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서민 드라마의 복권 : 정지우

 

<서울의 달>과 <파랑새는 있다>의 김운경. 그 이후 '서민 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작가가 있다면 그건 단연 <글로리아>의 정지우 작가다. 그녀는 <가문의 영광>으로 한국방송대상 작가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 그녀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가문의 영광>-<별을 따다줘>-<글로리아>로 이어지는 라인업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라인업에서 그녀가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보여줬던 태도는 '(근본적인) 악역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이것은 '서민 드라마'의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만약, 서민드라마에 (근본적인) 악역이 있다면 그건 장르 드라마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제빵왕 김탁구>를 보라! 전인화를 이해하고 납득하는 게 가능한가? 구마준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가 보여줬던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작품상으로는 계급적 전형은 '터무니없이 악한'들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로서 탈사회적으로 제시된다.) 요약하자면, 납득 가능한 악역.

 

아무튼 정지우 작가의 작품은 전작 <가문의 영광>처럼 악역이 없기 때문에 <글로리아>라는 이 드라마 속에서는 버릴 인물도, 제대로 캐릭터를 살리지 않는 등장인물도 없다. (특히 함께 사는 셋방살이 집에서 10여 명이 집단으로 이루는 대사들 씬 속에서 이 점은 빛난다.) 이건 무지 어려운 거다. 선한 역처럼 캐릭터가 어려운 것도 없다. 더구나 모두가 선할 때, 이걸 끌고 가긴 쉽지 않다. 설령 극중 ''악역'을 맡을 때조차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이해받아야 한다니... 만만하지 않다. 따라서 연기자, 연출자 역시 이 지점에서 작가 만큼 박수를 받아야 한다.

 

악역이 없다는 점은 <글로리아>가 왜 주말드라마 라인업에 배치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더 주목해봐야 할 점은 한국에서 '주말드라마'의 역할이다. 한국의 주말드라마는 근본적으로 악하기가(달리 말하면 막장이기가) 힘들다. 그건 한국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주말이라는 것이 가진 '쉼'의 중요성 때문이다.

 

2. 한국의 주말드라마 = 가족드라마 + 알파 = 달동네드라마

 

한국 주말드라마는 외국의 '홈 드라마'의 의미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미국의 '홈 드라마'가 '가족의 가치'라고 하는 다분히 공화당적인, 그러나 현대의 민주당 역시 흡수하게 된 어떤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제로서 조성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반면 한국의 주말드라마는 때로 그것이 단순히 '가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때로 '마을', 때로 '동네', 혹은 <글로리아>처럼 한 집안에 사는 일종의 '대안가족'에 이르는 구성 범위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그 '대안가족'은 '생존' 때문에 '가족처럼' 모인 어떤 '생활공동체'를 의미한다.

 

사실 이런 모습을 우리가 전형적으로 발견해 왔던 것은 '달동네'(또는 작품 <달동네>)에서였다. '달동네'가 지리적으로 고지대, 즉 '달이 가까운 어떤 곳'을 의미했다면, 신자유주의 21세기의 달동네는 곳곳에 '산포'해 있다. 심지어 달이 잘 보이지도 않는 반지하에 이르기까지.

 

어쨌든 <글로리아>는 그런 동네-빈민촌-에서 태어나 자란 배두나-이천희의 삶 속에 서지석-소이현의 삶을 삽입시킴으로써 '계급적 장벽'을 이들의 사랑이 어찌 넘을 것인지를 탐색케 한다. 그건 정말 가능한 것인가?

 

3. 한국적 특징 : 계급드라마를 서민드라마로 치환하기

 

우리의 질문은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극중에서 가능하든 말든(물론 시청자로서의 나야 "잘 돼라!"에 박수를 보내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소이현-이천희, 혹은 배두나-서지석 방식의 사랑과 연애는 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거다.

 

서민드라마의 복권이 가능한 물질적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에서 소위 '서민드라마'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문학, 노동문학이 추구해왔던 리얼리즘의 길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한국에서, 적어도 TV에서 블루칼라가 등장했던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꼭 그런 블루칼라가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블루칼라가 대거 임금이 높아져 왔던 지난 20년의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밑바닥에서 신음했던 소위 '룸펜'이라 불리우는 인간 군상의 삶을 주목하자. 서민드라마의 복권은 바로 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글로리아> 역시 다르지 않다. 서민드라마가 당장 제기하고 있는 것은 계급적으로 제일 밑바닥,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도, 조직노동자를 배경으로 한 진보정당도, 거창한 이론 같은 뒷받침도 없는 이 룸펜적 인간군들이 "자신의 계급과 다른 어떤 사랑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계급을 떠나서 이런 사랑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다소 비약컨대) 계급적 관계를 극복하는 우리의 "혁명적 관계"가 가능한가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혁명적 관계"란 "혁명을 함께 지향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미 "그 관계 자체가 혁명"인 관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구시대(즉, 80년대) 많은 청춘들이 품었던 "사랑과 혁명의 변증법적 통일"과 같은 낡디낡은 목표가, <글로리아>와 같은 드라마를 볼 때 생각난다. 잘 알다시피 그러한 방식의 '변증법'은 없다. 변증법과 같은 방식의 철학 자체도 낡았거니와 '사랑'과 '혁명'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이유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그런 변증법은 연애하는 상대를 '학습'시키기에 바빴다는 지난 운동사의 이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학습'을 병행해가며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조차, 그후 20년, 이를테면 그런 운동권끼리 20년 결혼생활 해보니 "사랑-혁명 변증법, 통일"이 말처럼 그런 건 아니었다는 건,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랑'과 '혁명'이 변증법적으로 통일 되든 말든 간에, 계급이 다른 자들 간에, 과연 사랑이 가능한가? 하는 거다. "그 관계 자체가 혁명"인 어떤 것! 말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가 이런 구조와 질서 속에서도 뭔가 다른 걸 꿈꿀 수 있게 될 거 아닌가.

 

주말드라마를 - 더구나 아주 이례적으로 '계급'적 배치를 깔고 시작한 <글로리아>와 같은 드라마를 - 보면서 생각되는 건, 이런 드라마가 이 시대에, 하필이면 이명박 집권이 2년 남고, 뭔가 정치적 기획을 사람들이 술자리에서나마 마구 쏟아내고 있는, 대선을 2년 앞두고 총선을 그보다 앞둔 시점에서 하고 있느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이명박이 문제가 아니라, 가정-직장-사회-국가라고 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각 단위, (특히 가정)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새로운 생각을 시험, 고안해야 하겠다 하는 거다. 그게 바탕이 되지 않고, '관계 자체가 혁명'인 것들이 쌓여가지 않는 이상,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거다.

 

4. 이천희-소이현

 

소이현의 절실함이 이쁘고 든든하지만, 그보다 더 맘에 오는 건 이천희의 한결 같은 "거부"다.  (물론 이건 18회가 끝난 현재적 상황에서다.) "너 같은 부자 여자애는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사코 거부하는 이천희의 태도가 더 맘 아픈 건, 그게 우리 계급적 실존을 표상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사랑'이란 근본적인 모든 한계를 극복하는 '힘'의 다른 이름일진대, 그 따위를 못 넘을 게 뭐란 말인가.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것도 그런 거다. '계급적 장벽'을 넘어서 둘의 관계를 한 단계 도약 시키라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런 모든 한계선을 지워버리는 어떤 전변을 우리는 천희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글로리아>, 즉 "영광"이란 건 그런 거다. 모든 종류의 영광은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하고, 또 끝맺기 마련이다. 모든 종류의 한계를 넘어서서 관계를 전면적으로 이루는 것. 쌍용차, 용산, 두리반에서 우리가 목도했던 게 그런 게 아니었던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9/27 08:59 2010/09/27 08:59
글쓴이 남십자성
태그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blog.jinbo.net/redgadfly/trackback/58

댓글을 달아주세요

  1. 2010/09/27 18: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가끔 봐서 저만 이종원이 악당으로 보인 건가효... 사람을 죽일 정도면 악당 아닌가 -ㅅ- 같이 죽인 한진희도 그렇규...
    • 2010/12/06 14: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 앙겔부처님, 11월 말부터 <글로리아>가 조금씩 이상합니다. 등장인물도 너무 늘어나고 변수도 많아지더니, 이제 막장 조짐이 보이네요. 앙겔부처님 말씀대로 될까봐 안타깝네요. 막장=시청률 대박, 이런 공식에 기대는 건지. 이종원과 연규진이 함께 막장으로 치닫고, 톡톡 튀던 조연들도 중구난방 난리네요. 계속 그러면, 본방 사수를 해야 할지 고민이 좀 됩니다.
    • 2010/12/06 15:2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는 안 본지 좀 됐어요... 되게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_- 가끔 소식을 듣는 바로는 정말 왜 이러는 건지...;;;;;;; 저도 연규진 살인교사 얘기 들었어요;;;;;
  2. 2010/09/29 09: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악역은 악역이되 이해되고 납득되는 면이 있지 않던가요? 사람 죽인 일의 진상도 아직은 불분명하고...
  3. 2010/10/26 18: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떠나셨나요. 절친 버리고 떠나니 좋으신가요.
    절친과 술잔을 기울이는 날을 기약이나 할 수 있을까요...
  4. 2011/02/18 00: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로리아>는 끝났고...
    결국 이 글은, 나혼자 완전 뻘짓한 걸로 끝났다. 효효. 앙겔부처님께도... 쪽팔리지만... 제가 알았겠어요. 드라마 후반이 이따위로 갈지...
  5. 박군
    2011/02/18 04: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제가 사정상 남한 텔레비젼을 못보는데, 드라마 내용과 무관하게 이 댓글 시리즈 진짜 재밌네요. 특히나 "제가 알았겠어요. 드라마 후반이 이따위로 갈지.." 라니, 진짜 빵 터졌습니다. ^^
    • 2011/02/18 06:02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앗... 그렇군요. 서울에 열흘 정도 머물다가 떠났다는 글, 지금 보았습니다. 지구에 계시는군요. ^^ 저도, 지구에...

<< PREV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NEXT >>

BLOG main image
남십자성입니다. 트위터 : @redgadfly 페이스북 : redgadfly by 남십자성

카테고리

전체 (142)
잡기장 (36)
삶창연재글 (15)
무비無悲 (15)
我뜰리에 (3)
울산 Diary (7)
캡쳐 (4)
베트남 (33)
발밤발밤 (18)
TVist (10)
탈핵 에너지 독서기 (1)

글 보관함

달력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전체 방문자 : 470407
오늘 방문자 : 125
어제 방문자 :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