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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와 울산 북구청, 민주노동당

울산북구에서 당선된 조승수 의원이 법원 판결로 의원직이 상실되었다.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인 나로서도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또 법원의 노골적인 편파 판결이라는 점에서 분통터지는 일이다.
 
이 결과로 울산 북구 상황은 운동 진영 내부정치에 있어 앞으로 대단히 복잡하게 진행될 것이다. 단지 보궐선거와 이를 위한 후보선출 등의 문제만이 아니다. 울산 북구청의 최근 상황을 보면서 민주노동당이 지방자치단체장을 당선시킨다거나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다. 울산 북구 보궐 선거에도 주는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공공연맹 산하의 울산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는 지자체에 직접고용된 상용직,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작년 노조 설립이후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과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역량이나 지역적 상황이나 만만치 않다.
 

민주노동당 구청장이지만 동구청과 달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북구청은 집요하게 다음 조항을 문제삼고 있다.
 
제32조(외주 또는 하도급) 조합원이 수행하는 업무의 일부를 외주 처리하거나 하도급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갑’은 사전에 ‘을’과 합의하여야한다.
 
최근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산의 주된 경로가 간접고용이라는 내용은 얼마전 이 블로그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몇개의 토론 (1) )이러한 간접고용 확산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북구청은 이러한 내용을 체결하는 것이 구청장의 월권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는데, 행자부의 지침 등이 내려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결국, 민주노동당 중앙당에 대한 공공연맹 차원의 요구, 지역에서 울산시당에 대한/을 통한 항의 등을 통해서 나온 최종적인 입장(9월29일)은,

이를 수용하되 단서조항으로,
현재 일용직인 조합원 6명을 이후 상용직으로 전환하고
민간위탁을 원하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민간위탁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넣자는 것이다.
 
단협 이전에 개별조합원과 합의를 통해서 민간위탁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내용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는 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상범 구청장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조합원들의 실망도 크다. 민주노동당 출신의 구청장이 보여주는 입장이 정확히 '사용자'에 걸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 입장에서는 북구청까지 정리가 되어야 이어서 다른 한나라당 지자체장의 구청들과 울산시에 대한 투쟁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울산 북구에 대한 정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자체장에게도 합의가 안되는데 다른 지자체에 어떻게 무슨 요구를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투쟁의 수위, 지속시기가 어떠해야하는지 등이 고민된다.)
 
민주노동당이 지자체 장이 된다는 것은 곧 해당 지자체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는 사용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떤 입장을 견지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공공성과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것인가, 지자체에서 공공성의 성격,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한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 속에서 지역적 정책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도 문제이다.
 
(그렇다고 지역적 자율성 증진을 입장으로 채택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 또 하나의 쟁점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방분권이란 지역의 불균등 발전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가운데 지역을 분할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지역 상호간의 발전주의 경쟁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과 친 기업 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게 한다. 바닥을 향한 경주.)
 
이런 원칙이 세워지지 않는 한 '사용자'로서 지위를 가지는 민주노동당 출신의 지방자치단체장의 입장은 매우 임의적이고 동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공공성을 '예산절감'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지자체만이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그럴 수 있는데, 조건은 다르지만 최근 민주노동당 인사가 책임자로 있는 여주장례식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전국시설관리노조 소속)도 유사한 맥락이다.
 
민주노동당이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경유하면서 지역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중앙정치'보다도 지역에 대한 개입은 민주노동당 활동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화시켜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들로 인해서 민주노동당의 지역활동이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서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울산 북구청에서 제기되는 것과 같은 쟁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의 지자체 진출은 득보다 독이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하 갈등이 증폭되는 지역문제에 대한 관리정책을 대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쟁점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대한 것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예산의 문제가 제기된다. 무상의료/교육을 빨리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산절감이 필요하게 된다. 이럴 경우 1차적인 타겟은 해당 부분의 노동자가 된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비정규직화가 강요되고 낮은 임금이 책정된다. 최근 학교비정규직노조가 투쟁하고 있는 학교운영지원비 폐지 문제라든가 보육교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이른바 100% 비정규직들로 채워지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등이 그렇다. 따라서 무상의료/교육의 요구는 반드시 해당 부문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저임금을 방지하는 대안과 함께 제기되어야한다. 이런 문제들이 해당 노조들로부터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단편적인 문제제로만 이해될 뿐 무상의료/교육 사업의 내적인 맹목을 교정하는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울산 북구의 경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자 출신 지자체장이 노동자를 무시하는 곳에서 다시 노동자 국회의원을 뽑자고 선거를 해야할 판이다. 과연,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커녕 최소한 그 확대를 방지하자는 조항마저도 합의하지 못하는 지자체에서 국회의원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어떤 발언을 할 수는 있을 것인가 의문이다.
 
울산지자체비정규직노조의 입장은 원칙적이다. 동구에서 가능한 협약이 북구에서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기왕 수용할 조항이라면 굳이 이런저런 단서조항 없이도 노조와 추후에 협의해도 충분한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구청이 최소한 동구청과 같은 수준으로 합의하지 않는한,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북구청에 대해 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 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는 논란이 증폭되겠지만, 민주노동당의 지자체 정치가 어떤 내용이어야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기를 강렬하게 던져줄 것이다.
 
또한 북구청이 뒤늦게 요구안을 수용하고 노조가 다른 구청을 상대로 투쟁을 전환한다고 해도, 이 상황이 던지는 질문들은 민주노동당에게 회피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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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최근 상황에 대한 공공연맹 울산지구협 박주석의장(발전노조 해고자)의 글 링크(올린 순서대로.)
 
 
아래는 북구청 앞 천막농성에 들어간 울산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의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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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선생님을 기억하기

로젤루핀님의 [대학서곡과 신포도] 에 관련된 글.

 
정운영 선생이 타개하셨다는 이야기를 지난 주말이 지나고야 전해 들었다. 듣고나서 인터넷을 보니 정운영 선생 타개에 대한 기사가 있다.
 

각 학과마다 조직된 사회과학학회는 운동권을 길러내는 의식화 셀로 활발히 조직되어 있었다. (아마 91년 투쟁의 성과로 조직된 91학번들이 92학번을 대량으로 조직한, 이후에는 쇠퇴한 학회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나도 물론 학회에 가입했지만 당시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세미나는 '철학에세이'부터 시작하고 있었고 그나마 이런 저런 1학기 행사일정들과 투쟁일정으로 세미나는 별로 진행되지 못했다. 92년 4월에는 전대협 총회까지 학교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전대협의 당파적 강화'라는 구호를 보고 나서 선배의 설명을 듣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없는 당파성이라..)
 
여튼, '철학에세이'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것을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어리둥절했는데, 중고등학생용 철학우화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초를 공부해보자는 당시의 시도는 재생산 경로로서 사회과학학회가 양적으로 성장한 부작용이었다. '쉬운' 책으로 새내기를 조직해보자는 선배들의 맹목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여름방학 동안은 도서관에서 보냈는데, 학회 세미나에서 얻을 수 없었던, 또 고등학교 과목과 다를게 하나없는 교양과목 강좌로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얻는 공간이었다. 그 때 열심히 읽었던 책이 정운영 선생이 쓴 <광대의 경제학><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등이었다.
 
당시에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용이었지만 열심히 읽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역설이다. (말하자면 교과서가 아니라 컬럼을 통해서 '야매'로 배운 셈이다.) 정운영 선생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언급도 이 컬럼집에 있었는데, 이를 통해서 국가독점자본주의 개념을 처음 접했고 곧 이어 사회구성체논쟁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읽은 책들을 통해서 (아직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노동가치이론연구> 등 책은 나중에 '공부로' 읽게 되었지만 선생의 시원시원한 문체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선생을 처음 뵌 것은 내가 사무국장을 맡은 학생회에서 새내기 수련회인 '새터'를 진행하면서다. 새내기를 위한 강연으로 누구를 섭외할까 논의하다가 정운영 선생을 섭외하자는 제안을 하고 결정되었다. 정작 새터를 진행하면서는 실무에 치여서 강연을 전혀 듣지 못했지만 그 때 처음 직접 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로젤루핀님이 올여놓은 [대학서곡과 신포도]가 그 내용이었을 것같다. 선생의 사후에야 못들었던 당시 강의를 문자로나 접하게 되는 셈이다. 거 참..
 
그 이후에 뵌 것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진행한 정치경제학 강좌에서다. (veloso 선배가 기획했던 강좌) 10강으로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강좌에서 정운영 선생이 던진 고민이 아마 선생이 마지막까지 가져가셨던 고민이 아닐까 싶다.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선택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 질문이었다. 국민국가 내의 계급투쟁의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국민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본을 국가 내에 묶어두는 것이 답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좌파의 대안은 무엇인가 등등. (최근에 읽고 있는 실버의 <노동의 힘>이 언급하는 논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선생이 마지막 몇년간 중앙일보 논설에서 모호한 입장으로 보였다면 이런 질문들이 관계되어 있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다. 따라서 나는 정운영 선생에 대해서 쉽게 비난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데, 최소한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고민이 전제되는 가운데 비판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운영 선생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 좌파의 대안, 대중운동의 전략이 무엇이어야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을 고민하고 풀어갈 때 정운영 선생을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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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권서 전비연 의장의 인터뷰와, 에 대한

 
 

비정규직 운동주체들이 정규직노조에 대해서 가지는 양가감정에 대한 지적과 같은 것은 중요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정규직노조의 극악무도한 행태'를 비판하는 가운데 간과되기 마련이다. 정규직 노조도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가운데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지고 점점 스스로가 설정한 제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점에 대한 중요한 지적들.
 
또한 대리주의, 시혜 등에 대한 지적도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비정규노동법안 투쟁에서 늘 느끼던 것이었는데 사실상  정규직 조직인 민주노총이 교섭도 하고 투쟁도 해서 비정규직에게 '좋은 법안'을 선물해준다는 식의 인상을 받아왔던 것이다. 구권서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권,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주체들 스스로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투쟁, 그 조건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노사정 협상으로 생색내기 하고 언론발 타서 '권리보장 입법 쟁취 국면'이 되었다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말이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선택적 포섭과 배제라는 개념을 흔히 말하는데 바로 그렇게 관철해 간다. 정규직 노조를 끊임없이 공격,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이제는 대기업 비정규직마저 동일한 논리로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대중에 대한 분열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을 지를 생각해보면 중요한 지적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운동 마저 수혜받은 자로 인식되거나 혹은 인민주의 정치에 직접 동원될 가능성.
 
신자유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면서 또 한편으로는(이 결과로서)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고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대중동원 양식을 창출한다. 삶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원한의 정치를 통해 인민주의(포퓰리즘) 정치에 동원되고 대중운동은 이 속에서 분열된다.
 
최악의 경우 ;
* 정규직으로 주로 구성된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이 실현불가능한 코포라티즘을 미망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정권에 동원되고
* 불안정노동자들은 원한의 정치 속에서 인민주의 정치가에 직접 동원되고 자율적 조직(노동조합 형태든 아니든)을 건설하지 못하는 가운데 파편화될 수 있다.
 
이중적인 동원과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종속. (정규직에게도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신의 조건의 불안정성은 합의를 미망하게 한다. 더구나 불안정노동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민주의 정치의 동원은 그러한 불안을 심화한다.)

이와 다른 노동자운동의 전망을 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제들은 ;
*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그 자신의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스스로를 ‘계급’으로 구성하는 역량을 증진하고,
* 자기 운동 속에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파괴적 효과에 대해 ‘사회를 재건하는’ 대안을 스스로 형성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어야할 것이다.
 
인터뷰의 첫 구절
 
"굉장히 절망했고 엄청난 벽을 느꼈습니다. 열사냐 아니냐의 논란. 대공장 기업별 노조가 쌓아 온 성벽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 힘은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량이기도 했지만 거꾸로 그 방향성이 잘못될 땐 어떻게 되나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최근,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기고한 공공연맹의 한 부위원장의 글. 그 글에서 사회를 진보시켜온 힘으로서 정규직 노조운동을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점잖게 충고하는 구절을 읽었다. 아래는 인용
 
"결론에 대신해서 한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겠다. 흔히들 기업별노조의 저규직 노동자의 책임을 심심치 않게 거론한다. 이미 60% 수준에 달하고 있는 이땅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과 소외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업별 체제에 안주하며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로 인한 반사적 과실을 취하는 데 대한 질타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0년 가까운 민주노조운동, 10년의 성장과 발전을 눈앞에 둔 민주노총을 과연 누가 지금까지 지탱해오고 있으며, 비정규 개악법안 저지와 권리입법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준비해온 것은 누구였던가? 더 나아가, 기업별노조의 정규직 노동자의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과연 가능했었는가?"
 
정규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역사적 성과를 오늘날 어떻게 하고 있는지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라는 이런 비판의 격에 맞는 답변은, 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에게 기대하기 힘든 것인가? 이 두 진술 사이에 심연이 놓여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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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디트마르 로터문트 지음, 양동휴, 박복영, 김영완 옮김 / 예지
 
 

저자는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대공황이 확산되는 경로에 대한 설명에서 주로 케인즈의 논지를 따른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의 주기적 파동과 이윤율 하락을 대공황의 중심적인 원인으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과는 상이하다. 그러나 이 점은 공황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는 어쩌면 더 유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고민했던 문제들과 직접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본위제, 평가절상/절하, 재정정책 등에 대해서 그렇다.
 
저자는 대공황이 1929년의 월가의 주가폭락이라는 한번의 사건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이미 1920년대부터 밀, 설탕, 커피 등 농산물 가격의 파동과 하락이 존재했고 이는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추세를 보여준다.
 
저자의 설명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공황의 다양한 영향이다. 유럽에서도 독일에서 파시즘의 발호부터 스웨덴에서 사민주의의 안착까지 상이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영국은 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했지만 인도를 초과착취한 덕분이었다. 미국은 경제정책에서 갈팡질팡했으며 자신만이 아니라 세계 다수 국가들에서 대공황의 고통을 심화시켰다. (많은 칭송을 받는 로저벨트의 '뉴딜'도 수사학적 가치에 불과했으며 달러의 평가절하가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도 대공황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정정해준다.) 결국 미국의 정치적 고립주의(그러나 채무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독일에서 파시즘이 발호하는 한 원인이 된다.
 
유럽에서 위기는 중상주의적인 방식의 처방이 이루어졌지만 식민지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식민지는 유럽의 위기 극복을 위한 초과착취의 대상이 되어야했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고율의 관세를 유지하거나 관세수입이 줄어들 경우 인두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손실을 보전하려고 했다. 또한 제국주의자들은 베기에령 콩고에서 자행되었던 강제경작과 같은 억압적 방식으로 착취를 강화했다. 이 결과는 온전히 농민의 부담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나마 사용가능한 모든 현금과 장신구를 빼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대륙별로 상이한 영향을 받았지만, 대룩 내에서도 상이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대공황은 수출대체공업화가 시작된 계기로 알려져있지만 그 정치적 결과는 상이하다. 아르헨티나는 1946년 페론이 집권하기 이전에 1930년대 '악명높은 10년'의 보수적 체제가 지배했다. 맥시코에서는 '제도혁명당'을 통해 '혁명'이 '제도화'되는 다른 결과가 진행되었다.
 
대공황이 과정을 겪으면서 각국에서 포퓰리즘 정치가 확산된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이 발호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코포라티즘으로 발전하며, 식민지 국가들에서는 민족해방운동으로 전개된다. 대공황에 강타당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식민지 지배 문제와 연결하여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크게 바꾸어놓게 된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불러오고 또 유럽의 약화와 함께 식민지 민족해방을 불러온다.
 
(포퓰리즘-인민주의-에 대해서는 최근에 출판된 <인민주의 비판 /정인경.박정미, 윤종희, 박상현> 참고. 개인적으로는 아직 책의 앞부분을 읽는 중. 다만, <인민주의 비판>은 축적체계와 헤게모니의 위기 시기에 기존의 정치이념이 쇠퇴하는 공백을 인민주의가 메운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서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은 대공황의 경제적 위기가 선동적이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희생양을 찾아내는 인민주의 정치를 활성화하는 조건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치이념의 위기와 경제적 위기를 동시에 사고하고, 특히 그 위기가 대중 이데올로기에 작동하면서 특정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특정한 계기들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인도가 중요한데, 인도에 대한 영국이 의존은 전쟁시기에 더욱 강화되었고 전후 인도의 발언력을 높이게 된다. 결국 영국은 인도의 독립을 막을 수 없었다. 이는 대영제국을 붕괴시키는 축이 된다. 또 이 결과 대영제국을 근간으로 한 유럽의 식민지배 체제도 모두 붕괴한다. 미국이의 전후 구성에서 직접지배 식민지를 폐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 없이는 식민지 폐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전쟁-공황-전쟁으로 이어진 20세기 초반의 30여년은 19세기의 세계체제를 붕괴시켰다. 이 과정은 영국헤게모니의 붕괴와 미국 헤게모니의 등장, 법인기업 자본주의의 새로운 축적체계의 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대공황은 이런 과정에서 벌어진 극적이고 중심적인 사건의 하나이다. 그것은 영국 헤게모니의 경제적 붕괴가 최종적이고 폭력적으로 정치적 붕괴까지 이어지게한 계기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정치적 귀결은,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의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준다.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경제위기와 정치위기, 전쟁 등의 어려운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책은 대공황기 좌파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비극과 그 원인-한계를 알고 있다. 그리고 물론 식민지 국가들에서 민족해방 운동이 어떻게 사회주의와 결합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대공황의 세계적 양상을 통해서 그 경제적 영향은 물론 정치적 영향, 이에 대한 좌파의 대응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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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한 또 다른 소개는 '말'지의 아래 기사를 참고. 아래 소개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달의 책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대공황 연구의 사각지대였던 식민지에 대한 역사적 조망 - 정지영
 
 
 
* 참고할 책
 

인민주의 비판 - 과천연구실세미나 27
정인경.박정미, 윤종희, 박상현 지음 / 공감
== 이 책을 통해서 대공황 등으로 대표되는 축적체계의 전환기의 정치적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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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몇개의 토론 (1)

최근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을 할 기회가 몇번 있었다. 토론들을 거치면서 시사점들과 이어진 내 생각들. 첫번째는 철폐연대 회원토론(기관지 읽기 모임)을 다녀와서 메모.
 

1.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확산의 주요한 양태 - 간접고용의 확산
 
곧이 공공부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최근 비정규직 확대는 간접고용 확산이 주요한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확대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과 이에 따라 (대단히 기만적이기는 하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제시되면서 '자기 기관/부서'에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방식은 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범위하게 이른바 '비핵심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이 전략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 대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주체들 사이에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은 향후에 비정규직의 문제가 단지 '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노동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하는 구조조정의 문제,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 문제로 접근되어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최근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반드시 공기업/기관 전체를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발전노조의 파업, 철도노조의 사유화저지 투쟁 등을 거치면서 변화된 측면도 있고 신자유주의 관료들도 전면적인 사유화는 정치적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같다.
 
그 결과 '비핵심업무'의 외주화가 주된 우회로로 나타난다. 이것은 '민간위탁'이라도 불리는 데 제조업 사업장에서 사내/사외 하청과 유사한 형태다. 이런 업무를 사기업에 외주화하면서 노무관리에 대한 부담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예처에서도 경영평가의 명목으로 명식적으로 이를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업무의 30% 이상을 재위탁할 것을 한전으로부터 요구받는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전면적인 사유화보다는 지분참여 방식이 도입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시장개방에도 유용하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시장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업종에 대해서도 초국적 자본의 '투자'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물시장 같은 경우에는, WTO FTA 협상에서도 타결이 쉽지 않아 개방 일정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이미 지분참여의 형태로 국내에 광범위하게 진출해있다. 공공서비스를 국내의 '민간기업'에 넘기면서 외국자본의 자연스러운 침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비정규직 확산 문제와 구조조정 문제, 정부 지침/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간접고용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들이 업무의 외주화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편, 일정한 시기에 운동의 흐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자리에 있더라도 공동으로 느끼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상반기를 거치면서 연맹 안에서도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가 간접고용 확대(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판단이 공유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서로 토론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몇몇 활동가들과 의견이 일치했던 것에 놀랐던 적이 있다. 철폐연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철폐연대와 별도로 토론을 진행해본 바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대상에 대해서 일치하는 분석이 진행된다는 것은 현실의 추세가 그 만큼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상급단체 사업작풍에서의 몇가지 문제 : 큰 문제-구체적인 문제의 연결
 
여기서 어려운 점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확산-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과 이와 관련되어 당장 터진 현안 사업장의 투쟁을 어떻게 관계 맺도록 할 것인가, 각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비정규사업 담당자로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업무상의 문제까지 제기된다.
 
전반적인 인식 속에서 나올 수있는 추상적인 투쟁계획은 있지만, 이 것은 상당한 시기 동안 기획해서 이루어져야하는 투쟁이다. 그나마 이렇게 할 수 있는 조직들은 여유가 있는 경우다. 갑작스런 사용자의 공격으로 인해 당장 해고투쟁을 진행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 연대의 조직화와 함께, 이 속에서  전반적인 정부 정책기조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여기에는 간극이 발생한다.
 
당장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 두가지 투쟁을 어떻게 관계맺도록 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모든 투쟁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벌어지며, 어떤 기획된 투쟁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현장의 문제를 경유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공공부문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의 양상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업무가 유사한 경우에는, 입직구(입사경로)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중요하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의 사례가 그랬는데 업무의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도 공채를 통해 들어왔는지,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왔는지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식이다.
 
(이 '시험'의 문제는 투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도 결국 '내부공채'라는 시험을 통한 정규직화를 극복-거부하지 못하고 개별화되어 힘을 잃었다. 최근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경우도 유사한데, 경찰청이 제시한 공채를 통한 신규채용을 원칙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험방식을 인정할 경우 정규직화의 문제는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자본이 가장 원하는 방식, '능력주의'의 수용이다. "비정규직이 된것은 네가 능력이 없어서야!" 난감한 점은 이렇게 시험을 통한 채용방식을 인정하면서도 조합원에 대한 전원채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가 처한 딜레마.)
 
업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은 앞서 언급한 '비핵심업무'의 외주화이다. 이 경우 주로 육체노동이 단순노동='비핵심'노동으로 구별되어 차별된다. 사무실에서 펜대 굴리는 것은 핵심이고 삽질하는 것은 비핵심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시설관리부서 등 부서의 고유한 업무가 육체노동을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부서에서도 육체노동은 비핵심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사실은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과 차별이 정신노동-육체노동에 대한 차별에 의해 과잉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단지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에 있어서 다른 종류의 사회적 차별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정신-육체노동의 구별만이 아니라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노동자에 대한 차별, 연소자에 대한 차별 등등..
 
여성적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로 인식되며, 연소자의 일자리는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사회적 차별의 다양한 모순들이 고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형식적인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들이 작용하면서 모순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비정규직문제라는 것은 단순한 고용형태의 문제라기 보다는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모순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결과, 이 문제는 빈곤 문제와도 연결된다.)
 
4. 정규직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기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조합원이 문제가 된다. 모든 정규직노조들은 '조합원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런 말이 면피용으로 만병통치가 되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조차 방기하는 명분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간부들조차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철도노조의 사례는 흥미롭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노조 내에서 급진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걸맞게 새마을호 여성 승무원 투쟁, 철도매점 투쟁 등에 선도적으로 임했다. 문제는 철도노조 본조직이었는데, 애초에 새마을호 여성 승무원 투쟁이 시작될 시점만해도 투쟁방향, 결합 문제 등에 대해서 서울지방본부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런 입장은 이후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는다. 비정규직 기금 모금 결의, 철도매점 투쟁에 대한 지원 등 어느 정규직노조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의 '내부투쟁'이 작용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조 내부에서 선도적인 그룹이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할 경우에 대기업 정규직노조도 전반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에 정규직 노조 집행부를 넘어서 조합원들의 문제의식까지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또한 지난한 과제이기는 하겠지만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5. 조직경쟁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만큼 노조 조직간의 조직경쟁이 심한 영역도 없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공공연맹만이 아니라 여성연맹, 일반노조 등이 조직경쟁을 하고 있는 형세다. 여성연맹은 100% 공공부문이며 일반노조도 70% 정도는 공공부문이다. 그밖에도 전국여성노조도 공공부문이 주된 조직화 영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 것은 공공부문의 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별로 비정규직의 대규모로 결집되어 있거나 사용자가 함부로 노동탄압을 할 수 없는 조건 등이 작용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모적인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누가 해당조합원을 조직하는가 문제를 두고 낯뜨거운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일은 이들 조직이 조합원들을 자주적인 주체가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사유물처럼 사고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직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조직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건 비단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만은 아니다. 산별연맹들 사이에서도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일부 산별연맹들은 규모있고 안정된 사업장 확보에 집착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영세 투쟁사업장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조운동의 기본을 다시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조합원의 자주성이 기본이라는 점과, 계급적 단결이 우선이라면 어느 노조에 속하든 무슨 문제냐는 것. 즉 계급적 입장에 따라 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사심없는 '연대'가 보증되어야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조직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자조직이 아니면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자조직의 세를 불리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모적인 조직경쟁을 계급적 입장에 따라 지양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계급적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병행되어야한다. 조직경쟁도 문제지만 그것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측면이 더 강하다.
 

** 이 글의 후속으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토론 등에서의 시사점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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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들은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고공농성자 인터뷰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고공농성자들의 인터뷰. 강제진압 다음날에야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밑에서 구호외치고 할 때는 몰랐는데, 올라가있던 그 동지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고, 가슴이 참 쓰리다.
 
집회 중간 중간에 대기하는 시간에 보면, 여의도 공원은 너무 평화롭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보이지않는다. 집회가 진행되는 중간에, 그리고 진압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산책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듯이.
 
무엇보다, 농성자들이 정말로 뛰어내렸고, 그런 결심을 이미 밝히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진압과정에서 우연한 일은 아니다. 엄포용이 아니라 뛰어내릴 수 있다는 각오를 했다는 것인다. 현자비정규직 류기혁열사나 화물연대 김동윤열사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동지들의 목숨을 건 농성이나, 불과 며칠사이에 일어났다.
 
세상이 참 이럴 수가 있는가 싶다.
 
오늘은 이경해열사 추모식과 열사 정신계승 WTO 반대 쌀개방반대 농민대회가 있었다. 추모공연에 정태춘의 '일어나라 열사여' 곡이 있었다. 오랜만에 들으면서, 참..
나는 행진은 하지 않았는데, 행진 끝에 물리적 충돌이 있고 다수의 농민이 부상당했다.
 
여튼, 사회적 갈등이 안에서 부글부글거리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집단적인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개별적으로 좌절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만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분노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자신들의 좌절의 공동의 원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함께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때보다 좌파들의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나 몰두해온 내부정치가 아니라 대중정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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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혁신의 대상이 혁신을 이야기하다.

민주노총이 '조직혁신'이라는 주제로 현장토론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상반기 동안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가시화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곧장 이야기하자면 대단히 실망스럽다. 역시 혁신의 대상들이 혁신을 이야기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충분히 예상했어야하는 것일까?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모두 위기를 말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위기의 양상이나 내용이나 모두 다르다. 아마도 이들이 보는 대상은 같을 것인데, 이렇게 전혀 다른 것을 보면서 동일하게 '위기'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현장에 배포하고 있는 '조직혁신' 소책자의 내용을 통해서 자신들이 보는 위기의 양상과 그 해법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자료집을 받아서 참고하면 되겠다.

민주노총 '조직혁신' 소책자의 구성
 
소책자는 조직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양상을 서술하고 △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조직혁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양상은 제시/묘사되어 있으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부재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예정된 결론을 제시한다.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 돌파구는 산별노조 운동의 성패에 달려"있다는 진단이다. 이것은 이상한 순환론을 이루는데, 산별노조 건설의 지체라는 것 자체가 위기라고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산별노조 지체가 위기이니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 혁신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도 다른 글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산별노조 건설은 노동자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혹은 어떤 정세에서는 운동의 혁신이 역행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과정에 어떤 실천을 경유하는가에 따라 혁신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퇴보가 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 혁신안은 산별노조를 물신화하는 데,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최근의 서울대병원지부노조 사태 등이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세가지 양상'
 
소책자가 제시하는 위기는 세 가지로 제시된다. (1) 지지부진한 산별노조 건설 (2) 얽혀있는 위기구조 (의식 관행 관계 제도) (3) 사회연대성, 계급대표성의 위기 -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위기
산별노조 이야기도 알 수 없지만 '얽혀있는 위기구조' 자체가 위기라니, 도대체 구조가 복합적이라면 모순도 복합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일단 넘어가자.
 
민주노총은 위기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조직적 위기 이상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는 위상의 대안이 모색되어야한다. 조직의 위기가 아니라 '운동'의 위기를 우선 진단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직은 이념, 지향과 함께 운동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혁신안은 모두 조직을 정비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있을 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운동의 위기가 발생한 계급투쟁 지형의 변화를 진단한 가운데 우선적으로 운동의 이념, 지향에 대해서 진단해야 미봉책이 아닌 조직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위치지어질 때 조직혁신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혁신안'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조직형식적인 측면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노조비리 척결을 위해서 '전간부 신념과 도덕교육과정 신설, 의무적 이수'라는 식의 대안이 나오는 것이 사례다. 노조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만연한 노사담합구조를 혁파하는 운동내용, 관행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지 신념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은 곧 비정규직을 고용안정판으로 하는 노사담합구조를 깨기 위한 운동적 실천의 과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은 민주노총의 소책자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위기의 양상 묘사를 넘어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조직'의 혁신의 전제로 '운동'의 혁신을 논의하며, 이를 위한 이념과 지향의 혁신을 우선 과제로 해야할 것이다.
 
'혁신의 양대 축'
 
그럼, 위기에 따라 제시되는 '혁신의 양대 축'을 살펴보자.
하나, 산별전환을 위한 특단의 노력 --> 산별노조 건설
둘, 조직민주주의 확립, 도덕성 회복, 재정안정성 확립,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 지도집행력 강화
 
결국 둘은 같은 말이다.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혁신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하는 혁신안의 본질이 드러난다. 혁신안은 조직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방안이다. (산별노조 건설도 조직정비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정비는 곧 '지도집행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지도집행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오히려 노동운동의 위기라기 보다는 지도집행력의 위기를 극복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지도집행력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여튼, 민주노총은 혁신안 6가지를 ① 산별추진 ② 대의원 선거제도, 구성과 운영의 혁신 ③ 비리엄단, 재정투명성 강화 ④ 재정안정성 강화 ⑤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⑥ 정책대응력, 교육문화사업 강화로 제시한다.
 
산별노조에 관련된 쟁점은 좀 더 살펴보자.
 
혁신안 1번은 산별노조 추진이다. 2006년 3월 전국동시다발 산별전환 조합원 총투표, 산별노조 건설 특위와 추진단 구성,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 로드맵 등이 제시된다.
 
산별노조 건설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어떤 산별을 어떻게 만들것인가는 만들것인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와 함께 나타나는 노조운동의 제도화, 투쟁기풍의 상실, 현장 약화와 같은 문제가 특정한 방식의 산별노조 건설로 오히려 더 악화된다면 산별노조 건설이 '촉진'되어야하는 지에 대해서조차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산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산별이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혁신안'은 산별노조 건설의 일정이 제시되고 기대효과도 제시되고 있으나 건설해야할 산별노조의 상이라든가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단지 투표일정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내년 3월의 산별투표라는 것이 가능한가도 문제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전 실천의 내용이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산별노조의 상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 것은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무엇을 위해서 산별노조를 건설하는가가 운동 혁신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이 일정대로 따라가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운동을 혁신하는 과정의 일환이며,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이라는 점. 따라서 ①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갈 (혁신된) 조직은 어떤 구조, 운동방식, 운영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서 광범위한 대중적 토론이 진행되고 ② 실천 속에서 오류가 검증되고 고쳐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건설의 과정에는 일정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실천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오히려,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해서 관료화를 방지하고 현장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조직혁신 사업의 과제로 제시되어야한다. 조직규모의 확대와 함께 일반적으로 관료적 지도력이 필요성이 증대하게 된다는 점, 노동운동의 제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운동의 제도화는 조직을 체제의 일부로 전화시키고 이는 필연적으로 관료적 통제를 증진시킨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방안이 산별노조 건설 방안보다 더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산별노조 건설의 한 항목에 불과
 
한편, 민주노총 혁신안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은 단지 산별이행을 위한 결의라는 과제의 부분적인 한 항목으로만 놓여져있다. 혁신안 전체가 조직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데 초점이 가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일이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참 황당한 일이다. 남한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과제를 '정규직 비정규직 단일조직 건설'(그것도 산별노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란다)과 '차별해소 로드맵 마련'이라는 것으로 달랑 정리할 수 있는 능력에 놀랄 뿐이다.
 
민주노총은 위기의 양상으로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든다. 그럼 '쪽수'가 모자라서 대표성이 부족한 것인가? 오히려 계급적 요구를 올바르게 제기하고 실천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전노협이 계급대표성을 가졌던 것은 조직률이 아니라 운동과제와 투쟁의 측면 때문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계급투쟁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강제하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노동자계급이 처한 현실의 핵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투쟁과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반대투쟁과 노동의 불안정화 반대투쟁(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요약될 수 있다.
 
혁신과제는 민주노조운동이 변화된 계급투쟁 지형에서 가장 적확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운동의 혁신방향을 제시해야하는 것임. 그렇다면 비정규직 투쟁은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조직혁신에 있어서도 핵심과제다. 그러나  '혁신안'은 '조직확대'를 주된 문제의식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소책자에서는 빠졌지만 초안에서는 산별노조 건설도 노조규모의 문제로 접근하며, 신자유주의 하 노동의 불안정화경향에 대한 투쟁도 '미조직비정규직조직화'라고 해서 조직확대 측면에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명백히 주객이 전도되었다.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를 건설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투쟁 과제가 제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여야한다. 계급투쟁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형태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조직적 과제의 측면에서조차 '혁신안'이 제시하는 '정규직-비정규직 단일노조' 건설이라는 당위적 과제로만 제시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비정규직 확대의 양상이 사업장내 비정규직이 아니라 이른바 '비핵심업무'의 외주화로 인하여 중소영세사업장조직화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연맹과 총연맹의 지역본부 강화가 과제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혁신안 전반의 문제;  '관료적 조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
 
산별노조와 관련된 쟁점을 보면, 그것이 운동의 과제라는 측면보다는 당위로서, 조직의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로 제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혁신' 항목들도 유사하다. 총연맹 대의원 직선이라든가, 의무금 정률제, 산하조직 업무 표준화 등 집행력 정비, 정책과 문화사업 강화 등이 '혁신'을 위한 항목들이다. 하나같이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노조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제시된 대책이다. ; 비리 엄단을 위한 규율위원회 구성. 간부 윤리강령, 도덕교육 의무이수. 군대 마치고 끝난 줄 알았던 주입식 정신교육을 또 받아야하나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러느니 노조활동 그만 두겠다싶다.(그걸 바라나?)
 
자. 혁신안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까지 보신 분들이라면 그것이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도집행력 강화'가 목적인 만큼, 그리고 상급단체 관료들이 모여서 작성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바로, '관료적 조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 이다.
 
이것은 당장 그 자신들이 노동운동 위기의 양상이고 일부인 노동조합의 상층관료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혁신'에 대한 현장의 요구를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할 사람들이 '혁신안'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결과다. 이제까지 위기를 악화시켜온 당사자들이 이제까지 한 것도 모자라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혁신안'을 제출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이고 대중운동으로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운동'의 고유한 요소로서 기층 대중의 자발적인 힘이 활성화되어야한다. 그것은 관료적 조직을 강화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관료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도덕교육'이라는 식으로 현장에 대한 관료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활성화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러한 '관료적 조직의 제도적 강화'는 현재의 정세와 맞물려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한의 노동자운동은 전노협의 쇠퇴 이후, 자신의 존재를 보증할 '제도'를 찾는데 몰두해왔다. 이것은 YS 때부터 신자유주의 정권의 노동정치 재편전략과 일정하게 호응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87년 대투쟁 이후의 변화된 노동정치 지형을 법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불안정성을 제거하고자했다. 물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말이다. 그 결과 노동정치 제도의 부분적인 '양보'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교환되었다.
 
사회적 합의, 노사관계로드맵, 혁신안
 
그 마지막 귀결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운동을 사회적 합의기구에 포섭하는 것과 일명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이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여러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노동정치 정세의 변화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면서 집단적 노사관계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복수노조 하의 교섭구조를 구성한다든가 이번에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파업에 적용된 긴급조정의 활성화, 직장협의회 활성화 등 많은 내용이 그렇다. 교섭비용(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제도화된 교섭형태로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관리하고자하는 것이 핵심적인 의도다.
 
민주노총의 비극(혹은 희극?)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요구하면서 노사관계로드맵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양립불가능한 요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둘 모두 노동운동이 제도화와 교섭 비용관리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더 놀라운 조응은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안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 --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내부로부터 완성하고자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전체 과정을 하나의 '세트'로 바로보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제기되는 쟁점들은 모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반적인 노동자운동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실천들도 일관된 흐름으로 진행되어야한다. 사회적 합의기구 참가 반대로 진행된 투쟁은 노사관계로드맵 저지와 민주노총 혁신안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중운동을 재활성화하는 다른 방향의 혁신운동으로 전개되어야한다. 노동자운동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혁신안'은 그러한 실천 속에서 대중들이 만들어 줄 것이다.
 

※ 이 글은 다른 토론들에 제출된 바 있는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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