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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me Islam

언젠가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난데없이 그 영화에서 감독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뭐 이런 논쟁은 결국 "감독한테 물어봐"로 결론나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 영화에 투영된 마이클 무어의 생각을

한 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

다만 "공포"를 통해 자기 방어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연방 정부와 NRA에 대한 비판만은 확실해 보인다.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적을 찾는 통치 기술은

언제 어디서나 인기를 끌어왔다.

역사상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들과

각종 차별 정책들과

분할과 의도된 편견들.

마녀, 이단, 주술사, 집시, 유대인, 아랍인, 흑인, 타국과 타지역에 대한 증오,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반동 부르주아지, 쁘띠 부르주아와 반혁명분자,

성적 소수자,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까지.

종교재판과 인종청소와 베트남에 뿌려진 수없는 네이팜탄과

매커시즘과 문화 대혁명의 광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과 테러에 대한 공포 속에서

올가미 씌우고 추방하고 배제하며 살육해 왔다.

 

스탠리 큐브릭의 상상대로 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21세기인 현재에도

미국의 무슬림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이며

한국의 무슬림들 역시 지하철 쓰레기통 뚜껑이 닫힘과 동시에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요즘 이 단어를 많이 쓰는데

아주 "편리한" 방식이다.

이들의 가슴에 "테러리스트"라는 명찰을 달아줌으로써

왜 파병을 해야만 했는지

테러리즘의 증오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정부의 파병 정책은 정당했으며

파병 반대는 순진한 낭만주의자들의 운동이었고

동시에 사무실에서 밥이나 축내던 국정원 직원들까지 구제하게 되었다.

 

이미 "북한"이라는 공포에 너무나 익숙해진 한국인들이지만

아랍 테러리스트의 네임밸류는 역시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나 보다.

하긴

할리우드 영화에서

비행기를 납치하고 건물을 폭파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은

적어도 수천명은 나왔을 테니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은 차고도 넘친다.

고깔을 씌우고 목에 팻말만 걸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지후님의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가 '반한활동'을 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와

네오스크럼님의 "반한 이슬람 단체는 없었다" 에 트랙백.



♪ SouthPark OST - Blame Cana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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