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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가수다'와 정엽의 장렬한 전사

 

정엽은 '나가수'에서 롹으로 대충 타협하고 믹싱하려 했으나 중간점검에서 7위를 하자, 자기 '노선'인 R&B를 지키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뚝심이 엿보였다. '죽더라도 걔기자'라는 것, '살기 위해 표를 구걸하진 않겠다'는 것. 당장은 자기 '노선'을 지키는 것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미래의 씨앗을 뿌렸고 그래서 '탈락'은 '패배'는 아니었다.

 

2. 서바이벌에서 꼴찌한 MBC

 

'나는 가수다'에서 '서바이벌'을 위한 가수들의 전쟁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진짜 빅매치는 미디어 내에서의 전쟁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대리주의-대중영합주의 포털과 지상파를 미워하는 종이신문, 그리고 인터넷언론과의 전쟁.

 

그런 점에서 MBC가 지키지 못한 것은 '나가수'의 룰이 아니라 PD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빼앗으며 야기된 '편성 능력' 자체다. (한 달 동안의 결방?!) 이는 종이신문, 인터넷매체, 포털에 대한 굴복이며 '서바이벌 게임'에서 꼴찌한 것에 다름 아니다.

 

3. 신자유주의 전도사 버라이어티

 

'나가수'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중파 버라이어티는 무한경쟁 살풍경의 배면에 도사리는 논리를 내면화시키는 전도사가 된지 오래다.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 '1박 2일'은 명랑운동회나 가족오락관 시대의 오락프로그램과 질적으로 다르다. 노동시간과 분리된 '여가'를 최대한 가족, 친구와 함께 즐겁게 보내자던 시절의 오락이 아니다. '여가' 조차도 '자기 계발', '야생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다. 연공서열에 기초한 평생 직장이 사라진 오늘날, '가족과 같은 기업'은 없다. 나이 먹으면서 차곡차곡 승진하던 직장도 없다. 사내들에게 '자기 계발' 없이는 죽는다는 논리를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끊임없이 심어준다. 모처럼의 토, 일요일에 쇼파에 자빠져 TV 리모콘 들고 낭창하게 있으려 했더니, '자기 계발'이나 하라고 선동하는 꼴이다.

 

오디션 프로와 서바이벌 프로도 마찬가지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논리가 불평과 냉소를 낳는 세상. 이제 여기에 '꼴찌하면 죽는다'는 겁박으로 '목숨 걸고 살아 남아야 한다'는 논리를 보완한다. 그래서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나는 가수다'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 이러한 겁박은 공갈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연이은 자살은 대중으로 하여금 '꼴등이 되면 죽는다'는 건 리얼리티라는 걸 증거하는 효과를 가진다. 우리의 절박하고 원통한 죽음이 자본에게 다시금 귀속되는 이 끊임 없이 리바이벌되는 서바이벌 전쟁터.

 

그런 논리를 내면화시키는 대중적 몰입은 무시무시하다. '나는 가수다'는 선거도, 정치도 아니다. 허니 '정의'와 '원칙'을 부르짖는 시청자는 넌센스다. 중요한 건, '정의'와 '원칙'이 안 지켜지는 우리 사회라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정의'와 '원칙'이 주요 문법이 됐다는 것은 두렵다. 대중은 자신의 입을 통해 자본의 논리,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의 논리를 '정의'와 '원칙'의 이름으로 내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의가 지켜지려면 꼴등은 탈락되어야 한다?! 그게 정의인가? 꼴등이 죽어야 하는 게 정의라면 무한 재도전이 가능한 시스템이 설령 부정의일지라도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물론 '신자유주의'가 대중의 동의와 욕망을 수용하고 참여의 외피를 쓴다는 점, 그러면서도 대중의 소통 빈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디션과 서바이벌 프로에 대한 대중적 몰입을 마냥 반대하고 백안시하기는 쉽지 않다. '대중 비판'은 쉽지도 않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낙관적으로 보자면 소통은 더 깊어져야 하고, 토론은 더 진지해야 한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거다. 포털, 인터넷매체, 종이신문에 농락당하지 않고 소위 '여론'이라는 것에 긴박당하지 않으려면 더 웅숭 깊지 않으면 안 된다.

 

4. 진보신당 당대회

 

다시 정엽을 떠올린다. 진보신당 당대회, 소위 '독자파'의 완승으로 끝났단다. 당원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미래는 열려 있기도 하지만 불확실하기도 하다는 거다. 살 만큼 살아들 보지 않았나? 인생이 계획대로 되던가? 집권이라니. 야무지다.

 

뚝심이란 찾아볼 수 없는 굴욕적 투항으로 무슨 집권을 하겠다는 건지. 정치에서의 청혼이란 힘이 약하면 그 '철썩 같은 약속'이 파도처럼 철썩 부서지고 허망한 물거품으로 끝날 것인데.

 

'비판적 지지'가 NL우파에서만이 아니라 소위 좌파에서도 생겨났다. '비판적 지지'의 '좌우파'라고나 할까. 맨날 당해도 맨날 증식되며 무한반복되는 리바이벌. 서바이벌의 장이 정치라면 리바이벌로 버틸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소위 '여론'이라는 것에 긴박당하지 않으려면 더 웅숭 깊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진보신당에 통합을 강제하는 힘은 '1등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오디션 프로'의 논리보다는 '꼴찌를 해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서바이벌'의 논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쫄면 진다. 쫄면 편곡도, 노래 소화도 못시킨다. 제 장르를 지킬 수도, 다른 장르를 더 잘할 수도 없게 된다. 쫄았으니까. 차라리 정엽처럼 뚝심있게 추락하지 못하면 다시 비상할 수도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라는 믿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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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03:28 2011/03/28 03:28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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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cifel
    2011/04/09 15:2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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