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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 기본노선(테제)과 해설

  • 분류
    자료실
  • 등록일
    2005/03/13 14:34
  • 수정일
    2005/03/13 14:34
  • 글쓴이
    서른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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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

기본노선(테제)과 해설
- 2004. 12. 18


A. 지향

1. 출발점 :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

자본주의와 전쟁, 생태적 재앙 등 우리 시대의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삶이 출발하는 가치이자 궁극적 지향으로서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복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비극과 오류를 극복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그 출발점을 훌륭히 서술하고 있다.

(해설) 우리 시대의 문제들, 즉 세계 자본주의의 만성적·구조적 불황과 자본간 경쟁 격화; 이로 인한 착취·억압의 증대; 제국주의적 지배의 확장과 항시적 전쟁 위협; 미구에 닥칠 생태적 재앙의 가능성 등은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의 복구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은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해방운동의 무기로서, 인간 존엄성·평등·연대의 정신을 확산시켜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 때 '사회주의'는 우리 시대에 맞게 재구성된 것이어야 하며,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비극과 오점들을 의식적으로 극복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중단 없는 개혁을 지속하지 못하고 신우파의 공세에 굴복하고 말았는가? 왜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나라들은 수많은 비극을 낳은 채 내부 모순으로 붕괴하고 말았는가? 21세기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이러한 시대 정신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중략)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중략)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민주노동당 강령(특히 그 [전문])을 현 단계에서 우리 운동의 훌륭한 출발점으로 여긴다. 강령의 정신을 죽은 문구로 만들지 않고 당의 모든 실천에 살아 숨쉬게 만들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2.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의 변증법

 

우리의 일상 실천은 항상 궁극 목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부르주아 정치제도가 성숙하면 할수록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이 서로 괴리되기 쉽다는 게 이제까지 세계 진보정치의 교훈이었다.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혁명과 개혁, 대중운동과 제도정치의 이분법을 극복해나가는 것은 과거의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핵심적인 과제다. 


(해설) 지난 150년 간 세계 진보정치운동의 근본 문제는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이었다. 특히 제도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중정당일수록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전자보다는 후자에 매몰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혁명적 선전·선동에 집중한다고 해서 실제적인 변혁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딜레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에서 한 마디도 더하거나 뺄 게 없다. "대다수 민중을 모든 기존 질서를 초월하는 목표와 결합시키는 것, 일상적인 투쟁을 위대한 세계 개혁과 결합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큰 문제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분명 그 발전의 전체 과정에서 두 개의 난관 사이를, 즉 대중적 성격을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 이단적 분파로 떨어지는 것과 부르주아 개혁 운동으로 변하는 것 사이를, 또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민주노동당 강령에도 다른 진보정당 강령과 마찬가지로 궁극 목표(최대강령)와 당면 과제(최소강령)가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제도정치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전자는 사문화되고 후자가 당의 모든 것을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 내 일부는 이것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민주노동당 바깥에 머물러 있는 자칭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을 통째로 부정한다. 그러나 둘 다 이러한 괴리를 하나의 숙명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다만 한 쪽은 그 숙명을 즐거이 받아들이고, 다른 한 쪽은 그 숙명이 미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찾을 뿐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이 난제에 솔직하고 진지한 자세로 도전한다. 우리는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을 서로 결합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한다. 우리의 길에는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태도만이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의 예고된 진창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한다.   

 

3. 궁극 목표와 그 핵심 내용

궁극 목표는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실천에서 행동 원칙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궁극 목표의 핵심 내용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 민주주의와,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민주화다.
 

(해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궁극 목표가 결코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궁극 목표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행동 원칙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 목표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넘어가자. 일당독재, 중앙집권형 계획경제(사실상 명령경제) 등 과거 스탈린주의의 사회주의 상을 극복하려면 이러한 확인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 민주주의다. 즉, 대중의 참여와 자치가 활짝 꽃피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부터 파리 코뮌, 우리의 동학 농민 혁명, 1차 대전 후의 평의회들, 해방 공간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 1970∼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경험을 비롯한 풍부한 역사적 경험들이 이를 입증해준다.
  둘째는 민주주의가 경제 영역, 즉 자본주의의 핵심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노동자 자주관리, 경제의 계획성 확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바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이자 수단들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체제 위기가 닥친다고 해서 저절로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할 주체들이 형성되고, 그들의 능력이 축적되고, 그 진지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자본주의 내의 대중정치·대중운동에서부터 위의 과제들이 제한적인 수준에서라도 실천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상활동에서 대중의 능동화가 핵심 목표로 요구되어야 하며, 자본주의의 지평을 뛰어넘는 과감한 시도들이 반복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일체의 최소강령주의와 단계론적 변혁이론에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들은 모두 궁극 목표와 일상 활동,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대중운동과 제도정치의 이원화에 굴복하고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흔히 '사회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나타나는 최소강령주의는 궁극 목표를 먼 미래의 추상적 이상으로 놔둔다. 그렇기 때문에 당면 실천은 그것에 대한 고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실용적인 무엇이 되고 만다.
  스탈린주의(한국에서는 일부 주체사상 추종 경향이 그 대표적 계승자다)의 단계론적 변혁이론은 그 나름대로 궁극 목표에 대한 선전 작업을 중단하지 않기 때문에 외관상 최소강령주의보다는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단계'라고 표현되는 당면 과제가 '2단계'의 궁극 목표와 기계적으로 구분된다고 보고, 후자의 과제를 전자의 시기에 요구하는 것은 '좌편향'이라고 비난하기 때문에, 사실상 최소강령주의와 동일한 실천적 결론에 도달한다. 최근 일부 경향이 소위 '진보적(혹은 자주적) 민주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그것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고집스럽게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일상 활동의 원칙 :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

 

현 시기에 우리의 일상 활동은 결국 개혁 투쟁이다. 그러나 이는 개혁을 위한 개혁, 즉 개혁주의[개량주의]적 개혁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는 사회변화의 주체를 성장시키는 개혁, 즉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을 추구해야 한다.

(해설) 급격한 위기의 시기가 아닌 일상적 시기에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수단은 개혁 투쟁이다. 현 국면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의 일상적 과제는 개혁 투쟁이다. 이를 거부하고 회피한다면 선전주의적 종파 집단에 머물 수 있을 뿐 노동계급의 대중정치·대중운동을 이룰 수는 없다.
  문제는 개혁 투쟁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개혁 투쟁을 추진할 것인가 이다. 그것은 개혁을 위한 개혁, 즉 개혁주의(개량주의)로 전락할 수도 있고, 사회변화의 주체를 성장시키는 개혁, 즉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후자, 즉 비개혁주의(비개량주의)적 개혁 혹은 구조적·급진적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정치의 틀을 통해 어떠한 입법안을 통과시킬 것인가 자체보다도 이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를 얼마나 북돋고 대중운동을 어느 정도나 성장시키며 최종적으로 대중의 의식적·조직적 역량을 어디까지 향상시키는가 이다. 이러한 개혁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궁극 목표를 실현할 노동자·민중의 주체적 역량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이행 과정이 현실 일정에 오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찍이 {선언}은 "투쟁의 핵심은 그 전과(戰果)가 아니라 단결의 확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올바른 개혁 투쟁은 "노동자 계급의 인식과 의식을 사회화"(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조직")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개혁은 되도록 자본주의 모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제도적 맹아들을 의식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둘째,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집단적 역량이 확연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어떤 수준의 개혁이든 보다 높은 수준의 개혁으로 연속 발전되어야 한다.
  넷째, 개혁 투쟁은 항상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일상 활동에서 이러한 원칙들을 추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즉, 구조적·급진적인 개혁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5. 일상 활동의 또 다른 원칙 : 제도정치와 대중운동의 변증법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성숙한 조건에서는 일상 활동에서 대중운동과 제도정치를 서로 결합시켜야 한다.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운동과 민중권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국가기구 안에서 투쟁하고 이를 변형하며 그 안에 권력의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업을 위해서는 다시 대중운동의 역량에 굳건히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해설)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 진보적 대중정치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제도정치에 참여하고 그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이미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이 제도정치 영역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록 기존의 제도정치가 노동자·민중에게는 극히 불리한 싸움판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제도정치의 틀에 갇히기만 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제도정치 영역이야말로 현재 대중이 '정치'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핵심적인 무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세력이 제도정치에 참여하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다 하더라도 이는 마땅히 권력의 주인이어야 할 대중이 그 주인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자 경로일 뿐이다. 우리는 단순히 기존 국가관료기구의 최상층부를 교체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국가기구 안에서 우리의 투쟁을 지속하고 국가기구들의 얼개와 성격을 변형시키며 그 안에 굳건한 대항권력의 거점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낮은 수준의 개혁조차 불가능하다는 게 노무현 정권의 경험에서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대중운동의 활력과 창의력을 기반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운동과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지역에서부터 전국적 수준까지 (더 나아가 국제적 수준까지) 소통과 연대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대중의 참여와 자치가 분출할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진보정치의 역사를 보면 일단 한 번 대중의 상상력과 결의에 불이 붙으면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민중자치기관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민중권력의 등장과 강화는, 역으로, 기존 국가기구 내에서 진보세력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이를 변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일단 제도정치에 진출하고 나면 의회주의의 덫을 결코 쉽게 피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잊어선 안 된다. 이는 결국 진보정당의 기반인 대중운동을 제도정치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고, 진보정당의 무원칙한 현실 타협으로 귀결된다. 대중의 능동화는 이뤄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계속 부르주아 정치의 좁은 영역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부르주아 정치의 중력의 법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법칙을 거스르면서 진보적 대중정치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참으로 치열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당이 항상 대중의 성장을 중심에 놓고 대중운동과 제도정치를 서로 결합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결합 방식은 구체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원내 활동과 대중운동의 의식적 결합이 있다. 쟁점의 선도를 통해서든 입법 활동을 통해서든 혹은 의원들 자신의 민중과의 접촉을 통해서든 그 전 과정과 성과가 결국 대중운동의 발전으로 귀결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방자치 수준에서라도 제한적으로 행정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와 같은 민중 참여 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부터라도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가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대중들에게 펼쳐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첨예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정치총파업 전술과 같은 과감한 대중정치투쟁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6. 변화의 장 : 국민국가와 지역·세계의 변증법

 

자본의 축적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계급투쟁은 항상 국민국가 수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그 틀을 넘어 지역적·세계적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진보정치세력의 과제다.

(해설) 자본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따라서 세계적 차원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곧바로 실천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민국가야말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전략적 행위자이며 가장 유효한 투쟁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일부 국민국가를 해체시킨다고는 하지만, 세계화의 배후에는 여전히 제국주의 3극의 국민국가들, 그리고 이에 포섭된 국민국가들이 있다. 지역화(유럽통합 등)의 핵심 추동자도 바로 국민국가다. 지역화나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힘이 다른 무엇에게로 이전되는 형태가 아니라 국민국가들 사이의 특정한 교류와 동맹이라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비록 초국적 자본을 말하기는 하지만, 부르주아지 전체가 그런 식으로 재편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는 해도 전체 부르주아 계급의 동의 없이 자본주의가 지탱할 수는 없다. 지배계급 내 여러 분파들 사이의 타협을 위해서는 역시 국민국가가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지배계급 내부의 타협 못지 않게 지배계급과 노동자·민중 세력 사이의 타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의 전략은 과거 형태의 타협을 붕괴시킬 따름이지 타협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배세력과 민중들 사이의 타협이 시도되는 장은 역시 국민국가다.
  하지만 진보 세력은 국민국가 수준에서 출발하여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항상 국민국가를 넘어선 수준, 즉 지역(유럽, 동아시아 등등)과 세계의 수준을 고민하고 그 수준에서 행위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마치 20세기초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국제연대는 국내에서 사회변화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가 새삼 주목해야 할 것은 지역의 차원이다. 지역경제블록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3극의 이해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남남(南南)연대에 따른 3극 지배 체제의 균열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고, 지역 수준의 교류 증대에 따라 노동자·민중운동의 국제적 대응력이 증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은 '(동)아시아'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동아시아 경제 중심 국가 혹은 중화 경제권 형성이라는 자본의 전략에 부화뇌동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사회권(社會權) 연대'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운동은 중국에서 민주노동조합운동이 등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와 적극 연대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결코 먼 데 있지 않다. 이미 우리의 일부가 되어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이들과 연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서 이주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결코 우리 운동의 주변적 과제가 아니다. 자본의 세계화와 구별되는 우리의 세계화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서구와 마찬가지로 우리 노동 대중 사이에서도 극우 민족주의적·인종주의적 정서가 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이주 노동자들과의 연대 투쟁이 한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자기 과제로 자리잡도록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7.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의 극복 과정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상당한 시간에 걸쳐 여러 나라에서 혁명과 개혁, 봉기와 위기가 분출하고 서로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격퇴될 것이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정착된 나라들에서는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정부와 기득권 세력 사이의 대결이 대중의 각성을 낳아 개혁을 가속화시키거나 전혀 새로운 국면을 여는 과정이 나타날 것이다.

 

(해설) 지금 이 시점에서 미래의 세계 변혁이 어떻게 이뤄질지 전망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하지만 20세기초에 전 세계적 계급투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돌이켜보면 그 기본 양상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아마도 수십 년에 걸쳐 위기의 폭발과 상대적 안정기가 반복될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진지한 개혁적 좌파 정권이 선거상의 승리와 대중운동의 결합을 통해 등장할 것이고, 어떤 곳에서는 혁명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시도가 지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대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은 전혀 다른 역사적 국면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정착된 나라들(한국도 포함된다)에서는 개혁적 좌파 정권의 등장이 대중의 기대를 높이고 대중운동을 폭발시키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공세적 상황을 낳게 될 것이다. 기득권 세력과 좌파 정권·대중운동의 대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이며 대규모적인 대중적 각성의 계기가 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구조적·급진적 개혁 과제를 제기하는 대중적 진보정치세력, 즉 대중정당이 있어야 한다.
  둘째, 대중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운동·사회운동이 성장해 있어야 한다.
  셋째, 제국주의적 간섭에 대항해 행동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역적·세계적 수준에서 연대할 파트너들을 확보해야 한다.    


B. 정세

8.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의 기본 성격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이라 불리는 우리 시대의 본질은 세계 자본주의의 만성적·구조적 불황 속에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 위기 국면을 자본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사유화, 노동의 유연화, 경제 자유화 등)이 계속돼 왔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의 도래였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 걸쳐 노동자·민중의 삶이 추락하고 파괴당하고 있다. 

  
(해설)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는 시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흔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1974년의 세계 불황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기본 특징은 세계 자본주의의 만성적·구조적 불황이다. 이는 자본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사회 전체가 이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전 세계 자본가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온존시키는 방향에서 해결하기 위해 항시적 구조조정을 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삼극(미국-일본-서유럽)의 초국적 독점자본은 급격히 금융자본화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각 국 자본가 계급은 시장 지배의 확대(사유화)와 노동력 착취의 고도화(노동의 유연화),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위계 구조의 정착(자유화)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는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그것을 더욱 확대·심화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공황의 가능성이라는 어두운 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으며, 마치 지난 세기초를 연상시키는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균열과 긴장도 점점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커다란 재앙은 더욱 더 비인간적인 경쟁에 내몰리면서 노동과 생활 조건은 더욱 악화되기만 하는 노동자·민중의 삶의 추락과 파괴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바로 그렇지 않은가. 400조의 자본은 이윤이 남는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공중을 떠도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소득 수준이 정체되거나 추락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양산은 이미 IMF조차 경고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빈곤이 실제 확대일로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의 대다수가 빈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빈곤사회'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표> 빈곤 추계 (단위: 천명, %)

자료: 류정순, 2000, p. 161
주: 각 연도 1/4분기의 값임.

  우리 운동 내에는 이러한 우리 시대의 특징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미 제국주의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보는 경향도 있고,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역사 진화(진보)의 필연적 단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자는 세계화를 둘러싼 국내 자본가와 미국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후자는 자본의 생존 전략들을 일방적으로 긍정하면서 노동계급의 전망을 이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시대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결국 잘못된 실천을 낳고 만다. 

 

9. 세계 노동계급의 전반적 후퇴와 새로운 각성

지난 30년간 전 세계 노동계급의 후퇴가 계속되어왔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신우파의 공세에 돌이킬 수 없이 후퇴했고,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은 붕괴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노동계급의 새로운 각성과 저항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해설) 지난 30년간 세계 노동계급은 지속적인 후퇴를 경험했다. 1970년대에 서유럽의 주류 좌파정당들은 신우파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았다. 전후의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은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89년의 동유럽 붕괴와 91년의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함께 현실사회주의 블록도 몰락했다. 일부 나라에 스탈린주의 체제가 남아 있지만 의식적으로 자본주의로 전화하고 있거나 더 이상 보편적인 진보적 의의를 지닐 수 없는 상태에 있다.
  그렇다고 90년대 내내 우리 운동 내에 만연했던 비관주의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세계 노동자·민중운동 내에서 새로운 각성과 저항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논란, 1999년 시애틀 항쟁, 2001년 세계사회포럼의 등장은 새 시대의 여명이 밝아온다는 뚜렷한 조짐을 보여주었다.
  부시 정권의 전쟁 드라이브도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구 전역에 걸친 반전운동의 폭발로 전 세계 진보세력의 각성과 부활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10. 현 국면에 대한 냉철한 이해와 실천적 지향

현 국면은 보다 심각한 체제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지배구조가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지는 체제 위기는 아직 가능성의 차원일 뿐이다. 현 시기에 필요한 실천은 기성 정치구조에 적극 개입하면서 대중운동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동안 붕괴돼온 대중의 역량을 복구하고 이행의 지반을 확보해야 한다.  
 

(해설) 세계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이 전혀 새로운 질의 위기 국면[체제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1929년 세계대공황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제국주의 중심부 내의 정치적·군사적 대립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때에는 20세기 초 코민테른의 실천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한 노선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가능성의 차원일 뿐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현재와 같은 긴장과 침체 국면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이는 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세계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각성과 저항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다. 그리고 의회민주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조의 불안정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기존 지배구조가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지고 대중적 불신이 폭발하는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실천은 기성 정치구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이를 계기로 대중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동안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에 의해 붕괴돼온 대중의 역량을 복구하고 이행의 지반을 다져야 한다. 
  현 국면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결여하게 되면 우리는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실천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안정적으로 제도화된 계급타협의 가능성에 목을 매다는 잘못(우편향)이나 대중의 성장을 앞질러 과도한 요구와 전망을 내거는 오류(좌편향)를 범할 수 있다.
 
 
11.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9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자신의 발전 모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더욱 비대해진 재벌 독점자본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초국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하려 애쓸 뿐이다. 한편 97년 경제위기 이후 대거 국내에 진출한 해외 금융(투기)자본은 단기 수익을 챙기는 데만 광분하고 있다. 이들 모든 자본 분파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의된 대안은 노동의 유연화 공세, 즉 착취와 수탈의 강화뿐이다. 현 상황에 대한 긴급 처방을 위해서도 이제는 자본주의의 지평을 넘어서는 처방들이 필요하다.


(해설) 80년대 말의 3저 호황 이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재벌 독점자본은 한편으로는 해외 직접투자에 나섬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자신들의 '천년 왕국'을 열어 가는 듯했다. 한 동안 이들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독점자본 부문의 민주노동조합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도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시적인 임금 상승을 쟁취할 수 있었을 뿐, 전 계급적인 소득 및 권리 향상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런 와중에 97년 경제위기가 터졌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는 자신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찾지 못한 채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어떠한 자본 분파도 한국 자본주의 전체의 재생산을 책임질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정부와 양대 보수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첫째, 경제위기 이후 독점은 더욱 가중되었다. 수출부문을 주도하는 4대 재벌(삼성, 현대,  LG, SK), 그 중에서도 삼성과 현대가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들은 이제 그들 자신 초국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서 그 생존 방도를 찾고 있다. 따라서 '재벌 대 초국적 자본'의 구도를 상정하고 재벌과 연대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자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한국의 재벌은 이제 국내 경제의 지탱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존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른 '한국산' 초국적 자본일 따름이다. 해외 금융(투기)자본에 제대로 대항하기 위해서도 이제 재벌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의 소유와 경영에 노동자·민중이 직접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둘째, 해외 금융(투기)자본이 대거 침투했다. 해외 자본은 현재 주식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해외 큰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의 유휴자본은 부동산 시장 등을 떠돌거나 지하로 스며들고 있다. 약 400조로 추정되는 자본이 생산과 유리된 채 허공을 맴돌고 있다. 또한 해외 자본은 주요 은행과 대기업의 지분 50% 이상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기업에게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을 강요함으로써 그 부담이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의 몫이 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결실 중 상당 부분이 이제 주식 배당금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표> 해외 투자자의 배당금 추이 (단위: 억원)
 

  특히 은행을 비롯한 금융산업이 투기성 강한 해외 자본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아니라 단기 실적을 염두에 둔 경영이 강요되다보니 은행들은 산업부문에 대한 장기 대출보다는 부동산 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금융에 치중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한 주택난, 가계 부채 증가 등의 주원인이다. 한 마디로 온 나라가 해외 금융(투기)자본의 돈놀이 판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 영역에서부터 해외 자본으로부터 통제권을 탈환해 경제구조를 다시 짜들어가지 않고서는 이제 다른 대안이 없다. 
  셋째, 이렇게 국내 재벌이든 해외 금융(투기)자본이든 어떠한 자본 분파도 한국 경제를 수탈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상황인데도, 신자유주의의 광신도가 된 국가기구와 보수정당들은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윤 보장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경기 양극화와 내수의 장기 침체, 전반적인 장기 불황 양상이 지속·심화되게 된다. 

  <그림>  수출과 내수부문의 증가율 (전년동기대비, %; 1995년 기준)
  자료: 한국은행(ECOS); 무역협회, {한국무역통계} 각년도
  인용: 장재철 외(2004)

  경기 양극화와 내수 침체의 직접적 원인은 재벌·해외 금융(투기)자본이 장악한 부문과 중소기업들, 그리고 노동자·민중 사이의 단절에 있다. 대기업이 단기 이윤 확보를 위해 하청 기업들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고 생산적 영역의 신규 투자를 기피하면서 대기업의 성장은 다른 부문의 성장과 유리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의 협상력 약화와 비정규직의 증대로 인해 전체 노동자들의 소득 상승이 억제되거나 오히려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내수 활성화의 주요 동력인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임금 상승을 억제하면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소비를 진작시키려던 시도들(카드 대출의 확대)은 노동자·민중의 처지를 신용불량자라는 더욱 참담한 지경에까지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가기구와 양대 보수정당들이 내세우는 대안은 오히려 수출부문 대자본에 더 많은 특혜(소위 규제 완화, 지난 십 수년 간 이미 해오고 있는 것!)를 주겠다는 것과,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한국판 뉴딜' 등 부동산 경기 활성화뿐이다. 국내외 독점 자본의 이윤 보장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교리에 중독된 보수세력으로서는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외에 다른 무엇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민간 대자본의 투자 파업 상태를 깰 수 있는 국가의 과감한 개입이나 노동자·민중의 소득 향상을 통한 유효수요 창출 방안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제 이는 고스란히 진보세력의 과제가 되어 있다.
  넷째, 이런 상황에서 모든 자본 분파들이 유일하게 합의하고 있는 대안은 노동의 유연화, 즉 해고 권한의 확대와 비정규직의 양산뿐이다. 이미 IMF조차 우려를 표시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을 자랑하면서도 자본이 내세울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은 파견근로제의 전면화다. 한 마디로 착취와 수탈의 강화 외에는 아무런 미래 대안도 갖고 있지 못한 게 현재의 자본가 진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서도 우리는 현 경제구조의 핵심을 건드리고 자본의 광기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의 소유·경영 구조를 바꾸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재편하며, 금융 산업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하고, 해외 금융(투기)자본을 규제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사회 임금의 확대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소득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경제 대안을 더욱 야심차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다듬어갈 것이며, 무엇보다 자본의 반발과 오랜 관성을 뚫고 이를 관철시킬 노동자·민중운동의 힘을 다지는 데 앞장설 것이다.
  
12. 한국 노동계급의 상황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위기 해결의 주역인 노동계급 자신이 위기의 덫에 빠져 버렸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 공세로 인한 노동계급 내의 분열이 노동계급의 주체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87년 이후의 노동조합운동의 관성을 유지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던 시도들은 모두 한계에 부딪혔다. 특히 노동자 대중의 계급연대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실천은 이러한 노동계급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해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등장한 민주노동조합운동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 70년대의 경공업 중소기업에서 87년 이후 중화학공업의 대기업으로 확대되는 등 노동계급의 단결은 줄기차게 성장해왔다. 지금도 사내하청·파견직·간접고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단결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외연 확대에도 불구하고 계급 의식의 발전과 연대의 강화를 가로막는 두터운 벽이 존재한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선도적 투쟁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및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던 메커니즘은 중소기업에 대한 독점 대기업의 수탈 강화(원청-하청 관계의 악화)와, 노동의 유연화로 인한 노동계급 내의 분절 심화(비정규직의 확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에 기반한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재생산과 정당성의 위기를 가져왔다. 한편으로는 기존 민주노조의 투쟁력과 협상력, 그리고 대중적 지지가 약화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 대다수 노동자의 소득과 고용·노동 조건이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한국 사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주역이 노동계급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계급 자신이 위기의 포로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은 양적으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안팎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질적으로는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노동계급의 주체적 성장이 벽에 부딪혔다. 
  물론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노동운동 내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한편에는 사회적 교섭을 강조하면서 노사정위를 활용하자는 입장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산별노조로의 전화와 산별 교섭에 주력하자는 견해도 있었다. 그리고 고용안정을 쟁점으로 한 총파업 투쟁을 통해 80년대 말∼90년대 초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의 투쟁 형태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저마다 의미 있는 고민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모든 시도들은 기업별 임단협에 시야가 갇혀버린 조합원 대중의 의식과 노동조합운동의 구조·관행을 변화시키려 도전하기보다는 그것을 우회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87년 이후 고착된 노동조합운동의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위의 흐름들 중 어느 것도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새로운 조건에서 노동자 대중의 의식을 바꾸고 새로운 실천의 지평을 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각 분파의 주장들이 자파의 유지를 위한 조직 이데올로기로 화석화되면서 노동운동을 더욱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각 분파들은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경쟁하기보다는 과거의 인연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노동조합 내 선거 경쟁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의 이러한 관성을 엄중히 자기 비판한다.
  지금 우리 노동운동은 계급적 단결의 복원·확대와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의 집단적 각성이라는 '밀린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모든 실천은 이 과제에 도전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지금의 교착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존재 의의 자체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3. 한반도 정세와 노동계급

한반도 정세는 당장의 북핵위기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간에 일정한 타협이 이뤄지더라도 여전히 위기의 요소가 남아 있을 것이다. 북핵위기는 그것대로, 그리고 그것이 해결된 이후 숱한 과제들의 뒤늦은 부상은 또 그것대로, 잠복되어 있던 모순들의 폭발을 낳을 것이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내성(耐性)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그에 대한 개입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러자면 한편으로는 북한 스탈린주의의 모순에 대해 명확히 비판하고 그 변화에 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 시대에 걸맞는 평화와 통일의 운동에 나서야 한다.
  
 
(해설) 전 세계에서도 위기와 기회가 가장 극적으로 중첩된 곳이 바로 동아시아다. 거대한 중국시장과 일본의 여전한 경제적 잠재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는 자본 축적의 마지막 약속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동아시아 각 국의 긴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러시아 대 미국·일본의 대립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 한반도가 놓여 있다.
  미국의 대북 포위 전략과 북한의 폐쇄적 생존 전략, 그리고 남한 정부의 대미 종속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위기를 지속시키는 3박자를 이뤄왔다. 2000년의 6·15 회담은 이 사슬의 한 고리를 끊는 역할을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 회담은 미국 대선 결과와 맞물려 또 다른 중요한 계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전략이 바뀌고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에 자신을 일정하게 개방하며 노무현 정부가 햇볕 정책을 본격적으로 재개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체된 과제의 해결은 잠복되어 있던 모순의 예기치 않은 폭발을 낳을 것이다.
  우선 중국과 미국 사이의 직접적 대결이라는 보다 심각한 정세가 등장할 것이다. 열강간의 국제적 대립·갈등이 국내정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상황이 빠른 속도로 등장할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도 국제적 행위 능력을 지니지 못하면 국내정치에서조차 주도적 변수로 작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의 극단적인 스탈린주의 정치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 베트남과는 달리 북한은 오랫동안 집단지도체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한때 다른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북한 국가기구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였던 세습통치는 사실은 위기를 지체시키고 더욱 첨예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완만한 개혁을 추진하든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지든 북한의 정치 위기는 피할 수 없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북한이 동독과는 달리 자체 주권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제정치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단계적 통일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내부의 변화가 곧바로 남한 사회에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이미 탈북 사태가 심상치 않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서독보다 훨씬 불안정한 남한 사회에서 남북 주민들간의 대규모 직접 접촉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이런 파국적 형태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남북 경제협력은 남한 노동시장에 커다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건설적 대안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남한의 진보세력은 한반도의 격변에 대비해 내성(耐性)을 확보해야만 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통일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스탈린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한반도 전체의 변화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스탈린주의 전통과 단절하지 못한 경향(일부 주체사상 추종 경향)과의 논쟁은 피할 수 없다. 하루빨리 이러한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거의 NL-PD 논쟁 과정에서 소위 PD 진영이 보여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무지와 기권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선 안 된다. 오히려 이제까지와는 달리 남한 노동계급이 한반도 평화 정착의 주역으로 나서야 하며, 통일 과정에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현 시기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국의 한반도 전쟁 위협 차단과 한반도 비핵지대화 및 군비 축소를 핵심 과제로 하는 평화운동이다. 그리고 북한으로부터 독립적인 새로운 통일운동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북한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 확대와 경제 안정, 주권 보장이 이뤄지게 해야 하며, 통일 과정이 동북아 차원의 군축과 집단안전보장 등 진보적인 국제질서 재편의 지렛대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14. 현재의 정치 지형과 노동계급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유주의 정권의 '진보적' 의의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합의가 존재하며, 두 당은 다만 누가 그것의 더 강력한 집행자가 될 수 있을지를 놓고 경쟁할 뿐이다. 전선은 보수세력 전체와 노동자 민중운동 사이에 있다.

(해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두 차례의 거대한 대중 동원(2002년의 국민경선, 2004년의 탄핵반대운동)에 기반해 등장하고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민족부르주아지와의 연대를 상정하는 민족해방혁명론이든, 자유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희망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든)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의 '개혁' 연합을 기대하던 세력들에게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현실의 쓴맛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준에서도 대단히 만족스럽지 못한 소위 4개 개혁 입법의 내용이나 비정규직 양산 법안의 제출이 그 극명한 사례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도 자유주의 세력의 '진보적' 역할은 있을 수 없다.
  사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합의가 존재한다. 다만 두 당은 이 정책 지향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할 뿐이다. 이 점에서 열린우리당은 좀 더 소부르주아 지향적이고 한나라당은 대자본 중심적이라고 말하거나 열린우리당은 좀 더 해외 금융자본 편향적이고 한나라당은 국내 재벌 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견해다. 각 자본 분파는 정치적으로 확연히 분립하기보다는 여전히 두 보수정당 및 그 내부의 파벌들과 자유로운 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만약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현대적 보수정당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2007년 대통령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의 권력재편기와 마찬가지로 대권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고 정계개편과 내각제 개헌 가능성이 다시금 대두할 것이다.
  즉,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두 보수정당 중 어느 하나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합의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정치블록 전체가 그 대상이다.

 

15. 민주노동당의 상황

민주노동당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진보적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당 안에는 노동계급의 위기가 반영돼 있다. 한편으로 당은 노동자·민중운동이 직면한 한계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 자체가 그 한계와 모순에 발목 잡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이 집권과 변혁의 무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자정(自淨), 치열한 토론과 과감한 실천 행동이 필요하다.
 

(해설) 민주노동당은 1996·97년 총파업의 산물로 탄생했다. 이 점이 민주노동당을 상당한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96·97 총파업이 87년에 시작된 민주노조 역량이 총결집한 산물이었던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조운동 제1세대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총파업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급속하게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굴복했던 상황이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이후의 발전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당 활동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가 소수의 선진노동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 노동계급의 거대한 대중투쟁과 결합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 그래서 당내에서 노동계급적·사회주의적 세력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지난 4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4·15 총선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진보정치의 시민권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삽시간에 제3의 정치세력으로까지 부상했다. 현재의 15% 가까운 지지율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더욱 폭발적인 성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민주화의 일정한 성취와 자유화의 급진전으로 인해 기존 부르주아 정치 세력들이 지속적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얻은 반사 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우리는 총선 이후 당의 모습에서 많은 실망과 당혹감을 느껴야 했으며, 더불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지반에 대해 다시 한 번 냉철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수의 명망 높은 지도자들에 의해 봉합되던 당의 문제들은 당직공직분리를 통해 그 봉인이 풀리면서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창당과 당의 성장을 주도한 세력들은 조직적 무능을 드러낸 반면, 확고한 조직력을 갖춘 특정 경향의 선거연합이 지도부를 독식했다. 그리고 이 지도부는 한국 사회의 요구와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다른 한편으로 당은 아직 원내 활동과 대중운동을 적절히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 당원이 현장에서, 지구당이 지역 민중들 사이에서 벌여나가는 풀뿌리 정치의 전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또한 기회다. 당의 모든 문제들이 폭로될 대로 폭로되고 우리의 실력이 그 밑바닥까지 검증되었으므로 이제는 치료와 회복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 근본 문제를 직시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오히려 장기적으로 집권과 변혁의 기반을 제대로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노동계급정당으로서, 대안사회를 만들어 가는 이념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을 부단히 혁신하고 이를 통해 이 당을 노동자·민중의 강력한 무기로 벼릴 과제가 바로 우리 앞에 있다. 
   
  
C. 정치노선

16. 기본 정치노선

현재 우리는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분배 문제와 전쟁 위협을 쟁점으로 정치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경제구조의 핵심과 한반도 질서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급진적 개혁의 추구로 발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사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대중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해설) 앞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당과 노동조합·사회운동은 구조적·급진적 개혁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 구조적·급진적 개혁의 핵심 목표는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주의·제국주의를 궁극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극복을 위한 제도적 진지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구조변혁 전략)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제국주의를 극복할 주체들, 즉 계급적 연대의식과 반제국주의 국제연대의 정신으로 뭉친 진보적 대중을 형성하는 것이다. (주체형성 전략)
  선거에 뛰어들어 의석을 늘리고 중앙과 지방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도, 파업투쟁을 하고 교섭을 벌이는 것도 다 이러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역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활동도 위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에서 짜들어가야 한다.
  현재 개혁 투쟁의 핵심 쟁점은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분배 문제와 전쟁 위협이다.
  우선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조가 도입됨으로써 더욱 심화되고 있는 '빈곤사회'의 현실과 대결해야 한다.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늘려야 하고, 교육·주거·의료·보육·연금 등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빈곤을 낳는 주원인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대기업 간의 불평등 관계와 노동의 유연화를 정면 공격하고, 최저임금을 비롯해 근로 소득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분배 개혁 요구는 빈곤 문제의 긴급 처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지닌다. 
  첫째, 기업에 갇혀 있던 노동자 대중의 의식을 다시 사회 전체를 향해 열어놓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실천을 이끌어내고, 계급적 연대의 전통을 새롭게 다질 수 있다.
  둘째, 사회복지의 확장을 통해 공공부문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 내에서 탈자본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실현하는 진지 역할을 할 것이다.
  또 하나 시급한 과제는 반전 투쟁이다. 이라크 침략 전쟁과 한반도 전쟁 위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 공세에 대항해 반제반전평화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 또한 남북한 군축을 위한 대중운동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면 투쟁들은 반드시 더 높은 수준의 구조적·급진적 개혁의 요구로 발전해야 한다. 분배의 요구는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의 핵심을 건드리는 공세로 발전해야 한다. 금융자본에 대한 공적 통제, 노동자의 경영 개입, 사적 소유의 민주적 제한과 사회적 소유의 확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계획적 경제·산업 정책 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또한 반전 투쟁은 주한미군 철수,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평화·통일 과정의 착수 등 한반도 질서의 진보적 재편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운동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사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일단 당과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사회복지를 확대시키는 경험을 하게 되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설계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대중들은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금 집단적인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설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대중들 사이에서 '역사적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감히 행동의 첫 발자국을 떼는 것, 그것이다. 

 

17. 민주노동당의 혁신

민주노동당이 단순히 의회정당·선거정당에 머물지 않고 노동계급의 성장에 복무하는 운동정당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해설) 선거에 참여한다고 해서, 의회에 의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의회정당·선거정당은 아니다. 선거 참여와 의석 확보가 대중의 역량을 아래로부터 다지는 과정과 동떨어져서 노동계급의 주체적 성장을 위한 무기로 활용되지 못하고 선거 참여와 의석 확보가 그것 자체로 목표가 될 때, 의회정당·선거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이런 의미의 의회정당·선거정당으로 고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총선으로 연달아 이어지는 선거들에서 당이 점진적으로 진지를 확대해 가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대중운동의 발전과 서로 교호하는 역동적 목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과제들이 종속되어야 할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표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당의 발전 경로는 전혀 달라진다.
  우선 의회정당·선거정당의 길이 있다. 2008년 총선에서 의석 수를 급신장하는 데 매몰되는 발전 경로가 그것이다. 만약 17대 국회 임기 중에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소선거구 지역구에서 약진하지 않는 한 이런 결과를 낳기 힘들다. 이 때 당은 지역구에서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전국적 정치 실천과 단절된 채 선거구 수준의 표 모으기 활동에 매몰될 수도 있다. 한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지망자들 사이의 이전투구가 당 활동을 좌지우지하게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의회정당은 곧 대권 야심가들의 권력 게임으로 나타나는데, 민주노동당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운동정당의 길이 있다. 단기적으로 원내 의석 신장에 한계가 있더라도 계급정치의 형성에 더 강조점을 두는 발전 경로가 그것이다. 이 경우 당은 17대 국회 활동을 대중운동과 결합된 범민중 캠페인 형태로 짜들어가고 지방선거도 그 연장선에서 준비하며 그 클라이맥스가 2007년 대선이 되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원내 활동과 현장 선전, 지구당 활동이 하나로 결합되는 정치투쟁들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총파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전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이 성공한다면, 18대 국회에서 당이 확보할 의석 수를 능가하는 당 기층 토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에 어떠한 목적과 전략을 갖고 임하는지가 중요하다. 지방선거는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을 위한 수단 정도로 치부될 수 없다. 현장 정치와 지역 정치를, 전국 정치와 지역 정치를 서로 결합시키는 장으로서 지방선거를 의식적으로 준비해 들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지배 질서를 아래로부터 해체하고, 노동자·민중운동의 지역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민중 참여의 확대를 통해 기존의 관료기구를 압박하고 민중권력의 맹아를 구축할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전국적 수준에서 우리가 이룰 사회변화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민중들에게 제시할 중요한 실험장이 바로 지역 정치의 영역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운동정당의 길이며, 당내에서 이를 실현시킬 주체다.  

 

18. 노동조합운동의 혁신
 

노동조합운동이 노동계급의 균열과 해체 경향에 맞서서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고취하도록 계급적 단결의 내용을 확보(사회운동적 요구)하고 그 폭을 확장(산별 건설)해야 한다.
 

(해설)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이 곧바로 진보적 사회운동으로서 의의(보편적 이해의 대변, 대중의 적극적 참여)를 지니던 상황은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별 노동조합은 한국의 노동운동이 일본형 실리주의로 재편되도록 강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을 하루빨리 산업별 노동조합 형태로 재편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긴급한 과제다. 늦어도 기업 단위의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07년 이전에 대산별 체제로 산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산별 전환을 주로 조직 형식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이다. 산별 전환의 핵심은 조직 형식 자체보다도 이를 통한 노동계급 연대의 확대·심화와 사회공공성 의제의 실현에 있다. 따라서 기업별 노동조합을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그에 걸맞게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과 일상을 바꾸는 시도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이 가졌던 '사회운동성'(좁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관심 범위, 현장 대중의 적극적 참여)을 이제는 의식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별 임단협의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쟁점들을 제기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 기업별 임단투로 환원되지 않는 전 계급적 실천 양태를 만들어가야 한다.
  첫째, 비정규직·중소기업·이주 노동자들의 쟁점을 제기하고 이를 통해 <계급>대중운동을 복구해야 한다. 
  둘째, 기업별 임금 투쟁을 사회임금 확보 투쟁으로 전환시킬 사회공공성 확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셋째,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차원, 국민경제 차원, 더 나아가 지역경제와 세계경제 차원에서 자본 축적 과정에 개입하고 우리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자본 주도로 이뤄지는 남북한의 경제협력과 통일 과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다섯째, 반전평화·환경·여성 등의 과제를 노동계급이 주도해야 한다.
  이러한 쟁점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 높은 수준의 정치적 대중투쟁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제도정치 진출은, 만약 운동정당 노선에 따라 적절히 활용되기만 한다면, 선전·선동과 조직화에 새로운 장을 여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전망을 갖고 각자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노동운동 내 주체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19. 사회운동의 혁신

 

여성, 환경, 반전평화, 소수자의 권리 등을 둘러싼 진보적 사회운동들을 발전시키고, 농민운동과 학생운동의 부활을 촉진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서부터 전국적 수준까지 당과 노동조합운동·사회운동 사이의 굳건하고 활기찬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해설)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 외에도 여성운동·환경운동 등 다양한 급진적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게 60년대 이후 서구 좌파가 얻은 교훈이다. 이제 이는 북반구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오히려 남반구에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공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곳곳에서 농민운동이 신자유주의 질서에 가장 앞장서서 대항하는 새로운 생명력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들 영역 중 많은 부분이 중간층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성운동·환경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치부되면서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지반으로 방치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대중이 여성·환경 등의 쟁점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대안을 추구할 계기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농민운동은 대안 사회에서 농업이 차지할 위상과 이를 위해 필요한 전략적 구상 없이 농업 개방 공세에 대한 방어 투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 여성, 환경, 소수자(장애인, 성적 소수자)의 권리 등을 쟁점으로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일궈야 한다. 그리고 당과 노동조합운동이 이들 사회운동의 과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도록 내부를 혁신해야 한다.
  농민운동, 학생운동과 같은 전통적 대중운동도 대안적 세계화의 추구, 생태환경 보호나 다양한 공동체적 생활 양식의 형성 같은 새로운 쟁점들을 통해 자기 혁신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들이 지역에서부터 전국적 수준까지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과거의 전선 조직 형태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운동 주체들이 그물처럼 서로 얽혀 민중권력과 대안사회의 맹아를 이루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적·사회주의적 가치에 뿌리박으면서도 새로운 사회운동들에 대해 개방적이면서 전향적인 태도를 지니는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19.1. 여성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투쟁이 비판의 과녁을 일상생활과 정치권력의 문제까지 확장하며 발전해온 긍정적 성과를 계승해야 한다. 하지만 여성 내부의 차이와 자본·권력의 지배를 무시하고 여성 '일반'의 권리라는 주장으로 몰계급적 가치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해설) 남한 사회에서 여성의 주체적 운동은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80년대에 들어와 여성운동은 성억압이 우선인가 계급억압이 우선인가에 대한 논쟁과 이로 인한 분화를 겪기는 했지만 그 주류는 변혁운동의 한 부분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여성운동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그에 따른 운동의 침체, 일상 권력에 대한 관심의 증대에 따라 점차 독자적인 사회운동 영역으로서 여성 자체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 방향은 성폭력 문제, 고용평등의 문제에서 커다란 성과를 낳아다. 아울러 운동 사회 내의 가부장적 태도에 대한 심각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공적 정치기구 내에 여성의 동등한 대표권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
  이제 여성운동은 남성들이 독점해온 권력을 따라잡거나 이에 끼어 드는 수준을 뛰어넘는 고민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는 투쟁이며, 새로운 대안적 이념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그러나 이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성과 남성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계급적, 인종적, 민족적 차이다. 이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성차별의 문제를 자본주의의 문제로만 보는 것에 못지 않게 본질주의적이다. 일하는 여성들과 저소득층 여성들을 포함하는 노동계급 여성의 운동이 여성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해야 한다.
  여성운동은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 전체에 대한 억압과 자본주의로 인한 착취·차별 모두를 철폐하는 운동으로 성장해야 한다.

 

19.2. 환경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생태적 재앙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환경운동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자본주의의 극복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바로 노동운동의 전통적 목표이기도 하다. 생태계의 황폐화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새로운 삶,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거대한 운동으로 서로 결합해야 한다.

(해설) 최근 우리 노동운동과 환경운동도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투쟁,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 등을 통해 연대의 경험을 다진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환경과 노동을 대립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하면, 다수의 노동자 대중이 환경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환경운동은 단순히 시민운동의 영역 중 하나로 설정되고 있고, 보다 근본적인 생태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근대 산업사회의 성취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경향도 나타나 노동운동과의 사이에 커다란 심연을 만들고 있다.
  1980년대에 공해추방운동으로 시작된 한국의 환경운동은 92년 리우 환경회의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주요 환경운동단체의 등장을 거치면서 중요한 사회운동들 중 하나로 성장했다. 또한 최근에는 산업문명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생태주의 운동과 이와 결합된 공동체운동이 많은 이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운동과 생태주의의 발전은 분명히 중요한 성과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 특히 그 최근의 전개 양상으로서 신자유주의가 자연 생태계와 맺는 관계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 에너지 위기, 사막화와 물 부족 등은 전 인류적 재앙이지만, 또한 그 원인은 자본주의 문명에 있다. 전 인류의 생존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자본주의를 극복한 삶을,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가 환경운동의 핵심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수세기 동안 노동운동의 전통적 관심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점에서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은 새로운 삶,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거대한 운동으로 융합되어야 한다. 환경운동은 개별 환경문제에 대한 대증(對症)요법, 혹은 개인들로 하여금 생태적 삶을 선택하자고 호소하는 낭만적 방식에서 벗어나 반자본주의 운동,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에 함께 해야 한다. 또한 노동운동은 생태적 지탱가능성의 문제를 자신의 전망 안에 통합하고 정치·경제·문화의 생태적 재편을 자신의 과제로 고민해야 한다.

 

19.3. 농업·농민

 

농업과 농민을 경제·사회 발전의 부차적 요소로 바라보는 (신)자유주의의 관점, 그리고 이와 커다란 차이가 없었던 과거 서구 사회주의 운동의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이 직면한 생태 위기 속에서 농업의 가치와 의의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역 농업의 초토화를 낳는 신자유주의 농업 개방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더 나아가 단순히 농민만이 아니라 노동자·민중 전체의 과제로서 농업·농촌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해설) 서구 사회주의 운동은 농업·농민 문제에 대해 오류와 한계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명확한 비판과 정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은 대부분, 농업을 근대 공업 발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농업의 가치도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농업 발전 또한 대규모 경영과 과학·기술의 도입 위주로만 사고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결국 (신)자유주의의 농업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만약 이런 전통적 관점을 유지한다면, 전 세계의 주요 농업 생산 지역을 장악한 채 유전공학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면서 농산물의 원격 교역으로 지역 농업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국제 농산물 독점자본의 횡포를 제대로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산업과 구별되는 농업의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에 또한 두 번째 오류가 나타나게 되었다. 농업의 무리한 강제 집단화 시도들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스탈린 정권의 농업 집단화와 마오 시대 중국의 인민공사 실험은 한결같이 최악의 비극과 실패로 끝났을 뿐이다. 오늘날은 진보 진영 내에서 전통적인 가족농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기업농의 전면화도 아니고 집단 농장도 아니며 가족농에 기반을 둔 자발적인 지역 협동조합의 활성화가 우리의 대안이다. 
  셋째, 결국 이러한 오류들은 농업과 농민을 뭔가 부차적인 것, 소멸해 가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자본주의 문명이 초래한 전 지구적 생태 위기 속에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공업을 통한 농업의 대체, 도시의 농촌에 대한 우위가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해 다시 짚어보아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 점에서 "농업과 공업의 결합, 도농간의 격차 점진적 해소, 인구 분포의 전국적 균질화"라는 선언의 강령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로 읽혀야만 한다. 농업은 단지 보존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현대적 삶의 새로운 일부로 부활해야 한다. 이제는 농촌의 도시화 이상으로 도시의 농촌화를 고민해야 한다(쿠바의 도시 농업의 사례).
  따라서 지금 우리가 농업의 무분별한 세계화 흐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는 단지 농민만의 과제가 아니며, 행복하고 지탱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모든 노동자·민중의 절박한 과제다.
  또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피폐해진 우리 농촌·농업을 새롭게 바꾸는 운동에 착수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관심의 환기; 식량 주권의 쟁취; 환경농업의 확산; 지역 협동조합의 활성화; 도농간 직접 결합; 통일농업의 구축 등이 우리의 당면 과제다. 이는 단순히 농촌과 농업의 개혁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20.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 건설의 필요성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조운동·사회운동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일상 활동 속에서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실천하려는 당과 노동조합·사회운동 내 활동적 대중의 조직, 즉 실천 네트워크와 토론의 장 역할을 할 조직이 필요하다.

(해설) 누가 결집해야 하는가? 어떠한 경향이 확대되어야 하는가? 한 마디로 우리 운동의 영혼을 지키고 그것을 육화(肉化)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운동의 영혼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민중권력을 구축하며 민주·평등·해방의 대안 사회를 건설한다는 민주노동당 강령의 기본 정신이다. 이러한 당 강령 정신을 다른 누구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활동을 이 전망 아래서 바라보고 추진하는 동지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주의자'란 무슨 이념가나 직업적 활동가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고민과 지향을 지닌 모든 활동적 대중이다.
  이제까지 민주노동당 내에서 사회주의적 이념 지향을 지닌 당원들은 이미 특정한 정파 형태로 당에 결합한 경우(평등연대, 다함께)가 아니면 주로 지역 수준에서 느슨한 모임을 가지며 활동하거나 아니면 아예 당원 개인으로 활동했다. 한편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넓은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는 활동가·선진노동자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주로 노조 내의 선거 경쟁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활동과 분발, 연대가 필요하다.
  이상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동지들의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이 조직은 소수 활동가의 음모적인 비밀 결사가 아니라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활동적 대중의 조직이어야 한다. 그리고 당권이나 위원장직만을 좇는 인사 파벌이 아니라 이상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이념적·실천적 조직이어야 한다. 또한 독자 분립보다는 당과 노동조합 등을 통한 활동에 집중하는 하나의 의견그룹이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를 건설한다.

 

21.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의 기본 과제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은 민주노동당 강령의 이념적 지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에 따라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모든 활동에 참여·개입하며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 모든 성원들은 자신의 활동 현장에서 이러한 기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해설) 우리는 다음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첫째,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에 입각한 민주노동당 강령 정신을 확산·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정신에 적극 동의하는 당원들을 결집하고, 자본주의의 극복과 대안 사회의 건설 방안을 앞장서서 연구하고 다듬어야 한다.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모든 활동을 그 전망 아래서 해석하고 평가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회원들은 정기적인 정치 학습과 토론을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계급의 정치적 성장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선진노동자들이 더 이상 기업별 노동조합의 임단협에만 매몰되지 않고 정치·사회적 관심에 기반해 실천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현장 단위로까지 일상적으로 정치 선전 지침을 유포한다. 매 시기 선전 지침을 공유하고 그것을 주위의 대중에게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지침에 대해서는 전 조직적인 평가 작업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 의원단의 활동과 노동 현장의 관심을 서로 연결하는 데 당내 그 어느 부분보다 앞장서야 한다. 또한 보다 많은 노동자 당원들이 지역 차원의 정치활동·사회운동에 결합하고 열성 당원, 더 나아가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의 혁신의 기관차가 되어야 한다. 운동의 혁신은 한 두 번의 시도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새로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도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집권 이후까지도 운동의 자기 혁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쓴 소리를 하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쓴 소리를 듣는 것도 꺼려하지 않는 기풍을 정착시키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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