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5일(월요일, 23일차) : 하노이

 

-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많이 마셔서 아침에는 조금 힘들었다. 일어나서 씻고 나왔다. 하노이 기차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22,000VND. 우리는 하노이 택시 중에서 Hanoi Tourist라는 걸 선호했는데 택시 캡에는 TAXI Group이라고 쓰여 있다. 전화번호는 38.56.56.56이다. 흰색 바탕에 빨간 줄, 캡에는 빨강-파랑. 마티즈처럼 작은 경차 택시와 주로 토요타 차량을 쓰는 소형 택시, SUV 차량 같은 것으로 나뉘는데 종류마다 기본요금이 다르다.
 

- 하노이 역에서 한참을 기차 체계와 시간표를 연구했다. 나누어주는 타임테이블도 없고, 영어로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연구 끝에 17일자 라오까이행 편도 티켓을 끊었는데, 너무 비쌌다. 2장 66,000VND. 돌아오는 21일자 티켓은 2장에 137,000VND이라 했다. 돌아오는 것도 끊어야 하나 어쩌나 하면서 끊은 티켓을 봤더니 16일자였다. 또 한참을 대기표를 뽑아 들고 기다렸다가 교환 매대에 갔더니 10% 벌금을 내야 한단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 너희 잘못이라 했더니 표 끊어준 직원과 얘기해봐라, 난 모르겠다 하면서 다음 사람을 부른다. 표 끊어준 중년 여성 직원에게 항의를 했다. 옥신각신 끝에 신경질을 내면서 660,000VND을 돌려받았다. 기운도 빠지고 화도 나서 그냥 나와 인근 길카페에서 카페스아다 2잔, 콜라 캔 1개를 마셨다. 45,000VND.
 

- 외국인 차등 요금이 사라지지 않은 걸까? 생각보다 기차값이 비싸다고 느껴졌다. 싸파에 갔다가 너무 일찍 돌아오는 것 같아 사실 가기가 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안 가기에는 처음부터 싸파를 최종 목적지로 한 여행이라 이 역시 망설여졌다. 싸파를 가지 않는다면 하노이에서 일정이 너무 오래 붕 뜬다. 그런데 가자고 생각하니 저기 들어가서 또 역 직원들과 마주해야 하니 신경질이 났다. 일단 다음 일정부터 챙겨야 했다.
 

- 기차역 앞으로 지나다니는 버스를 보니 32번 시내버스가 보였다. 당 뚜이 쩜 묘가 있는 열사묘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야 했다. 일단 탔다. 버스는 한산했다. 3,000VND×2명=6,000VND. 그런데 차장이 계속 뭐라뭐라 했다. 우리는 지도를 펴서 뚜리엠(Tu Liem)으로 간다고 했다. 차장의 얘기는 방향이 잘못됐으니 다시 타야 한다는 것 같았다. 차장이 다른 이에게 부탁해 어떤 곳에 내렸다. 왕복 12차선쯤 되어 보이는 큰 도로였다. 길을 건너는데 함께 내린 이가 손가락으로 저 편을 가리켰고 거길 보니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 거기서 다시 32번을 탔다. 사람이 많았다. 우선 여기가 어딘지를 알아야 하는 게 급선무였다. 도로 주소와 버스 경로도, 지도를 번갈아 보니 이제 Dien Bien Phu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32번 노선은 Nguyen Thai Hoc → Kim ma → Xuan Thuy Cau Giay → Ho Tung Mau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의 도로 위를 수많은 교차로를 통과하면서 줄곧 달렸다. 좌회전, 우회전 없이 쭉 달렸다. 버스 안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눈만 끔뻑이며 우리를 쳐다봤고 영어를 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어봤지만 할 줄 몰랐다. 결국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아내긴 했는데 어디서 내려야 할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나중에 탄 한 청년이 내게 다섯 정거장 후에 내려라 했다. 난 다른 곳을 가리키며 “난 이곳에 간다”고 했더니 그건 훨씬 더 돌아서 오는 것일 뿐, 같은 곳이라 했다. 세종문화회관 간다고 했더니 교보문고에서 내리라는 식인 거다. 그의 친절이 고마웠다. 내려서 택시를 타라고 했는데 일단 내릴 때 보니 거기에 묘역이 있어 그곳에 먼저 갔다. 거기는 Nghia Trang Mai Dich라는 묘역이었는데 국립묘지 같은 느낌이 풍겼고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은 곳 같았다. 묘역 정문을 들어가면 양 옆으로 작은 호수가 인공적으로 조성되어 있고, 거기를 건너면 묘역이 나온다. 점심시간이라서인지 관리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화장실을 잠시 갔는데 모기가 수십 마리가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한 분이 사무실로 오셨다. 그분은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셨지만 우리에게 늑짜를 극진히 대접해서 황송했다. 베트남어판 당 뚜이 쩜 일기를 보여주고, 화보에 있는 그녀의 묘지 사진을 가리켰더니 이곳이 아니라는 손짓을 하시면서 약도를 그려주셨다. 결국 이곳에서 2Km쯤 더 가서 우회전을 하라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라고도 하셨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묘역을 좀 둘러본 다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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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를 잡아타고 택시 기사에게 약도를 보여줬다. 택시는 계속 달렸다. 2Km 보다 훨씬 더 되어 보였다. 한참 후 오른편으로 하노이 공과대학이 나왔다. 달랏에서 달랏대학교 학생 단은 당 뚜이 쩜 묘지를 묻는 우리에게 “하노이 공과대학 근처”라고 했다. 단은 하노이 출신이었다. 단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잘 도착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노이 공과대학에는 큰 빌딩 하나가 건설 중이었지만 다른 건물들은 낡았다. 아니 이 근방이 다 그랬다. 뜨리엠(Tu Liem) 구로 들어오고 나니 도로에 온통 흙먼지가 날렸다. 양 옆으로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하수 시설을 새로 묻는 중인 듯했다. 길가엔 하수관 시멘트관이 즐비했다. 오토바이,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가 엄청났다. 마스크가 필요했다. 길가의 건물들도 모두 공사중이었고 새로 짓는 건물들도 즐비했다. 옛적 한국의 1980년대 초반 같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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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역의 사람들 중 젊은 친구들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중국의 개미족이 생각났다. 도시 주변에 사는 20대 초중반의 빈민 청년들. 이 청년들 중 소위 베트콩 모자처럼 생긴 모자를 쓴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게 하노이 공대의 공식 교모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 택시는 그 길에서 내려 우회전을 했다. 1980년대 한국의 시골길 같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더니 묘역 앞에 세워줬다. 거기는 29번 시내버스의 종점인 듯했다. 정문은 세 개가 있었는데 두 개가 잠겨 있었다. 여기도 공사중이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 사무실 쪽에 가봤더니 사람들이 아직 점심시간인 듯 모여서 휴식을 취하며 놀고 있었다. 모두들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나와 우리를 응접실로 데려갔다. 크고 공들여 만든 나무 의자로 세팅한 응접실이었다. 눈치 없이 당 뚜이 쩜 묘지를 물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는 우리에게 늑짜를 대접하려던 모양이었는데, 내 용건만 앞세운 것이었다. 그는 우리보다 앞서 걸으며 그녀의 묘지로 우리를 안내했다. B2구역에 그녀의 묘가 있었다.
 

- 그녀의 묘는 작았다. 그녀 묘지 옆에도 수많은 젊은 열사들의 묘가 있었다. 스무 살, 열 여덟 살, 열 일곱 살. Liet Si. 열사라는 뜻이다. 묘역을 살피다 보니 열사라는 칭호는 직접적인 투쟁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것 같았다. 독립운동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여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최근에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분들의 묘에는 금성은 새겨져 있어도 Liet Si라는 표시는 없었다.
 

- 당 뚜이 쩜의 묘에는 접시 하나와 이름 모를 꽃이 자라고 있었고 묘에는 그녀의 생몰시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죽은 날짜가 잘못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앞에는 언제 Ngay로부터 이장을 했는지와 죽은 날짜를 정정한 기록이 표시되어 있었다.
 

- 하노이 호치민 묘역의 긴 줄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Tu Liem의 열사 묘역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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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을 나와 하노이 공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숙촌은 아마 우리가 걸어 나온 그 길 안쪽 어느 시골인 듯했다.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베트콩 모자를 쓰고 그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간다. 하노이 공대 앞에서 다시 32번 버스를 탔다. 3,000VND×2명=6,000VND.
 

- Nguyen Thai Hoc 거리에서 내려 문묘 담장을 따라 돌아 들어갔다. 문묘에는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 나온 듯한 베트남 대학생들이 화사한 아오자이를 차려 입고 사진 촬영중이었다. 옛날 문묘의 학생들이 입었음직한 옷을 그 위에 받쳐 입었다. 외국인들은 연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반면 단체 관광 온 한국인들은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을 새긴 돌비석을 받치고 있는 돌거북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수학능력시험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베트남에서는 이 거북 머리를 쓰다듬으면 자식이 공부를 잘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돌거북의 머리는 손때가 묻어 새까맣고 반질반질하다. 며칠 전 KBS 월드를 통해 본 한국의 뉴스에서는 수능을 앞두고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오른 수험생 부모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갓바위 부처의 몸에 동전을 붙이고 있었다. 부처님이 아무리 영험하다 한들, 모든 학생들을 합격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또 부처님이 그런 일을 하려고 이 땅에 오신 건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유교 사원에서 한국인 부모들이 또 자식들을 위해 돌거북을 쓰다듬는다. 종교는 상관 없고 합격 여부만이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외국에 나와서도 자식들을 걱정하고 염려한다. 문묘에서 나와 숙소로 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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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중에 길 행상 한 분이 손톱깎기를 들어 보여준다. 작은 것 하나를 골랐다. 40,000VND이라 해 안 산다고 했다. 얼마를 원하느냐 묻길래 10,000VND을 불렀다. 오케이란다. 4배 값을 불렀다는 얘기다. 어쨌든 냉큼 샀다. 외국에 와 손톱깎기를 한 개씩 사는 전통을 이었다.
 

- 숙소 근처 병원(옛날에는 중학교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1954~2005)으로 쓰는 건물 앞 노점에서 밥 5,000VND과 딤섬처럼 생긴 음식(25,000VND), 그리고 비아 허이(4,000VND)를 먹었다. 그리고선 우리 단골집으로 와 넴과 비아 허이를 마셨다. (22,000VND) 담배도 샀다. 단골집 아줌마는 Saigon 4갑을 50,000VND에 주셨다.
 

- 호텔에 돌아왔더니 온수기가 고쳐져 있었다. 여전히 밖은 시끄러웠다. 방에서 1층 리셉션을 향해 난 구멍 세 군데를 담요, 옷가지로 틀어막고 알루미늄 섀시 문에는 빛을 가리기 위해 수건을 걸어뒀다.
 

- 밤에 KBS WORLD에서 하는 9시 뉴스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문제를 다룬 뉴스를 했다. 금속노조 최병승의 인터뷰가 나왔다.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현장 내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했다. 뉴스를 보기 전에는 조금 졸립기도 했는데 다시 말똥말똥해졌다. 밤 10시까지 잠을 못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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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10:12 2010/12/16 10:12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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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l
    2011/12/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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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콩 모자요? 꼬깔처럼 생긴 것은 농라라고 해서 그냥 전통 삿갓이고요. 군모처럼 챙긴 것은 남부에서는 농꼬이, 북부에서는 무꼬이라고 합니다.. 종이로 만들어졌고요. 칠이 되어 방수는 되나 베고 자면 한 참 후에 찌그러져있습니다. 금방은 찌그러지지 않더군요. 베트남 현용제식 군모입니다. 북부지방에서는 많이 쓰고 다니고요. 학생들이 군사훈련시나 군 입대하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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