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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2장 정리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저(이학사), 요약 정리




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


사실상 권력은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원시 문화에서도) 폭력과 완전히 분리되어 위계질서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고대적 사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이다. 비록 그 정치적이라는 것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그 의미는 곧바로 해독되지 않으며, “무력한impuissant" 권력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1) 여러 사회들을 권력이 있는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라는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민족지 자료를 충실하게 인정했을 때) 정치권력은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것(이것이 혈연에 의해 규정되든 사회 계급에 의해 규정되든 간에)에 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적 권력과 비강제적 권력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양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2) 강제로서의 정치권력(즉 명령-복종 관계)은 진정한 권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 예컨대 서구 문화(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지만)의 정치권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권력 양식만이 준거 틀로서 여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양식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어야 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3) 심지어 정치제도가 없는 사회(예를 들어 추장이 없는 사회)에서도, 그런 사회에서조차도 정치적인 것은 존재하며 권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불가능한 권력 부재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하도록 유도하는 기만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아마도 은밀하게 그 부재 속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인간 본성, 즉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이 점에서 니체의 생각은 틀렸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폭력 없는 정치는 상정할 수 있지만 정치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권력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회적 유대를 창출해냄으로써 나타난다”는 드 주브넬의 명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를 비판하는 라피에르의 견해에 찬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유치하게(이것이 진정 유치함의 문제일까?) 자민족 중심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이상의 지적은 라피에르가 자신의 책 제4부에서 제시한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의 규모가 클수록, 속도가 빠를수록,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을수록 더 발달한다”는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예시들로 뒷받침되는 이 논증은 엄밀하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분석들과 결과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한다. 그가 거론하고 있는 정치권력, 즉 사회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치권력은 우리가 강제적이라고 부르는 권력일 따름이다. 결국 라피에르의 이론은 명령-복종 관계가 발견되는 사회들에만 적용되고 그렇지 않은 사회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디언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사회 혁신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 혁신은 강제적 정치권력의 기초일지는 몰라도 비강제적 권력의 기초는 분명히 아니다. 오직 강제적인 권력만이 있을 뿐이라고(이것은 불가능하다) 단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라피에르의 이론은 사회 혁신이 없는 곳에는 정치권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특정한 사회 유형, 특수한 정치권력의 양식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즉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은 사회 내부에 혁신, 변화 그리고 역사성의 동인을 갖추고 있는 역사적인 사회들의 표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 없는 사회이고 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양한 사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은 역사 없는 사회들을 권력 없는 사회로 취급하는 권력에 대한 현재의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29-32쪽)




라피에르는 “맑스주의의 진리는 사회적 힘들 사이의 투쟁 없이 정치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 점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옳지만 사회적 힘들이 투쟁하고 있는 사회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사회 투쟁 없이는 폭력으로서의 권력(그리고 그 궁극적 형태인 중앙집권적인 국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투쟁 없는 “원시공산제”가 지배하는 사회들에서는 어떠한가? 맑스주의는 비非역사에서 역사로의 이행, 비非강제서 폭력으로의 이행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맑스주의는 실제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보편 이론, 즉 인류학이 될 것이다.

(33쪽)





2장. 교환과 권력: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



①민족학 이론에서 원시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관점

- 대부분의 원시사회가 어떤 정치조직도 지니지 못한 아나키적 단계라는 관점.

- 아나키 상태를 벗어나 인간 집단에게 유일한 존재 양태로서 정치제도를 만들어 냈는데, 이 경우 정치제도의 ‘과잉’으로서 절대권력의 길로 접었다는 관점.

⇒ 비서구 사회가 운명적으로 정치적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서구적 관점의 한계. (남아메리카 대다수 인디언 사회들이 갖는 아나키적인 분리 경향은 잉카의 전체주의적 제국과 대비된다고 하는 관점 등)


②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지 못한 권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추장이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추장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 이러한 “실체”없는 제도를 존속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물어야만 함.

- 명목상의 추장이 가진 세 가지 특징 :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 / 추장은 자기 재화에 대해 집착 안 함 / 추장은 말을 잘 해야 함.

- 대부분의 부족들이 전시 외에는 추장을 두지 않았음. 즉 추장의 책무는 집단 내부의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는 것.

- 추장은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추장에게 의무 이상의 것.

- 인디언들은 추장의 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함. 말솜씨는 정치권력의 조건이자 수단.


③ 남아메리카에서의 보조적 특징 : 거의 모든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나, 그것을 추장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 실제 자연 성비에 따라 모든 남성이 한 사람 이상의 여성과 결혼해서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되는 것은 불가능.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카스트, 노예제 관행, 전쟁과 같은 요소가 개입했을 때.


④ 위의 총 네 가지 특징 중 첫 번째 것과 나머지 세 가지는 명확히 구별됨. 후자들은 사회구조와 정치제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증여와 대증 증여의 집합을 규정. (추장이 예외적인 수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권리를 지니는 대신 집단은 추장에게 재산에 대해 연연하지 말 것과 말솜씨를 요구) 추장의 중재적 기능은 반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와는 다른 영역에서 발휘됨. 추장의 역할은 여론에 의해 영향 받음.


⑤ 추장은 경제적 재화와 언어기호를 대가로 집단으로부터 여성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추장의 권위는 대부분 그의 관대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인디언들의 요구는 종종 추장의 직접적인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그 때 추장은 대부분의 자기 부족원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추장의 권위는 약한 만큼 그의 사회적 지위는 부러움을 사지 않는다. 엄청난 특권을 지닌 추장권이 집행에는 무력한 이유는 무엇인가?


⑥ 정치적 영역의 중심에 있는 소통의 세 가지 차원의 위상

- 여성(집단→추장) : 추장은 집단에 대해 자기가 받은 것과 똑같은 수의 여성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 (추장은 부계제로 상속) 이것은 교환이 아니라 집단이 지도자에게 주는 순수하고 대가 없는 증여.

- 재화(추장→집단) : 남아메리카의 인디언 사회들 중 지도자에게 경제적 증여를 하는 사회는 드물고, 추장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카사바를 경작하고 사냥을 함.

- 언어 : 언어에 대한 지배권은 추장이 가짐. 트루마이족 추장의 최측근 두 사람은 몇몇 특권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추장처럼 말할 수 없음. why? 그들 자신이 말하는 행위가 추장과 그 말 모두를 더럽힌다고 느끼기 때문.

⇒⇒ 집단의 여성은 추장의 재화 및 메시지와 교환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고유한 회로를 따라 움직임. 각각의 과정은 교환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호혜적 움직임을 통해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세우는 여러 요소들에 대하여 권력은 특권적 관계를 지닌다.


⑦ 추장은 왜 무력한가? : 정치적 기능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집단 안에 내재되어 있어야만 하지만, 인디언 사회에서는 그것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심지어 집단을 배제하기까지 한다. 사회의 외부로 정치적 기능을 추방하는 것은 그것을 무력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수단.


⑧ 권력의 무기력함은 권력이 전체 체계의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됨. 그리고 이 위치 자체는 여성, 재화 그리고 말의 교환이라는 결정적 순환에 권력이 도입하는 단절로부터 생김. 그러나 이 단절의 우연성을 부각시켜 해석하는 방식은 남아메리카 대륙 지역의 대부분의 부족이 절대 진정한 정치적 권위를 지닐 수 없었다는 견해(모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세 가지(여성, 재화, 말)의 순환과 권력의 단절이 우연적이라는 관점의 부정, 즉 그것에 필연성을 가정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학적 지향성을 형성. 인디언 문화의 이 “결정”은 환상으로부터 생긴 비합리적 성과가 아니라 하나의 내재적 합리성이 존재하고 있음.


⑨ 권력은 본질적으로 강제력이고, 정치 기능의 통일을 향한 활동은 사회구조라는 기초 위에서 그리고 사회구조에 합치하도록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고 사회에 적대적인 피안으로부터 사회에 대항하여 행사됨. 따라서 이들 사회는 권력의 초월성이 집단에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외재적이고 스스로 정당성을 창출하는 권위라는 원리가 문화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낸,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한 사회였던 것.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권위의 설립자가 되었고, 권력이 출현하면 그 즉시 억제하는 부정성을 견지.


⑩ 자연재해등의 상황에서 주민들은 추장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듯 하지만, 여기에는 추장에 대한 집단의 협박이 숨겨져 있음. 즉 추장에게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을이나 무리의 사람들은 쉽게 추장을 버리고 추장의 의무에 보다 충실한 지도자를 택하겠다는 것.


⑪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imago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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