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뒤 진행될 인권교육 워크샵에 이계삼 선생님을 강사로 섭외했다. 오늘 보내주신 자료집 글에, 예전에 읽었던 <상처의 의미>라는 글이 있다. 다시 읽더보니 또 새록새록 아름다운 문장들이 다가온다.
"아이들은 무수한 상처를 받으며 성장한다. 누구도 상처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존재에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상처를 발생시킬 일체의 가능성을 거세한 무균질의 진공 상자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양육된 존재는 영혼 없는 물질덩어리일 뿐이며, 적당한 자극에 예측 가능한 크기로 반응하는 모르모트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그 불균형과 부조화로 인하여 예측 불가능한 폭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육은 상처를 거세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응시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결국, 교육이란 상처와 뒤엉켜 그것과 함께 흘러가는 과정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지난 시절 한국 교육은 아이들의 상처에 완전히 무심했고, 이제는 이 상처가 폭력으로 분출하는 현실에 대한 공포로 전전긍긍할 따름이다. "
이게 힐링이고, 멘토링이다. 상처를 감당할 자신 없으면 빠지는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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