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드라마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은 최근 드라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봄날>의 독특한 점은 무엇인가.

드라마의 표면상으로는 삼각관계가 기본적인 구조가 된다. 두 남자와 한 여자, 게다가 두 남자는 배다른 형제다. 진부하다. 그러나 이 진부한 구조 위에 다른 구조가 얹어진다.

아직 6회까지 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봄날>의 주제는 선명해졌다. 그것은 기억과 트라우마이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과거 혹은 과거의 어떤 기억에 의해 정신적 외상을 가졌고, 그것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를 등장인물 간의 관계망 속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2. 서정은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로 인해 실어증에 걸렸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고은호가 그 상처를 직시하도록, 바로 보도록 한다. 직시,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치유의 당연한 한 과정이다.

그러나 정작 고은호 자신은 오래전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를 찾아 떠나지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는다. 그런데 차 안에 갇힌 채, 어머니의 죽음을 오랜 시간 목도하고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아직 고은호 스스로는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셈이다.

고은호의 배다른 동생 고은섭은 어릴적 목격한 어머니의 자해 장면으로 인해 수술실에서 구토를 한다. 병원을 싫어한다. 자신은 결코 의사가 될 인물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3. 이들의 트라우마가 일차적으로 어머니로부터 유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출, 이혼, 자해 등 이유야 어찌 됐든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상처는 몸에 각인 되었고 또한 몸을 통해 그 증상이 드러난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실어증, 기억상실증, 구토.

4. 이들의 삼각관계는 비단 애정의 삼각관계만이 아니다. 이 점이 이 드라마를 여느 드라마와 구별짓게 하는 지점이다.

이 삼각관계에는 두 가지 계열이 존재한다.

하나는 욕망의 흐름, 혹은 사랑의 벡터이다. 즉 '고은섭->서정은->고은호(->김민정)'이라는 계열이다.

다른 하나는 치유의 삼각관계가 존재한다. 그것은 '고은섭<-서정은<-고은호'의 흐름도인데, 이것은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게끔 하고 그것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표시한다.

이 두 가지 계열은 '기억'을 중심으로 돈다.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괴로워하지만, 바로 그것으로 인해 이 관계망이 짜여졌다. 그런데 또한 이 관계망을 가능하게 해줬던 그 트라우마로 인해 기억의 일부를 잃었다. 온전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경우와 기억상실증일 때 모든 팩트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계열화되는데, 예컨대 고은호에게 피아노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온전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경우 그 피아노는 서정은에게 준 것이지만, 기억상실증의 은호에게는 '엄마의 피아노'가 버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미스캐스팅으로 인한 다소간의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이 밀도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중의 삼각관계 때문이 아닐까.

5. 그러한 점에서 이 드라마의 '봄날'은 반드시 '사랑'에 대한 유비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복원과 트라우마의 치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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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14:00 2006/11/07 14:00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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