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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제의 역설, 박근혜 정부가 되풀이해선 안 돼"

[인터뷰]이효성 전 방송위 부위원장 "사회 제 세력의 합의, 깨선 안된다"

도형래 기자 | media@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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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2.07 02:54:58

 

 
▲ 이효성 전 방송위 부위원장 ⓒ미디어스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물었다. 이효성 교수는 “방송을 합의제 위원회 체계에서 관할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며 “방송정책의 독임제 부처 이관은 역사의 퇴보”라고 지적했다.

 

 

이효성 교수는 2기 방송위원회 부위원장과 방송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학계 원로교수 가운데 한 명이다. 정부가 방송과 언론을 직접 통제하던 1980년대 말 ‘정치언론’이란 책을 출간해 정부의 직·간접적인 언론 통제를 비판했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판 언론학자다. 특히 합의제 방송위원회의 틀을 만든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의 논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효성 교수는 방송개혁위원회를 통해 방송이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합의제 위원회로 넘어오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의의를 설명하며 방송과 언론이 정부부처의 통제를 받는 과거로 회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효성 교수는 “민주통합당이 안 되는 것은 안 되도록 막아야 한다”며 야당으로서 원칙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이효성 교수 인터뷰 전문이다.

 

-방송정책을 어디에서 담당하느냐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시작도 안했는데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딴죽을 건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칙과 발목잡기는 다르다. 방송이나 언론정책을 합의제 기구가 수행하는 게 원칙이다. 민주당이 여당이었을 때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해왔던 것을 생각해 보라. 민주당이 그들처럼 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적어도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야당으로서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당도 대선 당시 ICT총괄부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논란이 있다. 민주당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의 공약을 뒤집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ICT를 산업적 측면에서 진흥하는 부처와 언론정책을 전담하는 조직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대선 때 ICT 진흥을 위한 총괄부처를 두고, 방송정책은 별도의 합의제 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것을 제안했다. 언론 정책, 특히 방송정책은 전례가 있어서 정부 부처로 되돌리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기본적으로는 과학부처다. 게다가 ICT관료가 방송정책을 관장하게 된다. 방송은 여론을 수용하는 합의제 기구에서 맡아야 한다. 적어도 방송에 관한 규제 정책 기능은 산업적 측면보다 정치적인 측면, 공정성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 돼야한다.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과 방송을 육성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독임제 부처가 아니라 합의제 기구에서 방송에 대한 규제, 진흥, 정책을 담당해야 한다. 독임제 부처에서 방송 규제까지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방송정책을 합의제 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게 원칙이라고 할 수 있나?

 

김영삼 정권과 그 이전에서 방송을 공보처가 담당하면서 국가의 선전 수단으로 이용했다. 미창부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정부가 미디어를 통제하는 것은 정권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언론의 감시 감독 기능이 활발하게 살아나야 정권이 조심하게 된다.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면 부패하기 마련이고 무리한 일을 많이 하게 된다.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정권 말 부정부패가 터져 나오게 된다. 언론 통제의 역설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미창부가 공보처 같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다르긴 하다. 공보처 시절에는 언론인들이 공보처에 들어가서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했다. 미창부는 공보처와 달리 관료들이 언론정책을 담당하는 구조다. 구조나 행태가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언론을 장악할 개연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8년 방개위가 만들어졌을 때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시대적 화두였다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송과 언론이 정권에 장악돼 있었다. 언론이 편파적인 상황에서 DJ정부가 들어섰다. 신문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출발점은 방송이었다. 대다수 나라에서 합의제 기구가 방송을 관할하고 있었다. 미국 FCC, 영국 Ofcom, 캐나다 CRTC, 프랑스 방송통신 총괄기구로서의 방송위원회 등은 모두 합의제 위원회다. 이런 합의제 기구를 만들기 위한 기구가 방송개혁위원회다. 그 또한 사회 제 세력이 참여하는 위원회였다.

 

2000년 방송위원회가 생기면서 방송에 관한 정책기구, 규제기구, 진흥기구가 탄생한 것으로 야당도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다. 방송위가 3기까지 이어지고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나 상황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진화가 이뤄졌다.

 

-방개위 시절 자료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논의가 진행됐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제 세력이 모두 모였다. 지상파, 케이블, 노동조합 모두 참여했다. 정치권에서도 참여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만 참여하지 않았다. 참여하라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국민의 정부’ 때 야당에서 협조한 건 거의 없었다.

 

-방통위 출범과 관련해 치열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최근 논의 정도는 주춤하다는 판단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발언에 자유가 있었다. 발언에 따라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발언의 자유가 위축되고 몸 사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유로울 때는 떠들지 않아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론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고 싸워야한다. 물론 방송사 노조처럼 열심히 요구하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

 

-방송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방송위 시절에 합의제 기구 정신이 잘 반영됐나

 

합의제 기구 정신이 잘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 다수결도 있었지만 중요한 사항은 합의했다. 서로 타협하고 양보해 합의를 이끌었다. 그러나 최시중 씨(전 방통위원장)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양보도 타협도 없이 독임제 형식으로 진행했다.

 

독임제는 장관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다. 협의해 결정하는 게 아니다. 위원회는 협의하고 합의하라고 있는 곳이다. 합의하라고 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위원장이 독주했다. 위원들이 견제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합의제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방통위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된 거다. 그런데 인수위가 마치 제도가 잘못된 것처럼 방통위를 퇴색시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도의 기본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망가질 수 있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선거로 뽑혔지만 계엄령을 선포하고 선거를 없애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법을 지키고 않고 힘으로 하면 어쩔 수 없다. 법이 잘못됐다고 말 할 수 없다.

 

미창부로 방송정책을 이관하면서 마치 제도가 나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제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전임 위원장이 운영을 잘못해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방송 정책 이외에 정부부처가 가져가지 말아야할 것은

 

통신 쪽은 다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송 일체는 안 된다. 통신과 달리 방송은 공공서비스다. 모든 사람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서비스의 이용료 보다 공정한가, 다양성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방송은 주파수를 사용하고, 주파수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사회 제 세력의 합의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합의제로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독임제에선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 독립성, 다양성이 해치게 된다.

 

통신을 가져가도 방송은 남겨야 한다. 방송의 정책, 규제, 진흥 기능을 모두 남겨야 한다. 또 이런 기능이 제대로 되려면 주파수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방송용 주파수는 방통위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유료방송 정책과 방송 콘텐츠 정책이 넘어가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다

 

케이블이던 위성방송이건 방송은 산업적 가치 보다 전파되는 내용의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방송 규제와 정책을 산업을 담당하는 부처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문제다.

 

-IPTV나 OTT같은 방송과 통신의 중간쯤 있는 영역도 있다

 

IPTV와 일반방송이 구분 되나? 선로만 다른 것이다. 방송이다.

 

통신은 기본적으로 비밀을 요하는 서비스, 방송은 공개를 지향하는 서비스이다. 통신과 방송의 구분은 이러한 지향점으로 나눠야 한다. 플랫폼이나 망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IPTV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기를 바라는 서비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이다.

 

방송통신 융합은 망의 혼합을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서비스냐 아니냐를 가지고 통신과 방송을 구분해야 한다. 방송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방송이고 통신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통신이라는 구분은 융합 환경에 맞지 않는다. IPTV법이 별도로 있지만 시청자에게 물어보면 통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IPTV는 기본적으로 방송서비스이지만 통신서비스망을 이용해서 통신서비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어떤 망 이용하느냐는 별 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조직개편 논의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창부를 만드는 것도 좋고, 과학과 기술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도 좋다. 문제는 거기에 왜 방송을 가져가느냐다. 과학과 기술을 진흥하는 부처에서 방송을 규제하고 진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져가는 것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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