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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별대수송' 첫날, 첫차 운전실에서 바라본 귀성 풍경

'명절 전문 기관사'의 고백 "내 생애 최초의 뇌물은…"

[동승 취재] '설 특별대수송' 첫날, 첫차 운전실에서 바라본 귀성 풍경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09 오전 8:36:10

 

설 특별대수송기간 첫날인 8일, '올겨울 가장 강력한 한파! 서울 -17도~-7도' 속보가 스마트폰 액정에 떴다. 귀를 찢을 듯한 새벽 추위를 뚫고, 기관사 박 아무개 씨가 분주하다. '설 수송 대작전'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될 오전 6시 10분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1201호 첫차 운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철도노조 홍보팀의 협조로 운전석에 동승할 수 있었다. 기자에게 기차에 대한 추억은 기근 수준이다. 그 흔한 간이역 하나 없는 지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찻길 옆에 있는 외가에 갈 때마다 철길 주변에서 서성대곤 했다. 거대한 기관차가 연기를 뿜고 철로 주변 돌을 튀기면서 경적을 울리면, 거기에 맞춰서 큰소리로 '빠아앙'을 외치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한 번은 단비처럼 기차를 탈 기회를 잡았다. 명절에 할머니를 따라 기차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날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달걀을 삶으셨고, 회색 빛깔 습자지에 흰 소금을 정성스레 담아 접고 또 접었다. 반투명 비닐 '봉다리'에 담긴 삶은 달걀에 더 관심이 많은 손주의 손을 잡고 할머니는 인근 도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새마을호, 좁은 객실 통로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승무원을 잡고 사이다를 산 할머니는 달걀을 까서 손주에게 쥐어주셨다.
 

 

▲ 귀성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8일 새벽 6시 서울역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그런 추억들이 다들 있을 겁니다. 근대화의 상징적 산물인 기차 노선이 영국에서 처음 탄생한 이래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게 됐죠. 숯검댕이 기관사들과 정비사 같은 옛 철도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속에는 산업화에 대한 경외감, 혹은 전쟁의 기억, 노동운동의 치열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 같은 것들이 들어 있죠. 철도만큼 인간의 집단 기억에 남긴 강렬한 대상도 없을 겁니다. 이를테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아버지는 철도 노동자였죠. 네루다의 시에 철도 노동자 얘기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무궁화호 기관사 박 씨의 말이다.

"고향 가는 승객의 꿈과 희망을 싣고 오늘도 달린다"

서울역에서는 새벽잠이 덜 깬 귀성객들이 추위로 빨갛게 물든 양 볼을 감싸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고향 갑니다. 대전이에요. 가까워서 자주 내려가는 편이지만, 설 때 내려가는 건 더 각별한 의미가 있죠. 왜 무궁화호를 타냐고요? 싸고, 느긋해요. 귀성길에 동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박 아무개 씨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기관사 박 씨가 "어서 오세요"라며 운전실 문을 열어줬다. 박 씨는 자신이 '무궁화호 기관사'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기관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관차입니다. 시야 확보가 쉽고, 운전도 비교적 편한 편이에요."

박 씨는 "운이 좋은 기관사들은 설에 쉬기도 하지만 극소수예요. 특별대수송기간에는 3분에 한 대씩 발차합니다. 기관사들도 그만큼 많이 근무를 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설 연휴 때, 우리 차가 8량이거든요. 1000명 이상의 귀성길을 책임지는 만큼, 뿌듯한 감도 많이 들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난 곳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제 고향은 서울이라 감흥이 없는데, 기관차를 운전하다 보면 동화가 됩니다. 이를테면 승객들의 꿈과 희망을 싣고 가는 거죠"라고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는 "저는 명절 전문 기관사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기관사는 꼭 명절에 쉬는 날이 걸리는 운 좋은 기관사도 있어요. 물론 명절에 거의 못 쉬는 운 나쁜 기관사도 있죠. 그래도 '운이 좋은 기관사들은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나보다' 생각하고 말죠."

박 씨는 이날 새벽 4시 32분에 수색 기지로 출근했다. 여기서 박 씨는 오늘의 선로 상태 정보, 즉 서행해야 하는 구간, 공사 구간 등 상황을 체크한 후 기관차 기능을 점검한다. 그리고 객차를 연결한 뒤에,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점검한다. 이 모든 게 완료되면 기지에서 출발해 서울역으로 열차를 옮겨 놓는다.

서울역 승강장에서는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승객들이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직 주변은 컴컴하다. "그래도 새벽 공기는 언제나 상쾌합니다"라고 말한 박 씨는 노치(NOTCH, 주제어기)를 손에 얹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출발 신호등이 켜졌다. 파란 신호에 맞춰 열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상쾌한 기분이 들어요. 박 기자는 호강하는 거예요. 운전실 앞 유리로 바깥 풍경을 보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를 겁니다. 사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런 '눈호강'으로 보상을 받죠."

두 시간 동안 승객 1000여 명과 기자는 '운명 공동체'가 됐다. "운전실은 좀 많이 흔들리죠. 객차는 아늑하게 갈 수 있도록 장치들이 많이 돼 있는데 운전실은 덜컹거려요. 운전실이 너무 아늑하면 안 되니,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죠."
 

 

▲ 영등포역에 진입하고 있는 1201호. ⓒ프레시안(박세열)

 

 

▲ 평택역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날이 밝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 평택역을 지나 충청도로 진입했다. 동이 텄다. ⓒ프레시안(박세열)

 

"'수고했다'며 담배 한 갑 건넨 어르신…기관사 생애 최초의 '뇌물'"

열차에는 여객전무 두 명과 기관사 한 명이 탄다. '
오징어 땅콩 있어요' 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승무원은 이 열차에 없다. 대신 '카페칸'이 있다. 승객들은 그곳에서 커피를 한잔하기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카페칸의 '코레일유통' 직원 두 사람을 합치면 총 5명이 이 열차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영등포역, 수원역에 들러 승객들을 가득 실은 후 본격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밤새 켜져 있던 마을 불빛들이 동트기 전 어스름 속에서 여전히 빚나고 있었다. 도로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파지만, 1201호 열차의 계기판은 시속 140킬로미터를 가리켰다. 운전실 창문 옆으로 눈 덮인 논밭이 휙휙 지나갔다.

"평택쯤 도착하면 해가 뜰 거예요. 기관사들이 시간관념 하나는 귀신같습니다." 박 씨가 말했다. 정확했다. 평택역을 지나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맞은편 상행선에서 열차가 '쿵' 하고 소리를 내며 1201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박 씨는 무전기를 켜고 맞은편 열차에 "1302호, 고생 많았습니다. 잘 올라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
지금은 철도 옆 도로에 차가 별로 안 지나다니잖아요. 오후 돼 보세요. 완전 주차장입니다. 특히 회덕인터체인지 고가를 이 열차가 지날 텐데, 명절 때는 '고속도로 주차장'이 돼죠." 승용차로 귀성길에 나선 '서울 사람'들을 안쓰러워하는 말이었다. 시속 140킬로미터로 곧게 뻗은 철로 위를 쌩쌩 달리는 박 씨는 왠지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박 씨에게 귀성열차에 얽힌 추억을 묻자, 박 씨는 머리를 긁적였다.

"기관사는 숨겨진 존재죠. 승객들이랑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운전실 창문도 지하철과 달리 굉장히 높아서 승객들이 기관사 얼굴을 볼 기회도 없죠. 굳이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예전에 귀경객을 싣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였는데요, 한 나이 지긋한 승객이 운전실 창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담배를 한 갑 주더라고요. 어르신이니까 그런 오지랖도 있는 거겠죠. 제 생애 처음 받아보는 '뇌물'이었어요. 기관사는 평생 뇌물 한 번 못 받는 직업이랍니다."
 

 

▲ 터널을 지나기 직전의 1201호. ⓒ프레시안(박세열)

 

 

▲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의 철교. ⓒ프레시안(박세열)

 

"기관사는 철로에 서성대는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풍광에 넋을 놓고 있는데,
천안을 지나쳤다. "이제부터는 시골길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멋진 드라이브 코스죠"라고 박 씨가 말했다.

"여기에서 장항선(천안, 군산, 익산을 잇는 오래된 철도로 추억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으로 빠질 수 있는데, 제가 과거에 장항선을 다닐 때는 기찻길 옆 집들을 많이 봤어요. 건널목도 있었고요. 기차길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지날 때마다 기차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요. 기관사는 그 아이들이 크는 과정도 봐요. '아 저 아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갔나보네. 작년에는 키가 작았는데 벌써 저렇게 컸네', 혹은 '저 집 개는 이번에 새끼를 낳았구나' 하는 것들이 죄다 보이는 거죠. 모르는 아이인데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얼굴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참 신기하죠."

열차는 어느덧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를 지나쳤다. "여기가 그 유명한 '홍대 앞'입니다." 박 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적한 '2차선'을 신나게 달리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 있었다. 아침 빛을 머금은 붉고 신선한 태양이 운전실을 비췄다.

대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8분. 이곳에서 약 2분간 정차하게 된다. 대전충남본부의 기관사가 서울본부에서 온 박 씨와
교대한 뒤 부산까지 남은 운행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박 씨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부산발 서울행 열차를 대전에서 받아 서울로 다시 '귀향'을 한다고 했다. 박 씨는 "말동무가 있어서 즐거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 '설 특별대수송기간'이 시작된 8일 오전 8시 10분, 대전역에 모인 승객들. ⓒ프레시안(박세열)


대전역 주변에서는 군인 한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상병이었다. "명절에 맞춰 휴가를 나왔습니다. 고향이 안양이어서 안양까지 기차를 타고 갑니다. 100일 정도 후면 제대인데, 그동안 휴가 때마다 기차를 타고 안양까지 왔다 갔다 했어요. 그 전에는 기차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데, 군인이 되니 기차가 친근하네요. 제대해도 대전에서 안양까지 가는 기차는 생각이 많이 나겠죠." 기자가 "여자친구 보러 가느냐"고 물었다. "두 달 전에 헤어졌어요. 부모님이랑 명절 같이 지내야죠." 아뿔싸. 괜한 질문을 했다.

할머니 한 분이 서성대다가 기자를 발견하고 길을 물었다. "열차표 끊는 곳이 어디요? 길을 잃었어요." 명절인데 어디 가시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아들 보러 서울 가요. 인제는 우리 같은 사람이 가야지 젊은 사람들이 편하죠." 추위에 보자기를 머리에 꽁꽁 감아 쓴 할머니는 '역귀성'을 하는 중이었다. 예매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매할 줄 아는데 그냥 왔어요"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보였다.

할머니는 고향을 싣고 기차 타고 서울 간다. '설 특별대수송기간' 첫날, 첫차를 타고 내려오며 본 풍경은 그랬다. 매표 창구로 가는 할머니가 종종걸음을 놓는다. 골이 깊이 팬 할머니의 손이 움켜쥐고 있는 저 보따리 안에는 '달걀'이 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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