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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썰전 봤냐?” 정치예능 전성시대

 

종편 4사 모두 ‘정치예능’ 프로그램 편성…“중년 남성의 프레임으로 세상 보는 건 한계”

이하늬 기자 hanee@mediatoday.co.kr  2017년 02월 12일 일요일
 
“썰전 봤냐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성공이다. 마치 무한도전 봤냐와 비슷하다.” (시청자 엄아무개씨)
 
2013년 2월21일 JTBC ‘썰전’의 첫방송 시청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치의 연성화와 가십화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특히 보수 쪽 고정패널인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을 두고는 ‘이미지 세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강 전 의원은 “저는 방송을 통해 정치계에 복귀하려는 사람이다. 숨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썰전’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월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패널로 합류한 149화 방송은 시청률이 3.4%로 뛰었고 최순실 특집으로 구성된 191회는 10.1%(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조사에서 2위(9.2%)를 차지했다. 1위는 MBC 무한도전(9.4%)이었다. 이는 한국갤럽이 지난 2013년 1월 해당 조사를 시작한 이후 시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기록한 최고 성적이다. 올해 1월 조사에서는 ‘도깨비’, ‘무한도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 JTBC 썰전 방송화면
▲ JTBC 썰전 방송화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2위 ‘썰전’ 
 
TV조선 ‘강적들’, 채널A ‘외부자들’, 그리고 오는 16일 첫 방송을 앞둔 MBN ‘판도라’는 ‘썰전’과 비슷한 포맷을 취하고 있다. 특히 ‘외부자들’의 경우 진중권 교수, 정봉주 전 의원, 전여옥 전 의원 등 패널이 화제가 됐으며 지난해 12월27일 첫 방송 이후 3회 만에 시청률 4%를 돌파했다. 화제성으로 따지면 '강적들'에 앞선다.
 
김선영 칼럼니스트는 칼럼을 통해 “‘썰전’의 독주시대에 ‘외부자들’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반갑다. 콘셉트와 인적구성에서부터 ‘썰전’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야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게 문제다. 외부자적 시선을 깊이 있게 밀어붙이는 논의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013년 10월23일 첫 방송을 한 TV조선 ‘강적들’은 최근 4%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썰전’이나 ‘외부자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방송 전에는 신정아씨를 진행자로 발탁해 논란이 일었고, 방송 이후에도 막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박종진, 이봉규, 함익병 등 패널의 전문성도 다른 방송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강적들’은 각종 논란에도 불구, TV조선의 인기 정치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MBN ‘판도라’는 진행자 배철수를 비롯해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고정 패널로 섭외해 ‘썰전’과 같은 시간대 편성으로 맞선다. 정해상 MBN 제작2국장은 “보통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한발 떨어져서 보는 게 있는데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종편4사에 모두 등장한 정치예능 프로그램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디어 사업자 입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뉴스에 오락을 접목시켰고, 시청자 입장에서도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정보처리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포장된 정보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 채널A 외부자들
▲ 채널A 외부자들
 
“팩트로 비합리적인 현상 비판에서 카타르시스 느껴”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런 포맷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미디어연구자 바움(Baum, 2002)은 전통적 뉴스는 기회비용이 높은 일이기 때문에 오락적 요소가 가미된 콘텐츠가 관심도 증진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검증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역시 정체예능에 대한 수요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는 “한국은 정치를 무겁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몰아가면서 정치 혐오를 조장했다. 정치를 ‘내게서 먼 것’으로 만드는 함의가 늘 있었다”며 “TV에서 정치는 금지시 되는 영역이었고 정치 이야기를 해도 (종편 프로그램의 경우) 보수 일변도거나 (지상파) 100분 토론처럼 진지한 포맷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 칼럼니스트는 “최근 종편의 정치예능 프로그램은 명망가들이 나와서 계급장 떼고 붙는데 ‘너 죽고 나죽자’가 아니라 싸울 땐 싸우더라도 대화를 전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며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무거운 주제지만 마음의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썰전’의 기획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동희 ‘썰전’ CP는 “세상에 무슨 일이 있고 어떤 구조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며 “정치, 시사를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김성윤 문화사회평론가는 “프로그램 담화 방식을 보면 패널들이 팩트를 가지고 비합리적이고 몰상식한 현상을 비판한다. 시청자들은 여기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며 “진보와 보수라고 하는 가상의 대립구도가 유희적으로 사용되면서 불안 심리를 무마해주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 TV조선 강적들
▲ TV조선 강적들
 
“정치 무관심한 시청자 끌어오는 효과 있어”
 
‘썰전’을 꼭 챙겨본다는 곽우신(30)씨는 “나꼼수가 정치가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뉴스는 꾸역꾸역 보는 느낌이 있다면 ‘썰전’은 편하게 본다”며 “정치예능 프로그램은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정치가 시민들에게 유희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썰전’과 ‘외부자들’을 본다는 20대 후반의 갈아무개씨도 “정치 자체를 심각하게 이야기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방송을 보면 현안을 어떤 식으로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 아저씨들 수다를 통해 쉽게 풀어내는 게 재미있다. 그런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포맷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청자까지 끌고 오는 효과도 있을까.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썰전’ 시청률이 KBS2 ‘해피투게더’ 시청률보다 높거나 비슷하게 나온 지 꽤 됐다”며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시청자로 확보해서는 지상파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 MBN 정치토크쇼 진행을 맡게 된 배철수씨. 사진=MBN 제공
▲ MBN 정치토크쇼 진행을 맡게 된 배철수씨. 사진=MBN 제공
“중년 남성의 프레임으로 세상 보는 건 한계”
 
그러나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가지는 ‘리스크’도 적지 않다. 자칫하면 연성화나 가십화로 흘러갈 가능성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이슈를 가볍게 만들고 사소한 부분을 부각시키며 복잡한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민주주의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TV조선 ‘강적들’의 막말 논란이나, 최근 ‘썰전’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딸이 화제가 된 것이 이런 맥락에 있다. 이에 대해 이동희 ‘썰전’ CP는 “아무래도 예능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가십을 다루지는 않고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그런 요소가 쓰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와 시청자는 모두 이들 프로그램이 ‘한 발 더’ 나갈 것을 주문했다. 김성윤 문화사회평론가는 “논의가 제도 정치에 집중돼 있다”며 “성, 인종, 민족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생활정치라고 해야 할까. 이런 부분은 부차적으로 다뤄지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청자 갈아무개씨는 “주로 중년 남성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며 “정치성 다양성을 드러내기에 부족하고 나아가 반소수자적인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 이아무개(31)씨는 “공동체에 필요한 의견이 좀 더 급진적이거나 편파적일 수도 있는데 정제된 것들만 말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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