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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7,11장 정리

7장. 말하기의 의무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추장에게 말하기는 강제적 의무이고 부족은 추장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침묵하는 추장은 더 이상 추장이 아니다.

(192쪽)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지만 전혀 아무런 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전통적인 생활 규범에 대한 칭송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분들다운 생활 방식으로 행복하게 잘살았지. 그분들의 전례를 따르면 우리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추장의 이야기의 요지는 결국 이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장의 말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장이 진정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의 소재지로 보이는 추장에게서 발화되는 공허한 이야기는 원시사회의 어떠한 필요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추장의 이야기가 공허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장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기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력의 말, 권위의 말, 명령의 말이 될 수 없다. 명령은 정말로 추장이 내릴 수 없는 것이고 추장의 말은 그처럼 충만한 말이 될 수 없다. 자기 의무를 망각하고 명령을 시도한 추장은 복종의 거부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추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니고 있지 못한 권력을 남용한 추장만이 아니라 고작 권력의 남용이나 꿈꿀 정도로 미친 추장, 즉 추장답게 행동해보려 하는 추장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원시사회는 추장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이기 때문에 분리된 권력을 거부하는 장이다.

(194쪽)

 

 

 

 

 

 


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① 원시사회는 국가없는 사회 : 이것이 보통 원시사회가 완전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결여’의 증거로 이해됨. ⇒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보하며 모든 사회는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 상태로 나아간다는 자민족 중심주의. (ex: "정치적으로 통합돼 있는 모든 사회는 과거에는 야만 상태였다.“(레이날)) 그러나 국가의 문명을 모든 사회의 필연적인 도착 지점으로 상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아직도 원시인들을 야만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② 국가 없는 사회, 무문자 사회, 시장 없는 사회, 역사 없는 사회는 진화의 前단계다? : 원시사회가 잉여를 생산하지 않는 것은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여 잉여를 생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가정.

⇒⇒ 원시사회도 공업사회와 비슷한 정도로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 보유. 즉, 모든 인간 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음. 한 사회가 얼마나 기술을 잘 갖추고 있는가는 그 사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의 필요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함.


③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고 할 때, 그것이 오직 그 사회의 존속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기 위해 항상 생산력의 총체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야만인은 게으르다”)

⇒⇒ but, 실제로 인디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지만, 굶어죽지 않았음. 여러 인디언 부족들의 생계경제는 모든 시간을 식량을 얻는 데 투여하는 고통스러운 것과는 다름. 남아메리카 농경민 투피-과라니족의 경우 인구의 절반인 남자들은 사실상 4년마다 2달만 일할 정도. 생계경제는 비참함과 거리가 멀다.


④ 원시사회에서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제가 원시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는 것은 그 사회의 결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에 대한 거부이자 필요의 충족과 조화시켜 생산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함.


⑤ 원시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활동의 주인이자 그 활동에 의한 생산물의 유통의 주인.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생산하던 원시인이 교환도 호혜성도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산할 때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짐. 생산 활동이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고 교환의 질서가 부채의 공포로 무너질 때 우리는 노동에 대해 말할 수 있음.


⑥ 역사는 상호 절대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가지 유형의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원시사회 또는 국가 없는 사회 다른 하나는 국가를 가진 사회. 각 사회들 사이에 환원 불가능한 불연속적인 선을 긋는 것은 바로 국가기구가 존재하는가의 여부.


⑦ 신석기 시대의 단절이 사회 체계의 기능 변화를 가져왔는가? 그렇지 않다.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것 중에서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의 이행은 안정적인 인구 집중화를 통해 도시와 국가 형성을 가능케 했다는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됨. 그러나 수렵, 어로, 채집이 반드시 이동 생활 방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님. 농경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주 생활을 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 즉, 생태학적으로 농업에 적합하지만 농경 생활을 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그들이 농경 생활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

⇒⇒ 콜럼버스 이후 기술혁명(馬과 화기의 획득)의 결과 농업을 버리고 전적으로 사냥에 종사하는 것을 택한 정착 농경민의 사례 발견. 이들의 농업 포기는 인구 분산이나 이전의 사회조직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음.

⇒⇒ 원시사회들에 관한 한, 맑스가 말한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 반영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음. 인디언 원시사회는 오히려 상이한 하부구조에 동일한 상부구조를 지니고 있음.


⑧ 국가가 지배-피지배관계의 반영, 지배계급이 폭력적 권력 독점의 결과라면 국가는 대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이미 다른 장에서 충족된 기능을 수행하는 쓸모없는 기관일 뿐인가? 국가가 사회구조의 반영일 뿐이라는 관점에 기초한 이런 질문은 국가 출현의 문제를 지체시킬 뿐이다. 원시사회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왜 나타나는지를 자문해야 함. 모든 문명인들도 원래는 원시인들이었다고 한다면 무엇이 국가를 탄생시켰나?

⇒⇒ 이 기원의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출현하지 않는 조건을 해명하는 것은 가능. 부족사회에는 왕이 없고 단지 국가의 추장이 아닌 추장이 있음.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음. 추장의 임무는 말을 독점하여 개인, 가족, 동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 그러나 추장의 말은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분쟁은 폭력을 통해 해결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위신을 지닐 수 없음.


⑨ 군사행동의 준비, 지휘는 추장이 최소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러나 일단 행동이 끝나면 전투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전쟁의 추장은 권력을 지니지 못한 추장으로 되돌아가고 어떤 경우에도 승리함으로써 생긴 위신이 권위로 전화되지 않는다. 부족에게 있어서 추장이란 부족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장이 과거에 거둔 승리는 쉽게 잊혀짐. 추장이 영속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잊혀지기 전에 자신의 명성과 위신을 사람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 전쟁을 치를 기회를 만들어야 함.

 ⇒⇒ 그러나 권력의 진정한 장소로서의 사회는 권력을 특정인에게 넘기는 것을 거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추장은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음.


⑩ 사회의 통제를 벗어난 유동적인 영역으로서 ‘인구동태’ : 어떤 사회가 원시사회이기 위해서는 그 인구가 적어야 함. 부족 세계의 원자화는 지역 집단을 통합하는 사회-정치적 집합체가 구성되는 것을 막는 효과적 수단. 그러나 투피-과라니족은 상대적으로 인구밀도 높음.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추장의 권력 획득 추구 경향이 드러남. 이는 추장이 국왕으로 격상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는데, 유럽인들의 도래로 이것이 돌연 중단. 하지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한 것은 유럽의 도래가 아니라 카라이를 중심으로 한 원시사회 내부의 자각.


⑪ 카라이들은 수천 명의 인디언을 이끌고 신들의 고향을 찾아 광적인 여행을 함. 이들은 권력의 생성이 국가 없는 사회인 투피-과라니를 불행과 사악함으로 내몰고 있다고 판단. 한편에는 추장들이 다른 한편에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예언자들이 있는 것이 15세기 말 투피-과라니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

 ⇒⇒ 말하기를 유일한 무기로 지닌 예언자들이 인디언들을 동원하여 종교적 이동에 참가시켰다는 것은 그들이 추장의 프로그램을 일거에 실현했다는 것. 예언자들의 이야기 속에 아마도 권력의 이야기가 배태되어 있고,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선도자의 고양된 모습 속에 전제군주의 모습이 은밀히 숨겨져 있는 것일 수도. (폭력의 반대편에 말하기가 있다는 생각을 수정해야 함.)

 ⇒⇒ 그럼에도 투피-과라니족의 시도는 통일화의 거부와 하나인 국가를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보여줌.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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