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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선 감정들의 대립과 갈등, 그 속에서 서성거림.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지적장애자녀의 어머니가 있다.

 

어느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이의 허벅지에는 손톱으로 꼬집은 듯한 상처가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 상처를 누가 내었는지 물었고, 아이는 언어치료사라고 말했다.

 

엄마는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감정이 틀어진 상황이었기에 교사와 원장과의 대화가 원활치 않았다. 교사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아이가 힘들어한다니 죄송하고,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고 하긴 했으나, 엄마는 마뜩치 않았다.

 

어머니는 어찌저찌 알아보다가 내게 연락을 했다.

 

처음 통화할 때, 원장과 교사가 충분히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한다면 받아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원장과 만남을 가진 후,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의 통화 이후, 원장은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장애인인권단체에까지 고발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하는 식으로 말했고, 이 말이 단초가 되어 두 사람의 대화는 더욱 거칠어졌다. 결국 원장은 어머니에게 "맘대로 하시라,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모함하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튀어 나왔다. 두 사람의 감정적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른 원장들이 이 사건을 이렇게 키우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사과를 권유했고, 원장은 말싸움을 벌인 당일 저녁에 가서 엄마를 만나고자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어머니는 내게 '탄원서'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가에 대한 글을 써서 내게 보내왔다.

 

다음날, 어머니와 통화해서 원장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싶은 것인지 물으니 '내 아이가 2년 동안 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2년 동안 국가로부터 받았던(13세 이하, 장애학생의 방과후교육은 국비지원이다)돈을 전부 내게 달라'고 하였다.

 

솔직히, 황망했다.

 

어머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아이의 상처 앞에서 분노하는 것도 공감하나, 그 정도의 상처는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두고 보았을 때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위로금 차원에서 무려 500백만원(2년간 국가로부터 아동이 보육비로 지원받은 금액이다)을 요구하다니 나로선 황망할 수밖에.

 

어머니에게 '원장은 어머니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민사소송을 할 것이냐'고 물으니 '소송은 하지 않고, 내게 보낸 이 탄원서를 보건복지부, 부산시청, 언론 등에 뿌려서 그들의 잘못을 여기저기 알릴 것이다'고 하였다. 일단 어머니 입장을 전달받았으니 내가 원장을 만나 어머니의 의사를 전달하고, 내일 오전에 원장과 함께 만나자고 정리하였다.

 

그리고,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어머니에 대한 갖은 심정적 토로를 내게 해대었고, '더러워서 돈 주고 만다'는 식으로 나왔다. 원장은 설령 어머니가 요구하는 5백만원을 전부 주더라도 이 사건을 그냥 마무리 하고 싶어했다. 나는 원장에게 이렇게 하면 적절치 못한 선례가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원칙대로 대응하는 것이 좀 더 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장은 '정말 상대하기 힘든 어머니이고, 저 어머니가 이 탄원서를 여기저기 뿌리면 결국 우리만 고스란히 피해본다. 나는 그 상황이 더 힘들다'고 말하면서 내일 만남에서 매듭짓기를 바랬다.

 

알겠노라고 답한 이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일단 내일 약속 장소에서 보기로 정리했다. 그에 더해서 원장의 부탁에 따라, '원장 측에서 일정 정도의 위로금을 생각하고 있는가보다' 정도로 말을 덧붙혔다.

 

다음 날, 원장과 어머니, 어머니 친구분 그리고 나까정 커피숍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원장의 무례한 태도를 문제제기했고 원장은 사과와 함께 어느 정도의 위로금을 드려야할지 물었다.  

 

어머니 왈,

  

"어제 팀장님 통해서 말한 대로 주세요... 양심적으로 알아서 챙겨주세요... 그 양심에 대해선 제가 판단할께요~~"

  

 원장은 황망해했다.  아이 때린 것도 아니고 체벌도 아니고, 아닌 말로 손톱 자국 3개 있었고, 이미 그것에 대해서는 어머니 자신도 용서했다고 하는데... 단지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해 적절치 못한 말 몇 마디 했는데, 그 댓가가 500백만원이라니... 원장은 전부 다 줄 순 없고, 금액을 깎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하였다. 

 

약간의 어색함과 침묵이 계속 오가는 사이, 이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불편했던 나는 오지랖 넓게도 혹은 매우 부적절하게도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러면 반 정도 해서 조율하면 어떻겠느냐? 2년 동안 어머니 마음에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게 했다고 하나, 그래도 일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겠냐...'(그런데 웃긴 일은 해당 어머니가 이 사건 전까지는 이 어린이집이 좋다거 널리 홍보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늘 자리에서도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내가 이 일 때문에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데... 5백만원 그것이 싫어서 반으로 깎는다고 하니,, 뭐 그렇게 하시든지 알아서 하라고...'

 

 내가 할 말도 없고 궁색해졌다.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어머니의 반응 앞에 원장도 더 이상 끌지 않고, 바로 5백만원 입금할 테니 계좌번호 달라고 했다. 그리고 원장도 이 사건을 종결짓고 싶은지 합의서 같은 것을 미리 써 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돈 이체하고, 금액 쓰고 합의서에 싸인하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어머니는 먼저 자리에 일어나서 갔고, 나는 잠시 원장과 함께 있었다. 머리가 팽하니, 어지러웠다.원장이 함께 밥 먹으로 가자는 것을 사양하고 커피숍에서 내려와서 다른 곳으로 갔다. 

 

함께 왔던 다른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니, 당사자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팀장님, 고마워요..."

 

 그녀는 뭐가 고맙다는 걸까? 그 자리에 함께 하여 돈을 받아줘서, 약자인 자신의 편이 되어줘서, 아니면 장애자녀의 인권을 지켜줘서... 어쨌든, 그녀는 생각조차 못하겠지만, 그녀의 고맙다는 말 앞에 내 기분은 참담했다.

 

'위로금' 줄 수도 있다. 어머니 말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그 사실에 대해 물질적 보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위로금이란 것은 거칠게 말해서 '이것 줄테니 먹고 떨어져라'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실제 그러했다. 

 

내 참담함의 정체란, 날선 감정들의 마찰 앞에서 어떤 원칙을 세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에 대한 못마땅함이 아닐까 싶다.  날선 감정들의 틈을 내는 것이, 그래서 감정끼리 충돌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말은 생각나는데, 오히려 내가 이 얄궃은 상황 앞에서 심리적으로 경직되었고 오지랖까지 보였으니...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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