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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5년…파시즘 국가로 질주하는 일본

 
[독서통]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 2016.03.09 09:23:08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을 재생해 봅시다. 주말을 앞둔 TV에서 딴 세상 이야기인 듯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한 진도 9의 강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덮쳤습니다. 이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원자로 1호기부터 4호기가 모두 망가졌습니다. 놀란 주민은 방사선 피해를 우려해 고향을 신속히 떠나고 있습니다."
 
올해 3월 11일은 후쿠시마 사고 5년이 되는 날입니다. 핵폭탄의 야수성을 처음 알린 두 차례의 원폭, 핵발전소 사고가 일으킨 참사로 유라시아 전체가 떨었던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웃 일본은 또 한 차례의 대형 핵발전소 사고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뀐 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이 사고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한국은 물론, 사고 당사자인 일본마저 이런 일은 없었다는 듯 '핵발전소 올인' 정책을 바꾸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입니다. 중국 동부 지방, 한국 남동부 지방, 일본 동부 지방에 엄청난 수의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고, 그 중간에 있는 북한은 연일 핵실험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2의 후쿠시마' 사고가 이들 지역 어딘가에서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8일 '독서통'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를 다룬 새 책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을 들고 후쿠시마 이후 극우 광기에 휩싸여 질주하는 일본을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저자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교토 시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으로,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두 형의 구명 운동을 벌이며 한국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애초 문학을 공부하는 미술 애호가였던 서 교수는 그때부터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 국가폭력과 인권, 현대성과 문명 등을 전방위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역시 이 모든 문제가 응축된 파국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진행하는 독서통, 이번에는 서 교수를 모시고 후쿠시마 사고 5년의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 후쿠시마 사고 하루 뒤인 지난 2011년 3월 12일, 상공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모습. ⓒAP=연합뉴스



 
후쿠시마, 한일 지식인을 잇다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오후 찾아뵙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금주의 책은 뭡니까?
 
강양구 : 며칠 후면 3월 11일입니다. '3.11'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날이죠.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김종배 : 2011년이었죠? 저는 지금도 바닷물이 거세게 밀려들어 오는 무서운 영상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강양구 :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격납고가 수소 폭발로 날아가는 장면도 청취자 여러분 뇌리에 남아 있을 겁니다. 안타까운 건, 5년이 지났는데 세상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죠. 
 
김종배 : 이제는 잊힌 일이 되었죠. 당시만 해도 별의별 얘기가 나왔죠. 한반도로 방사능이 오네 마네부터 말이죠. 지금은 일본산 수산물 얘기가 나올 때나 가끔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강양구 : 당시 21기였던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오히려 그사이 24기로 늘어났습니다. 북한에서도 핵폭탄을 실험하고 있고요. '3.11'이라는 비극에서 우리가 배운 게 없는 것 같습니다.
 
'3.11' 5년을 기념해 책이 몇 권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오늘 갖고 나왔습니다.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한일의 여러 지식인이 공동 작업해서 낸 책입니다. 오늘은 이 책의 대표 저자라고 할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교수를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마침 한국에 잠시 방문하셨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재일 조선인입니다. 서승, 서준식 두 형이 박정희 정권 때 간첩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는데, 당시 옥바라지와 구명 운동을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 남북 관계, 한일 관계 등을 폭넓게 사유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 경험을 계기로 국가폭력과 인권, 현대성과 문명 등으로 사고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책을 통해서 많은 독자와도 만났죠. <나의 서양 미술 순례>(창비 펴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펴냄), <소년의 논물>(돌베개 펴냄),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펴냄), <나의 조선 미술 순례>(반비 펴냄),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반비 펴냄) 등의 책이 있죠. 
 
김종배 : 애초 전공은 문학이었지만, 전방위 지식인으로 소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강양구 : 지금은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문의 출발은 문학, 예술, 미학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으로 사유의 폭을 넓히고 계십니다. 방금도 얘기했지만 요즘 서경식 교수의 사유는 '현대란 무엇인가'에 닿아 있습니다. 아마 교수께서 후쿠시마 사고에 깊이 몰두하신 이유도 여기와 연관이 있는 것 같고요.
 
김종배 : 서경식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서경식 : 네, 안녕하십니까. 
 
김종배 : 간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이 책 강연 때문에 들어오신 겁니까?
 
서경식 : 북 콘서트가 있습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도 참가하고, 사진작가 정주하 작가도 함께합니다. 원저를 펴낸 일본 출판사 관계자도 한국에 왔고요. 
 
강양구 : 정주하 작가가 찍은 사진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주하 작가와 공동 작업한 이야기를 해주시죠. 
 
서경식 : 5년 전, 3.11 이후 3개월이 지난 6월에 제가 NHK 다큐멘터리 촬영 팀과 함께 후쿠시마를 찾았어요. 이후 한국의 한홍구 교수께서 이 사고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 해 여름에 일본에서 만났습니다. 마땅히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후쿠시마 안내를 맡았죠.
 
당시 한홍구 교수께서 정주하 작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정주하 작가도 동행했고, 후쿠시마에서 사진 작업을 했어요. 
 
강양구 : 그때 찍은 사진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의 순회 전시회도 하셨죠. 이 책을 내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진전이라면서요?
 
서경식 : 네. 한홍구 교수와 정주하 작가, 그리고 제가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전시회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전시회 이름이 이상화 시인께서 지은 항일 시의 제목인데, 핵발전소 이후의 후쿠시마를 찍은 사진 전시회의 제목으로도 적절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후쿠시마 사람은 우리 민족을 식민 지배한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편으로 일본이 추진한 핵발전소 정책 때문에 땅을 빼앗긴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양쪽이) 피해자로서 서로를 공감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전시회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도 사진이라기보다는 성찰을 촉구하는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김종배 : 텅 빈 들녘, 말라버린 나뭇잎, 폐허가 된 집 등을 사진에 담았어요.
 
이 책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그곳에 참여한 여러분이 대화를 나눈 내용을 엮었습니다. 
 
강양구 : 한일 지식인이 각자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대화를 나눈 것도 있고, 이 발표나 대화를 들은 청중과의 질의응답 과정도 실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갈무리해 일본에서 먼저 펴냈고, 그걸 다시 번역해서 한국에서 펴낸 책이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빼앗긴 들, 후쿠시마의 풍경 
 
김종배 : 정주하 작가의 사진으로 일본에서 사진 전시회도 하셨는데, 당시 반응이 어땠습니까? 
 
서경식 : 처음에는 (관람객을 모으기가) 어려웠어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주제로 한 사진이라고 하면, 흔히 보도 사진을 상상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진 작품은 풍경 사진처럼 보이거든요. 후쿠시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죠.
 
강양구 :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빼고 사진만 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경식 : 아, 그런가요? 일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형적인 일본 동북 지방 풍경을 담은 사진이라는 말도 있어요. (웃음) 이렇게 풍경을 찍은 건 정주하 작가의 예술적 의도예요. 이 아름다운 풍경이 뭘 호소하는지 보는 이가 생각하도록 하는 사진이에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전시하는 게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을 보는 도중 생각하고 토론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의도였어요. 
 
강양구 : 아무래도 대중은 강렬한 사진, 한눈에 봐도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을 원할 텐데, 이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경식 : 그 대목에서 정주하 작가와 제 생각이 일치했어요. 직접 주제를 드러내는 사진은 오히려 잊히기 쉬워요. 반면에 생각을 추동하는 사진은 오랫동안 마음에 이미지가 남죠.
 
처음부터 이런 의도가 관람객에게 가 닿았던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쉽지 않았죠. 순회 전시의 일본 내 첫 번째 장소가 후쿠시마 현지였어요. 사진을 본 분들 가운데는 미래를 희망 있게 보고자 하는 분도 있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진전은 '함께 고민하자'는 거였지, '이게 결론이다!' 이렇게 미리 정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후쿠시마 현지에 탑이 하나 있어요. 현지인에게는 자랑스러운 고향의 상징인데,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온 분들이 이 탑을 건설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사진전의 제목이 이상화 시인의 시에서 따왔잖아요? 이 사진전을 본 후쿠시마 주민 가운데 "우리가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탑을 만들 때 조선인이 희생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른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이 이 사진전을 계기로 교차한 것이죠.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총 여섯 군데서 사진전을 했습니다. 지금도 사진전 개최 요청이 계속 오고 있어서,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후쿠시마 5년 후, 달라진 건 없다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이야기해 보죠. 벌써 사고 5년이 지났는데 그곳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서경식 : 문제가 해결된 게 거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언더 콘트롤(under control)', 문제가 해결됐다면서 피난민에게 귀향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1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귀향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은 정부 주장을 못 믿는 거죠. 정부에서는 "과잉 반응"이라는 입장인데, 바로 이런 정부의 태도야말로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방사능 폐기물 오염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어요. 폐기물을 버릴 장소도 없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역시 수습되지 않았고요. 정부는 이런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방사능 오염이 수년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이러는 건 국가 책임 문제, 기업의 보상 문제 등이 다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작년부터 다른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기 시작했어요. 핵발전소 수출도 하니까... (후쿠시마가 여전히 위험하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죠.) 
 
김종배 : 얼마 전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근처에서 수산물 먹는 장면이 보도되더군요. 이런 걸 보는 국민 반응은 어떻습니까? 
 
서경식 : 양가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 조금이라도 낙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더구나 아베 총리가 "경기를 살린다", "주식 시장을 살린다" 하고 있잖아요? 아베 총리를 따라가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반인은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요? 더구나 정부가 발표하는 사실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존재하고요. 특히 여성, 주로 아이 키우는 여성이 그렇습니다. 
 
김종배 : 일본 정부나 과학계가 계속 후쿠시마 인근에서 추적 조사를 하지 않습니까?
 
서경식 : 조사는 하죠. 
 
김종배 : 그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습니까? 
 
서경식 : 지극히 자의적이죠. 예를 들어, 후쿠시마 아이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유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큽니다. 그런데 이 수치를 공개하면서 "핵발전소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 지역 아이들만 평상시라면 안 했을) 검사를 해서 이런 높은 수치가 나왔다는 식으로도 말해요.
 
그러나 체르노빌은 사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문제가 끝나지 않았잖아요? 이런 일을 보면 도저히 이런 주장을 믿을 수 없죠. 
 
여론 조사를 하면 핵발전소 재가동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일본에서도 50% 이상이에요. 아까 얘기했던 아이가 있는 여성처럼. 그런데 이런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세력이 없어요. 지금은 야당인 민주당 집권기에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잖아요? 당시 노다 요시히코 수상이 사고 수습 선언도 했고요. (그러니 민주당에서도 이 문제를 걸고넘어질 수 없죠.)
 
더구나 도쿄전력 노동조합이 민주당 지지 기반이에요. 그러니 여당인 자민당은 물론이고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야당 정치 세력도 없는 거죠.
 
김종배 : 도쿄전력 노조가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이해관계가 있으니, 민주당도 입 닫게 되는 거군요. 그런데 1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어요?
 
서경식 : 친척 도움을 받으며 임시로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거나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같은 아예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죠. 
 
'안전하다'는 믿음은 믿음일 뿐 
 
김종배 : 일본 정부는 손 놓은 겁니까? 
 
서경식 : 지원이 있긴 해요. 중앙 정부는 아니고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도쿄전력의 위로금도 있고요. 그런데 4년이 지나면서 지원을 끊겠다는 통보가 잇따르고 있죠.
 
강양구 : 일본 정부로서는 이제 아무 문제가 없으니 지원하지 않겠다는 거군요.
 
서경식 : 맞아요.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 직업 문제도 걸려 있고,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후쿠시마로 돌아가려 해요. 반면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불안해서 돌아가려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불행히도 이 문제가 이혼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심각해요. 
 
김종배 : 아무래도 사회적 관계망을 중시하는 남성을 중심으로 후쿠시마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있군요. 
 
서경식 : 일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보다 회사나 조직에 속해야 살 수 있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김종배 : 한국인 중에는 '일본 여행하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안전하냐'는 식의 물음을 가지는 분이 많으세요. 
 
서경식 : (혀를 차며) 그건 너무 사태를 단순화해서 보는 거죠. 그런 시각은 금방 아베가 수산물 먹는 장면을 보면서 "괜찮다"고 믿어버리는 거로 연결됩니다. 물론 일본 정부도 농산물이나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합니다. 하지만 방사능이라는 게 어느 수준이면 위험하다는 기준 자체가 모호해요. 그렇다면, 소비자의 불안을 중심으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해야죠. 
 
김종배 : 한국에서도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가 이야기되긴 합니다. 하지만 논란이 되어야 함에도 그만큼 논란이 되진 않습니다. 
 
서경식 :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한국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유지해왔어요. 저는 당연한 조치라고 봅니다. 그러나 일본의 혐한론자들은 이 문제를 두고 "한국이 반일 차원에서 우리가 고생하는 걸 좋아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수입 금지 조치는 국제 표준을 따른 거지,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해서 한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3.11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을 돕자"는 여론이 크게 일어났죠. 저도 놀라울 정도였고요. 그런 움직임에 당시 일본인도 매우 놀랐죠. 
 
후쿠시마 이후, 극우로 질주하는 일본 
 
김종배 : 책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일본이 파시즘으로 회귀하는 전기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왜 이렇게 보셨어요? 
 
서경식 :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기존의 정치 세력은 사실상 무력했습니다. 더구나 후쿠시마 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 지도력 자체도 불신을 받았고요. 그럼, '누군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서 법적 한계를 넘은 지도력을 발휘해주면 좋겠다'는 심리가 생기죠. 
 
더구나 일본 시민 상당수가 이 사고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안 그래도 중국과 한국이 대두하면서 일본이 '아시아 일등국'이라는 지위가 흔들리는 와중에 이런 사고가 터진 거죠. 그러니 역효과로 파시즘적 방향으로 사회가 굴러가기 쉬워집니다. 실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우리는 힘이 있다', '우리는 부흥할 수 있다'는 공허한 외침만 커졌어요.
 
김종배 : 아베 정부의 극우 행보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겠네요.
 
서경식 :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 올림픽 개최에 일본인이 그처럼 환호했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처럼 어려울 때 그런 큰 이벤트를 개최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재정을 더 의미 있는 데 써야 맞는데, '우리는 (후쿠시마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문제없이 개최하고, 외국인을 많이 초청할 수 있는 나라'라는 환상이 (아베 정부) 지지로 이어지죠. 
 
중국이나 한국을 대하는 아베 정부의 국가주의적 태도가 오히려 인기를 얻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강양구 : 독일의 경우 1986년 이웃한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녹색당이 부상했고,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확실하게 탈핵을 선언한 나라도 독일이잖아요? 똑같은 사고를 두고 독일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졌는데, 왜 일본과 그 이웃인 우리나라는 반대 방향으로 치달을까요?
 
서경식 : 가장 큰 문제는 국민과 국가 사이의 거리에 있습니다. 국민이 국가와 자신을 일치해서 보는지, 국가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는지가 중요해요.
 
독일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만, 전쟁 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나치와 단절됐죠. 시민 다수가 국가가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더 나아가 국민이 정신 차려야 국가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로 두게 되죠. 국민과 국가 사이의 거리가 생긴 거죠.  
 
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질주하다 결국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천황제를 존치했습니다. 또 다수의 시민이 전쟁 후에 국가와 기업이 주도한 '원자력 무라(핵마피아)'가 국민을 잘살게 했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종배 : 책에도 "메이지 이후 일본은 바뀐 게 없다"고 쓰셨어요.
 
서경식 : 많이 바뀌긴 했죠. (웃음) 그러나 근간은 바뀐 게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냈는데,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가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아시아 민족에게 용기를 줬다"는 식으로 담화를 시작했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나 조선 민족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종배 : 우리나라 대통령은 호평했는데요? (웃음) 
 
서경식 : (웃음) 그 전쟁으로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됐는데, 그런 발언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죠. 그런데 '이 담화는 문제'라는 식으로 느끼는 일본인이 많지 않다는 게 진짜 문제예요. 대한민국과 조선 민족, 또 중국에 대해 어떤 사과를 담느냐가 주목되는 담화에서 러일 전쟁 승전을 언급한다는 게 너무나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거죠.
 
강양구 : 그게 아베의 특이한 역사관을 반영한 게 아니라, 일본 사람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서경식 : 그렇죠. 아베가 새삼스럽게 저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에요.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 보수파가 꾸준히 한 얘깁니다. 이를 문제 삼는 일본인이 많지 않아요. 물론 이런 이야기를 문제로 보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약해요.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근본적으로는 메이지 시대 이후 바뀐 게 없다고 할 수 있죠. 
 
김종배 : 아베 정권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인의 상실감을 에너지원 삼아서 극우 행보를 펼치는 것도 그런 흐름과 맞닿은 거겠군요. 
 
서경식 : 조금 길게 말씀드리자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일본에 핵발전 정책을 도입한 당사자입니다. 1950년대에 말이죠. 나카소네가 일본이 패전했을 때, 핵폭탄이 터졌을 때 '앞으로는 원자력 시대'임을 느꼈다고 해요. 이 말이 뭐냐면, 일본도 핵폭탄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를 목표로 1950년대부터 일본 에너지 정책을 바꿔서 핵발전소를 도입한 거예요. 
 
강양구 : 산업화를 위해서 핵발전소를 지었다기보다, 일본과 우리나라 공히 마찬가지인데,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부산물(플루토늄)로 핵폭탄 연료를 얻기 위해 핵발전소를 지은 거죠.
 
서경식 : 일본에는 핵폭탄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방사성 폐기물 재처리 공장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곳은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몬주 고속증식로는 지은 지 수십 년이 넘었는데,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요.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 시설을 가동하고자 엄청난 돈을 씁니다. 정말 전력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핵무장을 위해서죠.
 
요즘은 일본 정치인도 이 얘기를 공공연히 해요. 일본 자민당 정치인 이시바 시게루는 예전 장관이었을 때 "일본은 핵무장에 대비해 플루토늄을 보유해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했어요. 
 
강양구 : 일본이 파시즘화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에서도 최근에 테러 방지법 통과를 둘러싸고 진통이 있었습니다. 
 
서경식 : 테러라는 말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해요. 이런 토론 없이 법안만 통과시키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너는 테러리스트"라는 걸 누가, 어떤 식으로 규정할 거예요? 도널드 트럼프의 "이슬람교도는 모두 테러리스트"라는 식의 폭력을 우리가 허용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세계가 그런 위태로운 수준까지 왔다고 저는 봅니다.
 
테러를 방지하는 건 (테러 방지법과 관계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일반 형법에 이미 그런 게 규정되었을 테죠. 그렇다면, '테러'라는 건 권력자가 자기가 보기에 안 좋은 행동을 예방하려는 핑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관방장관은 안중근 선생을 두고 "테러리스트"라고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어요. 한국에서 그걸 시인할 수 있습니까? 
 
저는 세계적으로도, 또 한국이라는 개별 나라의 입장에서도 사회적 토론 없이 이런 법안이 쉽게 통과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 후쿠시마 이후 급격히 우경화하는 일본은 노골적으로 군사 대국화를 꿈꾼다. 지난해 7월 15일 일본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법안 표결에 반대하는 의사를 담은 종이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집권당인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AP=연합뉴스

 
5년, 망각하기 좋은 시간 
 
김종배 : 잠시 곁가지로 빠져서, 지난해 연말 위안부 합의 얘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일본 안에서는 합의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됩니까? 
 
서경식 : 대부분이 호의적으로 봅니다. 아베 정권이 잘했다고요. 대부분의 일본 시민은 위안부 문제를 골치 아픈,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로 봤어요. 그런데 아베가 "내가 해결하겠다"고 나서서 또 "끝냈다"고 하니, 호의적인 반응 일색이죠. 저는 그런 식의 재정적 해결이 말도 안 된다고 보지만요. 
 
김종배 : 10억 엔 주는 거로 정리됐죠. 
 
서경식 : 그렇죠. 물론 일부 우익은 "아베가 양보했다"며 비판합니다. 소수의 진보파도 이것이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적으로) 중도 세력이 호의적으로 봅니다.
 
김종배 : 중도파가 호의적이라고요? 
 
서경식 : 네. <아사히신문>을 포함한 여러 신문이 "일부 전진했다", "이 기반 위에서 앞으로 새 관계를 구축한다"는 식으로 보도했죠. 
 
강양구 : 오늘 방송을 시작할 때 교수께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변한 게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히려 나빠지고 있군요. 
 
서경식 : 후쿠시마 사고가 하나의 계기였죠. 사회가 몰락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요.)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터지고 한순간에 3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죽었어요. 그 중 3~5만 명 정도가 조선인이었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일본은 물론이고 여기(한국)서도 마찬가지죠.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작가 하라 다미키가 피폭 경험을 시나 소설에 녹였어요.
 
그중 대표작이 <여름의 꽃>이라는 아주 좋은 작품이죠. 그런데 그는 원폭 5년 후 도쿄 중앙선에 몸을 던져 자살했어요. 당시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미국에서 다시 "원폭을 사용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이 소식을 듣고 하라 다미키가 절망해 자살한 거예요. 그런 비극이 있었는데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폭탄을 다시 사용하려 하느냐는 절망으로 자살한 거예요. 
 
희생자가 누구냐를 떠나서, 그런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그 사악한 수단을 버리지 못한다는 인류에 대한 절망감이죠. 하라 다미키가 도쿄에서 그런 얘기를 계속했습니다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후쿠시마 이후 지금과 마찬가지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죠. 이처럼, 5년이라는 시간은 망각하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도쿄 사람은 왜 하라 다미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핵폭탄에 희생된) 히로시마가 아닌 도쿄라는, 이런 지리적인 거리감이 작용했겠죠. 또 (앞으로) 핵폭탄이 터져도 그건 한국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거리감도 작용했겠고. 그런 자세 때문에 30만 명이라는 사람이 한순간에 학살당한 사건조차 잊어버린 겁니다.
 
이게 인간의 뭐랄까, 이겨내기 힘든 망각의 습관입니다. 그런데 정치인은 바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또 그래서 이용하고요. 
 
김종배 : 후쿠시마 이후 핵발전소가 하나둘 재가동될 때 저항이라든지, 논란은 없었습니까? 
 
서경식 : 있어요. 지역마다 아주 끈기 있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소수고, 고립되어 있고, 보도도 잘 안 됩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정치 시스템 자체가 문제입니다. 일본에서 정치는 기업과 결합해 이뤄지죠. 이런 사람이 지역 부흥이나 경제 개발을 강조해 국회의원이 되고, 국가 정책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일반인, 특히 여성 등 약자의 목소리는 안 들어줘도 문제가 전혀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거죠. 
 
김종배 : 선거 때마다 사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여론이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거죠. 
 
서경식 : 일본은 선거 제도가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에 (사표의 영향력이 커서) 투표율이 50%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너무 심각합니다. 
 
반핵 한일 시민 연대를 구상할 때 
 
강양구 :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이라는 책이 한국에서 나온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가 한국에 던져준 교훈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서경식 : 제가 아무래도 일본에 있으니까 한국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핵발전소 문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한국도 핵발전소 대국, 일본도 핵발전소 대국, 중국도 핵발전소 대국이니까 동아시아라는 지역이 너무 위태로워요. 더구나 북조선(북한)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핵투성이인 지역이 지구에 없습니다. 더구나 서로 대립 관계니, 물론 이 관계의 가장 큰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저는 보는데요, 너무나 위태롭습니다.
 
강양구 : 중국에서 핵발전소가 밀집한 곳 가운데 하나가 산둥 반도죠. 거기서 사고가 나면 편서풍으로 인해 우리나라 수도권이 직격탄을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이 규슈인데, 규슈 사람이 가장 불안해하는 게 한국의 동남권에 밀집한 핵발전소입니다. 이런 식으로 3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경식 : 맞습니다.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가 국경을 넘는 거니까, 한일의 시민이 국경을 넘어 저항하지 않는 한 (이 위기를) 막아낼 수 없습니다.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핵을 앞세운 기업을 중심으로 해서 사고하는 한 넘어설 수 없어요. 한일의 시민이 함께 대화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금 너무 위태로운 방향으로 급히 모두가 몰락하고 있어요.
 

▲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 ⓒ반비

김종배 : 한일 시민이 일종의 ‘반핵 연대’를 마련하고 공동 움직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서경식 : 물론이죠. 2012년에 서울에서 핵 안보 정상 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이 책의 계기가 된 정주하 작가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렸어요. 일본뿐만 아니라 핵을 유지하는 나라끼리 똘똘 뭉쳐 세계를 현 상태대로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런 세력에 대항해 시민이 연대해서 대안을 내고, 맞서서 저항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김종배 : 벌써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강양구 : "5년은 잊기 충분한 시간"이라는 서경식 교수의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네요.
 
김종배 : 당시는 엄청난 충격이었는데요, 오늘 독서통은 당시 기억을 되살리면서 현재를 돌아볼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으로 여러 저자 중 한 분인 서경식 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년 전 후쿠시마 사고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경식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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