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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흰옷>과 <하얀 아오자이> 그리고 <하얀 옷>

 

<사이공의 흰옷>(친구출판사, 1986)은 사이공(현 호치민시)에서 남베트남 민족해방투쟁에 참여한 베트남 청년학생들의 학생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처음 한국에 출간된 이래로 1990년대 초중반까지 대학가에서 꾸준히 읽혔고 또한 많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에 나왔던 이 책은 금서로 묶인다. 1987년까지도  <사이공의 흰옷>은 문화공보부가 지정한 금서였다. (경향신문, 1987년 11월 30일) 대통령선거가 끝나고서야 비교적 자유롭게 읽힐 수 있었던 듯하다. 1991년에는 서울지역 사회과학서적상협의회가 전국 20여 개 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과 공동으로 91학년도 대학신입생을 위한 교양 필독서 20권을 선정, 발표했는데 <사이공의 흰옷>은 <전태일평전><철학에세이><노동의 새벽> 등과 함께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던 것이 2006년 12월, 외국어대 배양수 교수의 번역으로 새로 출간됐다. 베트남과 정식 출판계약을 맺고 말이다. 1995년에 베트남 문학 출판사에서 출판된 <응웬반봉 선집 2>에 실린 <하얀 옷>(342~568쪽)을 저본으로 삼았다 한다. 책 제목은 <하얀 아오자이>로 바뀌었다. 원제는 <하얀 옷 Ao Trang 아오짱>이다. 베트남어로 '아오'는 '옷'을 의미하고 '짱'은 '하얀'이라는 뜻이다. <하얀 아오자이>는 간결한 문장이 돋보인다. 이 책을 지은 작가는 응웬반봉(Nguyen Van Bong)인데, <사이공의 흰옷>에는 '구엔 반 봉'으로 소개되어 있다. 많은 베트남 관련 책이 그렇듯이 베트남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영어식 발음으로 옮기곤 했고 그걸 <하얀 아오자이>에서 상당 부분 바로잡은 것이다.

 

<사이공의 흰옷>의 그녀, 응웬티쩌우

 

<하얀 아오자이>가 바로잡은 것은 그뿐이 아니다. <사이공의 흰옷>에서도 이 소설이 실존인물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그이의 행적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하얀 아오자이>에서는 실존 인물인 응웬티쩌우 여사와 남편 레홍뜨를 직접 역자가 만난 얘기가 나온다.

 

물론 이들을 만난 건 역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겨레21>에서 2000년대 초반에 펼친 베트남 학살에 대한 사과와 진상 규명운동 과정에서 호치민대학에 유학중이던 구수정 씨가 만난 적이 있고, 또 그쯤 결성된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에서 김남일 씨 등이 그들을 만난 적이 있다. (김남일, <산 자들의 풍경>, <<내일을 여는 작가>> 2000년 여름호; 김남일, <<책>>, 문학동네, 2006; 구수정, <『사이공의 흰옷』주인공 응우엔 디짜우의 조국과 청춘>, 월간 <<말>>지, 1994년 6월)

 

그녀는 동나이성 출신으로 1938년생이라 한다. 지금 그녀는 73세가 되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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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웬티쩌우 여사의 고등학교 시절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

(출처 : 구수정, <『사이공의 흰옷』주인공 응우엔 디짜우의 조국과 청춘>, 월간 <<말>>지, 1994년 6월)

 

사용자 삽입 이미지응웬티쩌우 여사는 1988년에 친구 출판사에서 나온 챤 딘 반이 지은 <불멸의 불꽃으로 살아>에도 등장한다. (이 책의 표지는 박재동 화백이 그렸다.) 그 정도로 베트남에서 그녀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고, 나중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청년학생축전'에도 참가하고 그후에는 호치민시 인민위원회나 호치민시 어린이보호위원회 등지에서 일했다.

 

그녀의 학생운동 경험은 당시 사이공의 대학생들로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 응웬반봉 여사가 그녀를 취재하러 왔을 때, 그녀는 거부했었다고 한다.


"1969년 5월로 기억되는데, 당시는 내가 활동경력을 인정받아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유명했던 모양이에요. 응우웬 반 봉이 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저를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첫째는, 자기 자랑 같아서 남부끄러웠고, 둘째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항전구 내에서만 활동이 가능해지는데, 나는 여전히 사이공시에 들어가 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에요.


그후 나는 당시 혁명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또 흐를 만났는데 그는 나의 경험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베트남 학생운동의 기록이 될 것이라고 나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응우웬 반 봉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번역과 개작 사이에서

 

그런데, 새로 나온 <하얀 아오자이>와 옛 <사이공의 흰옷>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새 역자 배양수 교수는 <사이공의 흰옷>이 중역본일 거라고 밝히고 있고, 구수정 씨는 별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비교해서 읽어본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두 책을 펴놓고 한 문장씩 비교해서 읽다 보면, 이건 단순한 중역본이 아니라, 개작본 혹은 가필을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첫 페이지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하얀 아오자이>(2006년, 응웬반봉 지음, 배양수 옮김, 동녘) 첫 부분(13~14쪽)

 

호아 선생님이 체포됐다!

 

분명히 우리 반 지리 수업 때문일 거다. 우리는 술렁거렸다.

 

우리 학교 선생님은 대부분 북베트남 출신이고, 호아 선생님도 북에서 왔다. 우리나라 지형을 설명하다가 선생님은 북부 산간 지대야말로 '조물주가 베트남 민족에게 선물한 최고의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또 그곳엔 천연자원도 풍부하다고 덧붙였다.

 

선생님이 심취해서 얘기하는데 갑자기 한 학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생님!"

 

그 친구의 목소리는 마치 먼 땅에서 퍼져 나온 듯 신비롭게 들렸다.

 

"그렇게 첩첩산중이라는데 디엔비엔푸 전투 때는 어떻게 프랑스군 진지까지 참호를 팔 수 있었어요?"

 

 

<사이공의 흰옷>(1986년, 구엔 반 봉 지음, 편집실 옮김, 친구) 첫 부분(6~7쪽)

 

후옹 선생님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실 안은 일순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 이어 막연한 두려움에 짓눌린 웅성거림이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후옹 선생님이 체포된 이유가 바로 우리 학급의 지리 시간 강의 때문이리라는 점을 의심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우리 학교의 교사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자신도 역시 월남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던 후옹 선생님은 우리 베트남 민족에게 주어진 자연의 훌륭한 조형미에 대해 북부의 산악 지대를 들어 이야기하면서 거기 잠들어 있는 무진장의 각종 지하 자원, 풍부한 산림 자원 등을 마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강의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후옹 선생님은 매우 좋아했다. 수업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쉬는 시간조차도 우리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즐거움에 넘쳐 있었고 친근했다. 쉬는 시간에 우리들과 격의 없이 어울려 이야기하는 후옹 선생님을 못마땅히 여긴 늙은 교장은 우리를 쫓아버리고 그를 교무실로 데려가는 일도 종종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후옹 선생님이 체포되다니...

 

우리는 수업에 열중해 있었다.

 

첩첩한 산, 수려한 자연의 풍치, 거기에 붙박아 사는 사람들의 삶...

 

후옹 선생님의 설명은 계속되었고 우리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지만 북부 산악 지역의 모습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마치 그 계곡 어느 한 모퉁이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선생님' 하고 불렀다. 그 학생의 음성은 몽환에 빠진 듯한 우리들을 일깨우는 신호처럼 들렸고, 목소리와 함께 일어선 학생 역시도 어딘가 먼 곳에서 금방 되돌아 온 듯한 인상이었다.

 

"선생님, 산이 그렇게 첩첩이 이어져 있는데 디엔 비엔 푸 전투 당시 프랑스군의 진지 안까지 호를 파는 일이 정말 가능했을까요?"

 

이건 단순히 의역과 직역, 중역이냐 한번만 번역했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가필과 개작, 윤문이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베트남어를 잘못 음역한 것과 1980년대적 표현과 활자가 눈에 거슬릴 뿐, <사이공의 흰옷>이 정본(?!) <하얀 아오자이> 보다 더 잘 읽힌다. 번역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공의 흰옷>이 정본이 아니라 할지라도, 개작한 한국적 버전이라 할지라도, 더 친절하게 읽히는 거다. 그렇다면 이것을 누가 고친 것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1972년에 베트남어로 쓰여진 소설이 1986년, 전혀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번역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알아야만, 또는 당시 출판사에 있던 누군가가 밝혀야만 분명해질 것이다. 1986년 당시에는 '편집실 번역', '편집부 엮음', 이런 책들이 유난히 많았다. '보안'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 한 권 내고 출판사 사장, 편집자, 영업자가 허다하게 잡혀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자나 역자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 '편집부 엮음'이었다. 출판사가 책임지겠다는 거다. <사이공의 흰옷>도 누가 번역을 했는지, 문장을 윤문하고 가필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당한 글솜씨다. 문장은 매끄럽고 원작에 있는 군더더기까지 정리하면서도 더 상세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서술해나간다.

 

지난 1980년대, 지은이도 없고 어떻게 출간되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나왔던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이제 故 조영래 변호사가 지은 <전태일 평전>으로 출간되어져 있다. 남의 작품을 함부로 개작하는 것에 대해 비판할 사람도 있겠지만, 1980년대에는 그런 윤리 같은 것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구나 <사이공의 흰옷>의 출간은 단순히 출판시장에서 책 하나 번역하는 작업이었다기 보다는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제 누가 이 책의 산파 역할을 했는지 나서도 좋을 시점이 아닐까.

 

한다발의 삐라와 신문, 흰옷에 시를 쓴다

 

<사이공의 흰옷>이 널리 읽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책 뒷표지에 실린 레 아인 수앙이라는 베트남 시인의 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시를 갖고 노래를 만든다. 하지만 처음엔 노래 <사이공의 흰옷>은 널리 구전되기만 하고 음반에 담기지는 않았었고, 주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그후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시대로 넘어 와서 세이클럽이 활성화 됐을 때 세이클럽 민중가요연합(세민연)이라는 모임에서 녹음할 때 또또(정문희)님이 솔로곡으로불렀다 한다. 당시 세이클럽에서는 민중가요 방송도 많이 했다고 한다. (새벽길 님의 제보다.) 아래 노래도 또또님의 노래인 듯하다.

 

 

한다발의 삐라와 신문 감추어진 가방을 메고
행운의 빛을 전하는 새처럼 잠든 사이공을 날아다닌다
복습은 끝나지도 않고 평온한 밤도 오지 않았다
내일도 수업시간엔 잠이 오겠지 그러나 간다 내일도 내일도

 

죽음 넘어 뇌옥의 깊은 암흑의 벽에 흰옷에 시를 쓴다
방울방울 흐르는 선혈 속에 이 흰 옷 언제까지나

어느날 사라진 내모습 어머님의 슬픔과 눈물
사랑하는 사람을 뒤로 한 채 그러나 슬피 울진  않는다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진 삶

조국과 동지와 연인에게 굳게 맺은 나의 언약은
생명이 있는 한 변함이 없다

 

죽음 넘어 뇌옥의 깊은 암흑의 벽에 흰옷에 시를 쓴다
방울방울 흐르는 선혈 속에 이 흰 옷 언제까지나

 

원래 이 노래의 바탕이 되는 시는 이렇다.

 

                   <흰 옷>

                          레 아인 수앙

 

한 다발의 비라, 몇 장의 신문이

감쪽같이 감춰진 가방을 껴안고

행운의 빛을 전하는

작은 파랑새처럼

나는 깊은 잠에 빠진 사이공 거리

여기저기를 날아 다닌다

 

복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평온한 밤도 아직 오지 않았다

내일도 수업시간엔 눈거풀이 무겁겠지

그러나 나는 간다 내일도 또 내일도

 

그리고 어느날 내 모습은

거리에서 사라졌다

어머니의 슬픔과 친구들의 피눈물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이는 회상을 뒤로 한 채

 

하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사랑과 신뢰로 이어진 우리들의 삶

조국에게 동지에게 연인에게

굳게 맺은 나의 언약은 생명이 있는 한

변함이 없다

 

죽음을 넘어 뇌옥의 쇠사슬을 끊고

암흑의 벽에

떨리는 손으로 쓴다 흰 옷의 시를

방울방울 흐르는 선혈 속에 뚜렷이

이 흰 옷 더욱 희게 언제까지나...

 

사이공의 흰옷, 베트남과 한국 사이

 

리뷰들을 찾아 읽다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이공의 흰옷>이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리뷰를 작성한 이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가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때로 이렇게 재구성된다.

 

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 프엉(옛 소설에서는 '홍')은 고등학생이었다. 옛날 한국이 그러했듯이 남베트남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것은 고등학생들이었고, 더 나이 어린 사람들, 우리가 '어린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그런 이들도 남베트남 해방운동에 참가했다. 실제 베트남에서 열사 묘역을 가보면 20세도 채 안 되는 수많은 어린 전사들의 무덤이 즐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좀 과장해 말하자면 (베트남의) 10대의 운동을, (한국의) 20대들이 참고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1980년대 학생운동 내에서 그런 차이를 무화시킬 만큼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 이후 정당성을 상실한 정권에 대한 학생운동권이 가진 공분은 점점 파탄으로 치달아가던 남베트남의 1960년대 응오딘지엠 정권과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 미국의 역할과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 등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를 감안한다면 독자들이 이 책에 깊이 공감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1980년대의 한국 상황을 깊이 투사시켜 읽어냈던 것이다. 여기에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관점, 혁명적 낭만주의와 낙관주의의 정서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한껏 고양되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할 수 있겠다.

 

청춘, 자신들의 전쟁

 

삐라를 가방에 담고서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달리는, 인민과 사회를 생각하는 그런 고등학생들은 베트남에 없다. 교복이 흰 아오자이에서 점차 '일본풍 교복'(우리가 입는 것과 비슷한 교복을 이들은 '일본풍'이라 부른다.)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 아니다. 베트남의 청춘남녀의 관심은 '핌 film'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고, 그중엔 한류 열풍도 포함된다. 2000년대 장동건이었다면 지금은 현빈이 인기 절정에 있다. 페이스북에서 만난 베트남 친구는 내게 채팅창에서 말한다. "시크릿 가든 봤다, 현빈 너무 멋있다. 군대 간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군대를 얼마 동안 가나?"

 

이들에게 <아오짱>이나 당 뚜이 쩜의 일기 등, 지난 전쟁 시대 실화를 담은 소설을 권할 수는 없다. "역사를 기억하라!"고 외쳐봐야 이들에겐 거부감이 우선 들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지 않는가? 일제시대는 고사하고 4.19도 낯설고 70년대 학생운동도 너무 옛날 이야기다. 어쩌면 '사이공의 흰옷'을 기억하는 건, 베트남의 구세대와 한국의 구세대가 아닐까.

 

난 그것을 탓할 수 없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자기 세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엄청난 속도의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젊은 세대는 자기 세대 내에서 경쟁하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한국의 20대들과는 양상이 다르겠지만, 비슷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전쟁 시절의 베트남만을 기억하는 건 좌파들이다. (일부 참전 군인들도 있긴 하겠다.) 베트남 경제 성장 그래프만 주시하는 건 우파들이다. 둘 사이에는 1975년의 저편과 이편으로 관심사와 관심 시대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거기에 베트남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남녀들은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이공의 흰옷'의 프엉은 이제 73세가 되었다. (어쩌면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직 그 시절만 되뇌인다면, 이건 뭔가 심하게 불구화된 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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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07:49 2011/03/10 07:49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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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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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사이공의 흰옷> 번역자를 곧 찾을 수 있을 듯. 통화를 해보고, 이 책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듯.
  2. 울산L형
    2011/03/13 01: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이공의 흰옷'은 나도 대학시절 진지하게 읽었던 소설이네....

    사실 노래를 먼저 배우고 나중에 책을 읽게 되었지...

    첫 도입부가 내가 배운 것과 약간 다르지만(당시 구전민가의 상당수가 약간씩 다른 버전의 노래들로 전수되었지) 분명 같은 노래네(녹음된 노래는 거의 처음 듣는 듯 함)..

    나중에 박하술 한잔 기울이며 들으면 더욱 분위기가 날 노래인 듯...

    이 노래를 가르쳐 준 선배(지독한 음치)는 매번 술이 취하면 비장하게 이 노래를 불렀었는데.....
    • 2011/03/14 09: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박하 술은 다 마시지 않았슴까? 넵머이라도 마시면 좋겠건만.
  3. 울산L형
    2011/03/15 01: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아 있다.. 니가 사다준 1.5L를 두개로 나누어서 그 중 하나만 맛나게 먹구, 하나는 비장(秘藏)해 두었지... 심심할 때, 쫌씩 마시려구.. 부럽냐.. 그나저나 빨리 주변의 인간들을 벳남북부로 보내야하는데... 그래서 너처럼 정보전수하고 박하술 사오게 해야하는데...그도 저도 안되면 9월이나 10월 이 몸이 직접 다시 한번 다녀와야지..최여사 허락도 이미 받았겠다...
  4. kalos250
    2011/03/18 00: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87년에 읽었던 <사이공의 흰 옷>의 그 "깊은 공감"이 생각나네요.
    어찌나 깊었는지, 아무 일 없는 때 멀쩡한 방 안에서 혼자 읽다가 갑자기 취류가스의 매운 기운이 확 느껴져 킁킁거리고 눈물 찔끔거리고 그랬거든요.
    밝혀질 책의 비밀도 기대됩니다.
    잘 읽었어요...
  5. 신도선
    2011/03/23 11: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냥 하는 말인데 '사이공의 흰옷' 노래는 인천사랑학우회 노래패에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요. 인천사랑학우회는 인부총련 가맹단체고...인천을 사랑하는 학생들 모임이었을 것으로 추정은 하는데 20년전이므로 확인된 바는 없으므로 아닐지도 모르고...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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