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과 뉴타운

2008/10/07 10:19

 

골목 멀리 사다리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 가을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현동도 이른바 '뉴타운'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단다.

 

 

마을이 뉴타운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비워야 한다.' 집집마다 하나씩 시뻘건 페인트로 '공가'라고 써갈겨진다. 처음엔 한 집, 두 집 그러다가 이제 길 하나를 면하고 있는 모든 집들에 피칠을 했다. 무슨 무속신앙 비슷하다.

 

 

가을 내내 아현3구역은 집이 비어졌다. 2구역에 사는 나로서는 점점 '뉴타운'이 내 문제로 다가오고 걱정이 산더미다. 지난 봄, 주인집은 2000만 원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난 길길이 날뛰며 '임대차보호법'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집 할머니를 을러댔다. 난 내가 약자인 줄은 정말 몰랐다. 철 없는 것. 부동산을 들러 사장에게 귀동냥을 한 결과, 내가 목소리를 높일 처지가 전혀 아니었다. 부동산 사장 왈, "어쩔 수 없어요. 법이 뭐 우리랑 상관 있나요. 그냥 1천만 원 올려준다는 선에서 쇼부 보세요."

 

아현3구역에서 이사 나온 사람들은 이주비를 손에 쥐었다. 몇백만 원씩 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으로 갈 곳은 없다. 그래서 옆동네인 우리 동네 2구역으로 이사를 온다. 그래서 주인집들마다 '기회다!' 하며 2000만 원씩 올릴 것을 요구했다. 몇백 쥐어봐야 소용 없는 게 이런 거다. 근데 또 난 그 몇백이라도 받고 나가려고 기어코 아현동을 고수한다. 몇백 있어봤자 갈 곳이 없는데 없으면 더더욱 갈 곳이 없을 거 아닌가.

 

노회찬이 선거에서 떨어진 노원구의 심리 메커니즘도 그러할 것이다. 그게 어리석은 줄 누가 모르겠는가. 어리석어도 그 몇백, 몇십이라도 손에 쥐어야 내돈이 되고 그 돈이라도 있어야 조금이라도 덜 밀려날 수 있다. 우린 그런 식으로 뉴타운의 노예, 새마을의 노예가 된다.

 

 

골목을 가로막고 선 이 차는 도대체 이사를 가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 출근길과 이삿길은 겹친다. 하루 종일 동네에는 사다리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그 떠들썩하던 아현시장도 요즘은 눈에 띄게 퇴락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아현동, 그 아현동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갈까.

 

 

전봇대, 담벼락 할 것 없이 여백이 있기만 하면 '이삿짐 센터' 전화번호 광고들이 뒤덮는다. 저 골목길은 내가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지만 늘 저 길을 지나치며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2-30년대 지어진 걸로 보이는 한옥과 골목이 그려내는 곡선이 예뻤으나 뉴타운의 직선에 그 자리를 내줄 것이다. 신작로를 내주고 사라진 새마을 시대의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처럼.

 

 

버려진 집들이 늘어감에 따라 길에 내앉은 가구들도 늘어만 간다. 한때 아이의 배냇저고리와 언니의 수줍은 속옷과 아버지의 구멍난 '난닝구', 어머니의 옆을 튼 티가 함께 담겼을 옷장도 거리에 내앉아 떠나는 주인들을 구경한다. 용도폐기된 것이 가구만일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이 어디 버려진 가구 뿐이겠는가. 가구가 버려지고 건물이 주저앉으면 거기에 얽혀 있던 한 식구가 질박하게 이어갔던 그 시절의 기억도 다 사라지고 만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세입자 주거이전비 및 영업손실보상금을 접수받는다는 플래카드. 빨리 먹고 떨어지라는 말을 서비스 정신으로 포장하면 저렇게 된다. 급한 게 우리랴. 재개발 업자들이지. 그래도 그거라도 빨리 받아 쥐고 가뜩이나 뛴 강북 전월세 집을 알아봐야만 한다. 내가 먼저 차지하지 않으면 내 이웃이 차지할 것이니, 이웃 보다 먼저 남은 매물을 차지해야겠다. 춥고 긴 겨울이 앞에 있다. 정녕 거리에 내앉고 싶지 않는다면 어서 서둘러라. 뭐 그런저런 말들을 플래카드는 살랑거리며 포효한다.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문방구 주인네는 다급하다. '뉴타운 세일'이라 써붙였지만 좀체 물건이 나가지 않는다. 동네 서점도 '뉴타운 세일', 동네 화장품 가게도 '뉴타운 세일'이다. 정말 싸게 팔려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박정희가 죽었을 때 난 일곱 살이었다. 난 더 이상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노래를 듣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박정희 대통령은~'으로 시작되는 뉴스를 듣지 않아도 됐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곧 전두환이 등장하고 '땡전뉴스'는 계속되었고 새마을중앙회장은 대통령의 동생이 맡았다. 새벽 골목을 부수듯이 울려퍼지던 청소차의 노랫소리도 계속됐다. 노태우가 김영삼에게 바톤을 이어주던 92년 울산 염포동에서도 일주일에 한번 청소차가 오면 그 노랫소리가 탱크 소리처럼 울려퍼졌고 허겁지겁 일어나 쓰레기를 싣고 맨발로 튀어나가야 했다. 신자유주의 탓인지 뭔지 그 '새마을'은 '뉴타운'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골 영감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새마을운동을 들먹일 때, 그 새마을운동은 모두가 잘 사는 마을, 배고픔을 면한 마을, 옛 것을 부수고 새것을 세우는 건설적인 마을을 만들자는 것으로 얘기되어진다. 뉴타운도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 같은 논리에 별 저항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 '공모'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사람들도 절박한 것이다. 다 뛰는데 그럼 어쩌란 것이냐. 80년대 철거민처럼 싸우란 것인가. 이제 그렇게 싸울 수도 없다.

 

요컨대 새마을운동과 뉴타운은 엔클로저가 아니었던가. 엔클로저가 15세기 혹은 18세기에만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구획 새로 하기, 그건 항구적으로 반복적이다. 변두리 인생들에겐 쟤네들이 새로 구획하는 게토를 향해 늘 짐을 싸야만 하고 거기엔 비슷비슷한 빈민들이 또 질기고도 질긴 삶을 엮어가고 있을 거다. 근데 참으로 이제 숨어들 게토조차 보이지 않는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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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10:19 2008/10/07 10:19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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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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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글 보고 너무 마음이 가서... 혹시 웹진 '진보복덕방'에 실어도 될까요? culturalaction.org/housing 으로 가시면 진보복덕방을 보실 수 있어요. [공간_수다]라는 꼭지에 이 글을 옮겨서 실어도 될까요? 물론 출처는 밝히고요. 괜찮으시면 덧글을 달아주시거나 rights@chol.com으로 메일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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