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릇없는 응석받이가 된 펜타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의 힘은 막강하다. 달러가 그 금융적 지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힘의 원천은 엄청난 군사력이다. 그러나 바로 그 통제되지 않는 막강한 군사력이 미국을 저물어 가는 제국으로 만든 원인이 되고 있다. 군사전문가인 윌리엄 어스토어(William J. Astore) 전 미공군중령과 외교안보전문가인 톰 엥겔하트 (Tom Engelhardt) 네이션 인스티튜트 펠로우에게 미 국방부와 미군은 오히려 제국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다. 어스토어는 미군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미 국방부가 부자병에 걸린 집안에서 자란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이처럼 행동하며 미국이라는 가정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엥겔하트는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대'가 어떻게 지난 14년동안 아프간,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 등 중동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는 물론이고 그 지역을 참담한 상황에 빠뜨렸는 지를 보여준다. 엥겔하트는 미국이 베트남에서처럼 패배를 선언하고 철수할 때 중동지역이 더 평화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1.버릇없는 응석받이가 된 미 펜타곤
2.세계 역사상 최고 군대’의 잇따른 실패
‘부자병’(Affluenza)(1)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최근에는 2013년 음주운전으로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 10대 소년 이선 카우치와 관련해 등장하기도 했다. 재판에서 부모와 피고 측 증인은 카우치의 파괴적 행위에 대해 그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부모에게 과한 칭찬과 돈 세례를 받아 카우치가 완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자랐다는 이유였다. 즉, 부자병을 앓는 그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사리분별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판사는 4명의 무고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병을 인정해 카우치에게 징역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자병’진단이 잘못됐으며, 일종의 돌팔이 수법이라고 재빨리 일축했다. 부자병은 실제로 미 정신의학회가 분류하는 질병으로 정의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 그 무엇인가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선 카우치가 파괴적 삶을 사는 동안, 그와 유사하게 무고한 죽음에 책임이 있음에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칭찬과 돈 세례를 받아온 조직은 없을까? 부자병을 심하게 앓은 나머지, 실패와 부정행위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는 기관은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미군’이다. 미군은 카우치처럼 재판이나 집행유예도 받아본 적이 없고, 멕시코로 도주하거나 벌을 받기 위해 본국으로 강제송환된 적도 없다.
‘부자병’을 앓고 있는 펜타곤
우선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여기서 응석받이 노릇을 하는 펜타곤(미 국방부) 이야기는 명예로운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의 형제자매, 친한 친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을 넘어, 이라크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적군의 포화에 용감히 맞서는 그 누구도 버릇없지 않다. 나는 한 기관으로서의 미군을 말하는 것이다. 펜타곤과 그 고위간부들을 생각해보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언급한 군산복합체들과, 권력의 촉수가 뻗쳐 있는 국가안보 기관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의 부자병 진단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부자병의 한 측면, 무분별한 칭찬부터 이야기해보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신에게 미국의 축복을 비는 표현(2) 만큼 흔해진 나머지 미국 정치 담화의 단골손님이 된 문구를 반복했다. 그는 미군을 가리켜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대”라고 칭했다. 이러한 과장법이 처음은 아니다. 5년 전 대통령이 비슷한 표현을 썼을 때 나는 로마제국의 군단과 칭기즈칸의 몽골 기병들을 포함한 수많은 호전적 인물들이야말로 “역대 최고의” 워리어 볼(Warrior Bowl) 트로피를 받을 자격이 더욱 충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런 과장된 표현은 그칠 줄 모른다. 2014년 12월 애쉬턴 카터 미 국방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을 차기 국방 장관 지명자로 소개하자마자, 자신이 지휘하게 될 미군에 대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대”라고 칭송했다. 그의 표현은 앞선 8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휘력을 갖추고, 최고의 훈련을 받고, 최고로 무장한 군대”라고 한 대통령의 표현을 반복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찬양 표현, 즉 “인류해방을 위한 세계 최강군대”는 9.11 사태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및 기타 정치인들의 연설과 발언에서 심심찮게 사용됐다.
칭찬과 돈 세례를 누리는 펜타곤
미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군대의 노력에 끊임없이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대통령부터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9.11 이후 그토록 칭찬세례를 받은 기관은 없었다. 그런 점을 보면, 미국인들이 과학자, 의사, 목사, 성직자, 그리고 의원들을 포함한 그 누구보다 군대 지휘부를 신뢰한다는 정기 여론조사 결과는 놀랄 일이 아니다.
자기 아들에게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한 이래 가장 영리하고, 가장 미남이며, 운동에도 가장 뛰어난 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부모를 상상해보라. 이런 부모를 보면 정신이 이상하든지 팔불출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군은 미국에게 있어 그런 금쪽같은 자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는 버릇이 없어지게 돼있다. 무분별한 칭찬 외에도, 미 국민들이 펜타곤에 정기적으로 주는 ‘용돈’을 생각해보라. 이를 부자병에 걸린 가족으로 본다면, 엄마와 아빠는 구형 아우디를 몰고, 그들의 사랑스러운 아들은 최신식 페라리를 몰고 다니는 셈이다. 미 연방정부의 ‘국방’, ‘국토안보’, ‘해외비상작전(전쟁)’, 핵무기 및 정보감시 작전 지출을 합산하면, 펜타곤과 그 국가안보 기관 동료들이 보유한 페라리들은 연간 7,500억 달러, 정부재량 지출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돈으로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다. 아무리 ‘금쪽같은 내 새끼’라 해도, ‘용돈’치고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2015년 교육부, 내무부 및 교통부에 대한 연방자금은 최대 950억 달러였다 (그것도 3개 부서를 합산한 금액이다!). 넓은 의미에서 군대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넘어서 ‘돌아온 탕자’다. 그 무엇으로도 그 탕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탕자는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공화당 삼촌들은 가족예금, 자물쇠, 주식, 석유 등을 언제고 조카에게 넘길 준비가 돼 있다.
대개 버릇없는 아이들이 그렇듯, 펜타곤은 아주 약간의 ‘용돈’ 삭감도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 각종 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펜타곤 관료와 군 장교들,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위원회 위원들이 징징대는 모습을 보라. 치솟는 국방부 예산을 최소한으로 삭감하는 것이, 마치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시리아의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IS), 중국, 러시아 등과 관련한 과장된 위협에 대해 미 국민들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군다. 사실, 이들에게 진정한 ‘위협’이란 국방부의 의회 ‘부모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무제한적 자유와 풍족한 장난감들을 줄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한 특권에 대해, 막대한 예산으로 국방부 내에서는 상급 간부가 믿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는 관료주의가 팽배해있다. 9.11 이후, 3성, 4성 장군 및 해군 장성에 대한 의회 승인빈도가 1성, 2성 장군들보다 두 배 증가했다. 너무 많은 장성들이 너무 적은 전투 숙소를 차지하려고 하다 보니, 중상모략과 아부가 난무한다. 실제로, 장성들은 전투와 무관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온갖 배지와 리본들로 뒤덮인 제복을 입는데, 마치 호사스러운 옷차림을 한 옛소련 총리들이나 허구 속 루리타니아(3) 왕국 근위대 복장을 한 육군원수를 보는 듯하다.
그 사이, 간부들의 급격한 증가는 예산 증가로 이어졌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전투작전이 공식 종료된 이후 다소 줄었음에도, 미국의 국방 예산은 미국 다음으로 지출이 많은 상위 7개 국가의 군 예산을 합친 금액보다 많다(오바마 대통령은 상위 8개 국가의 합보다 많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 중 4개국(프랑스, 독일, 영국 및 사우디아라비아)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목록 내 유일한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보다 훨씬 적게 지출하고 있다.
장난감과 관련해서, 군과 그 역성을 들어주는 의원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이들은 비싼 장난감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 현재 가장 인기있는 장난감은 제 기능을 다 못하는 최신예 F-35 스텔스전투기다. 사용되는 동안 1조 5천억 달러(그렇다, 지금 읽은 숫자가 맞다)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 말고도 미국의 핵무기를 ‘현대화’하는데 앞으로 30년간 수조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핵무기를 없애겠다고 했다). 공군의 신규 폭격기는 인수 예상 비용만 (경비 초과도 하기 전에) 벌써 1천억 달러에 달한다. 리스트는 계속 이어지지만 당신은 그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
사과할 줄 모르는 뻔뻔한 펜타곤
부자병 진단을 확실히 하려면 넘치는 칭찬과 용돈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총체적 무능력이다. 이는 카우치가 너무나 사랑받는 아들이라서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부자병 변호에 있어서 가장 역겨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카우치인 펜타곤과 미군을 생각해보자. 아무리 그들이 실수하고, 방탕히 지출하고, 심지어 범죄까지 저질러도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는 수렁에 빠져있다. IS는 날로 세력확장 중이다. 미군의 막대한 비용으로 훈련하고 무기를 갖춘 외국군대들이 계속 사라진다. 병원건물이 ‘실수로’ 파괴된다. 결혼식 피로연이 ‘실수로’ 망가진다. 고문(전쟁범죄)이 현장에서 자행된다. 수감자들이 학대받는다. 이에 대해 고위 지휘관 중 책임을 진 이가 있었던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내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을 진 재니스 카핀스키 준장 외에는 없다.
펜타곤은 오랜 조사 끝에 방아쇠를 당겼거나, 폭탄을 떨어뜨렸거나, 수감자들을 학대한 몇몇 개인들에게 가끔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한 펜타곤 장성들과 고위 간부들은 어떤 종류의 책임이나 처벌도 받지 않는다. 2007년 폴 잉글링 중령이 미군에서는 “총을 잃어버린 이등병이 전쟁에서 진 장군보다 더 큰 뒷감당을 해야 한다”고 회고한 이유다. 실제로 군이 목표달성을 못해도, 전장에서의 성과가 부족해도, 군은 계속 돈, 자원, 칭찬 등을 받고 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1월 28일 아이오와에서 열린 공화당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생각해보라. 젭 부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군대의 “배를 가르고 있다”고 비유하며 공격했다. 테드 크루즈와 마르코 루비오도 이에 열성적으로 동조하며 “급격히 저하된 군대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공화당 후보들(랜드 폴을 제외하고)이 가세해 국방비의 대폭증가와 지역 사령관들이 전장에서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권한을 주도록 ‘교전규칙 완화’를 요구했다. 정부 변호사들에 의해 강화된 규칙 때문에 이들은 “미국의 전사들이 팔 하나를 등에 묶은 채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군대를 옭아맨 이 거대한 매듭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이 바로 최고변호사,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국가채무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마이크 멀렌 전 미 합참의장은 미국이 직면한 최고의 위협은 ‘국가 채무’라고 했다. 크리스 크리스티는 토론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삭감할 연방 프로그램을 묻자, ‘가족계획협회’라고 답했다. 이 단체의 한 해 지출은 5억 달러로, F-35전투기 두 대에 불과하다(군은 이 전투기를 2천 대 이상 구입하길 원한다).
탕자에게 또 돈을 퍼주는 일은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광산에서 목숨을 잃은 펜실베니아 광부의 아들이자 한국전쟁 참전 용사, 전 펜실베니아 주 부관참모였던 제럴드 세이저 육군소장의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다. 9.11사태 이전에 예산이 넉넉하지 못하던 때에도, 상급지휘관들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세이저 장군의 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돈이 없다. 이제 생각할 때다.”
카우치의 엄마처럼 어리석지 않다.
펜타곤이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군대와의 관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선 카우치의 엄마처럼 행동해왔다. 비뚤어진 사랑으로 아들을 심판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카우치 엄마처럼 어리석지 않다. 아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와 미군의 관계에서도 유사점이 있다. 너무 많은 적자와 실패, 죽음과 혼란을 야기한 행동으로 가득한 성적표를 무시하면 안 된다. 군이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용돈을 삭감하는 것(간부들이 바로 앉아 집중하도록, 심지어는 생각하도록 만드는 방법), 지휘관들에게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그리고 칭찬을 자제하는 것이다. 군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이끄는 군대가 역사가 시작된 이후 최강의 군대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과 우리도 그 사실을 인지할 때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5620
글·/ 윌리엄 J. 어스토어 William J. Astore
전역한 미공군중령으로 톰디스패치(TomDispatch)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브레이싱 뷰스(Bracing Views)에서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풍요를 뜻하는 ‘Affluence’와 유행성 독감을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어. 1997년 방영된 PBS 다큐멘터리 <어플루엔자Affluenza>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흔히 ‘부자병’으로 불린다.
(2)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
(3) Ruritania, 앤서니 호프(Anthony Hope)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부 유럽 국가에 위치한 가공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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