았고 1981년 버몬트 주의 가장 큰 도시인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불과 10표 차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이후 샌더스는 발로 뛰는 서민 친화적인 진보 정책을 펼치며 무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장·하원의원·상원의원을 두루 역임하면서 공화·민주 양당 체제가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무소속 신화'를 일궈냈다.

다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버몬트 주에서 신화를 써가며 이제는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선거 때만 반짝 나타나는 후보가 아니라 발로 뛰면서 현장을 누비는 정치인으로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시장실로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직접 받아 처리하는 등 '일중독 시장'으로 통했으며, 민원 현장에 자신이 직접 나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기는 폭발했다. 눈 내린 도로에서 제설 작업을 하는 차의 운전자가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주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민원 현장 미팅을 워낙 자주 개최하다 보니 샌더스는 시장이나 상원의원이 아니라 그냥 '버니'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버몬트 주민들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특히,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호숫가에 호화 호텔 허가를 금하는 대신 '시민의 호수'를 만들었으며 대형 식료품 체인점의 입점을 금하는 대신 소비자가 직접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일관되게 친서민적인 정책을 폈고 노동자와 중산층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이번 돌풍의 원동력이다. 버몬트주 주민들이 "발로 뛰는 우리 '버니'가 드디어 대선에 나왔다"고 환호하면서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탄탄한 지역적 기반과 함께 검증된 정치인인 샌더스가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비판론자, "공허한 포퓰리즘의 인기 위주의 주장일 뿐"
샌더스, "미국이 직면한 현실을 개혁하자는 것"

샌더스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여러 공약을 발표하면서 가히 급진적이라고 불릴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근본적인 세제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재분배, 인종차별 철폐와 국영 건강보험 도입, 대형 금융기관 해체, 선거비용의 국가 부담 등이 핵심이다. 자유 시장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샌더스의 주장은 어쩌면 급진 사회주의자의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공약과 주장은 현재 미국 국민들이 당면한 현실과 불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오히려 지지율 상승의 기반이 되고 있다. 미 국민들이 오바마도 하지 못한 친서민적인 정책을 이제 샌더스가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샌더스 돌풍에 대해 비판론자도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샌더스 돌풍은 현실을 모르는 포퓰리즘이며, 이것이 그의 한계라는 것이다. 특히, 대형 은행 해체나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발로 뛰는 노력으로 미국의 한 주에서는 빛을 발해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공화당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즉, 둘 다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보 양 진영의 극단적 지지층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책 실현 가능성을 도외시한 인기 위주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이 15일 시민들이 모인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이 15일 시민들이 모인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AP

하지만 샌더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변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미국의 부자 상위 14명의 재산이 지난 2년간 1570억달러(약 182조원)나 늘었는데, 이는 하위 계층 40%가 2년간 벌어들인 소득보다 많다"면서 "미국이 직면한 현실을 바꾸자는 것은 결코 공허한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개혁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또 어떤 재원으로 그렇게 많은 복지 정책을 달성할 수 있느냐의 비판에도 샌더스의 답은 간단하다. 그는 "내년 11월 내가 대통령이 된 다음 날 당장 여러분들과 함께 월가로 달려가 그들에게 공정한 몫을 부담하도록 하겠다"며 부의 공정한 재분배로 얼마든지 자신의 공약은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힐러리 대세론을 꺾은 샌더스 돌풍의 위력이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이라는 일차 목표에 안착할 수 있을지 혹은 더 나아가 미국 대통령 선출이라는 종착점으로 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샌더스 돌풍'이 바로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그대로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민초들의 반란은 부동을 구가하던 '힐러리 대세론'도 가차 없이 꺾고 말았다. '샌더스 돌풍'이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돌풍의 반란이 어떻게 귀결될지 온 세계인의 이목이 미 대선판의 70대 노신사 '버니'에게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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