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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늙고 지친 활동가를 위한 진료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이전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주변에 이야기하니 다들 긍정적이다. 

 

이제 시작하는일만 남았는데,,,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겠다.

 

대략 10년이상 활동한,, 40대이후 활동가를 위한 공간이다.

 

다음은 이 공간을 구상하며 떠올렸던 노래다

유명한 노랜데 000만 바꾸었다.

***에 실려간'의  ***은 머리가 나빠 뭘로 바꿀지 떠오르지 않는다.

 

늙은 활동가의 노래

 

1.

나 태어난 이 강산에 활동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한세월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 청춘
***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2.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활동가의 아들딸이다
좋은옷 입고프냐 맛난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활동가의 아들딸이다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 청춘
***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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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불로그가 개편되어 스킨을 이것저것 바꿔보다,, 제일 간명한걸로 바꿨다. 이미지를 바꾸려하니 잘 안된다. 그래서 그냥 이미지 없는채 헤더 높이만 줄였더니 그런데로 좋다..

 

요즘읽은 책구절이다.

"인간을 동물과 근본적으로 구분짓는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통속적인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의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의 의식이다. 자기감정이라든가, 감성적 식별력이라든가, 지각이라든가, 외적 사물을 일정한 징표에 따라서 판단한다는 의미에서의 의식은 동물에게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정 엄밀한 의미에서의 의식은 스스로의 유(Gattung)나 스스로의 본질을 사고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에게만 가능하다."

"우리는 의와같이 제한된 의식, 그러나 바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오류가 없는 의식을 의식이라 부르지 않고 본능이라 부른다. 엄밀한 의미 또는 본래의 의미에서의 의식과 무한한것에 대한 의식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제한된 의식은 의식이 아니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포괄적이며 무한한 성격을 지닌다. 무한한것에 대한 의식은 의식의 무한성에 관한 의식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무한한것의 의식 속에는 자기본질의 무한성이 의식의 대상이 된다."

"이성의 제한 또는 일반적으로 인간본질의 제한은 모두 기만이나 오류에 의존한다."

"인간의 개체가 자기의 제한을 유의 제한으로 간주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개체가 자기를 유와 동일시하는 기만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기만은 개체의 안일함, 태만, 허영, 이기심과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다. 내가 순전히 나의 제한으로서 알고 있는 제한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나를 수치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치심이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나는 내개인의 제한을 인간본질의 제한으로 만들어버린다."

"개체의 절대적 본질이 되는 인간의 본성과 유의 본질을 유한하고 제한된 것으로서 규정하는것은 환상이며 우스꽝스럽고도 경솔한 오류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어떤 존재도 자체를, 곧 자체의 본질성을 부정할 수없으며, 어떤 존재도 자체로 제한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오히려 그 자체로서 무한하며, 스스로의 신, 스스로의 최고의 본질을 자체안에 가지고 있다." 

 

포이어바흐/강대석옮김  '기독교의 본질'중 제1장 '일반적인 인간의 본질'에서

 

오만할정도로 자신만만한 글이다.  허나 현실에서는 그것도  너무 징글징글한 '현실'앞에선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이런 물음이 참 덧없어진다.


 어제 '뺑뺑이 인생에 종지부를 찍자'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그제 지원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별 도움을 못주던차라 궁금한 마음에 열어보니 폐쇄조치를 진행한다고 한다. 안가봤지만 상황은 짐작이간다. 

폐쇄조치소식에 속시원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득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메일제목에서 보듯이 그들에게는 뺑뺑이의 계속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설에 살던 이들중 일부는 다른 시설로 옮겨가고, 일부는 가정으로 돌아간다고한다. 하지만  그뒤의 모습이 너무 뻔하게 그려진다.  앞에 비마이너 기사에도 보듯이 30대 뇌병변장애인이 지체장애인으로 분류되고,,  노인병원,정신병원을 전전하는게 지금현실이다.  메일제목은 '종지부를 찍자'지만 그도 답답한마음은 마찬가지일것 같다.

 

다른책의 한구절이다.

"먼저 자연권이다. 자연권은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속한 권리, 즉 인간이라는 단한가지 사실만으로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자연적'이니까, 국가가 준 게 아니니까 어떤 권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났단 사실만으로 자연권을 가지므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자유가 구속당하면 자연권을 행사할수 없으니 자유로워야 하는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이 자연권의 핵심 개념이 된다.

그런데 자연권을 말할때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필수적인 특질이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성'이다. "

"'이성'과 '자율적인 도덕적 의지'를 갖지못했다고 낙인 찍은 사람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예, 이교도, 야만인, 식민지인, 원주민, 여성, 아동, 빈민 , 광인(당시의 표현에는 정신장애란 말이 없었다)에겐 이성이 없고 자율적인 도덕적인 의지가 없으니,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건 '인권침해'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자연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외쳤지만 실상은 대다수 인간을 '배제'하는 논리였다."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  서문에서

 

이책('인권을 외치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상당수 죽임을 당했다. 인권은 선언문이나 철학책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때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하는것 같다.

하지만 싸울래야 싸울수 없는사람들 앞에서,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추가> 관련글 링크

1)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4&page=2&PHPSESSID=a6643e24f16cfe6b0fb25f14c0cf2839&no=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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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비마이너] 25년만에 시설에서 '탈출'했지만…

25년만에 시설에서 '탈출'했지만…
활보 없어 '상처'투성이, 소득보장 미약해 '앞날 캄캄'
장애등급재심사 받으면 활동보조 대상자에서조차 탈락될 가능성 커
2010.08.10 14:05 입력 | 2010.08.10 20:53 수정

▲지난 4월 중순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정승배 씨가 집으로 가고 있다.

 

2010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탈시설한 뒤 자립생활을 시도하는 중증장애인의 현실은 어떨까? 정승배(31세) 씨의 이야기로 그 답을 알아보자.  

 

지난 4월 중순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정 씨는 다섯 살에 장애인생활시설에 입소해 25년 동안 장애인생활시설은 물론 정신병원, 노인병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정 씨는 실제로는 뇌병변장애가 있지만, 시설에서는 그들의 편의 등을 위해 지체지적장애 1급으로 등록했다.

 

"일곱 살에 장애를 비관해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라고 말할 만큼 세상과 장애에 대해 민감했던 정 씨. 그는 입소할 때 '오백만 원만 주면 평생 있도록 해주겠다'라고 약속했던 시설에서 그동안 계속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결국 스물아홉 살 때 생활비를 재촉하는 원장과 크게 싸우고 다른 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정 씨의 분노를 이해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대신 원장과 마찰을 일으킨 정 씨에게 사람들은 정신장애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여러 시설을 전전하던 중, 마지막으로 있던 정신병원에서는 한 달 내내 방에 홀로 갇혀 알 수 없는 약을 먹어야 했다. 

 

정신병원에서 다시 전라도 지역의 한 노인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정 씨는 '탈출'을 결심하고, 전부터 알고 있던 장애인인권단체 전화번호를 간호사실 컴퓨터로 몰래 찾아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라며 도움을 청했다. 이후 정 씨는 면회를 온 장애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서울로 '탈출'했다. '탈출'을 '납치'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때부터 정 씨의 자립생활은 시작됐다.

 

▲'장애인주거복지 및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정승배 씨가 주거지원을 받아 현재 살고 있는 집.

 

한동안 다른 동료 중증장애인의 집과 체험홈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정 씨는 5월 하순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는 '장애인주거복지 및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사업' 대상자 14명 중 한 명으로 선정돼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원룸에 입주하게 됐다.

 

일단 자립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인 주거 공간이 해결됐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시설에서 나온 지 넉 달이 되어 가지만 아직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가능성도 적다는 것.

 

"내가 뇌병변장애인이 아니라 지체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을 (지역사회로) 나오고서야 알았다"는 정 씨는 뇌병변장애인으로 등록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신규 신청 등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장애등급 판정과 장애등급 심사를 위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정 씨는 등급이 하락해 1급으로 대상자를 제한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 씨는 휠체어를 손으로 잡고 밀면 어느 정도 보행이 가능한데,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보행이 불가능해야 1급 판정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일주일에 6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만, 식사와 세면 등 일상생활을 원활히 수행하기에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지원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자원봉사자가 와서 2~3시간 집안일을 도왔을 뿐이다. 그나마 이런 지원도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어느 때에 활동보조서비스가 가장 필요하냐?"라는 질문에 정 씨는 밥솥을 열어 보여줬다. 그는 "내가 쌀을 물로 씻으면 다 쓸려 보내기 때문에 씻지 않고 밥을 했다"라면서 "밥을 공기에 담을 때에도 다 흘리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담아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허벅지의 상처를 보여주면서 "혼자서 라면을 삶아 먹다가 뜨거운 물을 흘려 화상을 입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상처는 허벅지뿐만 아니었다. 턱에도 혼자 면도를 하다가 난 상처가 있었다.

 

▲쌀을 물로 씻기 어려운 정승배 씨가 물에 씻지 않고 한 밥을 보여주고 있다.

▲활동보조인 없이 혼자 식사와 세면을 해결하다가 턱과 허벅지에 난 상처들.

 

활동보조서비스 뿐만 아니라 소득보장 문제 또한 정 씨의 자립생활을 가로막고 있다. 정 씨는 현재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고 아무런 지원도 없지만,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차상위계층에 속해 장애인연금 대상자이지만 급여를 받아도 월 9만 원에 불과하다. 현재 몇만 원 가량의 후원비와 함께 원룸 관리비와 쌀 등을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 지원 사업이 끝나면 결국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라는 물음에 정 씨는 "일자리를 구해 남의 도움 없이 생활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장애인주거복지 및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의 조사랑 활동가는 "주거지원 사업 대상자로 현재 14명을 선정했지만, 승배 씨 등 2명만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와 주거지원을 받았고, 나머지 대상자들은 장애등급심사 등으로 서비스를 받으려면 몇 달 이상 소요돼 현재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고 서비스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조 활동가는 "특히 지방에 있는 시설에 사는 경우 지자체들이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이 부족하다'라며 이유로 아예 신청 자체를 거부하거나 신청을 받아도 바우처 시간을 제공하고 있지 않고 대기자로 두고 있어 시간이 더욱 걸리고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선정된 분들도 시설에서 나오는 시간이 길어져 많이들 힘들어하신다"라고 전했다.

 

장애등급 심사제도 확대 등 장애등급제 강화와 예산 부족으로 행정당국이 중증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제한함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자 하는 중증장애인의 삶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는 출구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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