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구술녹취문 검독 일을 제안 받은 것은 올해(2011년) 9월 27일이었다.
총 9명의 사람들에 대한 구술녹취문 검독이었다.
중간에 1명이 빠지게 됐는데 구술녹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됐기 때문이었다.
대신 또 다른 1명의 녹취문 검독까지 맡게 되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사람 숫자는 여전히 총9명이었는데 총 구술 시간은 54시간 29분 59초였다.
(그중 4시간 분량은 내 판단에서는 녹취문을 다시 작성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들어
원래는 10월 20일까지 마치는 것으로 약속됐었다.
10월 5일에 검독비 일부가 선입금 되었다. (900,000원)
검독비는 1시간당 40,000원으로 책정되었다 한다.
하지만 2개월 21일 만인 오늘(12월 18일)에 검독을 마쳤다.
어떤 프로젝트였는지는 밝힐 수 없다.
1. 소회
용돈 벌이로 시작했지만,
해방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사에 대한 생생한 공부가 되었다.
듣기로는, 한국 대학의 정치학과에서
한국정치사에 대한 심도 있는 강의는 듣기 어렵다고 한다.
또 한국정치사에 대한 대학 쪽의 연구 역시 일천한 형편이라고 한다.
한국정치사 관련한 책은 오히려
정치인들의 회고록,
그리고 언론인들의 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충실하기로는 언론인들의 책이 충실한 것 같다.
(생각해 보건대, 교수들이 노동운동사를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가 한국정치사에도 있는 것 같다.
내부자(정치가, 노동운동가) 혹은 가까이에 있는 관찰자(기자)가 아니면 디테일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듯.)
언론인들의 책 역시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텐데
남시욱 등과 같은 사람들의 본격 연구서가 그 하나고
조갑제와 같은 이들의 르뽀식 재구성이 그 둘이다.
조갑제의 책들은 이 구술 검독을 하는데 정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재구성이 충실해서 사람 이름, 지명, 사건명, 당명, 조직명, 날짜, 전후 배경 이해 등에 큰 도움을 준다.
(물론, 관점 문제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또 '궁정동 총소리', '남산의 부장들' 류의 정치 비사 책들 역시 큰 도움이 됐다.
가장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네이버 옛날 신문 라이브러리였다.
2. 교훈 : 대학생 - 일천한 배경지식과 꼼꼼함의 결여
예전, 울산 노동운동사 구술녹취록 검독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적도 있지만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대학생들에게 구술녹취록 아르바이트를 맡길 수 없겠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이번 녹취는 대학원생이 맡았다는 후문이 있는데 그렇다면 대학원생 역시 믿을 수가 없다.
배경지식이 없고, 아는 게 거의 없다. 한마디로 역사적 지식이 일천하고 무식하다.
또한, 구술 프로젝트에서 교수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대학의 구술사 프로젝트들은 면담자가 녹취를 푸는 것을 첫째로 치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면담을 담당했던 교수가 검독을 하도록 되어 있다.
내가 검독을 맡았던 이 프로젝트의 경우,
해당 교수들의 검독이 끝난 뒤 넘어온 것들이었는데 과연 검독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처음 녹취문과 내가 고친 녹취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런 것들이다.
수정 전 : 일본의 그 왕실의 시조가 이제 여자. 그 아마달에서 온. 그 히미코라고 하는 그 가공 인물이 있는데 그게 이제 한국에서 건너 왔다.
수정 후 : 일본의 그 왕실의 시조가 이제 여자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그 히미코(卑弥呼)라고 하는 그 가공 인물이 있는데 그게 이제 한국에서 건너 왔다.
수정 전 : 이런데서는 굉장한 그 이 관건 뭐 이 검권 이런 세대들이 막 들어왔을 땝니다.
수정 후 : 이런 데에서는 굉장한 그 이 관권 뭐 이 금권 이런 선거들이 막 치루어졌던...
수정 전 : 당시 유소매 지원으로 부산 영도구 이 동산동 개발 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셨는데요
수정 후 : 당시 유솜(USOM, United States Operation Mission)의 지원으로 부산 영도구 이 동삼동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셨는데요.
수정 전 : 장군이 우리 포위 됐는데 현리 이제 외류포, 그 헝겊으로 만든 외류포 그 경비행기로 이제 그 현리 내려 가지고 우리를 그걸 뚫고 나가도록 장병을 내리고. 경비행기 태우고 그 저 칼빈 버려놓고 날아가더라고.
수정 전 : 장군이 우리 포위됐는데 현리 이제 에르포(L4), 그 헝겊으로 만든 에르포(L4) 그 경비행기로 이제 그 현리에 내려 가지고 우리를 그걸 뚫고 나가도록 작명(作命, 작전명령)을 내리고. 경비행기 타고 그 저 하진부리(下珍富里)로 그냥 날아가더라고.
아무리 팔순 노인네들의 말이라서 잘 안 들린다 하더라도, 이렇게 엉망으로 녹취문을 작성해 놓으면 곤란하다. 일본사, 정치사, 전쟁사에 대한 이해, 한마디로 녹취록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시대에는 네이버와 검색 사이트가 있지 않은가.
더구나 잘못 옮겨 놓은 부분이 그 구술자의 8시간 분량 녹취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적 한마디일 경우에는 정말... 짜증난다.
3. 교훈 : 띄어쓰기 맞춤법을 모르는 대학생과 교수들
녹취록 작성자들이 모르는 것 중 하나는,
구술, 즉 말로 하는 것을 글자로 옮긴다고 해서 들리는 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말을 속사포처럼 빨리 한다고 해서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옮길 수 없는 것처럼
맞춤법, 띄어쓰기를 지키면서, 또 구술을 문자로 옮긴다는 측면을 잘 조화시키면서 녹취록을 작성해야 하는데
들리는 대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그게 참 안 됐어요.
그게 참 안됐어요.
이 둘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띄어쓰기 하나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와 '불쌍하다'의 의미로 나뉜다.
뭐, 자기 일기장이나 수첩에 쓰는 글줄이라면 어떻게 쓰든지 상관없지만,
거액의 예산이 투여된 프로젝트에서 엉망으로 띄어쓰기 맞춤법을 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 거의 석 달을 고생한 소회를 메모해 두고자 했는데,
일단 여기까지만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