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일부 도시에서는 폭우로 인한 침수를 막겠다며 도심 깊숙이 거대한 배수터널을 파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서울시도 몇 해 전부터 수십 층 빌딩 높이의 지하 공간을 파서 거대한 대심도 빗물 터널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비가 오면 그 터널로 물을 몰아넣어 한강으로 곧바로 빼낸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빗물을 모았다가 곧장 강이나 바다로 버리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해법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눈앞의 홍수 위험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지하수 보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귀한 물을 도시 밖으로 더 빨리 내쫓는 셈이니까요. 지하에 커다란 공간을 만드는 공사는 그 자체로 지반 안정성을 해칠 위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터널은 유지관리 비용 부담만 지울 뿐, 지반침하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값비싼 임시방편인 것입니다.
지하수를 지키는 도시 설계... 해외에서 배운다
도시의 물 순환을 정상화하려면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이제 개발과 건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지하수가 고갈되지 않는 설계'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지을 때 지하수를 무턱대고 퍼내는 관행부터 바꿔야 합니다. 공사 기간에는 불가피하게 물을 빼내더라도, 그 물을 멀리 버리지 말고 인근에 재투입해 주변 지하수위가 급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완공 후에도 지하 공간으로 물이 스며들 때 이를 모두 밖으로 배출해 버리는 대신, 가능한 한 지하수로 재흡수하는 구조를 도입해야 합니다. 건축 허가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물순환 친화적 설계를 요구하는 법 규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세계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해외 선진 사례 중 하나로 독일 베를린 중앙역 건설을 들 수 있습니다. 베를린은 지하수를 중시하여, 중앙역 공사 당시 땅속에서 퍼올린 지하수를 인근에 따로 판 우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공사로 인한 주변 지하수위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덕분에 주변 공원의 나무와 기존 건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되었고, 지반 침하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유럽 몇몇 도시는 법으로 건설 현장의 지하수 처리 방법을 관리하여 개발로 인한 지반 변화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하안전영향평가 제도 등을 보완해, 대규모 지하굴착 시 지하수위 변화까지 철저히 관리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물이나 지하철 공사장마다 빗물을 이용해 지하수를 보충하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을 함부로 퍼 쓰는 개발은 지양하고, 물을 지키는 개발만이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모두의 노력
결국 지반침하 문제는 우리 도시의 물 관리 방식이 낳은 인재(人災)입니다. 땜질식 처방이나 남 탓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민부터 정책결정자까지 모두 긴 안목을 가지고 근본 대책에 나설 때입니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물 관리와 토지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우리가 딛고 선 도시 기반은 더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우선 시민들은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빗물을 받아서 활용하는 것, 물 절약에 동참하는 것 그리고 지하수를 함부로 쓰는 개발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 지역 사회에서 빗물 정원 조성이나 투수 포장 확대 같은 움직임이 있다면 적극 지지하고 참여해 보세요.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