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사전에 알았다면서
북한의 4차 핵(수소탄)실험을 계기로 한미일의 대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13일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서울에서 만나는 것을 비롯해서 북한을 제외한 관련당사국 간 협의가 이어진다. 13일 회동에서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안보리 결의의 신속한 도출을 포함한 다양한 다자․양자 차원의 대응 방안에 관한 심도있는 논의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한의 핵개발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문제다. 따라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면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입장은 바꾸지 않은 채 북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요구해왔다.
특히 오바마 정권은 ‘전략적 인내’라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입장으로 일관하여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켜왔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나 한미연합연습 임시중단을 전제로 한 북한의 핵실험 유예 제안을 일축했다. 뿐만 아니라 난데없이 대북 제재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압박을 강화해왔다.
심지어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미국 언론들이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미, 2주전 실험준비 알았다”, 한겨레, 2016.1.8)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조치를 취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한.미.일 동맹 가속화의 계기
미국이 과연 북한의 핵무기 포기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위안부 관련 합의 타결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도전에 대한 한.미.일의 공동 대응능력을 강화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의 핵실험을 빌미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다그치겠다는 미국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
B-52 등 전략자산을 잇따라 한반도에 투입하고, 3월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사용할 징후만 보이더라도 선제공격한다. ‘4D(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 방어(Defense)) 작전’을 처음으로 적용하여 실시하며, 사드 한국 배치를 추진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전략과 중국 봉쇄 전략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이다.
나카타니 일본 방위상은 “북한의 위협을 앞에 두고 갈수록 한.일 정보공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조기체결 의사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아베 총리도 “일본 안보의 중대한 위협이다.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면서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이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여 평화헌법 개정을 이끌어내려는 속셈이다. 아베 정권이 북의 핵실험을 빌미로 군사대국화 야욕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방부와 통일부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짓누르고 핵실험 다음날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강행했다. 여기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국지적 충돌에 관한 사항인 8.25 합의 위반이라는 억지 논리를 동원했다. 또 개성공단 출입 인원을 최소화하는 자해적 조치를 취했다. 이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을 보장하기로 한 남북의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를 어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강하게 압박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강경한 태도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굴욕적 야합으로 궁지에 몰린 처지를 탈피하고 북핵문제를 총선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대북 관계는 파탄에 이르며 한미일 삼각동맹이 가속화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실효성 없고 사태 악화시킬 뿐인 제재
한.미.일 당국은 “강력하고 포괄적인 안보리 결의의 신속한 도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3월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결의 2094호 관련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2015년 2월)에 따르면 대북 제재결의 이행보고서를 제출한 나라는 193개 유엔 회원국 중 36개국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제재 이행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북한이 사전에 이를 회피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는 실효성이 없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취할 개별적 대북제재도 별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한.미.일 당국은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강력히 비판했던 중국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미국의 B-52 한반도 전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세 가지 원칙의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미.일 당국의 일방적인 대북 제재 강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사실상 북과의 경제관계 단절을 요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이나 원유공급 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할 경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한.미.일 당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엔이든, 다자든, 양자든 북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새로운 제재 조치가 나오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만나서 할 수 있는 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2008년 12월 6자회담이 한.미.일 당국의 무리한 북핵 검증 요구로 파탄난 이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지속돼온 지난 7년여 동안 북한은 3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핵능력을 강화해 왔다. 한.미.일이 그동안 취해온 대북 제재 강화는 북한의 핵능력을 신장시키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역할을 했을 뿐, 핵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제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나 B-52 전략폭격기 한반도 전개, ‘4D 작전’ 훈련과 같은 대북 압박도 북한의 핵무기 증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런 점에서 한.미.일 당국이 만나 실효성도 없는 제재와 압박을 또다시 논의하고, 해법이 될 수도 없는 북한의 선 비핵화 요구를 되풀이 한다는 것은 국제적 자원의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 즉각 재개를
북한은 이번 핵실험 직후 낸 정부 성명에서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면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미.일 당국이 진정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전 세계 핵보유국 중 유일하게 비핵화 의사를 표명하는 북한의 신호를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일 당국은 부질없는 제재와 압박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양자 간 다자 간 대화와 협상에 즉각 나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동북아 비핵지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70년에 걸친 적대와 분쟁을 끝내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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