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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메모.

 

 

어제 ITQ 엑셀과 액세스 시험을 봤다. 시험 보러 온 인파의 절반이 초딩들이다. 물론 초딩들은 주로 파워포인트 시험을 봤지만... 여튼 초딩들 사이에 끼여서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이런 시험 보려고 한달동안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했던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이런 일로 소일 하는거 외에는 시간 때울 방법이 없는 내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뭐 그랬다.

 

시험 끝나고 전날 밤 부터 징징대는 석돌이에게 갔다왔다. 집에 돌아가면 또 멍때리고 있다가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아 밥도 안 먹고 바로 기차를 탔다. 편안하게 집에서 있는 것보다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이 살짝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책도 잘 읽힌다.

 

 

요즘 읽는 책

 

기차 안에서 일주일 내내 끼고 있었던 서영표 교수의 <런던코뮌>을 대충 다 읽었다.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좋은 책이다. 물론 런던광역시의회의 급진적 실천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좀 어렵기도 하고 또 서술과정의 굴곡도 좀 있는 것 같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는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작년 말에 손호철-조희연 사이에 있었던 논쟁들이 생각났다. 사실 그때 서영표는 조희연의 편에 서서 손호철의 경직성(?)을 비판했는데, 그 논쟁 이후에 서영표가 줄곧 냈던 입장들이나 이 책을 보면, 왠지 그가 논쟁 과정에서 포지션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손호철-조희연의 차이는 08년체제를 인정할 거냐 말거냐의 대립이었는데, 서영표는 조희연의 편에 서면서 사실상 딴 얘기를 했다. 이를테면 그가 <런던코뮌>에서 줄곧 강조했던 (E.P Thomson식의) 대중/민중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던지, 생활정치가 중요하다던지 하는 그런 얘기들... 나는 서영표의 그런 강조점이 중요하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조희연이 주장하는 역동적 연합정치 같은 것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그래서 작년 서강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내가 서영표에게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08년 촛불집회라는 우연적 계기를 통해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우연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는 문제라면 대체 08년이 체제로 규정될 이유는 뭔가? 체제라는 것이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내가 자신의 주장을 오해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뭐가 오해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해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오해를 생산했던 것은 서영표 스스로가 자신의 입장과는 무관한 포지션에 서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방선거

 

지난 며칠간 나온 지방선거 분석 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분석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엄기호의 글이다. (<20대는 왜 민주당을 찍었나?>) 경기도에 살고 유시민을 지지한다는 우리 매형과 얘기를 해 보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안보논리는 더 이상 젊은 층에게 안 먹힌다. 좀 더 넓게 잡아보자면 40대 초반 정도 유권자의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건 구청 공무원 나으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느낀 거다. 거기다가 엄기호의 말대로, MB님은 항상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시니 꼴깝스러워 보일밖에...

 

물론 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딱히 요즘 세대가 냉전 세대보다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인 부류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21세기의 상식의 패러다임을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MB가 한나라당 쇄신파의 입장을 수용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자멸의 길일 것이다. 그런 류의 상식을 수용할 수 있는 세대는, 정말 생물학적으로 소멸중이다. 문제는 MB가 자신이 당선되면서 그런 상식까지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은 그를 경제살리라고 뽑아줬지, 북한 혼내주라고 뽑아주지 않았다.

 

요즘 연합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여기서 한나라당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연합정치든 독자노선이든 선택하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만약 한나라당이 계속 이딴식으로 노인네 정서만 붙들고 있는다면? 민주당은 2012년 총선/대선도 손 하나 까닥 않고 대박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그 옆에서 바람잡이 역할 하면서 10년 소수정당의 설움을 떨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도 짱구가 있는 이상 그렇게 할까? 지난 정권들에서의 양상을 보면 정권 레임덕이 오면 항상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왕따시키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 정권에서 아무리 큰 집 영향력이 세다고 해도 이런 경향성에 따른 힘을 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 천안함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정성으로 주가가 떨어지자, 펀드로 먹고사는 수도권 3-40대들이 대거 야당에게 표를 던졌다는 항간의 분석들이 실증성있게 받아들여진다면 한나라당의 쇄신은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그 '경제적/동물적 감각'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거다. 빨갱이사냥으로 나타나는 대북문제 등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정치쟁점들은 인구학적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쟁점이고, 그러니 보수니 개혁이니 하는 구분이 대북문제를 기준으로 형성되는 것은 늦어도 2012년 대선이 마지막일 것이다. 북한 문제야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제나 따라오겠지만, 지금 같은 색깔론으로 재생산되는 상황이 종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동일성은 더욱 가시화 될 것이다. 이런 경향성을 인정한다면 특수한 상황에 따른, 또는 정세에 따른 민주당과의 연합정치를 넘어선 전략적인 반MB연대라는 것은 죽음의 전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너무 두서 없이 써서 매끄럽지 못한데, 나중에 다시 제대로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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