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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인’

[대선 특별기획] 고승우의 국가보안법과 대선(3)
 
  •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승인 2017.03.22
  • 댓글 0
현장언론 민플러스가 19대 조기 대선을 앞두고 국가보안법이 과거 주요 선거 시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지탱되어 온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분단체제를 재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특별기획 ‘국가보안법과 대선’은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인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가 연재한다. [편집주]

'진보, 좌파, 친북, 종북'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거의 엇비슷한 뜻을 지닌 듯이 마구잡이로 사용한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다. 더 이상의 토론이나 대화의 여지가 없이 ‘그래, 그렇지’라는 단정적인 의미, 즉 낙인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구보수진영에서 흔히 진보세력을 비방할 경우 이들 단어를 뒤섞어 쓴다.

▲ 블랙리스트 퍼포먼스 [사진출처 뉴시스]

낙인은 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이라는 의미다.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 좌파, 친북, 종북으로 손가락질 당하면 정치권력이 주목하는 소수자로 분류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들 단어는 ‘너는 범법자이거나 그것처럼 나쁘다’라는 지적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이 사회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를 상대에게 사용하는 쪽은 이들 단어가 국가보안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잘못하면 보안법으로 걸릴 수도 있는 위험인물이라는 뜻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이들 단어는 정치권을 포함해 사회 도처에서 갈등이나 경쟁 관계일 경우 최종적인 공격 수단, 무기로 사용된다. 이들 단어는 상대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면서 상종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을 찍으려 할 경우 사용되는 초강력 무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화나 논의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던지는 최후통첩과도 같다.

진보, 좌파, 친북, 종북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딱 부러지게 정해져 있지 않다. 사용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장소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차이가 난다. 고무줄처럼 쉽게 늘어나고 줄어든다. 그러니 이들 단어를 놓고 논쟁이 붙으면 초반부터 막히고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상대에 대해 목소리만 높이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논쟁이나 협의는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들 단어에 대해 아직 그렇지 않다. 그런 탓인지 토론 문화가 존재치 않는다고 흔히 말하고 실제 그렇다. 이들 단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파괴력도 높다. 듣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면 분위기부터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수구보수는 잘 알고 있다. 영악한 정치인이나 선동가들은 그래서 이들 단어를 강조하는 표현 기법을 써먹는데 익숙하다.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반역사적이며, 동시에 범죄적인 흉기를 습관적으로 흔들어대는 것이다.

보안법에 저촉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연좌제가 적용되던 때는 보안법 사건에 연루되면 패가망신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졌다. 보안법은 그래서 지금도 공포의 대상이다. 진보, 좌파, 친북, 종북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2001년 11월 민주노동당 기관지 등에 '친북'과 구별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어 진보 정당 간의 통합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세력’과는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식의 종북주의 노선 불참선언이 나오면서 널리 알려졌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그 후 수구보수 진영에서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자주 사용하게 된다. 동시에 좌파, 친북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6년 일심회 사건 때 민주노동당 내 분열이 심각해지면서 ‘종북주의’ 논란이 격화되면서 ‘종북’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어 이후 19대 총선이 끝난 뒤인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의혹 사건이 터지자 대중매체는 통진당 내의 일부 인사들이 종북주의 성향이고 이들이 부정 경선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자유총연맹, 한국시민단체협의회 등 보수시민단체들은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의원들을 "종북 주사파 의원"으로 지칭하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어 2012년 7월에는 국무총리실, 외교부, 국방부 등 정부 부처들이 "종북좌파 의원 때문"이라는 이유로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종북’이라는 단어는 수구보수가 진보를 공격하고 비난할 때 가장 많이 입에 올리게 되고 좌파, 친북 등의 용어와 함께 섞어 쓰는 현상이 광범위해졌다.

수구보수세력이 선거철만 되면 ‘좌파, 우파 정권’을 내세운다. 이들이 말하는 ‘좌파, 우파 정권’이라는 표현이 어떤 식으로 우리 사회에서 조건반사적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의 의미는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레드 콤플렉스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어, 진보주의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거나, 빨간색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가리킨다.

레드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반공이라는 국시와 국가보안법이라는 강력한 반공법과 더불어, 분단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 모든 영역에 침투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이 태동하던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동일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보안법을 동원한 탄압이 횡행했다. 또한 혁신을 주장하는 진보주의 정당의 활동도 좌파에 대한 사회 전반의 거부감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들이 참여한 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 민주화되었고, 북한 김일성의 사망과 북한의 경제 위기로 레드 콤플렉스는 줄어들기 시작하였지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색깔론’이 기승을 부린다.

결국 진보, 좌파, 친북, 종북이라는 단어는 레드 콤플렉스, 즉 이른바 빨갱이로 매도하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색깔론’의 구체적인 형태에 다름 아니다. 색깔론은 시대에 따라 그 표현을 달리하는데 보안법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진보, 좌파, 친북, 종북과 같은 단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승만이 만든 보안법이라는 괴물이 수구보수 진영에 주는 부당이득이 어떤 것인지 수구보수 세력은 잘 알고 있고 시대 상황에 따라 이 법과 관련한 표현을 바꾸는 간교함을 보인다. 과거에는 빨갱이 사냥이라고 하다가 오늘날에는 종북, 좌파 척결이라는 식이다.

수구보수의 좌파 타령은 19대 대선에 뒤늦게 뛰어든 홍준표 경남지사의 경우에서 잘 확인된다. 그는 지난 8일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국익이나 국가안보에서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며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했다(중앙일보 3월8일자).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 32명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지금(정국은) 좌파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탈취”라며 “시위를 통해 헌재를 압박해 집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지사는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미래재단 초청 특별 대담’에서 “우파 정부가 자기들에 반대하는 좌파단체 리스트 만든 게 무슨 죄냐”고 주장, 박영수 특검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 내용을 정면 반박했다(중앙일보 3월 15일자).

홍 지사는 “박근혜 정부는 우파 정부다. 우파 정부에서 5년 집권을 하는데, 소위 반대되는 좌파 단체는 지원을 안 해도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검은 지난달 7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을 블랙리스트 작성 몸통으로 지목해 구속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홍 지사의 경우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안보가 어렵다. 청와대에서 만든 블랙리스트가 무슨 문제냐’라는 발언을 언론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있다. 홍 지사가 말하는 좌파 정권의 의미나 안보 불안이 어떤 것인지는 애매하지만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특히 블랙리스트가 국기를 뒤흔든 범죄행각으로 지탄받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범죄행각을 옹호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 불감증이다. 과거 모래시계 검사로 날렸다는 홍 지사의 법의식이 이 정도인 것은 정말 참혹한 일이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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