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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행논쟁(1) - 돕과 스위지 주장 정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 Dobb과 Sweezy의 논쟁


 

(1) Dobb-봉건제 내부 계급간의 세력구조에서 붕괴 요인을 찾음.


1) 봉건제의 정의

봉건제는 기본적으로 농노제. 봉건제의 정점은 강제적인 부역을 통한 직영지의 경영.


2) 봉건제의 붕괴요인

시장, 교환의 확대 자체가 봉건제를 해체한 결정적인 요인을 아니다. 봉건제의 해체요인은 제도내부에서 찾아야 함. 즉 “지배계급의 증대하는 수입욕구와 더불어 나타난 생산체제로서 봉건제가 갖는 비효율성”에서 붕괴의 원인을 찾아야 함. 영주들의 수가 증가하고 화폐취득의 욕구가 커지면서 생산자에 대한 과도한 압력(노동력의 과잉착취)이 나타나고 이는 농노의 도망, 생활수준 감소에 따른 인구의 감소 등을 가져와 노동력이 고갈, 소멸됨.

인구모형에서와는 달리 인구가 외생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의 변화도 계급간의 관계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3) 자본주의의 기원-상인들의 자본 축적은 수탈이며 상인부르주아는 자본주의 발전의 방해자.

 중세초기의 상인들에 의한 자본의 축적은 “생산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계급의 잉여를 수탈한 것.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 교환이라고 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산된 것이 아니고 독점을 통하여 농촌에서 생산된 잉여를 수탈. 독점은 불완전한 시장으로부터 발생. (수요와 공급의 지역적 괴리와 정보의 부재 하에서 높은 가격의 차이를 이용할 수 있음) 독점적인 지위는 정치적인 특권과 상인조합의 활동에 의해 뒤받침 됨.

상인 부르주아들은 배타적인 상인단체를 만들었고 이들 단체들은 시정을 장악.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고 수공업자들을 종속시킴. 수공업자들이 외래상인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 지역의 부유한 특권상인들과 계약을 맺어야 했음.

상인 부르주아는 결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방해했음. 상인 부르주아는 봉건세력과 신속히 타협했음. 진정으로 혁명적인 길은 생산자 자신이 자본을 축적하여 상업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되고 수공업 길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본제적인 기반 위에 생산을 조직하는 과정. (임노동 생산)

앞서 본 상인자본에 의한 생산의 종속이 또 다른 길인데 이는 결코 자본주의 태동의 원동력이 아니었음. 상인 부르주아가 득세하던 14세기-16세기: 이는 기본적으로 봉건제의 연속으로 파악해야 함.


(2) Sweezy의 견해


1) 봉건제의 정의-자연경제

봉건제를 농노제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함. 농노제는 명확히 봉건적이지 않은 체제하에서도 존재할 수 있음. 봉건사회는 오히려 “사용을 위한 생산경제,” 다른 말로 자연경제“로 파악될 수 있음. 즉 화폐거래 및 금전계산의 부재를 함축하고 있음. 봉건체제에도 인구의 증가나 봉건영주와의 전쟁 등 불안정 요인은 존재함. 그러나 이는 농민들의 궁핍화를 가져올 망정 봉건사회를 변형시킬 수는 없음.


2) 봉건제의 붕괴요인-자연경제를 붕괴시키는 것.- 도시의 성장과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서

봉건제의 외부요인 - 도시의 성장과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서 찾아야 한다고.

a) Dobb의 논의에 있어서 왜 영주의 수입필요가 증대했는가? 낭비 증가의 이유는 교역의 급속한 확대.

b) 농노의 도망: 도망갈 곳이 없이 도주할 수 있었을까? 도시의 성장이 이를 뒤받침 했을 것.

교역의 증가와 이에 따른 시장을 위한 생산의 증가는 봉건체제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쳤음:

a). 합리적 분업과 특화체제의 확립은 장원적 생산조직의 비효율성을 부각.

b) 상인들뿐만 아니라 교환경제에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은 사업적인 태도를 갖게 됨

c) 봉건계급의 기호가 증대 - 낭비가 심해짐.

d) 도시의 발흥은 더 나은 삶에로의 전망을 열어줌.

Dobb이 주장하듯 상업이 발전하던 동유럽에서 재판농노제가 나타나기도 했음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음:

a) 봉건반동에서 볼 수 있는 반례에도 불구하고 저변에 깔린 장기적인 경향을 그래도 농노제의 붕괴. 농촌에 남아있던 농민들의 생활조건도 장기적으로 개선되는 추세.

b) 동부유럽에서 재판농노제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도시화가 덜 진전되어 있었기 때문임. 즉 농민들의 선택가능성이 없었기 때문. 서유럽의 봉건제는 (도시라고 하는 농민들의 선택권 때문에) 지배계급이 사회의 노동력을 통제하여 그로부터 과잉착취를 못했기 때문.


3) 자본주의의 기원

Marx의 “진정으로 혁명적인 길”을 다르게 해석. 즉 이는 자본가의 사회적 배경(생산자 출신 vs. 상인출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님. 오히려 임노동에 기반한 자본제적 생산과 선대적인 생산이 대조되고 있음. 선대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본제로 이동하는 경우가 혁명적인 길이라고.

14-16세기: 이는 봉건제의 연장으로 파악할 수는 없음. 이는 봉건제도 자본제도 아닌 전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단계. 물론 그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체제는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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