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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몇개의 토론 (1)

최근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을 할 기회가 몇번 있었다. 토론들을 거치면서 시사점들과 이어진 내 생각들. 첫번째는 철폐연대 회원토론(기관지 읽기 모임)을 다녀와서 메모.
 

1.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확산의 주요한 양태 - 간접고용의 확산
 
곧이 공공부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최근 비정규직 확대는 간접고용 확산이 주요한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확대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과 이에 따라 (대단히 기만적이기는 하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제시되면서 '자기 기관/부서'에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방식은 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범위하게 이른바 '비핵심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이 전략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 대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주체들 사이에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은 향후에 비정규직의 문제가 단지 '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노동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하는 구조조정의 문제,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 문제로 접근되어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최근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반드시 공기업/기관 전체를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발전노조의 파업, 철도노조의 사유화저지 투쟁 등을 거치면서 변화된 측면도 있고 신자유주의 관료들도 전면적인 사유화는 정치적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같다.
 
그 결과 '비핵심업무'의 외주화가 주된 우회로로 나타난다. 이것은 '민간위탁'이라도 불리는 데 제조업 사업장에서 사내/사외 하청과 유사한 형태다. 이런 업무를 사기업에 외주화하면서 노무관리에 대한 부담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예처에서도 경영평가의 명목으로 명식적으로 이를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업무의 30% 이상을 재위탁할 것을 한전으로부터 요구받는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전면적인 사유화보다는 지분참여 방식이 도입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시장개방에도 유용하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시장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업종에 대해서도 초국적 자본의 '투자'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물시장 같은 경우에는, WTO FTA 협상에서도 타결이 쉽지 않아 개방 일정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이미 지분참여의 형태로 국내에 광범위하게 진출해있다. 공공서비스를 국내의 '민간기업'에 넘기면서 외국자본의 자연스러운 침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비정규직 확산 문제와 구조조정 문제, 정부 지침/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간접고용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들이 업무의 외주화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편, 일정한 시기에 운동의 흐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자리에 있더라도 공동으로 느끼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상반기를 거치면서 연맹 안에서도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가 간접고용 확대(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판단이 공유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서로 토론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몇몇 활동가들과 의견이 일치했던 것에 놀랐던 적이 있다. 철폐연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철폐연대와 별도로 토론을 진행해본 바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대상에 대해서 일치하는 분석이 진행된다는 것은 현실의 추세가 그 만큼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상급단체 사업작풍에서의 몇가지 문제 : 큰 문제-구체적인 문제의 연결
 
여기서 어려운 점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확산-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과 이와 관련되어 당장 터진 현안 사업장의 투쟁을 어떻게 관계 맺도록 할 것인가, 각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비정규사업 담당자로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업무상의 문제까지 제기된다.
 
전반적인 인식 속에서 나올 수있는 추상적인 투쟁계획은 있지만, 이 것은 상당한 시기 동안 기획해서 이루어져야하는 투쟁이다. 그나마 이렇게 할 수 있는 조직들은 여유가 있는 경우다. 갑작스런 사용자의 공격으로 인해 당장 해고투쟁을 진행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 연대의 조직화와 함께, 이 속에서  전반적인 정부 정책기조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여기에는 간극이 발생한다.
 
당장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 두가지 투쟁을 어떻게 관계맺도록 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모든 투쟁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벌어지며, 어떤 기획된 투쟁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현장의 문제를 경유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공공부문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의 양상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업무가 유사한 경우에는, 입직구(입사경로)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중요하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의 사례가 그랬는데 업무의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도 공채를 통해 들어왔는지,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왔는지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식이다.
 
(이 '시험'의 문제는 투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도 결국 '내부공채'라는 시험을 통한 정규직화를 극복-거부하지 못하고 개별화되어 힘을 잃었다. 최근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경우도 유사한데, 경찰청이 제시한 공채를 통한 신규채용을 원칙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험방식을 인정할 경우 정규직화의 문제는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자본이 가장 원하는 방식, '능력주의'의 수용이다. "비정규직이 된것은 네가 능력이 없어서야!" 난감한 점은 이렇게 시험을 통한 채용방식을 인정하면서도 조합원에 대한 전원채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가 처한 딜레마.)
 
업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은 앞서 언급한 '비핵심업무'의 외주화이다. 이 경우 주로 육체노동이 단순노동='비핵심'노동으로 구별되어 차별된다. 사무실에서 펜대 굴리는 것은 핵심이고 삽질하는 것은 비핵심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시설관리부서 등 부서의 고유한 업무가 육체노동을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부서에서도 육체노동은 비핵심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사실은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과 차별이 정신노동-육체노동에 대한 차별에 의해 과잉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단지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에 있어서 다른 종류의 사회적 차별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정신-육체노동의 구별만이 아니라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노동자에 대한 차별, 연소자에 대한 차별 등등..
 
여성적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로 인식되며, 연소자의 일자리는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사회적 차별의 다양한 모순들이 고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형식적인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들이 작용하면서 모순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비정규직문제라는 것은 단순한 고용형태의 문제라기 보다는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모순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결과, 이 문제는 빈곤 문제와도 연결된다.)
 
4. 정규직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기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조합원이 문제가 된다. 모든 정규직노조들은 '조합원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런 말이 면피용으로 만병통치가 되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조차 방기하는 명분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간부들조차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철도노조의 사례는 흥미롭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노조 내에서 급진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걸맞게 새마을호 여성 승무원 투쟁, 철도매점 투쟁 등에 선도적으로 임했다. 문제는 철도노조 본조직이었는데, 애초에 새마을호 여성 승무원 투쟁이 시작될 시점만해도 투쟁방향, 결합 문제 등에 대해서 서울지방본부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런 입장은 이후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는다. 비정규직 기금 모금 결의, 철도매점 투쟁에 대한 지원 등 어느 정규직노조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의 '내부투쟁'이 작용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조 내부에서 선도적인 그룹이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할 경우에 대기업 정규직노조도 전반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에 정규직 노조 집행부를 넘어서 조합원들의 문제의식까지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또한 지난한 과제이기는 하겠지만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5. 조직경쟁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만큼 노조 조직간의 조직경쟁이 심한 영역도 없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공공연맹만이 아니라 여성연맹, 일반노조 등이 조직경쟁을 하고 있는 형세다. 여성연맹은 100% 공공부문이며 일반노조도 70% 정도는 공공부문이다. 그밖에도 전국여성노조도 공공부문이 주된 조직화 영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 것은 공공부문의 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별로 비정규직의 대규모로 결집되어 있거나 사용자가 함부로 노동탄압을 할 수 없는 조건 등이 작용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모적인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누가 해당조합원을 조직하는가 문제를 두고 낯뜨거운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일은 이들 조직이 조합원들을 자주적인 주체가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사유물처럼 사고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직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조직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건 비단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만은 아니다. 산별연맹들 사이에서도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일부 산별연맹들은 규모있고 안정된 사업장 확보에 집착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영세 투쟁사업장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조운동의 기본을 다시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조합원의 자주성이 기본이라는 점과, 계급적 단결이 우선이라면 어느 노조에 속하든 무슨 문제냐는 것. 즉 계급적 입장에 따라 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사심없는 '연대'가 보증되어야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조직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자조직이 아니면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자조직의 세를 불리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모적인 조직경쟁을 계급적 입장에 따라 지양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계급적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병행되어야한다. 조직경쟁도 문제지만 그것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측면이 더 강하다.
 

** 이 글의 후속으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토론 등에서의 시사점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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