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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 : 비철학적 철학을 위하여
- 철학의 탈주 中 2장
백승욱
1. 알튀세르 읽기 : 알튀세르의 모순과 그 작동
- 알튀세르는 ‘맑스주의’ ‘철학자’ 라는 측면에서 살펴 보았을 때, 이단적인 측면에 상당히 존재한다.
- 알튀세르의 궤적은 자기비판, 맑스주의의 위기 선언, 당에 대한 공개비판, 아내 엘렌의 살해 등으로 채워지면서 충격적인 과정으로 보여진다. 그의 삶은 ‘변증법적’이기보다는 ‘불확정적’이다. (요약 불가능한 철학자)
▶ 알튀세르와 ‘철학’
- 초기의 그의 작업은 『자본』속에 등장하는 ‘맑스주의 철학’을 만들어내는 작업. ‘맑스를 위하여’ 헤겔과 다른 맑스의 변증법을 대문자의 이론(Théorie: 즉 이론들의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하는 것.
- 그러나 자기비판 이후 ‘철학의 새로운 실천’, ‘최종심급에서 이론 내의 계급투쟁’이라는 테제로 전환. 맑스주의 철학은 불가능하며, 주어진 과제는 맑스주의를 위한 철학을 가공하는 것이라고 함.
▶ 알튀세르와 ‘과학’
- 라캉에 대한 평가 : 라캉과의 동맹을 통해 이데올로기론을 개척함. 그러나 후기에 가서는 그와 결별하는데 이는 이론적 결론이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기인함. 이 대립은 구조주의 철학이 지지하는 과학관과 불확정적 유물론 철학이 지지하는 과학관의 대립.
▶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경계선을 설정. 그러나 자기비판 이후 진리란 ‘정세적 효과’임을 강조하며 이데올로기론으로 강조점을 이동함.
- 이는 레닌의 테제인 외부 주입설(자생성과 목적의식성의 구분)을 후기에 가서는 상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남.
▶ 알튀세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①『맑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는다』를 특권화 하는 방식 : 대부분의 알튀세르 논의 방식이 이에 벗어나지 않음.
- ② 후기 알튀세르가 초기의 문제점들을 극복 또는 초기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훨씬 완성된 견해에 도달했다는 것.
-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사물을 일면화하는 문제가 있음. 알튀세르 사상은 변증법적으로 진화하여 자기완성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체’해 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음.
- 알튀세르 연구에 있어서 우리는 모순들의 작동과 파괴, 해체의 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음.
- 알튀세르에 대한 ‘징후적’ 독해법 :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해체하는 독해법(『잉여가치 학설사』를 『자본』의 유기적 구성 부분으로 파악하는 것.)을 맑스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이것을 알튀세르에게 적용하여 알튀세르 자신의 모순이 작동하게 하는 과정. 이는 “극단에 서서 극한적으로 사고하라.”는 말로 요약됨. ⇒ 막대 구부리기 ⇒ 철학을 이론에서의 정치,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 파악한 이후의 견해로 지식자체가 아니라 ‘지식효과’를 중요시 함.
- 알튀세르 철학의 궤적은 끊임없는 ‘개입’의 여정. ‘비철학’으로서의 철학.
▶ 알튀세르의 관심사
- 맑스와 프로이트 : 역사과학과 정신분석을 대표하는 이론가들에 주목. 맑스를 해석하기 위해 프로이트로부터 심급들, 과잉결정, 응축, 전위와 같은 개념을 빌려 왔음. 그러나 이는 일정한 제한 속에서 이루어지며, 맑스주의와 정신분석 양자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음.
- 과잉결정과 정세의 우위 : 생산양식에서 사회구성체로,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론으로 강조점이 이동하는 흐름과 연관됨. 현실 정치에서 레닌과 마오에 준거하려는 이유이기도 함.
2. 알튀세르 사상의 궤적 : 철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 1960년대 초반의 이론-정치적 정세
- 당시 맑스주의 운동은 스탈린 사후 스탈린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비판이 촉발한 계기 속에 있었음.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단지 스탈린의 반사적 대립물에 머물고 있었음. ‘개인숭배’라는 관념은 스탈린적 편향의 사회․정치적, 이론적 근거들을 참구하는 대신‘ 사회주의적 법치성의 위반’만을 지적하는데 머물고 있었음. 이에 알튀세르는 좌익적 스탈린 비판을 통해 이론적 정세에 개입하기 시작함.
- 스탈린적 편향 : 경제주의 + 인간주의.
└→ 경제주의 : 생산력을 생산관계(계급투쟁)보다 우위에 놓는 관점. 1936년 소련 헌법은 소련 내에서 계급투쟁 소멸을 선언하고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을 주창함.
└→ 인간주의 :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 프롤레타리아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을 나누는 기준이 됨.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라는 원리에 따라 존재론과의 상응성에 의해 부여되는 반영 이론으로서의 인식론이 등장함. ⇒ 프롤레타리아 세계관, 보편법칙으로서의 존재론, 반영이론으로서의 인식론이라는 세 축이 맑스주의 철학의 ‘정통’으로 확립됨.
└→ 이러한 대쌍은 데카르트 이후 근대적 철학관의 귀결. 근대 철학의 모든 전통은 대부분 이를 벗어나지 못함.1)
(1) 인식론적 단절과 이론적 실천: 초기 알튀세르
▶ 알튀세르의 첫 시도 : 맑스주의의 지반 위에서 그것을 전화하기
- ① 맑스주의 전통에서 나온 개념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내용을 전화하기 ②맑스주의에 없는 개념을 맑스주의 아닌 다른 전통에서 영유․도입하기 ⇒ 실존주의 및 현상학에 반대하여 구조주의와 연대
-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개념 수용(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맑스 사이의 비가역적 단절 설명) ⇒ but, 바슐라르에게 정신분석적 설명이었던 ‘인식론적 장애’는 ‘이데올로기’로 대체되고, 철학은 이론의 이론으로서 ‘대문자 이론’으로 대체. ⇒ 자크 마르탱과 캉길렘의 '문제설정'개념 수용.
- ‘실천’ 범주의 재구성 : 실천은 노동대상(일반성 I)에 대해 노동수단(일반성 II)을 사용하여 생산물(일반성 III)을 만들어 내는 과정. ex) 이론적 실천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 / 이데올로기적 실천은 ‘인간’이라는 노동 대상에 대해 이데올로기라는 노동수단을 통해 주체를 생산하는 과정. ⇒ ‘구조’는 실천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들의 과정 그 자체.
- 맑스 과학의 단절 과정 : 『독일 이데올로기』를 계기로 인간학적 이데올로기(인간의 유적 본질의 투사로서의 역사)와 단절하고 성숙기 저작 『자본』완성. ‘사회적 관계’의 개념에 기초하여 사회는 표출적 총체성이 아니라 과잉결정된 ‘전체’로서 탐구됨.
- 맑스주의 철학의 규명 : 헤겔과 동형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중심축만 바꿔놓는 포이어바흐식 변증법에 반대. 그는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에 기반하고 있는 반영론적 인식론을 스피노자적 입장에서 공격. ⇒ ‘항상 이미 주어진’ 복합성의 변증법으로서 과잉결정의 변증법.
└→ 헤겔 변증법의 동심원적 총체성 ⇒ 건축학적 토픽(1층의 구조는 2층의 구조를 직접 결정하지 않고 단지 한계만 규정)
▶알튀세르 이론의 모순
- ①알튀세르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대상은 인식 주체의 초역사적, 보편적인 형식적 조건을 다루는 이론이 아니라 지식생산의 역사(이론의 이론, 과학들의 과학) ②사회적 실천들 일반의 이론 ⇒ 개념생산의 변증법인 동시에 객관 변증법? 디아마트로부터 불철저한 단절의 결과
- ①과 관련 : 주체의 인식론(인식, 진리, 보증 등)에 대한 거부. ⇒ 복수의 진리가 존재함을 인정. 과학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적인 것 사이의 구분은 새로 형성된 과학에 의해서 사후적, 회고적으로 형성. ⇒ 과학들의 대상의 수만큼의 진리의 기준들이 있고, 이것을 통약할 수 있는 선험적 또는 초월적 기준은 없다. ⇒ 철학에서 인식론적 단절을 생각하는 초기 알튀세르의 견해와 모순.
- 이데올로기적 실천에 대한 이론작업 : 맑스주의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론을 벗어나기 위해 라캉을 매개로 ‘무의식’ 개념을 도입(상상적인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사회적 결합작용의 시멘트로서의 이데올로기론)
- 알튀세르의 과잉결정론은 심급들의 자율성을 설명해 주지만, 심급들간으 l관계, 현실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끊임없이 논쟁거리.
(2) 과잉결정과 최종심급에 대해서
- 과잉결정은 모순들의 축적이나 응축, ‘중층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의 양항의 불균등성, 비대칭성을 뜻함.
-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관계에서 두 계급은 동일한 역사를 가지지 않으며, 동일한 세계를 공유하지 않고, 동일한 수단을 갖지 않으며, 동일한 계급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과 권력을 박탈당한, 즉 음의 부호가 붙은 자본가 계급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립한다. 이는 명백히 모순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립관계는 헤겔적인 아름다운 고양과 화해를 통해 대립의 조건들을 초월하기는커녕 그 대립의 조건들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 과잉결정은 한 모순에 대해 사고할 때 동시에 다른 모순들에 미치는 효과성을 사고하게 함. 이를 위해 과소결정을 함께 논의. ex)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유산된 경우.
- ‘과잉결정’이라는 용어를 모순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토픽’적 사고와 관련된 심급들에 대해서는 ‘최종심급’이라는 용어 사용. 과잉결정은 모순의 복잡성, 불균등성을 논의하며, 최종심급은 차별적 효과를 지칭.
-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이 각 심급의 실제적 차별성과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심급들간의 위계, 지배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유물론적 관점이라고 봄. 여기서 후자의 유물론적 관점이 우위에 섬. 그러나 최종심급은 궁극적 원인, 본질, 실체가 아님.
-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를 심급들로 분할하고, 경제를 지배적 심급으로 생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자체,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이론은 그 효과를 의식함과 동시에 그 위험을 경계해야 함.
(3) 자기비판, 재생산의 관점
▶ 자기비판의 4가지 테제 : ①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②철학은 과학이 대상을 갖는다는 의미에서의 대상을 갖지 않는다. ③철학은 과학이 여갓를 갖는다는 의미에서의 역사를 갖지 않는다. ④철학은 이론 영역에서의 정치다.
└→ 자신의 이전 주장이 과학과 철학을 모두 이론으로 포괄함으로써 양자의 차이를 경시하게 되었다고 보고 과학적 실천과 철학적 실천을 구분. 과학은 더 이론적(‘진리들’이 문제)이고 철학은 더 실천적(‘입장의 올바름’이 문제).
└→ 철학은 과학과 같은 의미의 대상을 지지니 않으며, 철학사는 패배한 입장들이 언제든지 새로운 대치점이 형성됨에 따라 다시 부활하고, 낡은 입장들을 새로운 외양으로 치장학 h등장할 수 있는 ‘반복’의 역사이므로 ‘단절’을 말할 수 있는 ‘불귀점’을 갖지 않음.
└→ 철학은 이론적 명제(테제)들을 합리적으로 구성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이론에 개입하여 이론적 효과(철학효과)를 유발.
▶ 이론의 이론, ‘대문자 이론’에 대한 비판
- 인식론적 단절을 순수하게 이론 내적인 단절로만 파악함으로써 단절의 조건들, 즉 계급투쟁이라는 문제를 경시.
- 자기비판 이후 단절은 이제 우선적으로 정치적/철학적이고 과학적 단절은 그 결과가 됨.
- 우리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과학이 다루는 사유 대상. 정치적 입장의 변화는 철학적 입장의 변화를 매개로 과학의 사유 대상에 개입. 철학은 이론 영역 내에서 정치를 대표.
- 새롭게 정의된 철학은 과학이 대상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대상을 갖지 않는다. 철학은 경계선의 구획을 통해 입장을 정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 철학에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 이외의 문제들이 있고, 그렇지만 철학은 중요하게 이론에서 계급적 지위의 표명이라는 것을 지적. 모든 철학은 아무리 사변적이고 순수한 형태를 띠더라도 실천적, 정치적.
▶ 재생산의 관점
- ①인민 대중이 역사를 만든다. 그런데 대중은 엄밀한 의미에서 주체가 아니다. 대중은 무정형적이고, 이미 주어진 구체적 복합성이다. ②계급투쟁이 역사의 동력이다. 그런데 계급투쟁은 사물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개념이며, 그 자체에 정세, 우연성 등을 담고 있다.
└→ ‘생산양식의 과학’이라는 초기 관점: 구조와 이행은 진화론적 관계로서 이행은 안정적인 구조의 재생산 외부에서 삽입되는 계기일 뿐. ⇒ 자기비판 시기의 관점: 재생산은 생산수단의 재생산뿐 아니라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 구조의 재생산 안에 계급투쟁의 문제를 삽입시킴. 여기서 주체들을 재생산하는 표상매커니즘으로서 이데올로기를 주요하게 사고. ⇒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과 호명 테제.
-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은 오히려 문제의 균열을 심화시킴. 과학의 단절의 계기를 과학 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철학이라는 매개를 둠으로써, 맑스주의의 과학성과 ‘맑스주의적 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증폭.
(4) 맑스주의의 위기, 철학의 전화
- 이론은 이론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인 물질적 힘,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고유한 방식으로 전화, 즉 이데올로기로 전화해야 한다. 이론이 운동과 결합하는 것은 가능성으로만 남을 뿐 필연적이지 않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은 적대적 두 진영의 대립이 아니라, 두 경향들의 대립이며, 이 대립은 항구적이지도 않고 대립선은 계속 바뀐다.
▶맑스주의 위기의 선언 : 두 가지 난점
- 난점① - 잉여가치론 : 『자본』에서 맑스가 잉여가치를 산술적 계산의 문제로 제시함으로써, 착취에 대한 경제주의적, 리카도주의적 해석을 남김. 알튀세르는 『자본』의 역사적 서술에 관한 장들을 부각시켜 계급투쟁의 구체적 조건, 형태, 효과를 다룸.
- 난점② - 변증법 : 전통적 철학은 모순들을 소거할 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실천들과 그 이데올로기를 통일할 가능성의 이론적 조건들을 사고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한 지배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데올로기들을 통일하는 데, 그리고 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리임을 보증하는 데 기여. 즉 철학 안에서 국가편에 투항. 알튀세르는 철학의 외부가 있다는 ‘비철학’의 개념을 주장. ⇒ 철학을 구성하는 것은 논증의 담론도 정당화의 담론도 아니고, 새로운 철학적 입장의 옹호, 바로 철학적 전투장이다.
└→ 모든 지배는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이 비대칭성을 무시하고 지배하는 측과 대등한 대립물을 형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지배 측의 거울상을 형성하게는 되는 것.
└→ 과학에 대한 합리주의적 가정에 대한 공격 : 알튀세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더불어 맑스주의 역사과학에 대해 갈등적, 분파적 과학이라는 규정 제시. ‘진리’의 반대물은 오류가 아니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유기적 체계’. (레닌의 ‘맑스주의는 과학이므로 전능하다’라는 테제에 대한 명백한 반대.)
(5) 불확정적 유물론을 위하여
- 1980년 아내 엘렌 교살 사건 이후 공식적인 발언권을 박탈당함. 침묵 중에 유일하게 공개 출판된 성과는 『나바로와의 대담』. 이후의 이론적 작업은 유물론/관념론의 이분법적 대당을 넘어서는 비철학으로서의 철학인 ‘불확정적 유물론’에 집중.
▶알튀세르의 후기 철학적 작업
①명시적으로 맑스주의 철학의 불가능성을 선언. 우리의 당면 과제는 맑스주의 철학을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을 가공하는 것, 맑스가 사고했던 것과 사고했던 형식을 설명해 주는 요소들을 철학사 속에서 찾는 것을 목표로 함.
②유물론/관념론의 이분법적 대당을 비판. 어떤 철학도 어떤 이론적 정세에서 입장을 채택하는 데 유물론적 효과를 지닐 수 있다. 철학사에서 볼 때 유물론은 플라톤 이후 관념론적 질문들이 자신의 대립물로 불러낸 대쌍일 뿐.
└→ 유몰론이 결코 벗어나지 못한 관념론의 근본적 질문은 기원과 종말 목적 두 가지로 이중화하는 ‘근거율’. 여기서 절대정신의 자리를 물질로 대체하더라도 유물론은 이 질문을 벗어날 수 없음. 이 질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철학의 기원, 즉 조재, 주체, 의미 또는 텔로스에 대한 질문들로부터 벗어나야 함. ⇒ 체계가 아닌 경향으로만 존재하는 유물론을 강조.
③불확정적 유물론(또는 마주침의 유물론) : 맑스주의를 위한 철학의 기원을 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마키아벨리-스피노자-하이데거-데리다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찾기 시작함. 클리나멘의 철학. ⇒ 정세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
└→ 에피쿠로스에게 실재하는 것은 원자들의 우연적 충돌의 결과물일 뿐. 이는 라이프니츠의 고립되어 있는 보편성을 담지한 ‘단자’(monad)와 다름.
④역사과학과 사회과학에 던진 새로운 이론적 함의 : 현전하는 역사는 늘 유일 고유한 불확정적 정세의 역사로 인식. 일반적 상수(레비스트로스)나 경향적 법칙(맑스)의 보편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변종을 통해서 각 사례의 유일고유성을 밝히는 것이 문제.
3. 이데올로기론
▶이데올로기론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
①이론의 조재 조건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 이데올로기들, 대중이 처해 있는 이데올로기적 조건, 지배적 이데올로기, 그 내부 적대의 조절, 균열, 그 속으로 이론 개입의 효과 등을 다루는 것이 중요.
②서양 정치철학의 두 전통
1>국가에 대한 계약론적 전통 : 국가를 합의/강제의 틀로 규정. 국가는 장치나 기계가 아니라 명목적인 ‘계약 상태’를 지칭.
2>국가에 대한 ‘공포의 모델’: 국가에 대한 ‘무의식 모델’. 마키아벨리-스피노자-니체-알튀세르적 계보. 국가가 유지되지 위해서는 공포+희망이 필요한데 이는 선/악처럼 상호 보완적.
(1)이데올로기적 실천
-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 아니고, 의식도 아닌 ‘무의식적인 것’. 세계에 대해 상상적 관계를 맺는 주체를 생산하는 것.
- ①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는 없다. ②과학과 비교해 이데올로기적 실천은 이론적 기능보다 실천적, 사회적 기능이 중요하다. ③이데올로기는 의식이 아니라 구조다. 그것은 인간과 그 세계 간의 체험된 관계다. ④이데올로기는 허구가 아니며, 실제 관계와 가상적 관계의 통일이다. ⑤이데올로기는 영역과 경향에 따라 분할된다.
(2)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반론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 이데올로기들이 중요함을 강조. 이데올로기 일반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최소한의 일반성.(『자본』에서의 노동과정과 같은 맥락) ⇒ 이데올로기 일반의 역사는 없음. 이데올로기 일반은 구체적 이데올로기로 상향해 가기 위한 추상의 첫 출발점일 뿐.
-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힘, 즉 ‘국가장치’. 알튀세르의 이 주장은 뒤르켐-라캉적 전통 하의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을 기표의 물질성으로 파악하고, 사회적인 것은 그 자체로서 힘을 지닌다는 분석과는 다름. 그는 사회에 존재하는 경쟁적, 상호 투쟁적 ‘해석들’ 사이에서 특정한 해석들이 지배하게 되고, 사회적인 물질적 힘을 획득하게 되는 계보학적 분석을 중시(니체적 이데올로기론).
- 이데올로기에 의한 주체 생산
(3)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토픽/계급투쟁
- 호명테제에 대한 ‘기능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알튀세르의 대응 : 재생산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설명.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의 작동양식과 착취, 적대만을 대상으로 삼는 ‘유한한’ 이론이듯이, 이데올로기에서도 구체적 이데올로기들의 문제로 가야함. └→ 라캉과의 동맹 파기 : 라캉은 무의식의 과학적 이론 대신에 정신분석의 철학을 제시. 모든 것을 무의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에 따라 인식하는 이론체계. ⇒ 알튀세르의 비판은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여행객”에 집약. 유물론 철학자란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으로 기원도, 제1원리도, 어떤 목적도 알지 못하며, 불확정적 만남의 계열들을 기록할 뿐. └→ 호명속에 이데올로기적 반역은 다음의 조건 하에서 가능 : ①호명이 실패했을 때, ②호명에 의해 주체가 구성되더라도 그 이데올로기 자체가 이미 갈등적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 이데올로기를 우회할 수 없다는 근본적 비대칭성의 문제. 이데올로기적 표상은 계급투쟁을 온전히 포섭할 수 없다. ③호명된 복수의 주체 지위들 사이의 갈등 : 각 개인은 복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어 있는 우연적 통일체. 각 이데올로기가 내적으로 갈등적이며, 동시에 각 개인은 복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체로 호명됨으로서 호명의 내적 균열 가능성은 항상 주어져 있음.
1) 서양철학에서 근원적인 반데카르트 철학의 대표자는 스피노자와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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