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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학물질 시한폭탄 속에 살고 있다

[화학물질, 당신은 안전합니까 ②] 한해 취급량 덤프트럭 953만대로도 부족

13.02.15 19:54l최종 업데이트 13.02.16 01:48l

 

 

경북 구미에서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한 이후 상주와 청주에 이어 화성 삼성공장에서도 화학물질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이처럼 전국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또 다른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체계적인 화학물질 관리·사고대응 시스템을 갖추는 일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마이뉴스>는 ‘화학물질로부터 우리는 안전할까’라는 문제의식으로 4회에 걸쳐 기획보도를 진행한다. [편집자말]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화학)물질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속에 살고 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전자·구미 화학물질 누출사고의 문제점과 지역주민의 알 권리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의 방향' 토론회에서 박석운 원진재단 상임이사가 한 말이다. 연이은 화학물질 안전사고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진 만큼 정부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시한폭탄? 과연 그의 말대로 우리는 시한폭탄 속에서 살고 있을까?

유독물 취급 업체 6874곳, 서울-경기에 가장 많아... 배출량 1위는 경남
 

2011년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화학업체는 약 6800곳. 이가운데 일부가 공개한 화학물질 배출량은 2010년 한해에만 5만여 톤이었다.
ⓒ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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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라고 잘라 말하기엔 화학물질 취급업체 수가 심상치 않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2월 현재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정한 유독물 628종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모두 6874곳이다. 경기도에 가장 많은 1810개 업체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서울시(1056개), 부산시(510개), 울산시(472개), 인천시(465개) 순이다. 업종별로는 판매업체 3967곳, 사용업체 1956곳, 제조업체 536곳, 운반업체 295곳, 보관·저장업체 120곳이다.

그러면 그 업체들이 다루는 화학물질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환경부는 매년 화학물질의 배출·이동량을 조사한다. 유독물 가운데 연구목적 등으로 쓰이는 것을 제외한 415종이 그 대상이다. 이 가운데 213종을 쓰는 2985개 업체가 2010년 한 해 동안 화학물질을 취급한 양은 1억4301만4000톤이었다. 이는 15톤 덤프트럭 953만여 대 분량이다.

여기서 일부는 대기·수질·토양으로 직접 배출되거나 위탁처리시설로 옮겨진다. 2010년 화학물질 배출량은 5만34톤, 이동량은 55만2702톤이었다. 지역별로 가장 많은 화학물질을 배출한 곳은 배출량의 23.1%가 나온 경남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울산, 경기, 충북, 전남으로, 상위 5개 지역에서 나온 화학물질 배출량이 전체 71.3%를 차지했다.

하지만 화학물질 배출량은 전체 취급량의 0.035%, 이동량은 0.39%에 불과하다. 게다가 환경부 조사대상에는 전국의 화학물질 취급업체 4000여 곳이 빠져 있다.

환경부가 조사하는 배출량은 전체 취급량의 0.035%, 이동량은 0.39%

그 까닭은 조사 기준에 있다. 환경부는 조사대상 물질을 크게 1그룹 16종, 2그룹 399종으로 나누고 있다. 조사대상 물질이 특정 농도로 들어있는 제품을 연간 1톤(1그룹) 또는 10톤(2그룹) 이상 제조·사용하는 30인 이상 사업장들이 매년 조사표를 제출하면, 정부는 이 내용을 환경부 화학물질 배출·이동량(PRTR) 정보시스템에 공개한다.

그런데 불산을 사용하는 곳만 해도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545곳 있지만, PRTR 정보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는 업체는 70개뿐이다. 불산은 2그룹 화학물질로, 농도 1% 이상짜리를 연간 10톤 넘게 취급하는 곳만 조사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연간 불산 취급량이 45kg 이상인 사업장부터 정보공개 대상이다.

환경부 화학물질과 관계자는 "전체 업체 수와 유독물 종류에 비해 조사대상이 적지만, 조사대상업체의 화학물질 취급량은 전체 80~85%정도"라며 "(조사대상이 아닌) 나머지 업체들은 대부분 소량을 다루거나 사업장 규모가 작은 곳인데 2014년쯤부터는 모두 조사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꾸준한 사고... 2008~2011년 화학물질 피해자 1452명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8~2011년 화학물질 사고로 다치거나 숨진 사람만 1452명이었다.
ⓒ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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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양도 업체도 워낙 많다보니 화학물질 사고 발생도 꾸준하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서 확인한 2008년~2011년 화학물질 관련 사고는 총 60건으로 연평균 15건 꼴이었다. 종류별로는 사업장내 유출이 27건, 운반차량 사고가 26건, 폭발 등에 의한 유출이 7건이었다.

같은 기간 작업 도중 화학물질 누출사고로 피해 입은 사람은 모두 1452명이었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의 지난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8~2011년간 화학물질 누출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1378명, 사망자는 74명이다.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부상·사망자는 대부분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나왔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4년간 다친 사람은 1224명, 숨진 사람은 56명으로 각각 전체 부상자의 88.9%, 사망자의 75.7%를 차지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부상자(361명)와 사망자(18명)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부상자가 많은 곳은 5~9인 사업장(237명), 사망자가 많은 곳은 30~49인 사업장이었다. 한편 2012년 불산사고로 5명이 사망한 경북 구미의 (주)휴브글로벌은 상시 근무 직원이 7명이었다.

최경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부에서 조금씩 PRTR 조사 대상을 늘려 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규모 영세사업장이 남아 있고, 특히 화학물질 배출량은 너무 적게 잡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기 중으로 나가는 것은 굴뚝 등에서 실시간 측정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토양으로 배출되는 것은 폐기 개념으로 여겨져 거의 0으로 나온다"며 "실제로 조사해보면 중금속 등이 검출되는데 그 출처나 물질 등을 조사하는 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피해가 쌓이는 사고들도 있지만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최 교수는 "환경통계에 나오는 화학물질 관련 사고는 눈에 보이는 누출사고나 탱크로리 전복 같은 것이고 오랫동안 화학물질에 노출된 탓에 피해사실조차 알기 어려운 것들은 현재 시스템에선 확인하기 힘들다"며 "(화학물질의) 양뿐만 아니라 독성정보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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