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경,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시 런던출장 중이던 나는 길을 가다가 한 신문가판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 신문의 “Preemptive Attack on North Korea”라는 활자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신문은 호주 유력신문이었는데, 지금도 어째서 수많은 신문들이 널려 있던 가판대를 별 생각없이 지나가던 나에게 그 신문이 눈에 띄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그 즉시 한국의 모 인터넷신문 편집국장으로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다. 혹시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에 대한 얘기가 우리나라에서도 떠도는지.
그 친구는 모르는 일이라 했다. 그렇게 당시 해외 언론에서는 떠돌아다니던 미국의 북에 대한 선제공격 얘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던 일처럼 조용히 넘어갔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계획.
그렇게 20여 년 전에도, 10여 년 전에도 미국의 북폭 계획이 10~15년 주기로 한 번씩 올라오곤 한 것 같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때는 북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이 실행 직전에 중단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갔었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가 또 다시 북핵에 대해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2001년에 부시가 당선됐을 때도 이런 심각한 사태가 온 적이 있었다.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연두교서에서 북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마치 전쟁을 불사할 듯 북을 몰아세웠고, 이에 북도 지지않고 험한 말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몇차례 험한 성명서 전쟁을 거치며 북미관계는 일촉즉발로 치달았다. ([여인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5660)
지금의 사태는 그때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 트럼프가 지난 민주당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부정하면서 “전략적 인내”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밝혔고,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다 고려하겠다고 천명했으며 , “중국이 돕지 않더라도 내가 해결하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치가 군사적 조치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 대북 군사공격 가능성을 이미 일본정부에게는 언급했다는 보도도 흘러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트럼프는 그간 보인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행동거지로 미뤄 짐작할 때, 어떤 상황에 닥치면 무슨 조치든 정말 행동으로 옮길 미치광이(적어도 우리에게는)로 보인다.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중에 시리아 폭격을 감행한 것만 봐도 그의 범상치않은 뇌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북한 차례”란 메시지인가?
그런데 참 어처구니없는 일은 우리 민족의 일이고 우리 땅에서 벌어지려는 일인데 당사자인 우리는 제쳐놓은 채 객들이 또 다시 우리의 운명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고, 그런데도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체 그저 팔짱 끼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의 와중이라 그런지 세상의 관심이 온통 선거에만 가 있다. 제 정당과 대선후보들도 그렇고, 정부, 특히 국방부와 외교부도 그렇고… 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모르는 것인가, 체념한 것인가?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괜찮다는 것인가?
그래… 이번에도 미 대사관으로 가자. 내 삶에 네 번째로 미 대사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자.
내가 처음으로 미 대사관 앞에 선 것이 1992년 5월 LA 흑인폭동 시에 재미동포를 위해서였고, 두 번째가 그 10년 후인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미선이효순이 압사사건 때 부시에 항의하기 위해서였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2328)
세 번째가 북측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인정 후 2003년에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 한참 흘러나올 때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11052)
25년 전에도, 15년 전에도, 그리고 14년 전에도 섰는데 이번에 못 설 이유가 없다. 이번이면 내 삶의 네 번째 미 대사관 앞에서의 피켓시위가 될 것이다. 설사 아무런 효험이 없다 해도 그곳으로 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한반도 남에도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도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시민과 같이 고귀하다. 우리 한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그 어떤 결정도 함부로 내리지 말라!
그리고 황교안 권한대행!
트럼프가 북핵과 관련, 어떤 입장인지 그대에게 통보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꾸미려고 아무런 말이 없는가?
대선을 앞에 두고 트럼프의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조성하고 우리 대선에 개입하려는 허황되고 불순한 입장을 이용해 무슨 꼼수를 부리려 그리 침묵하고 있는가? 우리 국민을 아직도 그대가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면 이 엄중한 시절에 한 몰락한 정파나 진영이 아닌,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그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에 큰 오점이 남을 꼼수를 더 이상 벌이려 하지 말고, 일국의 대통령 권한대행답게 정정당당하게 처신하기 바란다. 그대의 세상도 곧 있으면 끝난다.
여인철/ 전 카이스트 교수, 장준하 부활 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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