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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야권승리? ‘창조는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전쟁史로 보는 정치 12] ‘반자이(萬歲) 어텍(attack)’과 친노의 동귀어진
 
임두만 | 2015-10-01 08:41: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친노 정파가 현 야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는다. 그 십수 년의 세월은 그러나 한 야당 세력이 현 여권 보수 세력에게 끊임없이 패배를 되풀이한 오욕과 수치의 세월이기도 하다. 그 세월이 노무현에서 현 문재인에 이르기까지다. 중간에 비노계가 당권을 잡기는 했지만 지난 2002년 이후 현 야권의 주류는 친노 정파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지난 10여 년의 야권의 정치역사는 친노의 패배역사다.

이들은 탄핵 여파의 소용돌이로 장악한 2004년 총선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승리를 해보지 못하고 하염없는 패배만 되풀이 했다. 혹자는 정동영의 대선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지만 틀린 말이다. 노무현 집권 당시 2004년 총선 이후 벌어진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노무현 세력은 무려 44-0이란 찬란한(?) 패배의 기록을 세웠다.

야권 세력이 이처럼 하염없이 패배만 하는 세력이 된 것은 어떤 이유를 붙여도 노무현의 정권관리 실패와 그로 인한 지지층 분열이다. 그리고 그 지지층 분열의 원천은 현재 친노라고 말하는 이른바 ‘영남패권세력’임은 또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분명한 결과를 지난 10년간 답습한 야권, 그럼에도 지금 야권의 주류는 문재인을 필두로 한 친노 정파다.

그렇다면 친노 세력이 이렇게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치패거리에 불과함에도, 왜 10여 년간 현 야권의 패권을 쥐고 주류로 군림할까? 바로 그들의 ‘함께 죽자’는 물귀신 작전에 늘 당하는 ‘호남’ 때문이다. ‘소수’를 자임하는 ‘호남’은 그나마 저들이라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 영원한 소수 피지배층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저들의 ‘나를 내치면 너도 죽어’란 협박이 통하는 근거다. 따라서 이 협박이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야권 정치는 정상화 될 것이다.

태평양 전쟁 막판 ‘전원옥쇄’의 자세로 저항하는 일본군을 가리켜 연합군의 한 장성이 이런 말을 남겼다. “군인은 ‘마지막 한 발,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워라.’는 교육을 받고 실제 전투에서도 명령을 받지만 정작 실전에서 그렇게 싸우는 군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죽는 패배가 확실하면 손 들고 항복하는 것이 인간이고 군인이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다. 우리와 맞서 싸웠던 일본군은 정말로 최후의 한 명이 마지막 총알을 쏘고 죽을 때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미일 태평양 전쟁은 초기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기세가 꺾인 1943년을 기점으로 점차 미국의 일방적 공세로 판도가 바뀐다. 따라서 전쟁 초기 일본군에게 점령당했던 태평양의 섬들은 차례차례 미군의 수중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섬 공방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일본군의 ‘전원옥쇄공격’이었다. 미군의 압도적 공격으로 섬 귀퉁이에 몰려 포위당한 일본군들은 굶어죽든가 항복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일본군들은 예외 없이 전원 착검하고 미군을 향해 돌격하곤 했다.

▲반자이 어택을 형상화 한 이미지.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와전옥쇄(瓦全玉碎, 기와로 남느니 옥으로 부서진다)라는 중국 고사성어에서 이름 붙여진 일본의 옥쇄공격을 미국에서는 “반자이(萬歲) 어택(attack)”(다 같이 만세 부르면서 죽기 위해 돌격한다는 의미)으로 부른다. 누가 들어도 비아냥이다. 철조망과 중화기로 지켜지는 미군 참호선을 향해 탄환도 없어서 대검이 꽂힌 빈 총만 들고, 심지어 총도 없는 군인은 죽창을 들고, 그것도 모자라 군속 등 민간인들까지 총동원하여 자살 공격을 서슴지 않던 일본인들을 마주했던 미군들은 황당함을 넘어 측은함 마저 느껴 이렇게 불렀다.

1943년 이후 태평양에 흩어진 섬마다 벌어졌던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은 하늘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진화’한다. 항공기를 그대로 전함에 들이박는 자살 공격인 ‘가미가제 특공대’가 바로 그것이다. 44년 늦가을부터 시작된 이 가미가제 전술이 일본군의 정규 작전으로 자리 잡은 순간, 이미 일본의 전쟁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모두 함께 죽기 위한 발악이 되어 버린다. 이 같은 반자이 어택과 가미가제가 하염없이 반복되었어도 일본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져 가며 마침내 일본 열도 전체가 미군 폭격기의 융단 폭격을 받는다.

그래도 일본은 여전히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원폭이 떨어지고, 소련이 대일전을 전개하며 만주로부터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올 때에야 비로소 항복한다. 그런데 일본의 항복을 결정지은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천황의 ‘황명’이었다. 그리고 70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태평양 전쟁에서 보여준 일본의 집단적 광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1억 일본인들은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죽기 위한 전쟁을 끝까지 멈추지 않았을까? 그리고 당시 그네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천황을 신과 동일시하는 가치관으로 세뇌되었다고 하더라도 1억 옥쇄의 결의를 불태우던 투지가 어떻게 천황의 황명 하나로 간단하게 다스려질 수 있었을까?

일본군은 ‘반자이 어택’ 전 점령지 최고 지휘관들이 집단 할복 자결 의식을 치렀다. 책임질 사람을 아무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쉽게 말해 그들의 머리에 미래는 없었다. 그래서 패배 후 전후 처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이판의 경우 일본 영토로서 많은 수의 일본 민간인들이 전쟁의 참화에 휘말렸지만, 섬을 수비하던 일본군 지휘부는 민간인들의 운명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패전한 국가의 국민은 살 자격이 없다, 미군의 포로가 되어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으라’는 메시지를 부단히 전파하여 수천 명 민간인들의 자살을 방조했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패배는 치욕이지만 ‘전쟁에 진 국가의 국민이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통치자는 정말로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는 통치자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 꿇고 절을 올리는 수치스러운 장면을 우리 역사에 남겼지만 그의 왕권과 자존심을 위해 조선 백성 모두의 죽음을 요구하진 않았다. 인조는 무능한 군주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렇다고 야만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반면, 태평양 전쟁을 주도했던 일본 호전광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일본의 종말과 동일시했다. 미국을 상대로 애초부터 승산 없는 전쟁을 벌여놓고, 막상 그 결과가 자신들도 감당 못할 파국으로 돌아오자 자신들의 책임을 일본 국민 전체의 책임으로 전가시켰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부단히 고취시켰으며, 패배의 치욕을 죽음보다 더 무서운 수치로 인식시키며 그것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려 했다. 만약 1943~1944년 쯤 일본 군부가 전쟁을 일으킨 자신들의 책임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항복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태평양 전쟁의 양상은 어떠했을까?

그렇더라도 그들이 침략으로 강탈한 영토는 모두 잃게 되었을 것이다. 또 전쟁을 일으켰던 군부 지도자들은 전범으로서 단죄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제국주의 일본은 자신들이 쌓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본토를 포함한 열도 전체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원폭 세례까지 받는 참극만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폭 피해로 후손까지 고초를 겪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호전광들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수백만 생명과 폭격으로 초토화되는 일본 열도를 제물로 바치며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민을 향해 집요하게 반복 요구했다. ‘패배한 황국 신민에겐 생존 자격은 없다. 양키들의 노예가 되어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모두 함께 죽는 게 낫다.’라는 주문을 외우도록… 이 주문에 세뇌되어 전쟁의 광기에 휩쓸린 일본 국민들은 제국주의 일본과 수 천 년 역사를 이어 온 일본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패배하면 모든 것이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에 지더라도 다시 시작하여 후손들을 위한 터전을 재건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설령 이성적이고도 양심적인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호전광들의 선동에 묻혀 미미한 반향조차 낼 수 없었다. 이것이 반자이 어택과 가미가제로 상징되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국민을 지배했던 광기의 실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천황’의 ‘황명’ 하나로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승전 연합국의 ‘천황제 보장’이었다. 이 '천황제 보장'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호전광들이 이끌었던 군국주의 일본과 수천 년 역사를 이어온 일본의 분리였다. 그리고 패전 후 군국주의 일본을 앞에서 이끌었던 호전광들은 모두 단죄되었다.

여기서 다시 대한민국 야권 이야기다. 문재인과 친노 정파는 정치적 자산은 전혀 없으면서 ‘내가 없으면 너도 죽어’라는 협박 하나로 야권지지층에게 ‘반자이 어택’만을 강요하는 정치로 오늘 야권의 패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야권의 패권을 쥔 뒤 의미 있는 승리를 단 한 번도 일궈내지 못했다.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호전광들은 그나마 1943년 이전 전투에서는 ‘대일본제국’이라고 으스댈 수 있는 승전 결과라도 올렸는데 문재인과 친노 정파는 그런 것도 없다. 즉 앞선 전쟁의 승리들을 바탕으로 반자이 어택을 강요한 일본 호전광들보다 어떤 승리의 전과가 없음에도 ‘나 없으면 너도 죽어’ 협박, ‘당선될 수 없어도 떨어뜨릴 수는 있어’의 같이 죽지 협박으로 오늘 야권의 패권을 쥐고 있는 친노정파가 더 뻔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친노 정파는 퇴출의 대상이지 용인의 대상은 아니다. 야권에 티끌만큼이라도 수권의지가 있다면 이들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하는 공공의 적이다. 야권에 과연 수권 의욕이 있는가. 야권에 새누리 세력의 대안으로 국민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절실한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무능과 무책임의 상징인 친노 정파에 얽힌 야권의 노예근성부터 깨야 한다.

그렇지않아도 소수인데 친노세력마져 없으면 야권은 어떻게 하지? 친노 외에 대안있어? 야권 지지층이 이런 유치한 도그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안 새누리당은 친이와 친박의 다이나믹한 정치투쟁 속에서 이미 김무성과 유승민을 비롯한 수많은 잠재적 대권 후보들을 키워내 그들의 지지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는 친노는 70년 전 ‘반자이 어택’을 내년에도 리바이벌 하려 하는데, 새누리는 이미 드론 비행체를 전장에 속속 투입하고 있음과 같다.

그럼에도 문재인을 내세운 친노는 여전히 자신들이 움켜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4.29 재보선 패배로 인한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도 모르쇠다. 특히 이반 된 호남 민심 때문에 빚어진 야당 분열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이 야권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무이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그랬다. 일본군이 패배하면 일본이 파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일본인 모두가 살 자격조차 없는 것이라고. 무조건 항복한 일본의 전쟁 지도부가 전범으로 단죄되면 일본 국민 모두가 살 자격이 없다고… 지금 친노 정파와 문재인이 야권 지지자들을 향해 내뱉는 협박과 소름끼치도록 닮았다. 친노가 사라지면 야권이 초토화되고 그러면 새누리 나쁜 무리들이 너희들을 노예로 삼을 것이라는 가증스런 협박이 그렇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이들의 이 협박은 통하지 않고 있다. 이미 이들에 대한 비토는 야권 본거지인 호남에서 강력한 세를 얻고 있다. 그동안 ‘반자이 어택’으로 협박한 그들의 시효는 끝났다. 가마가제를 종용했던 그들을 이제 전범 재판소로 보내는 일만 남았다. 군국주의자들을 전범 재판소로 보내고 전후 일본이 다시 단결, 짧은 시간 안에 패전의 후유증을 극복 선진국이 된 것 같이 야권도 친노 협박세력을 내치고 재건을 통한 단결로 정권 탈환에 나서야 한다. 특별한 기린아가 아니라도 ‘반자이 어택’ 세력만 몰아내는데 성공한다면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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