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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테제와 해설 -평등회의

  • 분류
    자료실
  • 등록일
    2005/03/13 14:31
  • 수정일
    2005/03/13 14:31
  • 글쓴이
    서른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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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테제와 해설 

- 2004. 7. 12.



A. 정세


1.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의 기본 성격)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이라 불리는 우리 시대의 본질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장기적 위기다. 지난 30년 동안 이 위기를 자본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사유화, 노동의 유연화, 자유화 등)이 계속돼 왔지만, 그 결과는 위기의 심화와 확대일 뿐이다. 


(해설)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는 시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흔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1974년의 세계 불황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기본 특징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장기적 위기(고전적인 ‘주기적 위기’ 개념이나 코민테른의 ‘전반적 위기’ 개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의 지속이다. 지난 30년간 이윤율이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에 비해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자본가들은 이 위기를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온존시키는 방향에서 해결하기 위해 항시적 구조조정을 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삼극(미국-일본-서유럽)의 초국적 독점자본은 급격히 금융자본화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각국 자본가 계급은 시장 지배의 확대(사유화)와 노동력 착취의 고도화(노동의 유연화),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위계 구조의 정착(자유화)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는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그것을 더욱 확대․심화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공황의 가능성이라는 어두운 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으며,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균열과 긴장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운동 내에는 이러한 우리 시대의 특징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미 제국주의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보는 경향도 있고,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역사 진화(진보)의 필연적 단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자는 세계화를 둘러싼 국내 자본가와 미국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후자는 자본의 전략들을 긍정하면서 노동계급의 전망을 이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시대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결국 잘못된 실천을 낳고 만다. 


2. (세계 노동계급의 전반적 후퇴와 반격)

지난 30년간 세계 노동계급의 후퇴가 계속되어왔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신우파의 공세에 돌이킬 수 없이 후퇴했고,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은 붕괴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세계 노동계급의 반격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해설)

지난 30년간 세계 노동계급은 지속적인 후퇴를 경험했다. 1970년대에 서유럽의 주류 좌파정당들은 신우파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았다. 전후의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은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89년의 동유럽 붕괴와 91년의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함께 현실사회주의 블록도 몰락했다. 일부 나라에 스탈린주의 체제가 남아 있지만 의식적으로 자본주의로 전화하고 있거나 더 이상 보편적인 진보적 의의를 지닐 수 없는 상태에 있다.

그렇다고 90년대 내내 우리 운동 내에 만연했던 비관주의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계급세력관계는 다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1999년 시애틀 항쟁, 2001년 세계사회포럼의 등장은 새 시대의 여명이 밝아온다는 뚜렷한 조짐을 보여주었다.

부시 정권의 전쟁 드라이브도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구 전역에 걸친 반전운동의 폭발로 전 세계 진보세력의 각성과 부활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3. (현 위기에 대한 이해와 실천적 지향)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보다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지배구조가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지는 체제 위기는 아직 가능성의 차원일 뿐이다. 현 시기에 필요한 실천은 기성 정치구조에 적극 개입하면서 대중운동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동안 붕괴돼온 대중의 역량을 복구하고 궁극적 변혁의 지반을 확보해야 한다.    


(해설)

세계자본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재의 구조적․장기적 위기가 전혀 새로운 질의 위기 국면[체제 위기]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1929년 세계대공황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제국주의 중심부 내의 정치적․군사적 대립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때에는 20세기초 코민테른의 실천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한 보다 분명한 혁명적 노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가능성의 차원일 뿐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현재와 같은 형태의 완만한 위기 국면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이는 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세계 노동계급운동의 부활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다. 그리고 의회민주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조의 불안정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기존 지배구조가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지고 대중적 불신이 폭발하는 국면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실천은 기성 정치구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이를 계기로 대중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동안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에 의해 붕괴돼온 대중의 역량을 복구하고 궁극적 변혁을 실현시킬 지반을 다져야 한다. 

현 국면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결여하게 되면 우리는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실천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계급타협의 가능성에 목을 매다는 잘못(우편향)이나 대중의 성장을 앞질러 과도한 요구와 전망을 내거는 오류(좌편향)를 범할 수 있다.

     

4. (한국 노동계급의 상황)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위기 해결의 주체인 노동계급 자신이 위기의 덫에 빠져 버렸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계급 내의 분열이 계급의 주체적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87년 이후의 노동조합운동의 관성을 유지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던 시도들은 모두 한계에 부딪혔다. 이제 노동조합과 당의 모든 실천은 이러한 노동계급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해설)

한국 사회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급속히 신자유주의 질서에 포섭되어왔다. 그 결과, 재벌 독점자본 내에서 다시 독점이 가속화되었고, 초국적 금융자본이 광범하게 침투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결과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등장한 민주노동조합운동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선도적 투쟁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및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던 메커니즘은 중소기업에 대한 독점 대기업의 수탈 강화(원청-하청 관계의 악화)와, 노동의 유연화로 인한 노동계급 내의 분절 심화(비정규직의 확대)로 붕괴하고 말았다. 이는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에 기반한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재생산과 정당성의 위기를 가져왔다.

결국 한국 사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주체가 노동계급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계급 자신이 위기의 포로가 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 상황은 양적으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안팎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질적으로는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노동계급의 주체적 형성이 벽에 부딪혔다. 

물론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노동운동 내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한편에는 사회적 교섭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산별노조로의 전화와 산별 교섭에 주력하자는 견해도 있었다. 그리고 고용안정을 쟁점으로 한 총파업 투쟁을 통해 80년대 말~90년대 초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의 투쟁 형태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저마다 귀담아 들을만한 구석이 없지 않은 고민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모든 시도들은 기업별 임단협에 시야가 갇혀버린 조합원 대중의 의식과 노동조합운동의 구조․관행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그것을 우회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87년 이후 고착된 노동조합운동의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위의 흐름들 중 어느 것도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새로운 조건에서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을 바꾸고 새로운 실천의 지평을 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모든 실천은 이러한 내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존재 의의 자체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5. (한반도 정세와 노동계급)

한반도 정세는 어떤 방식으로든 북핵위기가 타결된 ‘이후’가 더 문제다. 지체된 과제의 해결은 잠복되어 있던 모순들의 폭발을 낳을 것이다. 남한의 좌파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내성(耐性)을 확보해 놓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으로는 북한 스탈린주의의 모순에 대해 명확히 비판하고 그 변화에 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 과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해설)

전 세계에서도 위기와 기회가 가장 극적으로 중첩된 곳이 바로 동아시아다. 거대한 중국시장과 일본의 여전한 경제적 잠재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는 자본 축적의 마지막 약속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동아시아 각국의 긴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러시아 대 미국․일본의 대립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 한반도가 놓여 있다.

미국의 대북 포위 전략과 북한의 폐쇄적 생존 전략, 그리고 남한 정부의 대미 종속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위기를 지속시키는 3박자를 이뤄왔다. 2000년의 6․15 회담은 이 사슬의 한 고리를 끊는 역할을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 회담은 미국 대선 결과와 맞물려 또 다른 중요한 계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전략이 바뀌고 북한이 세계자본주의에 자신을 일정하게 개방하며 노무현 정부가 햇볕 정책을 본격적으로 재개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체된 과제의 해결은 잠복되어 있던 모순의 예기치 않은 폭발을 낳을 것이다.

우선 중국과 미국 사이의 직접적 대결이라는 보다 심각한 정세가 등장할 것이다. 열강간의 국제적 대립․갈등이 국내정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상황이 빠른 속도로 등장할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도 국제적 행위 능력을 지니지 못하면 국내정치에서조차 주도적 변수로 작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의 초(超)스탈린주의적 정치체제가 어떠한 변화에 대해서도 적응력이 없음이 드러날 것이다. 중국, 베트남과는 달리 북한은 오랫동안 집단지도체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한때 다른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북한 국가기구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였던 세습통치는 사실은 위기를 지체시키고 더욱 첨예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완만한 개혁을 추진하든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지든 북한의 정치 위기는 피할 수 없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북한이 동독과는 달리 자체 주권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의 연방제를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내부의 변화가 곧바로 남한 사회에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이미 탈북 사태가 심상치 않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서독보다 훨씬 불안정한 남한 사회에서 남북 주민들간의 대규모 직접 접촉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이런 파국적 형태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남북 경제협력은 남한 노동시장에 커다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건설적 대안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남한의 좌파는 한반도의 격변에 대비해 내성(耐性)을 확보해야만 한다. 북한의 스탈린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한반도 전체의 변혁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스탈린주의와 단절하지 못한 부분(주체사상파)과의 논쟁은 피할 수 없다. 하루빨리 이러한 부분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거의 NL-PD 논쟁 과정에서 소위 PD 진영이 보여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무지와 기권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선 안 된다. 오히려 이제까지와는 달리 남한의 노동계급이 한반도 평화 정착의 주역으로 나서야 하며, 통일 과정에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적극 개입해야 한다. 북한의 민주화와 주권 보장이 함께 이뤄져야 하며 통일 과정이 동아시아의 진보적 질서 재편의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남한 노동자 대중의 신념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6. (제도정치 지형과 노동계급)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유주의 정권의 ‘진보적’ 의의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합의가 존재하며, 두 당은 다만 누가 그것의 더 강력한 집행자가 될 수 있을지를 놓고 경쟁할 뿐이다. 전선은 보수세력 전체와 노동자 민중운동 사이에 있다.


(해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두 차례의 거대한 대중 동원(2002년의 국민경선, 2004년의 탄핵반대운동)에 기반해 등장하고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민족부르주아지와의 연대를 상정하는 민족해방혁명론이든, 자유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희망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든)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의 ‘개혁’ 연합을 기대하던 세력들에게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현실의 쓴맛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도 자유주의 세력의 ‘진보적’ 역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합의가 존재한다. 다만 두 당은 이 정책 지향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할 뿐이다. 탄핵정국과 4․15 총선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내부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에 두 당 사이의 거리는 더욱더 좁혀졌다. 

이 점에서 열린우리당은 좀 더 소부르주아 지향적이고 한나라당은 대자본 중심적이라고 말하거나 열린우리당은 좀 더 해외 금융자본 편향적이고 한나라당은 국내 재벌 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견해다. 각 자본 분파는 정치적으로 확연히 분립하기보다는 여전히 두 보수정당 및 그 내부의 파벌들과 자유로운 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만약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현대적 보수정당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2007년 대통령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의 권력재편기와 마찬가지로 대권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고 정계개편과 내각제 개헌 가능성이 다시금 대두할 것이다.

즉,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두 보수정당 중 어느 하나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합의에 기반한 부르주아 정치블록 전체가 그 대상이다.


7. (민주노동당의 상황)

민주노동당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좌파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당은 노동계급의 위기를 내부에 반영하고 있다. 당이 집권과 변혁의 무기로 더욱 발전할 수 있으려면 이를 의식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설)

민주노동당은 1996․97년 총파업의 산물로 탄생했다. 이 점이 민주노동당을 상당한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96․97 총파업이 87년에 시작된 민주노조 역량이 총결집한 산물이었던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조운동 제1세대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총파업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급속하게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굴복했던 상황이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이후의 발전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당 활동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가 소수의 선진노동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 노동계급의 거대한 대중투쟁과 결합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 그래서 당내에서 노동계급적․사회주의적 세력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지난 4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현재의 18% 지지율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더욱 폭발적인 성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민주화의 일정한 성취와 자유화의 급진전으로 인해 기존 부르주아 정치 세력들이 지속적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얻은 반사 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전체 노동자의 11%에 그치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15% 안팎의 당 지지율 사이의 격차, 이것은 당의 양적 성장으로 해결되지 않는 당 혁신과 발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준다.

      

B. 지향


8. (출발점: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근본주의인 사회주의를 복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비극과 오류를 극복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그 출발점을 훌륭히 서술하고 있다.


(해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가들의 근본주의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근본주의에 대항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그 정도의 무기가 필요하다. 즉, 노동계급의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엄성․평등․연대의 정신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 사회를 건설하려던 지난 두 세기의 전통, 즉 사회주의다.  

다만 이 때 ‘사회주의’는 우리 시대에 맞게 재구성된 것이어야 하며,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비극과 오점들을 의식적으로 극복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중단 없는 개혁을 성취하지 못하고 신우파의 공세에 굴복하고 말았는가? 왜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나라들은 수많은 비극을 낳은 채 내부 모순으로 붕괴하고 말았는가? 21세기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이러한 시대 정신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중략)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중략)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민주노동당 강령(특히 그 「전문」)을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훌륭한 출발점으로 여긴다. 강령의 정신을 죽은 문구로 만들지 않고 당의 모든 실천에 살아 숨쉬게 만들어야 할 책무가 당내 사회주의자들에게 있다. 


9.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의 변증법)

좌파정치의 오랜 숙제는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의 결합 문제다. 부르주아 정치제도가 성숙할수록 둘 사이의 괴리는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과거의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혁명과 개혁, 대중운동과 제도정치의 이분법을 극복해나가는 게 일생일대의 과제다. 


(해설)

지난 150년간 좌파정치의 근본 문제는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였다. 특히 제도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중정당일수록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전자보다는 후자에 매몰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혁명적 선전․선동에 집중한다고 해서 실제 변혁의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딜레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에서 한 마디도 더하거나 뺄 게 없다. “대다수 민중을 모든 기존 질서를 초월하는 목표와 결합시키는 것, 일상적인 투쟁을 위대한 세계 개혁과 결합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큰 문제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분명 그 발전의 전체 과정에서 두 개의 난관 사이를, 즉 대중적 성격을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 이단적 분파로 떨어지는 것과 부르주아 개혁 운동으로 변하는 것 사이를, 또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ꡔ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ꡕ에서).

민주노동당 강령에도 다른 좌파정당 강령과 마찬가지로 궁극 목표(최대강령)와 당면 과제(최소강령)가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제도정치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전자는 사문화되고 후자가 당의 모든 것을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 내 일부는 이것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민주노동당 바깥에 머물러 있는 자칭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을 통째로 부정한다. 그러나 둘 다 이러한 괴리를 하나의 숙명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다만 한 쪽은 그 숙명을 즐거이 받아들이고, 다른 한 쪽은 그 숙명이 미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찾을 뿐이다.

반면 민주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은 이 난제에 솔직하고 진지하게 도전한다. 우리의 길에는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의 예고된 진창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한다. 바로 이 점이 당 안에서 활동하길 선택한 사회주의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회주의자들과 구별되는 핵심적 차이다.  


10. (궁극 목표와 그 핵심 내용)

궁극 목표는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실천에서 행동 원칙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궁극 목표의 핵심 내용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민주화다. 


(해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궁극 목표가 결코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궁극 목표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행동 원칙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 목표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넘어가자. 일당독재, 중앙집권형 계획경제(사실상 명령경제) 등 과거 스탈린주의의 사회주의상을 극복하려면 이러한 확인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폭발이다. 즉, 대중의 참여와 자치가 활짝 꽃피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부터 파리 코뮌, 1차 대전 후의 평의회들, 1970~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경험을 비롯해서 모든 혁명의 경험들은 이를 입증해준다.

둘째는 민주주의가 경제 영역, 즉 자본주의의 핵심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노동자 자주관리, 경제의 계획성 확대는 바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체제 위기가 닥친다고 해서 저절로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할 주체들이 형성되고, 그들의 능력이 축적되고, 그 진지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자본주의 내의 대중정치․대중운동에서부터 위의 과제들이 제한적인 수준에서라도 실천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상활동에서 대중의 능동화가 핵심 목표로 요구되어야 하며, 자본주의의 지평을 뛰어넘는 과감한 시도들이 반복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일체의 최소강령주의와 단계론적 변혁이론에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들은 모두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대중운동과 제도정치의 이원화에 굴복하고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흔히 ‘사회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나타나는 최소강령주의는 궁극 목표를 먼 미래의 추상적 이상으로 놔둔다. 그렇기 때문에 당면 실천은 그것에 대한 고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실용적인 무엇이 되고 만다.

스탈린주의(한국에서는 주체사상파가 그 대표적 계승자다)의 단계론적 변혁이론은 그 나름대로 궁극 목표에 대한 선전 작업을 중단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강령주의보다는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단계’라고 표현되는 당면 과제가 ‘2단계’의 궁극 목표와 기계적으로 구분된다고 보고, 후자의 과제를 전자의 시기에 요구하는 것은 ‘좌편향’이라고 비난하기 때문에, 사실상 최소강령주의와 동일한 실천적 결론에 도달한다. 주체사상파가 소위 ‘진보적(혹은 자주적) 민주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그것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고집스럽게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 (일상 활동의 원칙: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

현 시기에 우리의 일상 활동은 결국 개혁 투쟁이다. 그러나 이는 개혁을 위한 개혁, 즉 개혁주의적 개혁이어선 안 된다. 우리는 변혁의 주체를 성장시키는 개혁, 즉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을 추구해야 한다.


(해설)

급격한 위기의 시기가 아닌 일상적 시기에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수단은 개혁 투쟁이다. 현 국면(구조적 위기의 한 단계)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의 일상적 과제는 개혁 투쟁이다. 이를 거부하고 회피한다면 선전주의적 종파 집단에 머물 수 있을 뿐 노동계급의 대중정치․대중운동을 이룰 수는 없다.

문제는 개혁 투쟁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개혁 투쟁을 추진할 것인가 이다. 그것은 개혁을 위한 개혁, 즉 개혁주의(개량주의)로 전락할 수도 있고, 변혁의 주체를 성장시키는 개혁, 즉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후자, 즉 비개혁주의(비개량주의)적 개혁 혹은 구조적․급진적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정치의 틀을 통해 어떠한 입법안을 통과시킬 것인가 자체보다도 이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를 얼마나 북돋고 대중운동을 어느 정도나 성장시키며 최종적으로 대중의 의식적․조직적 역량을 어디까지 향상시키는가 이다. 이러한 개혁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궁극 목표를 실현할 노동자․민중의 주체적 역량이 형성될 수 있으며 변혁이 현실 일정에 오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찍이 ꡔ선언ꡕ은 “투쟁의 핵심은 그 전과(戰果)가 아니라 단결의 확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올바른 개혁 투쟁은 “노동자 계급의 인식과 의식을 사회화”(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조직”)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개혁은 되도록 자본주의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제도적 맹아를 의식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둘째,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집단적 역량이 확연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어떤 수준의 개혁이든 보다 높은 수준의 개혁으로 연속 발전되어야 한다.

넷째, 개혁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힘에 기반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은 당의 일상 활동에서 이러한 원칙들을 추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를 통해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을 실현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12. (제도정치와 대중운동의 변증법)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성숙한 조건에서는 대중운동과 제도정치를 서로 결합시켜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둘을 결합시킬 것인가는 전적으로, 어떻게 해야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적․조직적 성장이라는 목표를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해설)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 좌파 대중정치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제도정치에 참여하고 그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노동자 정치세력이 제도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계급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숙제를 풀기 위한 수단이며 통로였다.

그러나 제도정치에 일단 진출하고 나면 의회주의의 덫을 결코 쉽게 피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좌파정당의 기반인 대중운동을 제도정치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고, 궁극 목표의 포기로 귀결된다. 대중의 능동화는 이뤄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계속 부르주아 정치의 좁은 영역 안에 갇힌다. 이것은 부르주아 정치의 중력의 법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법칙을 거스르면서 좌파 대중정치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참으로 치열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은 당이 항상 대중의 성장을 중심에 놓고 대중운동과 제도정치를 서로 결합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결합 방식은 구체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원내 활동과 대중적 선전․선동의 결합이 있다. 쟁점의 선도를 통해서든 입법 활동을 통해서든 그 성과가 결국 대중운동의 발전으로 귀결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방자치 수준에서라도 제한적으로 행정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와 같은 민중 참여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첨예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정치 총파업 전술 등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과연 이러한 과제를 우리의 조건 속에서 창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과연 노동자․민중의 무기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13. (국민국가와 지역․세계의 변증법)

자본주의의 축적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계급투쟁은 항상 국민국가 수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그 틀을 넘어 지역적․세계적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좌파 정치세력의 과제다.


(해설)

자본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따라서 세계적 차원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곧바로 실천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민국가야말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전략적 행위자이며 가장 유효한 투쟁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일부 국민국가를 해체시킨다고는 하지만, 세계화의 배후에는 여전히 제국주의 3극의 국민국가들, 그리고 이에 포섭된 국민국가들이 있다. 지역화(유럽통합 등)의 핵심 추동자도 바로 국민국가다. 지역화나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힘이 다른 무엇에게로 이전되는 형태가 아니라 국민국가들 사이의 특정한 교류와 동맹이라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비록 초국적 자본을 말하기는 하지만, 부르주아지 전체가 그런 식으로 재편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는 해도 전체 부르주아 계급의 동의 없이 자본주의가 지탱할 수는 없다. 지배계급 내 여러 분파들 사이의 타협을 위해서는 역시 국민국가가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지배계급 내부의 타협 못지 않게 지배계급과 노동자․민중 세력 사이의 타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의 전략은 과거 형태의 타협을 붕괴시킬 따름이지 타협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배세력과 민중들 사이의 타협이 시도되는 장은 역시 국민국가다.

하지만 변혁 세력은 국민국가 수준에서 출발하여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항상 국민국가를 넘어선 수준, 즉 지역(유럽, 동아시아 등등)과 세계의 수준을 고민하고 그 수준에서 행위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마치 20세기초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국제연대는 국내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가 새삼 주목해야 할 것은 지역의 차원이다. EU, NAFTA에 이어 라틴아메리카 블록, 동아시아 블록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지역경제블록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3극의 이해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남남(南南)연대에 따른 3극 지배 체제의 균열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고, 지역 수준의 교류 증대에 따라 노동자․민중운동의 국제적 대응력 이 증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EU를 무대로 한 유럽 사회운동의 대응력이 다른 대륙의 경우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안사회를 고민하는 관점에서도 지역이라는 차원은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성숙은 항상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면서 동시에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차원에서 대안사회 건설의 능력들을 고취시킨다. 일국적 시장을 넘어서면서 전 세계적 시장보다는 안정되어 있는 지역적 시장의 등장은 단순히 시장의 힘이 강화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지역적 차원의 경제계획 가능성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시장의 힘과, 이를 통제할 사회적 능력은 서로 네거티브 섬 관계(한 쪽이 증대하면 다른 한 쪽은 수축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예를 들어 지역 경제권의 등장은 지역적 차원의 산업별 교섭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은 ‘동아시아’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동아시아 경제 중심 국가 혹은 중화 경제권 형성이라는 자본주의의 전략에 부화뇌동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사회권 연대’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운동은 중국에서 민주노동조합운동이 등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와 적극 연대해야 한다.


14.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의 극복 과정)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상당한 시간에 걸쳐 여러 나라에서 혁명과 개혁, 봉기와 위기가 분출하고 서로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격퇴될 것이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정착된 세계자본주의 중심부와 일부 반주변부에서는 개혁적 좌파 정부와 기득권 세력 사이의 대결이 대중의 각성을 낳아 개혁을 가속화시키거나 전혀 새로운 국면을 여는 과정이 나타날 것이다.  


(해설)

지금 이 시점에서 미래의 세계 변혁이 어떻게 이뤄질지 전망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하지만 20세기초에 전 세계적 계급투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돌이켜보면 그 기본 양상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아마도 수십 년에 걸쳐 위기의 폭발과 상대적 안정기가 반복될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진지한 개혁적 좌파 정권이 선거상의 승리와 대중운동의 결합을 통해 등장할 것이고, 어떤 곳에서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시도가 지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대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은 전혀 다른 역사적 국면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된 중심부와 일부 반주변부에서는 개혁적 좌파 정권의 등장이 대중의 기대를 높이고 대중운동을 폭발시키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공세적 상황을 낳게 될 것이다. 기득권 세력과 좌파 정권․대중운동의 대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이며 대규모적인 대중적 각성의 계기가 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구조적․급진적 개혁 과제를 제기하는 대중적 좌파 정치세력, 즉 좌파 대중정당이 있어야 한다.

둘째, 좌파 대중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운동․사회운동이 성장해 있어야 한다.

셋째, 제국주의적 간섭에 대항해 활동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역적․세계적 수준에서 연대할 파트너들을 확보해야 한다.    


C. 정치노선


15. (기본 정치노선)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의 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분배 문제와 전쟁 위협을 쟁점으로 구조적․급진적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사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대중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해설)

앞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당과 노동조합․사회운동은 구조적․급진적 개혁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 구조적․급진적 개혁의 핵심 목표는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주의․제국주의를 궁극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극복을 위한 제도적 진지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제국주의를 극복할 주체들, 즉 계급적 연대의식과 반전평화의 정신으로 뭉친 진보적 대중을 형성하는 것이다.

의석을 늘리고 지자체를 장악하고 대통령 선거 득표율을 늘리는 것도 다 이러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역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활동도 위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에서 짜들어가야 한다.

현재 개혁 투쟁의 핵심 쟁점은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분배 문제와 전쟁 위협이다.

우선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조가 도입됨으로써 더욱 심화되고 있는 빈곤의 문제와 대결해야 한다.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늘려야 하고, 교육․주거․의료․보육․연금 등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빈곤을 낳는 주원인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대기업 간의 불평등 관계와 노동의 유연화를 정면 공격하고, 최저임금을 비롯해 근로 소득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분배 개혁 요구는 빈곤 문제의 긴급 처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지닌다. 

첫째, 기업에 갇혀 있던 노동자 대중의 의식을 다시 사회 전체를 향해 열어놓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실천을 이끌어내고, 계급적 연대의 전통을 새롭게 다질 수 있다.

둘째, 사회복지의 확장을 통해 공공부문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 내에서 탈자본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실현하는 진지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분배 문제와의 대결은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과 공격으로 발전할 수 있다. 투자 부족과 내수 부진을 낳고 있는 금융투기자본과 수출부문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뜯어고쳐야 하고 그러자면 국가의 적극적 역할과 노동운동․사회운동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넷째, 분배를 쟁점으로 한 개혁 투쟁은 다른 중요한 투쟁들과 연결될 수 있다. 브라질의 참여예산제에서 나타난 것처럼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를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민중 권력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반전 선동 역시 복지 확대 요구와 만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빈곤을 없애기 위한 전쟁’만큼이나 시급한 것은 ‘전쟁을 없애기 위한 전쟁’이다. 이라크 침략 전쟁과 한반도 전쟁 위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 공세에 대항해 반제반전평화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 또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한 군축을 위한 대중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당면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사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일단 당과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사회복지를 확대시키는 경험을 하게 되면, 대중들은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금 집단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나설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대중들 사이에서 ‘역사적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감히 행동의 첫 발자국을 떼는 것, 그것이다. 


16. (민주노동당의 혁신)

민주노동당이 의회정당․선거정당이 아니라 노동계급 형성에 복무하는 운동정당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해설)

선거에 참여한다고 해서, 의회에 의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의회정당․선거정당은 아니다. 선거 참여와 의석 확보가 대중의 역량을 아래로부터 다지는 과정과 동떨어져서 노동계급의 주체적 형성을 위한 무기로 활용되지 못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이런 의미의 의회정당․선거정당으로 고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총선으로 연달아 이어지는 선거들에서 당이 점진적으로 진지를 확대해 가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대중운동의 발전과 서로 교호하는 역동적 목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과제들이 종속되어야 할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표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당의 발전 경로는 전혀 달라진다.

우선 의회정당․선거정당의 길이 있다. 2008년 총선에서 의석 수를 급신장하는 데 매몰되는 발전 경로가 그것이다. 만약 17대 국회 임기 중에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소선거구 지역구에서 약진하지 않는 한 이런 결과를 낳기 힘들다. 이 때 당은 지역구에서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전국적 정치 실천과 단절된 채 선거구 수준의 지역 활동에 매몰될 수도 있다. 한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지망자들 사이의 이전투구가 당 활동을 좌지우지하게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의회정당은 곧 대권 야심가들의 권력 게임으로 나타나는데, 민주노동당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운동정당의 길이 있다. 단기적으로 원내 의석 신장에 한계가 있더라도 계급정치의 형성에 더 강조점을 두는 발전 경로가 그것이다. 이 경우 당은 17대 국회 활동을 대중운동과 결합된 범민중 캠페인 형태로 짜들어가고 지방선거도 그 연장선에서 준비하며 그 클라이맥스가 2007년 대선이 되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총파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대중운동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대중의 참여를 통해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는 ‘역사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게 핵심이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18대 국회에서 당이 확보할 의석 수를 능가하는 당 기층 토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운동정당의 길이며, 당내에서 이를 실현시킬 주체다.  


17. (노동조합운동의 혁신)

노동조합운동이 노동계급의 균열과 해체 경향에 맞서서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고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해설)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이 사회운동적 의의(보편적 이해의 대변, 대중의 적극적 참여)를 지니던 상황은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별 노동조합은 한국의 노동운동이 일본형 실리주의로 재편되도록 강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을 하루빨리 산업별 노동조합 형태로 재편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긴급한 과제다. 노무현 정권 임기 내에 금속과 공공을 양대 축으로 해서 산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산별 전환을 주로 조직론 차원에서만 고민하는 것은 잘못이다. 산별 전환의 핵심은 조직 형식 자체보다도 이를 통한 노동계급 연대의 확대․심화에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을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그에 걸맞게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과 일상을 바꾸는 시도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이 가졌던 ‘사회운동성’(좁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관심 범위, 현장 대중의 적극적 참여)을 이제는 의식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별 임단협의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쟁점들을 제기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 기업별 임단투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실천 양태를 만들어가야 한다.

첫째, 비정규직․중소기업․이주 노동자들의 쟁점을 제기하고 이를 통해 ‘계급’대중운동을 복구해야 한다. 

둘째, 기업별 임금 투쟁을 사회임금 확보 투쟁으로 전환시킬 사회공공성 확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셋째,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차원, 국민경제 차원, 더 나아가 지역경제와 세계경제 차원에서 자본 축적 과정에 개입하고 우리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남북한의 경제협력과 통일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

다섯째, 반전평화․환경․여성 등의 과제를 노동계급이 주도해야 한다.

이러한 쟁점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 높은 수준의 정치적 대중투쟁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제도정치 진출은, 만약 운동정당 노선에 따라 적절히 활용되기만 한다면, 선전․선동과 조직화에 새로운 장을 여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전망을 갖고 각자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노동운동 내 주체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18. (사회운동의 혁신)

여성, 환경, 소수자의 권리 등을 둘러싼 사회운동들을 발전시키고 당과 노동조합운동․사회운동 사이의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해설)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 외에도 여성운동․환경운동 등 다양한 급진적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게 60년대 이후 서구 좌파가 얻은 교훈이다. 이제 이는 북반구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오히려 남반구에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공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들 영역이 중간층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성운동․환경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치부되면서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지반으로 방치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대중이 여성․환경 등의 쟁점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대안을 추구할 계기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여성, 환경, 소수자(장애인, 성적 소수자)의 권리 등을 쟁점으로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일궈야 한다. 그리고 당과 노동조합운동이 이들 사회운동의 과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도록 내부를 혁신해야 한다.

농민운동, 학생운동과 같은 전통적 대중운동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생태환경 보호나 다양한 공동체적 생활 양식의 형성 같은 새로운 쟁점들을 통해 자기 혁신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적․사회주의적 가치에 뿌리 박으면서도 새로운 사회운동들에 대해 개방적이면서 전향적인 태도를 지니는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19. (그룹의 필요성)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조운동․사회운동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노동당 내 대중활동가들의 조직, 즉 실천 네트워크와 토론의 장 역할을 할 조직이 필요하다.


(해설)

누가 결집해야 하는가? 어떠한 경향이 확대되어야 하는가? 어떤 세력이 당을 짊어져야 하는가? 한 마디로 당의 영혼을 지키고 그것을 육화(肉化)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당의 영혼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민중 권력을 구축하며 민주․평등․해방의 대안 사회를 건설한다는 당 강령의 기본 정신이다. 그 당 강령 정신을 다른 누구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활동을 이 전망 아래서 바라보고 추진하는 동지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주의자’란 무슨 이념가나 직업적 활동가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고민과 지향을 지닌 모든 당원 동지들이다.

이제까지 민주노동당 내에서 사회주의 지향을 지닌 당원들은 이미 특정한 정파 형태로 당에 결합한 경우(평등연대, 다함께)가 아니면 주로 지역 수준에서 느슨한 모임을 가지며 활동하거나 아니면 아예 당원 개인으로 활동했다. 한편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활동가․선진노동자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주로 노조 내의 선거 경쟁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당의 사회주의적 성격 강화와 노동계급정당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활동과 분발, 연대가 필요하다.

시급히 민주노동당 내 사회주의자 그룹(이하 ‘그룹’)을 건설해야 한다. 이 그룹은 소수 활동가의 음모적인 비밀 결사가 아니라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선진대중의 조직이어야 한다. 그리고 당권을 좇는 인사 파벌이 아니라 이상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이념 조직이어야 한다. 또한 당을 숙주로 활용하는 당내 당 혹은 외부 세력의 프랙션이 아니라 당내 의견그룹이어야 한다.


20. (그룹의 기본 과제)

그룹은 당의 노동계급적․사회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당 강령의 사회주의 지향을 더욱 발전시키고, 당의 모든 활동에 참여․개입하며 대안을 제출하고, 자신의 활동 현장에서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해설)

우리는 다음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첫째, 당 강령의 사회주의 정신을 확산․발전시켜야 한다. 사회주의 지향의 당원들을 결집하고, 그 이념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선전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극복과 대안 사회의 건설 방안을 앞장서서 연구하고 다듬어야 한다. 당의 모든 활동을 그 전망 아래서 해석하고 평가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회원들은 1년에 1회 이상의 정치교육을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당운동에 대한 노동계급의 결합을 강화해야 한다. 선진노동자들이 더 이상 노동조합의 임단협에만 매몰되지 않고 폭넓은 정치․사회운동에 결합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현장 단위로까지 일상적으로 정치 선전 지침을 유포한다. 최소한 1주에서 2주 단위로 선전 지침을 공유하고 그것을 주위의 대중에게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지침에 대해서는 전 조직적인 평가 작업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원단의 활동과 노동 현장의 관심을 서로 연결하는 데 당내 그 어느 부분보다 앞장서야 한다. 또한 보다 많은 노동자 당원들이 지역 차원의 정치활동․사회운동에 결합하고 열성 당원, 더 나아가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당 혁신의 기관차가 되어야 한다.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당을 대안 사회의 실험장으로 만드는 것은 한 두 번의 시도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해 새로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도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집권 이후까지도 당 혁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사회주의자들만의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가 이에 앞장서야 한다.


21. (그룹과 제 정파․경향 사이의 관계)

그룹은 의회주의․개혁주의를 경계하고, 낡은 스탈린주의 전통의 한국판인 주체사상을 비판한다.


(해설)

사회주의 내에는 다양한 유파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대안사회상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시장사회주의, 참여계획 등). 우리는 공동의 실천을 벌이면서 또한 서로간에 의견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동당에 존재하는, 혹은 대두하고 있는 위험한 경향들에 대해서는 치열한 경계와 극복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첫째는 의회주의․개혁주의 경향이다. 사실 이제까지 민주노동당 안에는 본격적인 의회주의․개혁주의 그룹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이 제도정치에 진출하고 그 폭이 넓어지면 질수록 그러한 성향이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비판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은 쉽게 부르주아 정치의 부속물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 이는 이 말을 사용하는 쪽에서나 비판하는 쪽에서나 많은 혼란과 오해를 낳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는 아니다. 당내에서는 주로 유럽 주류 좌파정당들의 노선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데, 이들 정당 내에는 의회주의․개혁주의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또한 이를 비판하고 넘어서려는 경향도 존재한다. 역으로 이들의 왼쪽에 있다는 공산당 내에도 의회주의․개혁주의 경향이 나타나곤 했다. 따라서 우리의 맥락에서 정확한 용어는 ‘사회민주주의’보다는 ‘의회주의․개혁주의’다.) 

둘째는 주체사상파다. 혹자는 주체사상파를 민족주의자들이라 칭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이들은 스탈린주의의 계승자들이다. 스탈린주의의 일국사회주의상(일당독재, 명령경제 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다만 그것의 동아시아적 형태로서 민족적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외양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주의 대 사회주의’의 구도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구도를 통해 이들과 경쟁하고 극복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동당에서는 특히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첫째 이들이 당을 자신들의 전략적 목적에 종속시킨다는 분명한 목표(소위 9월 테제) 아래서 당내 다양한 경향들 사이의 공존을 부정하는 종파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에 대한 이들의 무비판적 태도가 한반도의 격변에 대한 당의 무방비 상황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들의 변혁론에서 여전히 친6․15 세력과의 연대라는 형태로 민족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이라는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보수정당들 중 일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가능성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회주의․개혁주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당의 전반적인 우경화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세력들과의 경쟁과 대립은 결코 기존의 정파적 갈등의 연장선에서 이뤄져선 안 된다. 2004년 당직 선거는 그 마지막 장면이어야 한다. 이제는 당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즉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D. 조직노선


22. (그룹의 가입 원칙)

그룹은 당 활동의 각 현장에서 실천하는 대중활동가들(선진노동자, 열성당원)의 개인 가입을 원칙으로 한다. 각 회원은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과 노동 현장에 따라 권역별로 편제되어 활동한다.


23. (그룹의 운영 원칙)

그룹은 민주적 운영을 원칙으로 하며, 공개적으로 활동한다. 그룹은 민주노동당이 당 안에서 대안 사회의 기본 원리(당내 토론 민주주의의 활성화 등)를 실현하도록 만드는 데 앞장선다.

24. (그룹의 연대 원칙)

그룹은 기존 정파 구도와 상관없이 민주노동당에 참여하는 노동조합운동․사회운동 내의 모든 사회주의 지향 세력들에 문호를 개방한다. 그룹은 민주노동당에 참여하지 않는 사회주의 세력들과도 공동전선을 형성하며 연대․협력한다. 


25. (그룹의 조직 건설 과제)

그룹은 당내에서 사회주의 이념․정책의 발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우선 정책연구 단위(연구소)의 설립에 착수한다. 그리고 선전․선동의 지침이 일상적으로 신속하게 회람․유포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강구한다(기관지 등).


26. (그룹의 당면 실천 과제)

그룹은 당면 실천 과제로 특히 다음의 과제들에 주목한다.

① 제도정치와 대중운동의 결합이라는 추상적 원칙만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의원단 활동과 현장 활동을 결합시킬 구체적 쟁점들을 발굴해 이를 선도한다. 

② 노동조합의 정치적․사회적 실천을 위해 필요한 선전․선동과 조직화 작업을 추진한다.

③ 지방자치선거 대응 등 주요 당활동에 대해 사회주의적․노동계급적 방향에서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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