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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말하기의 의무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추장에게 말하기는 강제적 의무이고 부족은 추장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침묵하는 추장은 더 이상 추장이 아니다.
(192쪽)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지만 전혀 아무런 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전통적인 생활 규범에 대한 칭송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분들다운 생활 방식으로 행복하게 잘살았지. 그분들의 전례를 따르면 우리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추장의 이야기의 요지는 결국 이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장의 말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장이 진정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의 소재지로 보이는 추장에게서 발화되는 공허한 이야기는 원시사회의 어떠한 필요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추장의 이야기가 공허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장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기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력의 말, 권위의 말, 명령의 말이 될 수 없다. 명령은 정말로 추장이 내릴 수 없는 것이고 추장의 말은 그처럼 충만한 말이 될 수 없다. 자기 의무를 망각하고 명령을 시도한 추장은 복종의 거부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추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니고 있지 못한 권력을 남용한 추장만이 아니라 고작 권력의 남용이나 꿈꿀 정도로 미친 추장, 즉 추장답게 행동해보려 하는 추장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원시사회는 추장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이기 때문에 분리된 권력을 거부하는 장이다.
(194쪽)
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① 원시사회는 국가없는 사회 : 이것이 보통 원시사회가 완전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결여’의 증거로 이해됨. ⇒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보하며 모든 사회는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 상태로 나아간다는 자민족 중심주의. (ex: "정치적으로 통합돼 있는 모든 사회는 과거에는 야만 상태였다.“(레이날)) 그러나 국가의 문명을 모든 사회의 필연적인 도착 지점으로 상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아직도 원시인들을 야만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② 국가 없는 사회, 무문자 사회, 시장 없는 사회, 역사 없는 사회는 진화의 前단계다? : 원시사회가 잉여를 생산하지 않는 것은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여 잉여를 생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가정.
⇒⇒ 원시사회도 공업사회와 비슷한 정도로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 보유. 즉, 모든 인간 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음. 한 사회가 얼마나 기술을 잘 갖추고 있는가는 그 사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의 필요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함.
③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고 할 때, 그것이 오직 그 사회의 존속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기 위해 항상 생산력의 총체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야만인은 게으르다”)
⇒⇒ but, 실제로 인디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지만, 굶어죽지 않았음. 여러 인디언 부족들의 생계경제는 모든 시간을 식량을 얻는 데 투여하는 고통스러운 것과는 다름. 남아메리카 농경민 투피-과라니족의 경우 인구의 절반인 남자들은 사실상 4년마다 2달만 일할 정도. 생계경제는 비참함과 거리가 멀다.
④ 원시사회에서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제가 원시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는 것은 그 사회의 결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에 대한 거부이자 필요의 충족과 조화시켜 생산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함.
⑤ 원시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활동의 주인이자 그 활동에 의한 생산물의 유통의 주인.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생산하던 원시인이 교환도 호혜성도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산할 때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짐. 생산 활동이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고 교환의 질서가 부채의 공포로 무너질 때 우리는 노동에 대해 말할 수 있음.
⑥ 역사는 상호 절대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가지 유형의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원시사회 또는 국가 없는 사회 다른 하나는 국가를 가진 사회. 각 사회들 사이에 환원 불가능한 불연속적인 선을 긋는 것은 바로 국가기구가 존재하는가의 여부.
⑦ 신석기 시대의 단절이 사회 체계의 기능 변화를 가져왔는가? 그렇지 않다.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것 중에서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의 이행은 안정적인 인구 집중화를 통해 도시와 국가 형성을 가능케 했다는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됨. 그러나 수렵, 어로, 채집이 반드시 이동 생활 방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님. 농경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주 생활을 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 즉, 생태학적으로 농업에 적합하지만 농경 생활을 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그들이 농경 생활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
⇒⇒ 콜럼버스 이후 기술혁명(馬과 화기의 획득)의 결과 농업을 버리고 전적으로 사냥에 종사하는 것을 택한 정착 농경민의 사례 발견. 이들의 농업 포기는 인구 분산이나 이전의 사회조직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음.
⇒⇒ 원시사회들에 관한 한, 맑스가 말한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 반영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음. 인디언 원시사회는 오히려 상이한 하부구조에 동일한 상부구조를 지니고 있음.
⑧ 국가가 지배-피지배관계의 반영, 지배계급이 폭력적 권력 독점의 결과라면 국가는 대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이미 다른 장에서 충족된 기능을 수행하는 쓸모없는 기관일 뿐인가? 국가가 사회구조의 반영일 뿐이라는 관점에 기초한 이런 질문은 국가 출현의 문제를 지체시킬 뿐이다. 원시사회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왜 나타나는지를 자문해야 함. 모든 문명인들도 원래는 원시인들이었다고 한다면 무엇이 국가를 탄생시켰나?
⇒⇒ 이 기원의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출현하지 않는 조건을 해명하는 것은 가능. 부족사회에는 왕이 없고 단지 국가의 추장이 아닌 추장이 있음.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음. 추장의 임무는 말을 독점하여 개인, 가족, 동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 그러나 추장의 말은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분쟁은 폭력을 통해 해결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위신을 지닐 수 없음.
⑨ 군사행동의 준비, 지휘는 추장이 최소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러나 일단 행동이 끝나면 전투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전쟁의 추장은 권력을 지니지 못한 추장으로 되돌아가고 어떤 경우에도 승리함으로써 생긴 위신이 권위로 전화되지 않는다. 부족에게 있어서 추장이란 부족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장이 과거에 거둔 승리는 쉽게 잊혀짐. 추장이 영속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잊혀지기 전에 자신의 명성과 위신을 사람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 전쟁을 치를 기회를 만들어야 함.
⇒⇒ 그러나 권력의 진정한 장소로서의 사회는 권력을 특정인에게 넘기는 것을 거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추장은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음.
⑩ 사회의 통제를 벗어난 유동적인 영역으로서 ‘인구동태’ : 어떤 사회가 원시사회이기 위해서는 그 인구가 적어야 함. 부족 세계의 원자화는 지역 집단을 통합하는 사회-정치적 집합체가 구성되는 것을 막는 효과적 수단. 그러나 투피-과라니족은 상대적으로 인구밀도 높음.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추장의 권력 획득 추구 경향이 드러남. 이는 추장이 국왕으로 격상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는데, 유럽인들의 도래로 이것이 돌연 중단. 하지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한 것은 유럽의 도래가 아니라 카라이를 중심으로 한 원시사회 내부의 자각.
⑪ 카라이들은 수천 명의 인디언을 이끌고 신들의 고향을 찾아 광적인 여행을 함. 이들은 권력의 생성이 국가 없는 사회인 투피-과라니를 불행과 사악함으로 내몰고 있다고 판단. 한편에는 추장들이 다른 한편에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예언자들이 있는 것이 15세기 말 투피-과라니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
⇒⇒ 말하기를 유일한 무기로 지닌 예언자들이 인디언들을 동원하여 종교적 이동에 참가시켰다는 것은 그들이 추장의 프로그램을 일거에 실현했다는 것. 예언자들의 이야기 속에 아마도 권력의 이야기가 배태되어 있고,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선도자의 고양된 모습 속에 전제군주의 모습이 은밀히 숨겨져 있는 것일 수도. (폭력의 반대편에 말하기가 있다는 생각을 수정해야 함.)
⇒⇒ 그럼에도 투피-과라니족의 시도는 통일화의 거부와 하나인 국가를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보여줌.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저(이학사), 요약 정리
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
사실상 권력은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원시 문화에서도) 폭력과 완전히 분리되어 위계질서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고대적 사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이다. 비록 그 정치적이라는 것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그 의미는 곧바로 해독되지 않으며, “무력한impuissant" 권력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1) 여러 사회들을 권력이 있는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라는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민족지 자료를 충실하게 인정했을 때) 정치권력은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것(이것이 혈연에 의해 규정되든 사회 계급에 의해 규정되든 간에)에 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적 권력과 비강제적 권력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양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2) 강제로서의 정치권력(즉 명령-복종 관계)은 진정한 권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 예컨대 서구 문화(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지만)의 정치권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권력 양식만이 준거 틀로서 여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양식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어야 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3) 심지어 정치제도가 없는 사회(예를 들어 추장이 없는 사회)에서도, 그런 사회에서조차도 정치적인 것은 존재하며 권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불가능한 권력 부재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하도록 유도하는 기만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아마도 은밀하게 그 부재 속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인간 본성, 즉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이 점에서 니체의 생각은 틀렸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폭력 없는 정치는 상정할 수 있지만 정치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권력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회적 유대를 창출해냄으로써 나타난다”는 드 주브넬의 명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를 비판하는 라피에르의 견해에 찬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유치하게(이것이 진정 유치함의 문제일까?) 자민족 중심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이상의 지적은 라피에르가 자신의 책 제4부에서 제시한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의 규모가 클수록, 속도가 빠를수록,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을수록 더 발달한다”는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예시들로 뒷받침되는 이 논증은 엄밀하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분석들과 결과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한다. 그가 거론하고 있는 정치권력, 즉 사회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치권력은 우리가 강제적이라고 부르는 권력일 따름이다. 결국 라피에르의 이론은 명령-복종 관계가 발견되는 사회들에만 적용되고 그렇지 않은 사회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디언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사회 혁신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 혁신은 강제적 정치권력의 기초일지는 몰라도 비강제적 권력의 기초는 분명히 아니다. 오직 강제적인 권력만이 있을 뿐이라고(이것은 불가능하다) 단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라피에르의 이론은 사회 혁신이 없는 곳에는 정치권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특정한 사회 유형, 특수한 정치권력의 양식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즉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은 사회 내부에 혁신, 변화 그리고 역사성의 동인을 갖추고 있는 역사적인 사회들의 표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 없는 사회이고 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양한 사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은 역사 없는 사회들을 권력 없는 사회로 취급하는 권력에 대한 현재의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29-32쪽)
라피에르는 “맑스주의의 진리는 사회적 힘들 사이의 투쟁 없이 정치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 점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옳지만 사회적 힘들이 투쟁하고 있는 사회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사회 투쟁 없이는 폭력으로서의 권력(그리고 그 궁극적 형태인 중앙집권적인 국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투쟁 없는 “원시공산제”가 지배하는 사회들에서는 어떠한가? 맑스주의는 비非역사에서 역사로의 이행, 비非강제서 폭력으로의 이행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맑스주의는 실제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보편 이론, 즉 인류학이 될 것이다.
(33쪽)
2장. 교환과 권력: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
①민족학 이론에서 원시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관점
- 대부분의 원시사회가 어떤 정치조직도 지니지 못한 아나키적 단계라는 관점.
- 아나키 상태를 벗어나 인간 집단에게 유일한 존재 양태로서 정치제도를 만들어 냈는데, 이 경우 정치제도의 ‘과잉’으로서 절대권력의 길로 접었다는 관점.
⇒ 비서구 사회가 운명적으로 정치적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서구적 관점의 한계. (남아메리카 대다수 인디언 사회들이 갖는 아나키적인 분리 경향은 잉카의 전체주의적 제국과 대비된다고 하는 관점 등)
②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지 못한 권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추장이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추장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 이러한 “실체”없는 제도를 존속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물어야만 함.
- 명목상의 추장이 가진 세 가지 특징 :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 / 추장은 자기 재화에 대해 집착 안 함 / 추장은 말을 잘 해야 함.
- 대부분의 부족들이 전시 외에는 추장을 두지 않았음. 즉 추장의 책무는 집단 내부의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는 것.
- 추장은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추장에게 의무 이상의 것.
- 인디언들은 추장의 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함. 말솜씨는 정치권력의 조건이자 수단.
③ 남아메리카에서의 보조적 특징 : 거의 모든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나, 그것을 추장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 실제 자연 성비에 따라 모든 남성이 한 사람 이상의 여성과 결혼해서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되는 것은 불가능.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카스트, 노예제 관행, 전쟁과 같은 요소가 개입했을 때.
④ 위의 총 네 가지 특징 중 첫 번째 것과 나머지 세 가지는 명확히 구별됨. 후자들은 사회구조와 정치제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증여와 대증 증여의 집합을 규정. (추장이 예외적인 수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권리를 지니는 대신 집단은 추장에게 재산에 대해 연연하지 말 것과 말솜씨를 요구) 추장의 중재적 기능은 반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와는 다른 영역에서 발휘됨. 추장의 역할은 여론에 의해 영향 받음.
⑤ 추장은 경제적 재화와 언어기호를 대가로 집단으로부터 여성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추장의 권위는 대부분 그의 관대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인디언들의 요구는 종종 추장의 직접적인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그 때 추장은 대부분의 자기 부족원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추장의 권위는 약한 만큼 그의 사회적 지위는 부러움을 사지 않는다. 엄청난 특권을 지닌 추장권이 집행에는 무력한 이유는 무엇인가?
⑥ 정치적 영역의 중심에 있는 소통의 세 가지 차원의 위상
- 여성(집단→추장) : 추장은 집단에 대해 자기가 받은 것과 똑같은 수의 여성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 (추장은 부계제로 상속) 이것은 교환이 아니라 집단이 지도자에게 주는 순수하고 대가 없는 증여.
- 재화(추장→집단) : 남아메리카의 인디언 사회들 중 지도자에게 경제적 증여를 하는 사회는 드물고, 추장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카사바를 경작하고 사냥을 함.
- 언어 : 언어에 대한 지배권은 추장이 가짐. 트루마이족 추장의 최측근 두 사람은 몇몇 특권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추장처럼 말할 수 없음. why? 그들 자신이 말하는 행위가 추장과 그 말 모두를 더럽힌다고 느끼기 때문.
⇒⇒ 집단의 여성은 추장의 재화 및 메시지와 교환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고유한 회로를 따라 움직임. 각각의 과정은 교환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호혜적 움직임을 통해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세우는 여러 요소들에 대하여 권력은 특권적 관계를 지닌다.
⑦ 추장은 왜 무력한가? : 정치적 기능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집단 안에 내재되어 있어야만 하지만, 인디언 사회에서는 그것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심지어 집단을 배제하기까지 한다. 사회의 외부로 정치적 기능을 추방하는 것은 그것을 무력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수단.
⑧ 권력의 무기력함은 권력이 전체 체계의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됨. 그리고 이 위치 자체는 여성, 재화 그리고 말의 교환이라는 결정적 순환에 권력이 도입하는 단절로부터 생김. 그러나 이 단절의 우연성을 부각시켜 해석하는 방식은 남아메리카 대륙 지역의 대부분의 부족이 절대 진정한 정치적 권위를 지닐 수 없었다는 견해(모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세 가지(여성, 재화, 말)의 순환과 권력의 단절이 우연적이라는 관점의 부정, 즉 그것에 필연성을 가정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학적 지향성을 형성. 인디언 문화의 이 “결정”은 환상으로부터 생긴 비합리적 성과가 아니라 하나의 내재적 합리성이 존재하고 있음.
⑨ 권력은 본질적으로 강제력이고, 정치 기능의 통일을 향한 활동은 사회구조라는 기초 위에서 그리고 사회구조에 합치하도록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고 사회에 적대적인 피안으로부터 사회에 대항하여 행사됨. 따라서 이들 사회는 권력의 초월성이 집단에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외재적이고 스스로 정당성을 창출하는 권위라는 원리가 문화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낸,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한 사회였던 것.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권위의 설립자가 되었고, 권력이 출현하면 그 즉시 억제하는 부정성을 견지.
⑩ 자연재해등의 상황에서 주민들은 추장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듯 하지만, 여기에는 추장에 대한 집단의 협박이 숨겨져 있음. 즉 추장에게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을이나 무리의 사람들은 쉽게 추장을 버리고 추장의 의무에 보다 충실한 지도자를 택하겠다는 것.
⑪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imago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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