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운영 선생님을 기억하기

로젤루핀님의 [대학서곡과 신포도] 에 관련된 글.

 
정운영 선생이 타개하셨다는 이야기를 지난 주말이 지나고야 전해 들었다. 듣고나서 인터넷을 보니 정운영 선생 타개에 대한 기사가 있다.
 

각 학과마다 조직된 사회과학학회는 운동권을 길러내는 의식화 셀로 활발히 조직되어 있었다. (아마 91년 투쟁의 성과로 조직된 91학번들이 92학번을 대량으로 조직한, 이후에는 쇠퇴한 학회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나도 물론 학회에 가입했지만 당시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세미나는 '철학에세이'부터 시작하고 있었고 그나마 이런 저런 1학기 행사일정들과 투쟁일정으로 세미나는 별로 진행되지 못했다. 92년 4월에는 전대협 총회까지 학교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전대협의 당파적 강화'라는 구호를 보고 나서 선배의 설명을 듣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없는 당파성이라..)
 
여튼, '철학에세이'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것을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어리둥절했는데, 중고등학생용 철학우화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초를 공부해보자는 당시의 시도는 재생산 경로로서 사회과학학회가 양적으로 성장한 부작용이었다. '쉬운' 책으로 새내기를 조직해보자는 선배들의 맹목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여름방학 동안은 도서관에서 보냈는데, 학회 세미나에서 얻을 수 없었던, 또 고등학교 과목과 다를게 하나없는 교양과목 강좌로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얻는 공간이었다. 그 때 열심히 읽었던 책이 정운영 선생이 쓴 <광대의 경제학><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등이었다.
 
당시에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용이었지만 열심히 읽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역설이다. (말하자면 교과서가 아니라 컬럼을 통해서 '야매'로 배운 셈이다.) 정운영 선생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언급도 이 컬럼집에 있었는데, 이를 통해서 국가독점자본주의 개념을 처음 접했고 곧 이어 사회구성체논쟁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읽은 책들을 통해서 (아직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노동가치이론연구> 등 책은 나중에 '공부로' 읽게 되었지만 선생의 시원시원한 문체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선생을 처음 뵌 것은 내가 사무국장을 맡은 학생회에서 새내기 수련회인 '새터'를 진행하면서다. 새내기를 위한 강연으로 누구를 섭외할까 논의하다가 정운영 선생을 섭외하자는 제안을 하고 결정되었다. 정작 새터를 진행하면서는 실무에 치여서 강연을 전혀 듣지 못했지만 그 때 처음 직접 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로젤루핀님이 올여놓은 [대학서곡과 신포도]가 그 내용이었을 것같다. 선생의 사후에야 못들었던 당시 강의를 문자로나 접하게 되는 셈이다. 거 참..
 
그 이후에 뵌 것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진행한 정치경제학 강좌에서다. (veloso 선배가 기획했던 강좌) 10강으로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강좌에서 정운영 선생이 던진 고민이 아마 선생이 마지막까지 가져가셨던 고민이 아닐까 싶다.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선택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 질문이었다. 국민국가 내의 계급투쟁의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국민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본을 국가 내에 묶어두는 것이 답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좌파의 대안은 무엇인가 등등. (최근에 읽고 있는 실버의 <노동의 힘>이 언급하는 논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선생이 마지막 몇년간 중앙일보 논설에서 모호한 입장으로 보였다면 이런 질문들이 관계되어 있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다. 따라서 나는 정운영 선생에 대해서 쉽게 비난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데, 최소한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고민이 전제되는 가운데 비판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운영 선생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 좌파의 대안, 대중운동의 전략이 무엇이어야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을 고민하고 풀어갈 때 정운영 선생을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을 것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