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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동,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발췌독

민족 '말살'은 물질적 폭력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야만적 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자원의 수탈을 1차적 목적으로 삼는 원시적 폭력이 폭력적 지배를 당하는 이들에게는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차적이고 물리적인폭력에 대해서는 폭력을 수용하는 방법 이외에 달리 선택할 수단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때리는 자에 비해 밪는 자가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욱 가공할 폭력은 동일화라는 폭력이다. 타자를 자신과 동일화화련느 것은 물리적으로 절멸시키는 행위보다 타자에 게 더욱 근원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외부의 강제로 변해야 하는 상황을 사람들은 더욱 참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동일화정책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단계에 이르면, 일정한 수준에서 '국민주의'적 지배 형식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징병, 곧 혈세를 강요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식민지 피지배민에게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에게 의무교육의 조속한 실시를 약속하고,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의지를표명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일본인과 조서닌이 동일하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인의 내면은 분열하게 된다 .도일화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식민지 동화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식민지 동원 체제는 식민지 주민에게 피지배자의 역할과 타자에 대한 침략을 동시에 요구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한 몸으로 몇 겹의 삶을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렇듯 식민지 동원 체제는 식민지 지배자로부터 인간적 모멸을 어떤 방식으로든 견딘 식민지 조선인에게 자신이 겪은 모멸감을 또 다른 그 누군가에게 강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근대의 야만'이었다.  (27-9쪽)

 

 

 

서구에서 생산한 근대관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방식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라는 발상이다. 서구는 항상 식민지를 대상화하고 이를 자신들의 근대관 속에 편입시켜 사고해왔다. 식민지를 제외한 채 서구 근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는 언제나 서구 근대를 대상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외부로서 추종해 따라잡아야할 목표로 간주해왔다. 이런 방식의 서구 근대 이해에서 서구 근대란 식민지 자신 속에 내재화되어야 할 외부이며, 이에 따라 언제나 외부화될 수 없는 내부이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는 식민지에서 서구 근대를 대상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서구 근대는 식민지에 언제나 내부화되어 있지만 항상 외부화될 수밖에 없는 내부로서 사유하고자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전유하고자 하는 발상을 식민지 근대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 근대'의 발상은 언제나 서구 근대를 사유의 틀 속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내부화된 서구 근대를 언제나 대상화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으로 서구 근대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문제의식에 의해서만 그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식민지 근대'를 사유할 때 식민지와 근대를 분리하거나 더욱이 이를 대립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명-야만의 이항대립적 근대 설정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란 '식민지성'과 '근대성'이 결합한 것일 수는 없다. 언제나 근대는 위계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즉 식민지 근대를 포함하여 어떤 맥락 에서의 근대든 모더니티(근대성)의 존재 여부로 근대의 존재나 성격이 결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근대적 기준이 아닌 새로운 근대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원적인 근대사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구적 근대성으 억압성에 저항하기 위한 시도로서 곧 서구 근대를 비판하기 위해 근대의 다양성을 상정하는 것, 다시 말하면 '비유럽적 근대' 또는 '다원적 근대'를 설정하는 방식으로는 순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식민지 근대가 근대 비판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타당한 것이다. 근대 비판으로서의 식민지 근대 설정은 '새로운 근대'를 설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 근대를 서구 근대(제국주의 근대)의 '대항 개념'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모더니티의 배치 문제로서 '식민지 그대'는 성립할 수 있고, 서구 근대와 맞물려서 돌아가는 근대의 한 양상으로서만 '식민지 근대'라는 문제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 '식민지 근대'란 '이식된 근대'의 합리화된 체계를 적대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서구 근대의 합리화 과정의 도구성에 맹목적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69-71쪽)

 

 

 

그렇다면 다시 '식민지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란 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란 일종의 제도이기도 하고 동시대와 연관된 생활양식, 태도, 자세 등 일종의 에토스(ethos)이다. 또한 근대의 에토스란 도구적 합리성에 기초하는 것으로, 월러스틴의 분류에 의하면 양면적 근대의 한쪽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 중 '기술의 긘대'가 바로 그것이다. '기술의 근대'는 외부 강제에 의한 산물이지만, 식민지민의 열망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근대성'은 '잡종성'으로 표현되며, '식민지 근대'가 잡종화할 운명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 근대'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성은 근대의 역사적 특성을 구성한다.

이런 상호작용의 관계는 식민지민의 존재가 문화의 교류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당연히 문화변용(acculturation)의 방식을 문제 삼게 한다. '기술적 근대'의 '도구적 합리성'은 일종의 모듈로서 외부로부터 강제되었으나 스스로 학습하고 변용하여 내면화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다. 비록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이것은 정당한 문화 융합의 한 모습을 이룬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해방운동의 저항성이라는 것도 제국주의적 근대의 모방이나 그 변용과 다르지 않다.

또한 기술의 근대는 해방의 근대의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식민지하의 전통(비근대)이란 대개의 경우 근대의 입장에서 재단된 변하지 못한 잔여 부분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간직해야 할 어떤 가치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술의 근대에 의해 재단된 전통은 해방의 근대로 귀속되어야할 그 무엇으로 전용되기도 하지만, 해방의 근대에 귀속된 전통은 역으로 해방의 근대 그 자체의 성격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79-80쪽)

 

 

 

일제의 조선 병합 이후 이런 문명화의 열망, 즉 서구 선망=모방의 경향은 일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정당화될 수 있었다. 문명-개화와 국민화의 논리적 기초는 식민지하에서 문화주의와 '민족'의 논리로 연장, 발전되고 있었고, 이런 기반 위에서 서구 선망=모방은 관념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1920년대 문화주의-문화운동은 이방적인 서구 수용의 열망 위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런 경향은 좌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부정된 서구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 구소련은 대안적 서구 문명으로서의 좌파들의 '대안적 근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좋은 관념적 대상물일 뿐이었다.  즉 반일 민족주의와 내면화된 '식민주의'(서구 선망)는 상호 순기능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식민적 분열 증상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식민적 분열 증상은 서구 문명(문화)이나 도구적 합리성의 수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고, 한국인들의 독특한 근대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미국에 대한 선망은 이런 분열 증상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82쪽)

 

 

 

192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적어도 다음의 여섯 가지의 사회적인 것, 하위 사회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행정 관료적 영역, 경제적 영역, 종교적 영역, 문화적 영역, 집합적 운동의 영역, 하위 지역적 영역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개의 영역은 국가로부터의 분리가 아직은 의심스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서서히 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네 개의 영역은 1920년대 이후 명확히 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어느 영역이나 이념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영역의 분리는 명확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식민지하 대중의 형성은 근대적 사회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한편 여기에서 거론된 사회적인 영역은 일상적으로는 정치적인 성격을 상실한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사적인 특성이 공적인 것으로 부상하는 순간 항상 '정치적인 것' 과 부딪치게 된다. 이런 정치적인 것이 부상하게 될 때 공공연한 저항의 영역과 협력의 영역이 분리되게 마련이다. 저항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하는 것이며, 이런 정치적인 행위가 부상하는 과정은 사회적인 영역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성격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중화현상은 두 가지의 재주술화를 계기로 역진하게 된다. 개인적 주체를 대중적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재주술화라고 한다면, 탈주솨의 결과를 매개해서만 재주술화는 진행된다. 이러한 재주술화는 식민지 '계몽'과 연관된 것이기도 했다. 식민지기 계몽은 대중으로 하여금 '합리화된 체계'를 구성하도록 유도했다. 대중의 합리화는 식민지 의제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창출, 확대되는 사회적 합리성과 이를 통해 분리된 사회 속에서 식민지 지식인 엘리트가 수행하는 사회적 계몽의 분리 속에서 진행되었다. 둘 다 위로부터의 계몽의 기획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 합리성의 확대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서구 근대의 초기 국면에서 양자가 협조한 것과 같은 관련을 맺니는 안핬다. 물론 기본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양자는 오히려 적대적인 측면을 더욱 강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식민지기 계몽의 역설 위에서 구축된 것이 바로 대중의 재주술화 과정이다. 합리화는 권력의 한 양상을 구서아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몽을 둘러싸고 권력과 저항운동은 대립한다. 이처럼 식민 권력의 합리화 과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사회적 계몽은 동일한 '합리화된 체계'를 구성하고자 함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대중의 재주술화를 위한 연합군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 체계라고 할 수 있다. (89-90쪽)

 

 

 

유신 체제는 일정한 수준의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수준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준전시적 동원 체제하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다는 점이 유신정권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변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국민적 동의가 주권독재, 즉 국가와 민족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국민주권 이념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유신 체제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지지 기반 중 하나로 주장되고 있었다.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는 동태적 개념으로서 하나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이것은 현실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민족국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했던 민주주의가 국민적 동의를 획득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주권독재를 옹호하고, 준전시적 동원 체제를 기반으로 대중독재를 지지하는 매개자이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현실성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제약하고자 했던 '한국적 민주주의'가 이념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에 저항하던 시민사회의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넘어 이념적 성향이 강한 민주주의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규정하는 거시 바로 박정희의 유신 체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약한 자유주의와 강한 민주주의로 특징지어진다는 최장집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재산권 최우선의 원리나 시장과 경제적/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중앙집중화된 정치권력에 반하여 민주주의와 민주적 공적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그 핵심 내용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약한 자유주의적 내용을 갖지만, 강한 민주주의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컨대 한국적 조건에서 시민사회의 형성에는 운동의 맥락과 전통이 매우 중요했으며, 운동으로 표출되는 공적 정신 내지는 공공선의 가치가 압도적인 내용을 갖는 것이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18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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