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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비마이너] 내 안의 사랑이 죽었다,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내 안의 사랑이 죽었다,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기획 - 2015 광인일기]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

                              뉴스일자: 2015년11월23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광화문역 농성장에 미소를 띠며 그가 나타났다. 지난해 난 그가 대표로 있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진행된 회복문화대학에서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두어 시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십여 명의 정신장애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도 기억에 남지만, 강의 준비와 뒷정리를 나서서 하며 오늘처럼 빙그레 웃던 그의 모습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주변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삶 자체에 감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편안해 보였다. 그가 경험했던 정신장애 증상들은 그의 생생한 설명과 묘사 덕분에 매우 심한 증상이었음에도 ‘판타지 소설’을 듣는 듯했다. 긴 시간 자신의 삶을 술술 풀어내며 극적인 재연까지 선보이던 그에게서 나는 오히려 생활의 건강함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김락우라는 사람의 삶으로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우리네 근처에서 이어지고 있는 어떤 질긴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때, 내 안의 사랑이 죽었다” 

 

최선영(아래 최) : 당사자의 경험이 궁금합니다. 언제 발병했고 어떠한 증상이 있었나요?

김락우(아래 김) : 2000년 12월 초에 조현병(정신분열)이 발병했어요. 처음엔 환청이 들렸고 이후 망상, 환시, 환촉, 환후의 증상이 모두 나타났어요. 첫 입원은 이듬해인 2001년 2월 초에 했습니다. 발병했던 12월 초순부터 이듬해 1월 중순까지는 증상을 겪으면서 가전제품 파는 일을 했고요. 이후 입원하던 2월 초까진 밤낮으로 길에서 방황했습니다. 무척 많이 걸어 다녔는데요. 서울에서 용인까지 걸어간 적도 있습니다. 2004년 3월에 괜찮아지면서 3월 말에 퇴원했습니다. 현재는 굉장히 양호하고 증상이 없다시피 합니다.

 

: 정신장애인의 경우, 입원해 있다가 사회로 복귀할 때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습니다. 2004년 병원에서 완전히 퇴원한 이후 경제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 2004년 퇴원했을 땐 국민기초생활수급권을 가지고 있어서 정부로부터 수급비와 장애수당 등을 받아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7월에 정신장애인 사회복지시설에 취직하게 되면서 그 뒤로 수급권이 없어졌습니다. 현재는 강의, 프로그램 진행, 대체근무자 업무, 청소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대표님은 어떤 이유로 정신장애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나요?

: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나 저는 증상 발병 한 달 전에 제 안에 있어야 할 사랑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대상은 제가 깊은 관계를 맺어야 했던 6명 ― 엄마, 형님, 막내 누나, 사장님, 고등학교 친구, 첫사랑 아가씨입니다. 당시 이들만이 제가 관계를 맺었던 전부이죠. 근데 이들에 대한 사랑이 죽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환청을 들었을 때 제가 실제로 아는 사람의 목소리는 이 6명만 있었기 때문이에요.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서 등장합니다.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 허공의 목소리, 내 몸에 우글우글 대는 목소리였어요.

 

 

▲광화문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서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와 최선영 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랑이 죽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죠?

: 6명마다 이유가 다 있어요. 먼저, 엄마와 형님의 경우예요. 제가 일을 했지만 엄마는 동네 쓰레기를 집에 가져다 쌓아놓아서 냄새가 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따로 나와서 살 때도 있었고 1년마다 이사를 가기도 했어요. 스트레스도 심했고 엄마와의 마찰도 많았죠. 위에 형제들은 모두 결혼을 했는데 제가 엄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형제들과 엄마에 대해서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던 거죠. 막내 누나는 제게 정신적 버팀목 같은 존재였는데 발병 1년 전 결혼해서 떠났어요. 잘 만날 수 없게 되면서 누나와 형제지간의 사랑을 나누기 어려운 상태가 된 거죠.
고등학교 친구의 경우엔, 그 친구가 제게 “넌 왜 사회적으로 자리 잡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결혼도 안 하느냐”라고 말했어요.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였지만 그 이야길 듣고 전 속 상했죠. 2009년도에 다시 만났고 현재는 아주 좋은 관계가 됐어요. 제가 정신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동창회에도 같이 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일하던 곳의 사장님은 제게 “너는 남의 덕으로 사는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동네에서 가전제품을 파는 일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사장님은 그런 제 태도를 별로 인정해주지 않았죠. 딱 한 번 그런 말을 했는데도 저는 큰 상처를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첫사랑이자 제가 다섯 번째 만났던 아가씨에게서 어느 날 결혼한다고 전화가 왔어요. 처음으로 제 마음을 받아줬던 사람이어서 제겐 구원 같은 존재였죠. 주변이 힘들어도 마음의 큰 위안이었는데 결혼한다고 하니 마음이 무너졌어요.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거지요.

 

: 발병하고 나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 가족들은 입원을 권했고 저는 반대하지 않고 입원했어요. 4번에 걸쳐 총 14개월 입원했습니다. 증상은 매번 입원한 지 2~3일 만에 없어졌어요. 입원 중에 병원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어요. 주변인들의 간섭과 해야 할 일 등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편한 점도 있었죠. 그렇지만 장기입원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 발병하면 어떤 증상들이 올라오나요? 그 증상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 형님 차 타고 은평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길에 환청이 들렸어요. “넌 지금 형 차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형은 이미 죽었어. 다른 혼령이 형 속에 들어있고 운전하는 거야” 그때 형님이 뒤를 돌아봤어요. 근데 눈에서 빛이 반짝하는 거예요. 밤이면 개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듯이. 그래서 우리 형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차에서 내려 도망쳤어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환시였던 것 같아요.

▲김락우 대표

2001년 1월엔 영등포에서 용인까지 걸어간 적이 있어요. 며칠 동안 걸어가던 중, 어느 날 밤 11시에 저 멀리 교각을 보면서 둑으로 된 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하천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렇게 추운 1월에 물로 들어가는 존재라니 ‘저건 사람이 아닐 것이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귀신을 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또 다른 날 오전 10~11시쯤 길을 걸을 때였어요. 공기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때 환청이 “너 지금 피 냄새가 느껴지지? 너는 지금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생령 상태인 거야. 생령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기를 흡입하고 사는 존재야. 네가 사람들의 생기를 호흡하고 있어서 그 피 냄새가 나는 거야. 네가 호흡하는 만큼 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생기가 고갈되고 결국 죽게 돼.” 제가 숨 쉴 때마다 살아있는 것들의 생기를 빨아들인다고 하니까 정말 그런지 실험을 해 봤어요. 길가에 핀 꽃을 꺾어 향기를 맡았는데 갑자기 꽃이 시드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날은, 쇼핑센터 앞을 지나가는데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요. “넌 왜 하나님에게만 기도하고 용왕님에게는 안 하느냐. 등한시하느냐. 동해의 큰 거북이가 용왕님이니 예의를 갖추거라” 그래서 그 자리에서 동쪽을 향해 큰절을 했어요. 버스 타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앞에서 말입니다.

 

# 진정한 의미의 회복은 ‘증상만 없어지는 거 아냐’

 

: 발병 당시 증상이 심하셨던 것 같아요. 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 처음과 두 번째 퇴원했을 땐 수급권자가 아니어서 돈 버는 일에 바로 돌입했어요. 내 삶, 혹은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에 필요한 것도 하지 않고요. 그랬더니 금방 재발해서 재입원하게 되더라고요.

 

: 정신장애인분들의 사회복귀문제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정신장애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당사자로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정신장애인이 놓인 현실을 볼 때,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이 ‘회복’에 대한 방향성을 잘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당사자들도 자신이 뭔가 성취해내지 않으면 ‘난 사회적으로 쓸모없고 폐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관점을 가지거든요. 여기서 성취라는 것이 어떤 종류에 대한 성취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보통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향하는 것을 당사자들도 원해요. 그런데 사회 일반은 이타적인 사람이 되려는 것을 성취목표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척이나 이기심이 가득한 상태이지요. 어려운 이웃에 관해서도 관심이 없고요. 당사자 동료들에게도 이런 사회 분위기가 내재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동료들에게 ‘복권이 당첨됐을 때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물어보면 첫 번째, 집을 사고 두 번째, 저축하고 세 번째, 가족들과 여행 가고 싶다고 해요. 자신을 비롯한 가족이기주의적인 관점만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으면 회복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 회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김락우 대표님이 바라보는 ‘회복’이란 무엇인가요. ‘완치’의 개념입니까? 
: 제가 생각하는 회복의 개념은 ‘완치’ 그 이상입니다. 당사자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했거나 변화한 상태입니다. 자신과 가족뿐만 아니라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한 사람을 넘어서서 타인과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랑은 생각이나 말로써 완성되지 않으므로 실천과 수고하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며 사는 삶을 견지하고 있는 당사자라면 그에게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병에 걸리기 이전의 심신 상태를 이미 초월한 상태이며 보통의 비당사자들이 가진 마인드를 넘어선 상태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이것이 회복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당사자들 자신이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회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복이란 증상만 없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끊어졌던 주변 관계가 다 복원되는 거죠. 주변 사람을 돌보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스트레스가 발생하면서 재발하게 됩니다. 따라서 회복의 목표는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정신질환으로부터 회복은 바라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회복은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선영 로사이드 스텝

 

 

: 그러한 ‘회복’의 과정을 생각하시면서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실 것 같습니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 센터는 동료상담, 정보제공, 자립생활기술지원, 권익옹호활동 등 신체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프레임을 차용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핵심 활동인력이 3명으로 아직 법적인 지원은 없는 센터죠. 서울시 또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국내에 이러한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없고 해보려는 사람도 없는데 자신이 정신장애인임을 오픈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센터에선 2014년에 ‘한국장애인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회복문화대학’이라는 사업인데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회복에 대해 수동적인 자세를 갖지 말고 스스로 회복문화를 조성하자는 내용이었죠.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당사자 역시 사람이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인문학적 접근을 담은 강좌로 꾸려졌습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동료들과 나누고 함께 경험하는 활동을 하는 ‘나도 Learn. Teach. Exercise 한다’, 나의 병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증상을 비롯한 어려움을 스스로 연구하는 ‘당사자연구’. 이렇게 세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진 저희 사업이 한국장애인재단 2014년 지원사업 중 최우수 프로그램 상을 받았습니다.

 

: 센터가 시비, 국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현재 센터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 작년까지 2년간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에서 센터 임대료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 몇 분이 정기적으로 작은 후원금을 보내 주시고 있고요. 현재는 다른 단체의 사무실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어 사무공간 경비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직 활동가들에게 급여를 주지 못하고 있는데요, 만일 2016년도에 저희 센터가 정부로부터 사업비를 책정받을 수 있다면 활동가들의 급여 부분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 센터가 신체장애인의 자립생활센터 프레임을 차용하였기는 하나, 신체장애인과 다른 정신장애인만의 문제와 자립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센터가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프로그램과 활동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요?

: 저희 센터가 지향하는 것은 개인이 회복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당사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회복 관련 문화를 조성하고 이끄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 센터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정신장애인 운동에 나서는 것 등이 저희가 추구하는 활동입니다.
 
: 센터 운영 등을 통해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직접 느끼신 것이 더 많으실 것 같은데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 증상이 재발할 때마다 저는 증상 속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네 번 입원하며 총 14개월 동안 폐쇄병동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퇴원 후, 2004년 3월에 정신장애인 모임이 있다는 보건소 연락을 받았어요. 예전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보니 동료들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증상으로 힘들 때 영등포에서 용인까지 걸어가며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한정식 식당, 중국집, 노변 가게, 노인정 등에서 아무 대가 없이 저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어요. 라면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든가… 지역에서 동료를 만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도움받았던 분들에게 찾아가 고맙다고 하기는 힘드니 그 빚을 갚는 마음으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자.’ 그리고 동료들도 그런 저를 격려해주고 응원과 칭찬을 해주니 자존감이 커졌고요.
동료들을 만나서 서로의 증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스토리만 다르지 증상이 동작하는 구조는 같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증상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이러네,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네, 이런 게 당사자에게 큰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또 자기 병에만 집중할 경우, 이 병만 나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료들과 만남은 정서적인 것, 인간관계 등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줘요. 그래서 동료들과 만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 나의 회복을 왜 타인에게 맡겨두는가?

 

: 정신장애인분들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약물 관리가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도 약을 복용하시나요?

: 그럼요. 저도 먹었죠. 당사자들은 단순히 약 먹는 것에 대해서도 정신질환자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반감을 가지고 있고 약을 끊고 싶어 해요. 저도 약물 부작용이 심해져서 약을 6번 정도 바꿨어요. 부작용 때문에 정신건강증진센터 참여가 힘들어서 약을 스스로 조절했습니다. 센터에서의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었는데 부작용이 심하면 근육이 마비되고 몸이 뒤틀리기도 했거든요. 체내에서 약물이 완전히 빠져나가는데 40일 정도 걸린다고 하길래 약을 안 먹어보고 며칠 만에 부작용이 없어지는지 살펴보면서 조금씩 약을 줄였어요. 의사와 협의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저 자신에 대해서 연구하며 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저에겐 스스로 자기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김락우 대표가 광화문광장에서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자기결정권은 결국 ‘당사자 운동’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 왜 나의 회복을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두는가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갖춰도 자신이 스스로 움직이고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면 회복도 안 되고 사회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회복을 위해 우리가 움직이자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하려는 문화가 필요해요. 또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가족·주변인 중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을 원치 않아 하는 분도 있어요. 열심히 회복과 치료를 위해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지만 가족이 설정해 놓은 치료와 회복목표대로 되는 것을 원합니다. 가족들의 바람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태도는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더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 형님도 저의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아요. 형님은 제가 당사자들과 만나거나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련 활동을 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잡기를 바라죠. 가족들이 생각하는 회복의 방향성이 당사자가 필요한 회복의 방향성과는 다른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정신분열증에 걸리기 전보다 훨씬 행복하고, 성숙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포함해서요.
그리고 정신장애인만으로 구성된 당사자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안 좋을 수 있어요. 우리는 정신적 어려움을 크게 혹은 작게 동반하고 있으므로 개인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비당사자와 소통하며 협력할 필요가 있어요. 비당사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안 하고 함께 협력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인간관계의 단절을 추구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정신적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이 타인과의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인 것을 안다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요. 당사자 중 많은 분이 개인적 회복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여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을 상정합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요. 이런 생각은 당사자의 회복에 역행합니다. 자기 자신과 사회를 향해 옳고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것, 동료들을 비롯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이타적인 자세 등은 ‘회복과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 당사자에게 필요한 회복의 방향성과 가족이 생각하는 회복의 방향성이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정신장애인의 경우 가족과의 갈등 문제(가족에 의한 강제입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폭넓은 의미에서의 가족지원도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일환으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 가족지원도 필요합니다. 다만 어떤 부분을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의 논의가 있어야겠지요. 정신질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과거 정신질환을 가졌거나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제일 중요한 정보이자 키워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당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의료진 등 전문가에게서 듣고 싶어 할 뿐, 정작 당사자가 하는 말은 쓸데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센터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자녀에게서 듣기 어려운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와 당사자의 경험을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향후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활동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정신장애는 ‘회복’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회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증상이 사라지면 회복일까? 약이 필요 없어지면 회복일까? 지금 사회는, 개인이 자신을 끊임없이 회복의 상태로 끌어내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한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진짜 회복이 무엇일지를 찾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고민은 그래서 과연 ‘산다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철학적, 반성적 태도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김락우 대표의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계속되고 있는 생생한 고민으로 들렸다. 그는 회복되었을까? 회복되고 있을까? 그의 회복을 나의 저편에 두고 궁금해하다가, 이타적인 삶에 대해 강조하는 그의 눈을 보며 과연 우리와 사회는 회복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이 죽어버리도록 흘러가 버리는 사회는, 어떤 회복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각자의 마음에 사랑이 죽지 않도록 개개인이 알아서 버텨내고 일어서야만 할까.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는 그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약하거나 헐거운 이에겐 스스로의 건강함을 유지하기란 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글쓴이 : 최선영.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 운영위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무엇’이 되기 전의 어떤 창작을 하고 있다. 그것이 계속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거나 그것에 빛을 비추는 활동을 이어간다. rawside.kr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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