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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9/18
    장안사에 다녀오다.
    장작불-1
  2. 2011/09/16
    진중권의 김어준 비판 단상.
    장작불-1
  3. 2011/09/13
    야비함과 무지가 만나면...
    장작불-1
  4. 2011/09/05
    뻔뻔한 인간을 보다.(2)
    장작불-1
  5. 2011/09/01
    검도 3개월째 : 경직과 여유 사이에서 길을 잃다.
    장작불-1

장안사에 다녀오다.

오전 할 일을 마감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기장에 있는 장안사를 다녀왔다.

 

2~3번 다녀왔었지만 장안사의 특징이 떠오르지 않았던지라, 간절곳 가던 길을 돌려 장안사로 갔다.

 

우선, 장안사는 규모가 참 작은 반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지라, 절의 느낌보다는 우스개 소리로 말하자면 해변시장 같았다. 대웅전에서 절 하는 사람들도 복비(맞나?)내고, 절 하고 바로바로 나왔다. 그리고 대웅전 옆에 산신각이 있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았다. 어쩌면, 장안사 뒤로 사람들이 등산을 많이 다니는지라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는지도. 물론 주말이란 점도.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부처님 앞에 자리잡은 돈 내는 통 이름을,

 

'복밭'이라고 써 두었던 것이다.

 

복밭이라...

 

돈을 내면 복을 받는다는 의미도 아닌 것 같고, 돈을 내어 밭을 일군다?

 

특이한 이름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하나는, 이전에 시리아 갔을 때, 모스크(우리 나라로 치자면 절)에서 이슬람 경전을 조용히 읽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그들의 신(누군지는 모르겠으나)에 대해 극진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지만, 다수 사람들은 모스크에서 조용히 경전을 읽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절에서 경전을 펴 놓고 공부하는 사람은 많이 본 것 같진 않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자 삶인 반면, 우리에게 불교는 종교이긴 하나 삶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복밭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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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김어준 비판 단상.

'곽교육감 사태'를 둘러싼 김어준에 대한 진중권씨의 비판/비난이 있었다.

 

비판의 핵심은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김어준들은 판단을 유보하자(더 나아가, 우리 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난할 게 아니라, 이 상황을 함께 견뎌보자)고 하는데, 보수(라 부르고 '꼴통'으로 이해하자)쪽에서 이런 사건 발생해도 '무죄추정원칙' 운운하며 비판하지 않을 것이냐 라는 거다.

 

진씨 입장은 '니 편 내 편 가리지 말고 부적절한 행위가 있다면, 공정하게 까자'는 거다. 원론적으로 생각하면, 진씨 입장에 손들어 줄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씨 입장과 다르다.

 

'곽감사태'에 대한 김총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곽감사태'에 대해 진씨는 '교육감이란 공적 위치에서 이유야 어쨌든 간에 다른 후보자에게 2억원을 주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사퇴할 만한 이유가 된다'는 주장을 한다. 이 주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진씨의 프레임은 '후보자 매수'라는 검찰의 관점이다. (후보자 매수라는 검찰의 주장에 진씨가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일관되게 유무죄를 떠나 2억원의 금품이 오갔다는 대목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선의라 하더라도. 나는 진씨 의견과 다르다.)

 

반면, 김총수는 '곽감사태'를 MB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정략적 산물'로 본다. 나꼼수 19회에서 거듭 말하듯이 '곽감사태'는 곽노현 개인의 유무죄를 떠나, 서울 시장 보선, 더 나아가 개혁(진보)의 힘빼기 차원으로 규정한다. 때문에 김총수는 곽노현의 사퇴를 반대한다. 그의 사퇴는 정략적 의도에 따른 것이고, 이를 따라가는 것은 그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씨는 김총수의 이런 태도가 지난날 황우석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태도(논리)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김총수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자세히 모르기에 일단 넘어간다.

 

어쨌든 '곽감사태'에 대한 두 사람의 상이한 규정을 고려할 때, 진씨의 반문, 혹은 비판은 맥락을 벗어난다. 가령, 보수측 인물이 동일행동 할 경우 똑같이 처신하겠느냐' 라는 반문, 혹은 (상당한 무리수이자 정봉주씨에 대한 인격 모독에 가까운) BBK 사건은 무죄로 결정되었는데 왜 아직까지도 문제삼느냐 라는 비판(이라 말하고 비난으로 이해하면 된다) 등은 (김총수가 규정하고 있는 사태 성격에 비추어 보면) 헛발질에 가깝다.

 

물론 적잖은 사람들은 '니 편 내 편 가리지 말고 공정하게 까야 한다'는 진씨 논리에 동의를 표하며 옳다고 말한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곽감사태'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 말이 기계적(논리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김총수의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그러나 진씨는 김총수를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곽노현=우리편=무죄추정의 원칙 적용'이란 정서적 지지에 매몰되어 있다고,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문제제기한다.

 

김총수의 문제의식에는 관심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김총수가 '곽감사태'와 관련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이것저것 다 걷어내고 핵심만 꼽을라치면 '정권의 정략적 기획'이란 것이다. 진씨가 이 대목을 모르진 않을 듯 한데... 그렇다면 진씨가 김총수를 깔려면 이 대목의 타당성 여부를 파고 들어가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동의하고 있는) 김총수의 문제의식의 위험성은 없을까? 만약 2억원의 대가성이 입증되어(현재로선 그럴리도 없어 보이지만) 재판을 통해 만약에라도 유죄로 결정난다면 사퇴하지 말라고 주장한 나/우리는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나? 개인 비리를 정략적 산물로, 정권의 피해자로서 오판해버린 것이지 않는가?

 

쓰고 나니, 더 모르겠다.

 

어쨌든, 진씨의 때론 진중하지 못함이 설화를 낳는 듯하다. BBK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은 정봉주씨에 대한 언급도 그렇거니와 김총수에 대한 문제제기도 매우 거칠다.

 

문제제기 방법의 문제성을 언급할라치면,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내용은 안 보고, 내용을 제기하는 형식(태도)만 본다는 불만이다.

 

그런데,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나는 혼자만 보는 일기장을 제외한 모든 말을 대화라 본다. 그러니 트윗도)하는 태도는, 대화의 내용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절반은 차지하고 많게는 99%라고 본다. 나의 태도에서 이미 상대방의 감정은 호/불호/무덤덤으로 나뉘기에.

 

그런 점에서 진중권씨는.... 참.... 거시기하다. (진씨에 대한 나의 이런 거시기한 감정에 대해 거시기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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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비함과 무지가 만나면...

기장 정관 신도시 지역에 특수학교가 2013년 신설 될 예정이다.

 

현재 정관 신도시 부근에는 신도시라는 말처럼 적지 않은 숫자의 아파트 주민들이 입주해 있고, 앞으로도 입주할 예정이다.

 

그런데, 특수학교가 신도시 지역(정확하게 말하자면 신도시에서 가장 외곽 부근에 위치해 있는)에 들어온다고 하자, '깨끗한 기장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에서 관공서 및 입주민과 입주예정민들의 주소를 어디에서 알아내었는지 몰라도, 우편물을 보내어 특수학교 설립 반대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수학교라는 혐오시설이 들어올 시 발생할 수 있는 집값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깨끗한 기장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가 누구 대표인지 주소지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군청 및 면사무소 등에 전화를 해봤으나, 자신들은 모른다고 답하였다. 이 단체가 어떤 대표성을 띠고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봐도 관공서에서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현재, 일부 입주민 및 입주예정민들 일부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 특수학교 입주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은 '깨끗한 기장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로부터 찌라시를 받고, 민원을 넣고 있는 것일테다.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의 주소인 개인정보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는 채로, 특수학교=혐오시설=집값하락 이라는 단순한, 얼토당토 하지 않은 논리에 넘어간 채로, 민원을 넣은 것이다.

 

'깨끗한 기정,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대표자도 모르나, 이들은 이 자체로 야비하고 또한 비겁하다. 특수학교가 혐오시설이기에 지역사회로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야비한다면, 이 야비함을 감추기 위해 자신들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겁하다. 또한 이들의 야비함과 비겁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래서 이들의 야비한 선동에 넘어가는 이들은 무지하다.

 

이들의 야비함과 그들의 무지함이 만나는 결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거로 귀결된다. 충분한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슬픈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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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인간을 보다.

일요일 밤 10시 반.

 

새롭게 시작하는 주를 앞두고 이것저것 챙기던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 누구일까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 팀장님입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이가 2학년이고 자폐성장애아동인데....'

 

내용인 즉, 토요일 학교에 다녀온 **가 오자마자 구토를 하고 '응급실... 응급실... 아파... 아파..'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상해서 몸을 살펴보니 머리에 피멍이 들어 약간 부어올라 있었고, 손가락 끝이 피멍 든 것처럼 부어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특수교사는 토요일 아버지와의 면담에서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요즈음에 **의 과잉 행동이 너무 심해서 특수학교에 보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저도 **로부터 등짝을 많이 맞았다.' 뭐 이런 식의 교사의 치기 어린 투정(?)을 들었고, **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고 좀 더 엄하게 키우겠노라고 말하고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특수교사에게 **를 혹시 때렸냐고 물었으나 교사는 자신은 절대 때리지 않았고, 단지 토요일 당일 아이의 과잉 행동이 너무 심해서 제지하는 과정에서 서로 엉켰는데 그 때 손가락이나 머리를 부딪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게 아이 사진을 보내왔는데, 적어도 내 경험내에서 아이의 머리 상처는 어디인가에 부딪혀서 생길 수 있는 그런 상처는 절대 아니었고, 오히려 무엇인가로 머리를 때려서 낸 상처임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토요일부터 일요일 밤까지 주말 내내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교사를 하는 친구들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물으니 전부 '그냥 니가 넘어가라. 시끄럽게 해 봤자 좋을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넘어가려고도 했으나, 너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내게 전화를 했노라고 말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를 말해준 다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고, 교사의 체벌 사실 인정과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이야기하였다.

 

나로서는 교사의 태도가 어이 없거니와 뻔뻔해서 교육청 민원을 비롯한 인권위 진정 등 좀 더 공론화시켜 문제를 제기했으면 바람이었으나, 부모님은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다는 의사를 강력히 피력하였기에, 그냥 이 정도 수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월요일 오전, 학교에 전화를 해서 오후에 교장과 교감과의 약속을 잡고 학교를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고, 특수교사를 불러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런데 특수교사는 오자마자 희한한 소리를 했다.

 

"** 아버지. 과정이 어쨌든 간에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을 힘들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그런 아이를 자신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서 교육하고 있는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고민하고 있다는 둥, 이런 소리를 주절주절 해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이유야 어쨌든 간에,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물리적 행위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이 사태는 선생님이 때렸나 안 때렸나가 가장 중요하다. 아버지가 분노했던 것도 당일 아이를 때렸음에도 그것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단지 아이 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이하고 그렇게 물리적 충돌이 있었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도 전혀 말도 없다가 아버지가 전화를 하니 그제서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 교사의 태도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니 말해달라. 때렸나 안 때렸나'

 

특수교사는 잠시 있다가 떠는 듯한 목소리로

 

'저는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사실 나는 이 순간 교사가 때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사진 보고 이미 때렸다고 생각했지만. 보통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때리지 않은 교사는 자신의 정당성을 바로 즉각적으로 제기한다. 적어도 이 교사처럼 긴장하고 떨면서 침묵한 후, 답하진 않는다.)

 

나는 아버님께,

 

'아버님, 교사가 인정을 안 합니다. 이 부분은 사실을 확인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은 더 이상 없습니다. 아버님이 원하신 부분이 교사의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인데, 사실부터 다른 만큼 이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기관에 신고해서 답을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가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만큼 이 자리에서 교사에게 더 이상 문제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니, 자리에서 일어섭시다'

 

교사는 별 말 없이 가만 있었고, 교장은 사태를 봉합/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들..

 

'**아버님. 억울하고 마음 아픈 것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게 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제가 교사한테 잘 이야기 해놓을테니깐, 어디에 조사를 의뢰하고 이런 것은 서로 더 상처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게 맡기시고 이번에는 마음 푸십시오'

 

학교에서 나간 후, 아버님은 '그냥 학교를 전학가고 싶다. 애 엄마도 저 교사한테 지난 2년 간 시달린 것 생각하면 그냥 전학가자고 한다. 나도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다'고 말하면서 헤어졌다.

 

아마, 이 사건은 결국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귀결될 듯하다. 내일 전화를 해서 적어도 교육청 민원은 넣어보자고 설득할 생각이나, 두 분은 마음 여리기도 하고 이런 일을 공적으로 다루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에 아마도 그리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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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교사는 때리지 않았을까? 때렸다고 생각하는 나의 확신이 틀릴 가능성은? 그러나 정황을 생각하면 때렸다는 의심을 정말 지우기 어렵다.

 

2년 동안 한 번도 부모면담을 하지 않았던 그 특수교사. 이번 토요일 처음으로 아버지와 면담을 요청했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는 당일에 있었던 사건은 일언반구도 없이 단지 '아이가 과잉 행동이 심해지고 이를 다스리는 일이 교사로서 너무 힘들다. 이러면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였을 뿐. 토요일 오후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그제서야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이 상처가 났느냐.'라고 반문하는 태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자신의 물리적 행위를 감추기 위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적어도 교사라면, 아니 교사라는 것을 떠나서 나이 45살 전후의 아줌마(성인)하고 초등학교 2학년짜리하고 서로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면 당연히 아이가 혹시 다치지 않았나 보는 것은 일반적 상식 아닌가? 그런데 그 50살짜리 아줌마는 아이 아빠 만나서 '내가 이 아이한테 맞았어요'라고 징징거리는게... 도대체 납득 가능한가? 그런 인간이 특수교사라고.....

 

설령, 정말이지 설령 때리지 않았다 해도, 해당 특수교사의 행위는 정말이지 뻔뻔한 것이었다.

너무 뻔뻔해서 소름이 잠시 끼치기도 했다.

 

저런 인간이 부장직을 달고, 이제 교감직을 달고, 또 교장직을 할 생각을 하면, 무섭고 혐오스럽다.

 

나두 저리 뻔뻔하게 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는 커녕 과오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뭐,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라는 식의 태도.

 

나의 어떤 행위로 인해 남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이것을 인식하고 이를 경계하는 것부터가 염치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시작점이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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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3개월째 : 경직과 여유 사이에서 길을 잃다.

검도를 배운지가 3개월째 접어든다.

 

처음 시작할 때, 표류하고 있는 내 삶의 꼬라서니를 보면서 중심잡을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던 차, 검도를 선택했다.

 

처음 1개월은 지루함이 꽤나 컸는데,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대결을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본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가야 하고, 막아야 하고, 쳐야 하고.

 

온 몸의 세포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꽤나 기분 좋은 긴장이다.

 

그러나 아직 내 몸은 둔하기 그지 없다.

 

오늘, 관장님과 짧게나마 공격 연습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뻣뻣한지, 긴장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나치게 긴장하면 경직되고, 그렇다고 여유를 가지자니 너무 이완되었고.

 

긴장과 여유, 그 중간 어디를 찾지 못해 나는 허둥지둥 대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오늘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허둥지둥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점 정도이다.

 

아직까진 하루하루 검도를 배우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여전히 갑작스럽게 가기 싫은 마음이 생겨나기 한다. 습관으로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심리적 상태이다.

 

9월부터는 새벽에 수영까지 나가게 되니, 어쩌면 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개 모두 80% 이상의 참석율을 목표로 9월을 열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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