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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들먹이는 사람들에게

제목 아래 김치문님이 올린 조 국 / 신동엽 님의 시를 읽고

글쓴이 서른즈음에 글쓴날 2004-08-31 14:57:47


나는 글을 올린 사람이 왜 지금 이런 글을 올렸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를 일고 느끼는 바 있어서 몇자 적어 본다.

이 나라 사람이라면 올림픽 경기때 한국팀이 이기면 누구나 좋아한다. 특히 일본팀을 이기면 그야말로 속이 후련하다. 만약 북한팀이 다른나라와 경기를 하면 북한팀을 응원하고 북한 팀이 이기기를 바란다. 이것이 글을 올린 사람이나 나나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다.
그러면 이것이 조국이고 민족이란 말인가? 이것이 다인가?

1972년 유신이전에는 사실 북한이 더 잘살았다. 단지 잘살고 공업이 더 발전한 정도가 아니라, 일제잔재를 뿌리뽑고, 친일파를 처단하고, 지주의 땅을 몰수하여 소작농을 해방하고, 어디 그뿐이랴? 한쪽은 관동군 대위출신이 친일파 친미파들과 손을 잡고 민중을 억압하는 체제이고, 다른 한쪽은 규모는 어찌됬든 보천보전투를 비롯해서 일본제국주의와 험난한 빨찌산투쟁을 전개하면서 식민지 조선민중에게 희망을 주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이 정도는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기다. 어디 그뿐이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보육, 여성차별 등 온갖 차별로부터의 해방! 그때까지는 북이 단지 남한보다 잘사는 반쪽이 아니라 분명 도덕적으로 우월한 체제였던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났던 수많은 비전향 좌익수들을 보면서(그분들은 지금 대부분 북으로 돌아가셨다), 그분들이 버티고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 가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바로 너희 남한보다 자신들이 세운 체제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그러한 자부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절에 통일을 이야기하고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역사의 진보적인 방향에 합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고, 북이 제 나라 인민도 못 먹여 살려서 탈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비록 그것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체제의 봉쇄와 억압에 기인한다고 하여도, 과거의 도덕성과 정통성만을 가지고 북을 두둔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 극단에서는 반미반제와 통일이 민족의 제일가는 과제라고 주장할 때, 또 한 극단에서는 북을 세습독재를 위하여 우상숭배를 강요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압살하는 변질된 왕조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대신에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억압이 있을 뿐, 심지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하나 없는 사회가 무슨 사회주의냐고 비난한다. 어버이 수령을 얘기하고 친북을 주장하려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시하고 침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설득력있게 북의 체제의 도덕적인 우월성을 설명해야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과제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조국과 민족을 감상적으로만 들먹거려서는 안된다.
제국주의의 최후의 가장 악랄한 단계인 신자유주의세계화에서 절대 다수의 노동자와 민중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고 고통당하고 있을 때,
한마디로 자본의 극악한 억압에 신음하고 있을 때, 노동자와 민중의 편에서 반자본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즉 반자본의 입장이 관철되는 민중적인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민족자본과의 통일전선을 운운하면서, 심지어 남한자본의 축적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 자본이 북의 값싼 노동력과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개성공단의 임금이 50-60불 즉 월 7-8만원으로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북을 세계자본주의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경제협력이란 미명으로 포장된,
그리하여 주한미군철수는커녕 국가보안법폐지도 들어있지 않은 6.15 공동선언이, 남북의 민중에게 무슨 거대한 의미가 있다고 남한 자본은 물론 제국주의 자본까지 박수치고 있는 그런 야합에 무슨 6.15 정신을 계승해야 된다고 난리를 피우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좌파에서는 6.15선언을 남북의 지배계급이 자기 민중을 배반한 야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통일을 얘기하고 민족을 얘기하면서, 통일로 이루려는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지, 통일의 적이 누구인지, 누구를 위한 통일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민족과 조국이란 미명하에 이땅의 민중들의 투쟁에 대해서 침묵하고 물타기하는 행동은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결국 없는 놈이 전장터에 나가서 죽는 것이고, 전쟁이란 제일 먼저 힘없는 여성과 아동을 희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진보세력은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 지배계급을 위해서 민중이 희생된다는 까닭에. 그런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도 조국과 민족이었고,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때에도 조국과 유태인에 대립하는 게르만 민족이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조국과 민족이란 개념은 그 국가내의 계급투쟁을 호도하기 위해 물타기 위해 동원되어온 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강조할 때, 억압받는 민중의 삶과 투쟁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개탄스럽게도 이땅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반미와 통일운동에만 열심일 뿐,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과 남북공조를 강조하다보니 남한 지배계급에 대하여 단호한 적대적인 투쟁적인 자세가 아니라 매양 타협적인 자세가 되는 것은, 지난 탄핵국면 때에도, 민노당이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실천자인 놈현까지 포함하여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열우당까지 한편으로 하고 민중을 다른 한편으로 주장할 때, 민중연대의 집행부들은 내부결의도 없이 한나라당을 한편으로 하고 열우당을 포함한 민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묘한 민족민주통일전선을 실천했던 것이고-시민단체와 전국연합, 한총련 등 모두 이런 입장에 있었다.-,

최근에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단지 부르주아 정부가 제 국민믈 보호하지 못한 데에 대한 불만(이것은 사과하라는 구호로 표현되었다.)과, 파병과 철회의 핵심 결정권자인 놈현과 열우당을 주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의 친미파가 문제라는 둥 놈현은 개혁세력이니 퇴진을 주장해서는 대중이 떨어진다는 둥, 힘없고 착한 놈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요하는 깡패형님 미국(미제도 아닌 미국)놈을 주되게 규탄해야 된다는 둥으로 이상한 전술을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민중에 기반하지 않은 감상적이고 애매한 조국과 민족 그리고 통일을 강조하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로 보는 것이다.

또한 대체로 이런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정돈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즉 대중을 설득시키려거나 비판을 받을 자세가 안돼 있기 때문에 서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금 정리하자면, 감상적인 언사로 조국과 민족과 통일을 얘기하면서, 애매하게 물타기하지 말고 누구를 위한 누구의 힘으로 통일을 할 것이며, 어떤 사회를 이루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 사회는 남과 북의 사회체제와 어떤 점이 다른 것인지(여기에는 현존의 북 체제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글이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적대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서로 솔직한 대화와 토론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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