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의 진보, 경북 안동의 전탑

 

새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통령이 있었으니 그가 즐겨 쓰던 말은 “마누라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옛 제국의 총독이 집무를 보던 청사를 철거했고 이른바 신군부의 조직 하나회를 쓸어버리기도 했다. 지난 과거의 유산은 사라졌다. 당 이름이 신한국당이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새것은 지상명령이었다. 온갖 개혁을 통해 한국병을 치유해 새 한국을 만들어 내자고 부르짖었다. 그의 정부는 새 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였고 새 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세계화 구호 아래 나라는 점점 일신우일신했다.


그 후 대통령 셋을 더 겪는 동안 새 자유주의는 나라를 정말이지 바꾸어 놓았다. 세계의 속도감은 KTX보다 빠르고 세상이 권하는 꿈은 마천루처럼 까마득하게 높다. 지나간 20년보다 앞으로의 20년은 더 멀미 나는 속도로 달릴 것이다. 보폭을 맞출 수 있을까. 언제 낭떠러지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우리를 채찍질하지만 새로움은 설레기보다는 낯설고 간혹 두렵기까지 하다.


새 자유주의자들은 호기 있게 ‘보수가 더 진보적이고 진보가 더 보수적이다’라며 진보와 보수가 전도됐기에 그러한 구도는 소용을 다했고 자신들이 진정한 진보라 말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민간 자본이 장사를 하는 새 지하철 골드라인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진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도를 가로질러 없던 물길을 내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갈아입은 새마을운동을 보면서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진보’보다 그네들의 역사를 기획해 가며 그네들의 미래를 실현시켜 가는 ‘보수’가 진보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에 반해 한 뼘만큼 절박한 삶을 지키려는 눈물과 몸부림은 그래, 어쩌면 보수일지도 모른다, 고 낮게 되뇌기도 한다.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해 가는 그네들에 반해 우리는 더없이 옛것을 고수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반문하기도 한다.


허나 그 새로움의 결과는 판박이 같이 닮은 삶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본디 새것이란 ‘전에 없던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새것을 부르짖을수록 사람들은 닮아 가고 평균적으로 되며 심지어 똑같은 모양으로들 살아간다. 옛것이 새것처럼 독특하고 새것이 옛것처럼 평범해지며, 진보가 보수로 보이고 보수가 진보로 보인다.


가치가 전도된 시대, 말이 본래의 말뜻을 배반할 때 그래, ‘보전하여 지킨다’는 보수면 어떠하고 ‘옛것을 지킨다’는 수구면 또 어떠하랴. 어차피 말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것을. 유행을 거스르고 시대를 거슬러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속도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지켜 내 본모습을 살려야 한다면 기꺼이 보수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 의지가 우리로 하여금 다 다른 모양을 빚어내 세상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안동 전탑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전탑의 고장, 안동


원래 한국은 석탑의 나라이다. 서안의 서안탑을 비롯하여 전탑을 많이 세운 중국, 법륭사 목탑으로 대표되는 목탑의 나라 일본과 달리 한국은 신라와 백제 모두 풍부한 화강암으로 점차 석탑을 세웠고 특히 경주 불국사 석가탑 이후 통일신라는 삼층석탑의 전형을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유독 안동은 전탑이 많다. 옥동 삼층석탑과 같은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이미 통일신라의 양식적 통일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양식인 전탑이 안동을 중심으로 세워지게 된다.


안동의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현 안동농고 교원사택 자리의 임하사 전탑, 북후면 장기동 야산에 월천 전탑이 있었을 것이라 전해지고, 그 외에도 화인사지 전탑, 개목사 전탑이 있었다. 또한 『영가지』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안동시 풍계동, 금계동에 두 기의 전탑 흔적이 남아 있다. 전탑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 세 기의 전탑만 남아 있다.

 

동부동 오층전탑


안동역 바로 옆 철도노동자들의 회관인 철우회관 곁에 보물 56호로 지정된 동부동 오층전탑이 있다. 이곳에는 원래 법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당간지주의 이름은 운흥동 당간지주, 탑의 이름은 동부동 오층전탑, 실제 행정 동명은 운흥동이다. 1963년 문화재 지정 당시 착오가 있었던 듯한데, 당국의 소홀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철도역 바로 곁에 있음에도 어떠한 안내판도 없어 안동을 찾는 외지인들이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다.


동부동 오층전탑은 그 자태가 단아하고 벽돌마다 그 색채가 달라 보는 맛이 있다. 또 이층 남면에는 감실의 인왕상 두 기가 새겨져 있는데 그 기법이 출중하지는 않으나 신체의 비율이 아이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신세동 칠층전탑


동부동 오층전탑을 뒤로하고 안동 역전에서 안동댐을 향해 걷다가 철길 아래 굴다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거기에 국보 16호로 지정된 신세동 칠층전탑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전탑으로 높이가 자그마치 17.2미터에 달한다. 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신세동 칠층전탑의 무게는 280톤에 달하고 벽돌은 7만 장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세동 칠층전탑 역시 동부동 오층전탑처럼 그 이름이 엉터리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영가지』에 따르면 안동의 동쪽인 이곳에는 법흥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 옆 동네 이름을 갖다 붙여 신세동 칠층전탑이 되었는데 법흥동이 맞는 이름이다. 남대문로 4가에 있는 남대문에 바로 옆 동네 이름인 태평로를 따 붙인 격이다.


한심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유교 왕조 조선은 성종 18년(1487년)에 이 탑을 개축했는데 탑 상륜부 금동 장식을 떼어다가 녹여 썼다고 한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탑 바로 옆으로 중앙선 철로를 놓았다. 이로 인해 탑은 기차의 진동을 수십 년 동안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또 일제는 이 탑을 보수하면서 기단부에 시멘트를 발라 버렸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처럼 말이다.


신세동 칠층전탑 주위에는 고성 이씨 종택과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을 배출한 임청각이 있다. 이 마을은 원래 고성 이씨의 집성촌으로서 보물 182호인 임청각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조탑동 오층전탑


안동 전탑 답사의 마지막 종착지는 보물 57호인 조탑동 오층전탑으로서 시내를 빠져나와 5번 국도를 타고 의성을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된다.


조탑동(造塔洞)이라는 동네 이름은 탑을 쌓는 벽돌을 구워 내는 곳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탑동 오층전탑은 동부동, 신세동 전탑과는 달리 1층 몸돌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즉, 석탑과 전탑이 결합된 반석반전탑인 셈이다. 이는 모전석탑과는 다른 측면에서 우리 탑의 다채로운 예이다. 또 다른 전탑들과는 달리 탑 가까이 가 벽돌을 자세히 보면 당초문이 아름답게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네모난 벽돌을 구워 쌓은 것이 아니라 한 장의 벽돌도 공력을 들여 만들었을 만큼 정성으로 세운 탑인 것이다.


1층 몸돌에는 감실이 있고 그 양쪽에는 인왕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모습은 석굴암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눈이 부리부리하지만 귀엽기 짝이 없다.


조탑동은 한적한 시골 마을로 조탑동 오층전탑이 서 있는 곳은 예전엔 사과밭이었다. 지금은 그 밭은 사라지고 연꽃축제 때 썼던 벌건 고무 대야 1,000여 개를 안동시가 가져다 놓았다. 8월이 되면 연꽃이 활짝 펴 전탑을 돌며 연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연꽃이 아름답게 핀다 한들 사과나무 과수원이 사라진 것은 못내 아쉬웠다. 경북 영주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 양편의 사과밭과 더불어 답삿길에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과밭 중 하나였을 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조탑동의 권정생 선생님(1937∼2007) 때문이기도 하다.

 

조탑동 전탑을 닮은 권정생


조탑동 오층전탑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에는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집이 있다. 선생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거슬러 그 집을 찾아가다 보면 누구라도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점점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 살림살이의 검박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권정생 선생께서 사셨던 집


권정생 선생은 1937년 9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46년 한국으로 건너오셨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경북 일대를 떠돌아다니셨다. 그리고 전신결핵이라는 큰 병을 얻으셨다. 1969년 단편 「강아지 똥」으로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셨고 이후 평생을 동화를 쓰며 어린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지니고 사셨다. 2007년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서에서는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고 하셨다. 이로써 60만 부가 넘게 팔린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의 인세는 다시 어린이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어릴 때 읽은 『사과나무밭 달님』이라는 동화책을 통해서였다. 우리 집에서는 이 문고 시리즈를 줄곧 샀는데, 그 시절 권정생이라는 이름은 어린 내게도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의 작가였다. 그건 다른 동화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어린이에게 ‘아름다움’과 ‘긍정적 가치관’, ‘권선징악’만을 심어 주는 동화의 천편일률적인 것과는 매우 달랐다. ‘동화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식의 통일을 깨는 그의 작품은 석탑으로 통일된 통일신라시대 탑파의 양식을 깨는 안동의 전탑과 닮아 있었다. 통일과 함께 찾아온 신라의 융성은 탑파의 양식에서도 통일을 이루었다. 의성 탑리 오층석탑으로부터 시작한 화강석탑의 양식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다듬어지고 불국사 석가탑에서 완성되어 널리 널리 퍼져 갔다. 유행은 속도감과 함께 간다. 빠르게 석탑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전에 없던 새로운 탑파의 양식은 그러나 모든 탑파를 비슷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갔다.


따라갈 것인가, 따라가지 않을 것인가. 새것으로 통일될 것인가, 옛것을 지켜 홀로 독창적일 것인가. 안동 지방 사람들이 택한 것은 후자의 길이었고 그들은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간고등어처럼 짜게 전탑을 지켰다. 그들이 ‘보전하여 지켰던 것’은 ‘옛것’이 아니라 ‘다양성’이었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갔던 것은 화강석과 벽돌을 섞어 쓴 조탑동 오층전탑의 화이부동한 독특성의 세계였다.


안동 전탑들을 바라보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다양성과 독특성을 낳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통일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걸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느냐 아니냐에 있다.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은 권력의 길이다. 다 다른 것을 낳고 시대의 유행을 거스르는 삶을 누가 뭐래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보수라면, 그런 보수가 진보하는 삶이다. 왜냐하면 ‘다르게 살기’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는 건 때로 꼬장꼬장한 양반의 이미지를 가졌을지라도 결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다. 퇴계가 안동 땅 도산서원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제자 기대승과 8년에 걸친 논쟁 결과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바로 ‘소통하는 칩거’다. 유폐된 삶처럼 보일지라도 일직면 조탑 마을에서 권정생이 외로웠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이자 억측이다. 수많은 사람들, 어린이들, 세계에 완전히 지배받기에는 아직 미래가 짱짱한 어린이들과 호흡하던 권정생은 자신의 마을에 서 있던 조탑동 오층전탑을 닮아 있다.


그 고집이 세상을 질식시키는 통일성으로부터 벗어나 숨통을 트이는 여정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 여정에는 『사과나무밭 달님』이 환하게 그 빛을 내릴 것이다. 화이부동의 빛, 그것이 군자의 길이자 진보의 길이지 않겠는가.

 

“아, 그곳에 선생이 계셨습니다/ 그건 집이 아니라 작은 쪽배였습니다/ 낮달 같은 쪽배를 타고 구름 물결에 둥실 뜬/ 선생이 계셨습니다// 그 쪽배는 세상을 떠메고 있었습니다/ 여위고 창백한 뼈 마디마디 다 드러낸 낮달 같은 쪽배에/ 눈물겨운 세상을 다 떠메고 있었습니다”* 


* 백무산, 「돛대도 아니 달고」(『거대한 일상』, 창비, 2008,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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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5 02:49 2010/07/05 02:49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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