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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참세상] 장애인의 시설탈출, 살이있는 드라마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501

 

장애인의 시설탈출, 살이있는 드라마

[상상나누기] 장애인들의 탈출이 계속되고 있다

김유미(노들장애인야학 교사)  / 2010년04월28일 18시17분

 

지난 토요일 한 장애인이 또 시설에서 ‘탈출’했다. 이번에도 ‘한 편의 드라마’가 연출됐다. 28세 남성 S, 뇌병변장애에 언어장애가 있다. 열 달 전 경기도에 있는 ㄱ시설에서 동료들과 함께 ‘탈시설’ 하려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실패,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ㄴ노인요양병원으로 보내진다. ㄴ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던 S와 시설 동료들 사이에 작은 싸움이 일어나고, 이 일로 S는 ㄷ정신병원에 격리된다. 미치지 않은 S는 시설 밖 친구들에게 SOS를 날린다. 그리고 얼마 뒤 시설 밖 친구들이 차를 끌고 ㄷ정신병원에 S를 ‘면회’하러 간다. 친구들을 만난 S는 친구들에게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ㄷ병원 관계자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S는 친구들의 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한다. ㄷ정신병원은 경찰에 S가 납치되었다고 신고. S가 탄 차량 번호가 노출된 탓에 S와 친구들은 경찰 검문을 피해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 가며 급히 서울행…

 

지금 S는 잘 있다. S와 친구들, 분노한 S의 아버지, 납치범 탐문에 나선 경찰, 관리 부실 책임을 뒤집어쓸까 노심초사한 정신병원 사이에 여전히 긴장이 흐르고 있긴 하다. S는 열 달 전 함께 탈시설을 하려고 했던 ㄱ시설 출신 친구들 집에 머물며, 앞으로 만들어 가야할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병원에서 뭔지도 모르고 먹어야 했던 약을 끊은 덕분에 더 안정된 S.

 

지난해 여름에도 한 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마흔두 살의 지체장애가 있는 여성, A. 경기도 산골짜기 시설에 살던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소등’하고 ‘취침’한 밤에, 온 몸으로 기어 시설을 탈출했다. 큰 길이, 불빛이 보일 때까지 무작정 기었다. 몇 시간을 기었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를 발견해 근처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언젠가 시설에 들어와 ‘탈시설 욕구’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갔던 S가 생각나 무작정 ‘탈출했으니 도와 달라’ SOS를 날린다. A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달려온 S와 경찰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달려온 시설 관리자. A를 가운데 두고 설전이 벌어지고, A는 S와 함께 시설이 있는 동네를 벗어난다. 밤 1시, 그녀의 탈출이 이뤄졌다. A도 지금 잘 살고 있다. 그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다. A가 한밤중에 시설을 기어서라도 나가야겠다 결심했던 건, 시설에서 A의 손전화기를 빼앗은 사건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녀의 남편인 T와 그녀는 시설에서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A와 T는 시설에서 나가 함께 살기로 약속했으나 A 부모가 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T 먼저 시설을 나가게 된다. 떨어져 있는 동안 A와 T를 이은 유일한 수단은 손전화. 시설에선 A가 손전화를 통해 계속 ‘탈시설’을 꿈꾼다는 사실을 알고, 전화를 못 쓰게 눈치를 주다가 결국 이를 빼앗고 만다. 눈앞이 깜깜해진 그녀,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기로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설에서 기어 나온다. 그곳에선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벼락 맞듯 깨달은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라고 표현했지만 이 이야기들은 바로 2009년, 2010년에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자, 이제 극적인 드라마의 재미에서 빠져나와 ‘시설’에 주목해보자. 대체 시설이 어떤 곳이기에 장애인들이 거기에서 ‘탈출’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사람이 죽어나갔다. 정신질환자 80%, 알콜중독자 20%, 한 방에 60명이 똥통, 소변통 옆에서 잤다. 새벽 4시 기상시간. 배고파서 개밥도 먹어 봤었다.” 1998년에 충주 장호원 근처에 있었던 장애인생활시설의 모습이다. 당시 시설은 열악했고, 인권유린의 온상이 되어 우리 앞에 종종 등장했다. 그곳에 살았던 야학 학생 덕민께서는 당시를 “완전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시설은 한 방송사의 ‘현장고발’ 보도로 바로 폐쇄됐다.

 

시설 폐쇄로 살 곳이 없어진 덕민은 ‘음성 꽃동네’로 옮겨 갔다. “꽃동네는 동네가 아니었다. 작은 도시라 할 만했다. 5000여명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건물만 해도 300여명. 한 방에 15명 내지 17명까지 정신지체, 뇌성마비, 중도장애인들이 같이 생활했다.” 꽃동네는 그 명성답게 장애인을 잘 보살폈다. 덕민은 꽃동네를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시설”이라고 이야기한다. 21세기 시설은 이제 적어도 먹고 생활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는 듯하다. 아직도 종종 인권유린 뉴스가 흘러나오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설이 살 만한 곳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춥고 배고프지 않았지만 덕민은 2004년 꽃동네에서 나왔다. 그 역시 지금 잘 살고 있다.

 

“아침에 5시 반에 일어나서 6시 반에 밥을 먹고, 씻고 뭐하고 하다보면 8시가 돼요. 8시부터 8시 반까지 기도 시간이고, 기도가 끝나면 10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근무자들이 점심 준비를 해요. 우리는 11시 반에서 12시까지 점심을 먹어요. 12시부터는 근무자들이 밥을 먹고, 그 뒤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에요. 자유시간에 저는 주로 컴퓨터를 해요.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근무자들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해요. 4시 반부터 5시까지 밥을 먹고, 5시부터 청소하고 이불 깔고 잘 준비를 해요. 6시부터 6시 반까지 저녁 기도 시간이고, 그 뒤론 또 자유시간이에요. 9시에는 불을 꺼요. 불은 꺼야 되는데 텔레비전은 안 꺼도 돼요. 텔레비전은 11시까지 볼 수 있어요.” 2010년 4월 현재 꽃동네에 살고 있는 국진 씨, 종일 뭐하며 지내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다. 국진 씨는 1990년 그의 나이 15살에 꽃동네에 입소해 20년째 살고 있다.

 

시설 안과 시설 밖의 삶은 확연히 다르다. 시설 안의 삶은 군대 안, 감옥 안과 닮았다. 한 방에서 대여섯 명이 5시 반 기상 9시 소등하는 생활을 20년 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학교에서 단체 생활과 규칙을 가르치기 위해 진행하는 극기 훈련, 야영 프로그램도 3박 4일이면 족했다. 시설 안의 삶, 장애인의 삶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된다는 전제를 깔아야 시설이 살 만하다,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장애인에 대한 포기가 전제된 말. “아직까지 시설에 대한 불만은, 그렇게 큰 불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소한 것들… 나도 자립생활 한번 해보자, 남들 같이 일도 해보고 돈도 벌어보고 한번 그렇게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시설에서는 틀에 박힌 생활이니까. 오늘이 어제고, 어제가 오늘이고…”

 

지난해 국진 씨는 시설에서 나와 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시설 바깥으로부터 받았다. 가족의 반대가 심하기도 했지만 그가 선뜻 나가지 못 한 건 대책이 없어서였다. “그때는 숙일 수밖에 없었어요. 돈… 보증금이 필요한데… 그동안 제가 나오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무조건 나오겠다고 했던 거예요. 근데 돈 문제가 걸리니까 고집을 끝까지 못 부리겠더라고요.”

 

 

‘탈시설’은 엄연한 현실의 문제다. 시설에서 삶을 저당 잡힌 채 살아오던 사람들에게 무슨 돈이 있을 것이며, 가족의 포기로 버려진 이들에게 돌아갈 집이 있을 리 없고, 게다가 일상적으로 활동보조가 따라 붙어야 삶이 가능하다는 취약점(?)도 있다. 모든 것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밑바닥에서 탈시설은 시작된다. 투쟁하지 않으면 되는 게 없는 게 탈시설 장애인들의 삶이다.

 

야학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탈시설 중증장애인들은 “선생님, 화장실 좀…” 화장실에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하고, “안 바쁘시면 밥 좀 먹여주세요.” 매 끼니 밥 먹을 걱정을 한다.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과일 가게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활동보조인이 갑자기 오지 못 하는 날이면 축축한 엉덩이로 종일 천장만 보고 누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지역사회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마치 신고식이라도 하듯 한번 씩 대성통곡을 한다. 힘들어죽겠다, 외로워죽겠다는 이야기는 해도 시설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현재 국진 씨는 꽃동네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와 음성군수를 상대로 자립생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해 12월 음성군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했는데,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는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게 돼 있다. 당사자가 서비스를 신청하면 관할 기관은 욕구 조사를 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국진 씨는 음성군에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군에서는 시설에서 나오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정도의, 누구나 아는 정보만 제공했다. 욕구조사도 없었다. 국진 씨는 음성군청이 자신이 제기한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에 문제제기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소송의 의미는 크지만 가족의 반대가 여전하고 소송이 잘 될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내가 몸도 못 가누는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것이며, 몸이 갑자기 아프면 누가 병원에 데려갈 것이며, 갑자기 위험한 일이 나도 대처가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시설에 있으면 다 알아서 해주는데 왜 그러냐고… 사람으로 살면서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내가 느끼는 기쁨, 그런 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아도 천국이 지옥이 되고, 지옥에서도 내가 기뻐하면 그게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진 씨의 드라마는 아무래도 대하드라마가 되려나 보다. 야학에선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말장난을 하곤 한다. 썰렁하지만 맞는 말 같다. 시설에 장애인을 가두는 것, 스스로 시설에 갇히는 것, 결국 서로 함께 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 꽃동네 국진 씨가 어서 이곳으로 나오면 좋겠다. 활동보조가 없어 쩔쩔매고 대성통곡하는 시간을 겪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제, 오늘, 내일이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보다, 후들거릴지라도 이곳에서 함께 사는 게 낫다. 삶은 밑바닥에서 만들어 가면 되는 거니까. 포기하는 것보다 투쟁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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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서비스이용권에대한 메모...

권리에대한 논의는 의무와 연결짓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건강권은 건강할 권린데 이는 권리를 달성해줄 의무를 누가 갖는가가 문제해결의 요점이다.

 

건강권은 포괄적이라  좁혀서 의료와 관련된부분만 떼어놓고 생각해본다. 

이름붙이자면 의료서비스이용권(혹은 적절한 의료관계보장권?)이 될테고 의료공급자(국가/의료기관/의료인등)의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제공의무가 될것이다.

 

* 알아둘것

현시스템상 의료서비스는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을 통해 이용된다.

의료기관은 기관의 성격에따라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으로 나뉘고,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의료인의 생성은 의과대학및 국시를 통해 국가의 관리하에 이루어진다. 의과대학은 국립/사립대를 막론하고 입시를통해 학생을 받고 고액의 학비로 유지된다.  의료기관은 엄격한 요건을 통해 개설되고 돈을 받는의료행위는 의료기관(동시에 사업자등록증을 낸 사업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의료비용지불은 보험/보호와 비보험으로 나뉜다. 보험인경우 의료서비스구매자(이용자)는 총비용의 일정액만 지불한다. 건강보험은 전 의료기관이 가입되있다. 건강보험은 공단에서 운영하고 건강보험료를 걷어 재원을 확보하며 협의(삼자간)를 통해 의료공급자에게 규정을 통해 배분한다.

의료기관이 아닌곳에서는 의료인인경우 자원활동(무료의료봉사)으로 의료행위가 가능하다.

 

*권리

권리는 의료의 보편적 속성상 모든사람이 갖는다. 모든사람이 아플수 있기 때문이다.

권리의 내용은 (아플때 아니면 안아픈상태를 지속하기위해) 원하면 충분한 시간동안 적절한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것이다.

 

* 문제/권리의 침해

아파도 의료서비스를 적절히 받지못하는 사람이 많다.

저소득층/장애인이 가장큰 침해를 당함

 

* 의무

이 권리에대한 포괄적 의무는 국가가 지고 있다. 허나 이렇게만 생각하면 정치의문제로 환원될뿐이다.

 

의무를 져야할것으로 보이는 사람/집단들이 있다.

1)각각은 어떤의무를 갖고있고

2)지금 자기의무를 못하고있는 것은 무엇이고

3)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이름만 열거해보자.

 

-국가(보건복지부/공단/지자체)

-의료관련기업(보험관련/제약관련/의료장비관련등)

-의료기관(민간/공공)

-의료인(개원의/봉직의)

-의료관련노동자

-의과대학/의학자

-일반기업

-환자

-시민

-정당

-사회단체

등등

 

이중

국가는 선거나 정치행위를 통해 변화되므로 나머지의 활동에의한 결과(종속변수)

기업은 법에의해 강제되지 않는이상 자본이 스스로 의무를 질 가능성 0%

의료관련자가 아닌이들은 구체적 상황을 알기힘듬

의료관련자들이 좀더 주도적으로 해야...

 

그러면 어떻게??

1) 의료인

2) 의료관련 노동자

3) 지역/주민/협동조합(의료생협)

4) 의료관련 사회단체/정당의 의료관련부서 

 

추가)

메모 :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중 두가지
1) 접근권(의료기관 접근권) : 전반적(의료기관까지) 이동문제, 의료기관내의 이동문제
2) 소통권(언어장애가 있는경우) : 같은 5분의 진료시간이라도 언어장애가 있는경우 소통의 정도(질,양)는 비언어장애인보다 현격히 떨어진다. 진료의 질도 그 만큼 떨어질수밖에...

 

추가2)

의료서비스이용과 관련해서도 가장 큰 힘은 국가와 자본이 갖고 있다.

법을 제외하고 자본(의료관련)에 대한 실질적 통제/강제/문제제기 수단은 거의 없다. 소비자운동,노조운동등이 있겠지만 현실적힘 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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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좀 지났지만~  비마이너라는 장애인언론에 기사가 났다.

간단한 소개정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길고,'쎄게' 나왔다.

부담이 된다.

 

기사링크

http://www.beminor.com/2010/03/09/K00000022573.html

 

** 추가 **   기사가 깨져 보관해둔것을 올린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진료 받으세요

돈으로 얽힌 의료관계를 거부하는 혜화 독립진료소

                                                                                                          김가영 기자 / chara@beminor.com

 

 

"진료를 행하는 병원이 돈을 좇을 때, 진료는 돈이고, 진료하는 병원은 상업적 공간이 된다."

자본의 논리로만 행해지는 '의료'의 바깥에도 인간은 존재한다. '병원'은 물질적 권위 안에서 오직 거래로만 치료하는 상업적 공간으로 전락했다. 자본으로 환원되는 의사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존엄은 위협받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돈과 인간'의 관계를 떠나 치료를 하는 단체가 있다. 의료 소외계층 속에 자리 잡은 독립진료소가 바로 그곳이다.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의 의료 자원활동모임 '들풀'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노들장애인야학이 함께하는 혜화 독립진료소는 돈으로 얽힌 의료관계를 거부하고 오로지 인간을 위한 진료를 제공한다.

독립진료소는 돈이 없으면 건강할 수 없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돈'으로 셈하는 세상을 부정한다. 의사와 환자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맺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진료하는 이와 진료받는 이가 높고 낮음으로 규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최소한의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의료를 통해 사회적 실천 활동을 하는 '들풀'은 현재 장애인뿐만 아니라 각 단체와 연대해 이주노동자와의 진료도 진행하고 있다.

독립진료소 측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건강할 권리가 있고, 의사라면 누구나 타인의 건강을 살필 의무가 있다" 면서 "권리와 의무를 돈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독립진료소
독립진료소 예진 중. ⓒ비마이너

 

독립진료소
진료를 기다리며 영화도 관람 할 수 있다. ⓒ비마이너

 

지난 7일 늦은 2시 혜화 독립진료소가 문을 열었다. 이날 진료에는 한의사 4명과 예비한의사 4명, 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이날 진료를 받으러 온 장애인은 모두 13명. 이들은 각자 몸 상태에 따라 침도 맞고, 원적외선 치료도 받고, 뜸도 뜬다. 한 사람이 진료받는 시간은 평균 30분 정도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진료 뒤에 한약을 지어 보내주기도 한다. 진료를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대기실에서는 한방차도 마시고 영화도 틀어준다. 이날은 독립영화 '바람'을 상영했다.

 

이날 진료를 받은 하상윤(뇌병변장애 1급) 씨는 "의사선생님들이 진찰도 잘 해주고 친절하다"라면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좋고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했다. 조은경(정신장애 2급) 씨는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라면서 "원래 팔이 좀 불편했는데 많이 자연스러워졌다"라고 밝혔다.

 

혜화 독립진료소는 노들야학에서 격주 일요일 늦은 2시마다 열린다. 다음 진료는 3월 21일 일요일에 열린다. 진료와 약물처방비는 전액 무료이다. 이용을 원하는 장애인은 진료 하루 전 담당 활동가에게 연락하면 된다.(노들야학 조사랑,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송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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