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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

行旅(행려)

                               박영근

詩(시) 한 편을 쓰기가 이렇게 어렵다
하필이면 너는 백화점 입구에서 쁘렝땅인지
이랜든지 끝물이 된 옷들을 쎄일하고,
네 목에서 울리는 PCS 벨소리가
오래 허공을 떠돌다 돌아와 나를 울린다

어쩌면 쓰다 만 소설처럼 굴러다니던 네 러시아 기행담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계가 사라진 백야의 세계와
떠돌이 오퍼상을 유혹하는
무너진 사회주의 뒷골목의 딸라 이야기를 나는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네가 서 있는 기다림의 밑바닥
다 내려갈 수 없는, 탕진해버린 시간의
무덤 속을 비추고 있는 광고탑의 위용 앞에서
詩(시)란 또 무엇일까
끝없는 행려(行旅)가 있을 뿐 돌아갈 곳이 없다
컨테이너 박스 안을 뒹구는 재고가 된 옷보따리와
그 곁의 새우잠처럼
먹다 남긴 소주병처럼
그 속에서
깨어나지 않는 꿈처럼

 

 

오늘 출근길,, 5시50분쯤.. 지하철 대합실 원탁형의자에 두여성이 자다깬 모습으로 컵라면을 드시고 있습니다.
지하철 놓칠까봐 뛰어가다보면 남성분들 여럿이 새벽부터 막걸리 드시기도 하고 북적였는데,, 오늘은 여성분만 둘이 있네요..
박영근시인은 제가 참 좋아하는시인입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이 자꾸 떠오르네요 '그 속에서 깨어나지 않는 꿈처럼'...

 

쪽방의 한달 월세가 20여만원이라합니다.

고시원도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을것이고요..

시골에는 그 정도면 단독집한채를 세내서 살수 있는데 왜 그리 힘들게 살까? 하는 뭣모르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돌아갈 곳이 없는것입니다.

 

"끝없는 행려(行旅)가 있을 뿐 돌아갈 곳이 없다"
                                                  --  박영근 시 '행려' 에서

 

돌아갈곳이 없는것입니다.  핏발같은 경쟁에서 한번 내밀려 밑으로 쳐박으면 그대로 쳐박혀야 할뿐 이제는 돌아갈 고향이 없는것이죠..  그래서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들이 수십명이나 자살하고 심장마비로 죽어간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시골에는 집이 많습니다.  빈집도 많이 있지요.. 그넓은 충청도 괴산,보은 이런곳 인구가 3-4만명입니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같였네"   -- 기형도 시 '빈집' 마지막구절

 

빈집은 사람이 비어있는 집입니다. 사람이 비어있는 집에 사랑이 깃들리 없지요.    사람이 없고 사랑이 없는곳 그곳으로 돌아갈수는 없는것입니다.

 

돌아갈곳을 만들어야 합니다.

빈집에 사람을 채우고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놀고

그리하여 사랑과 웃음이 넘쳐나는...

 

40대후반에 돌아가신 윤중호님의 유고시입니다.

녹색평론과도 인연이 있다하시니,  살아계셨다면 이번 녹색당에 함께하셨을수도...

 


가을(미완유고시)

                              윤중호

 

돌아갈 곳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모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마지막 저
당재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
무덤 가는 길만 한 번 더 보구요

이. 제. 됐. 습. 니. 다.

* 윤중호(1956-2004)시집  '고향길'(200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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