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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박근혜…"도대체 왜 저러지?"

[분석] 국회 건너 뛴 대국민담화, 포퓰리즘의 전형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05 오후 4:31:40

 

'나는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려 한다. 이는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고 국정철학이다. 그러나 정치권, 특히 야당은 내 진심을 몰라주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한다. 국민이 힘을 달라.'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 담긴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된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래부 신설이라는 '내용'과는 별개로, 이런 메시지의 '형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종합유선방송(SO) 정책 입안권을 미래부가 가질 것이냐 방통위가 가질 것이냐, 프로그램 공급자(PP)며 IPTV 등을 어느 정부 부서에서 관할할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오히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라는 형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특별한 비상사태라면 모를까, 집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분이 이런 형식으로 하는 것 자체가 민주적 가치에는 잘 부응하지 않는다"며 "의회에 맡겨두고 결과가 어찌되든 기다려 줘도 큰 국가적 문제가 없는 사안인데 굳이 발언한 것은, 여야라는 시민 대표의 주요 정치조직들 사이의 협상과 논의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힘들고 지루해도 지켜볼 만한 사안"이라는 것.

박 대표는 또 "여론과도 배치된다"며 "여론은 '갑자기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언론 앞에서 화를 내면 곤란하다"며 "(이는) '복종할거냐 안 할거냐' 하는 태도인데, 시민들 입장에선 '왜 저러나' 싶을 것이고 야당에게는 타협하고 싶어도 이 상태에서 타협하면 굴복하고 무릎꿇는 것으로 비쳐지니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은 "정부 출범을 못 하고 있다.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비판하는 게 옳다"면서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역시 형식에 있어서는 "좀 이례적이라는 생각"이라며 "굳이 비판적으로 보면 정치 실종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절박함의 표현"이라고 짚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진정성 앞세우는 태도, 정치에선 위험"

특히 박상훈 대표는 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강조한 부분에 대해 "큰 문제"라며 "정치는 자신의 옳음, 윤리적 판단을 앞세우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시민 대표라는 민주적 원리와는 맞지 않다"면서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라고 하기도 아깝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앞서 야당에서는 이미 "포퓰리즘"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도 "정치학적인 정의(定義)로 보면 국회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민에게 호소한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그런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음에도 여야 청와대 면담이 무산됐다는 것 때문에 바로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부정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담화가 '진정으로 국가를 생각하는 대통령'과 '정쟁만 일삼는 국회'를 대비시켜 정책 추진의 동력을 기층 유권자들에게서 직접 끌어오겠다는 의도라면 지극히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가 좋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대의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대의제가 더 진보적인 제도"라는 정치학자들의 조언을 박 대통령이 떠올려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를 돌아보면,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밀어붙였다. 임기 말 언론 인터뷰 내용을 봐도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 이런 사업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이런 '밀어붙이기' 식 국정운영의 결과는 거센 반발과 조기 레임덕 뿐이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평생 소원'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신념이자 국정철학' 역시 정치권과 여론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 여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비판만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영향력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다.

"대국민 설득이라기보다는 야당 압박"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지점은, 박 대통령이 이들 전직 대통령들에게 부족했던 것이 '진정성'이나 '애국심'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전직 대통령들의 노력에 대해 당시 야당과 여당의 일부 또는 전부가 반대 입장을 고수했던 것은 대통령의 진심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서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제안에 대해서도 여당 내 유력 계파의 수장으로서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박 대통령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설득력이다. 국회를 존중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 선언에 쏟아진 환영은 이처럼 지난한 설득과 타협의 과정에 스스로를 내던진 데 대한 지지였다.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대통령이 됐으니, 의회를 뛰어넘어 직접 뭔가를 해 보겠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뢰와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김윤철 교수는 박 대통령에게 주는 조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국정 목표과제가 분명한 것은 좋다. 그런데 정책을 완전히 닫힌 구조에서 만들어 놓고 '수용하라, 수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창조경제 못 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정책에 접근하는 태도 자체를 개방적으로 하는 과정을 만들어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벌써 이 갈등 속에서 취임 후 열흘을 보내고 대국민 호소를 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담화문에 대해 "국민들에게 정책 내용을 설명한다기보다 '야당 압박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갈등을 키우는 방식은 지양하면서 개방적 방식으로 정책을 만드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야당에 대해서도 "(야당이 주장하는) 정책 내용에 대해 얼마나 설득력을 얻어냈느냐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박상훈 대표 역시 박 대통령에게 '열린 태도'를 주문했다. 박 대표는 "대통령의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이견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 같다"며 "누구 한 사람이라도 '담화문까지 하실 일은 아닐 것 같아요'라고 한 마디만 했으면 이런 이상한 일은 없었을 텐데, 참모들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하고 군주제 하에서의 신하들 같은 분위기에서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고 걱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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